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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제3대 이명학 원장 이임식 “꽃길만 걸으소서” |
아하, 전면 벽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보니 알겠다. 지난 2014년 4월 22일(교육부 임명은 정확히 ‘세월호’ 그날인 4월 16일이라 한다) 성균관대 한문교육학과 이명학 교수가 제3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딱 오늘로 1046일 되는 날, 이임식이다. 지난 34개월 동안 오직 우리 원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한 이명학 원장이 공식적으로 떠나는 날, 의미있는 세리머니(ceremony)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원으로서도 또 하나의 ‘매듭’을 짓는 날. 외부 기획사 대표는 ‘꽃길만 걸으소서’라는 제목을 보고 “기가 막히다. 누구의 아이디어냐”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앞자리를 메우신 분들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임을 축하하러 온 이원장의 고등학교 동문들이 대부분. 마치 ‘으-리, 으-리로 뭉친’ 서울의 한 명문 고등학교(중동고등학교)의 힘을 보여주는 것같았다. 총동창회장을 비롯하여 동기동창인 3선의 선량(善良), 모교(성균관대) 후배교수 5명, 건설자문위원, 빅데이터 전문교수, 광고사 대표 등등등등. 정작 축하받아야 할 사모님과 가족은 ‘오지 않는 쪽’으로 해결이 쉬웠으나, 극성 동문팬들은 말릴래야 말릴 수가 없었다는 원장님의 ‘푸념’은 즐겁고 행복한 고민처럼 들렸다.
김낙철 번역사업본부장의 업적 소개는 현란하기조차 했다. 3년간의 업적을 ‘뉴스 Top 10’처럼 뽑아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데, 여기저기서 소리없이 동감하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정말 저 많은 일들을 해내신 걸까? ▲직원과 번역위원들의 처우 개선(2017년 총 2억7천만원의 인건비 예산 추가확보) ▲고전번역사업의 대외 홍보 및 대중화 기여(고전선집 번역, 초중등 고전읽기 자료 개발-어린이․청소년 고전도서 30여종 발간, 오스트리아 등 5개국 해외 고전강연 9회 개최(40여명 참가), 고전앱 ‘고구마’ 개발 보급-전국 초등학교 대상 독후감대회 개최, 지하철 스크린도어 한시 게재 등) ▲고전번역사업 중추기관 위상 정립(국가고전번역사업 컨트롤타워 역할) ▲인공지능기반 고전문헌 자동번역시스템 구축사업 확정(1년 20억 배정) ▲우리 원의 ’빛나는 미래‘를 위한 청사이전 신축사업(2018년 4월말 지하1층 지상 6층 규모 신청사 완공). 어디 그뿐일까? 소소한 것들의 실례도 든다. ▲’방은고전번역상‘ 신설 3회 시상 ▲그 어렵다는 ‘정원 증원’(연구직 2명) ▲사무실 근무환경-교육원 교육여건 개선 ▲SH공사와 고전교실 개최 ▲서일대와 인성함양과목 개설 ▲성균관대와 인성고전에세이 공모전 개최 ▲고전독서PT대회 개최 ▲신청사 지역구민들을 위한 고전콘서트 개최 등을 어찌 빼놓으랴.
이어서 재임기간 소개 동영상이 막을 오른다. 3년여 활동사진 20여컷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후, 각실별로 깜찍하게 찍은 동영상(식전까지 대외비였다). 마지막 백미는 환경미화원님의 눈물글썽한 멘트 “원장님, 보고 싶을 거예요”와 머리 위 하트표시로 아쉬움을 표현한 인사총무팀과 “꽃길만 걸으시라”는 컨텐츠기획실원들의 작별인사. 최고참답게 늘 점잖으신 정선용 수석연구위원이 임직원을 대표하여 감사패를 드리니. 만장의 박수가 요란하다.
식순에 따라 정영준 경영지원본부장이 기념품으로 ‘행운의 열쇠’와 출판실에서 제작한 ‘디지털앨범’을 선사한다. 또한 소책자 ‘언론에 비친 이명학 원장’이라는 스크랩북(언론스크랩북은 원장님의 칼럼 16편과 각종 언론매체의 인터뷰기사만 모은 것으로, 생래적으로 ‘홍보마인드’가 있는 원장님 덕분에 가능한 거다)을 대외협력실장이 드린다.
정준영 조선왕조실록번역팀장과 김두환 인사총무팀장이 직원을 대표해 드린 꽃다발은 ‘애교’에 불과한 듯, 여기저기서 폭발적으로 꽃다발 세례다. 10개도 넘는 듯. 저 꽃다발들을 어떻게 가져가실까? 안고 사진조차 찍을 수 없다.
이정원 문집번역실 책임연구원의 송별사가 각별하다. 기획예산실장과 신청사 TFT 팀장으로 3년을 꼬박 지근거리에서 원장을 모셨으니, 어디 애환이 한두 가지였으랴. 줄줄줄 구체적으로 사례들을 열거하는데, 우리가 몰랐던 원장님의 ‘민낯’이 보였다. 대부분 소통을 위한 배려의 에피소드들이다. 사업본부장은 하드웨어식의 굵직굵직한 업적을 소개한 반면, 이정원 선생은 소프트웨어여서 실감이 더한다. 직속 상관으로 모시며 힘든 일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또 그만큼 보람도 컸다는 소회를 밝힌다. 가시는 길이 아쉽긴 하지만, 좋은 것 하나는 내일부터 호칭을 ‘원장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모두들 크게 웃는다. 내빈을 대표하여 강석호 의원이 인사말을 하면서 동기동창 덕분에 고전번역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과 그 일을 훌륭히 수행한 친구가 자랑스럽다며 원장 칭찬에 입이 말랐다.
이제 마지막 순서다. 오늘의 주인공인 이명학 원장의 이임사. 서두를 농담으로 시작한다. 플래카드에 그려진 ‘말(馬)’을 가리키며 최근의 국정농단을 빗대 좌중의 긴장을 풀게 한다. 재임기간 중, 사회 각계 요소요소에 배치된 고등학교 동문들과 정부부처(교육부, 기재부, 미래부, 국세청) 공무원 그리고 은평구청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례를 일일이 거명하며(20여명에 이른다) 고맙다는 사의를 표했다. 또한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138명과 2개월에 걸쳐 일일이 개인면담을 하여 우리 원의 실상을 파악하며 ‘미완의 과제’ 77개를 확정, 하나씩 해결해 나간 것을 말씀한 후 현청사 매각과 신청사공사를 최종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마음의 부담이 되고, 남북공동번역사업을 하지 못한 것(이게 어찌 원장님의 능력 부족이랴)과 고전번역교육원의 대학원대학교 전환을 못한 것, 홍보대사를 위촉하지 못한 것 등이 아쉽다, 당시 빼곡이 적은 ‘면담수첩’을 보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직장다운 직장을 만들어달라’는 어느 직원의 말이 쓰여져 인상 깊었다는 고백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길게 인사말을 하지 않는 분이 오늘은 완벽하게 ‘홀로 주인공’이므로 이임사를 20여분 넘긴 게 이채롭다. 재밌다, 마침 동아일보에 연재되는 고전칼럼이 실린 날인데, 필자는 공교롭게 이정원 선생이며, 제목이 ‘물러나야 할 때’였다. 김부식(金富軾)의 ‘걸치사표(乞致仕表)’을 인용해 ‘혹여 높은 자리에 미련이 있어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미끼를 탐내다 결국 죽게 되는 신세가 된다’고 했는데, 새벽에 그 글을 읽었다고 말하여 모두 웃기도 했다.
가장 기뻤던 일은 신청사 관련 쪽지예산이 확정된 사실을 2014년 11월 어느날 밤 문자로 알자말자 “야, 이제 됐다”며 환호하던 일이었다고 한다. 짜안한 일은 무엇이 있었을까? ‘음주번역(?)’을 염려하여 내린 금주령(禁酒令)이 2월 16일부로 해제된다고말하니 환영하는 몇 분이 있었다며 웃는다. 흐뭇하고 따뜻한 뉴스로는 비교적 말수가 적고 의견을 잘 안내는 직원들이 무슨 일(국군장병 위문과 암투병 동료 돕기 등)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일을 드신다. 그런 동료애 속에 배려와 소통의 힘이 작용하리라.
사회관계망 속에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답답하거나 힘들 때 북한산이나 하다못해 옥상에라도 올라 시야를 좀 넓게 보기를 바란다는 부탁말씀 끝에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 하나 거자불필반(去者必不返)할 것이며 전임 원장으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 “최선을 다하고 간 원장으로 기억해주면 고맙겠다” “함께 해준 직원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내년 신청사 준공식에 불러주면 고맙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임사를 마친 이명학 원장에게 뜨거운 박수세례가 이어졌다. 이런 이임사가 어디 쉬우랴. 역시 원장님은 언제나 그렇듯 글이나 말에 군더더기가 하나 없고 정연하며 깔끔하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무난하고 ‘두툼하게’ 이임식 사회를 잘 보신 최태수 운영실장과 지원에 바빴던 운영지원실 선생님들도 애쓰셨다. 그러나 한동안 조금은 멍멍하고 허전했다. 그렇게 이명학 원장은 축하해주러 오신 많은 고교동문들과 함께 할머니두부집으로 점심을 드시러 가신 후 한국고전번역원의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한 목소리로 말씀드릴 수 있다. “원장님, 그동안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꽃길만 걸으소서”
<한국 고전번역원 대외협력실 최영록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