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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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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정은 서울과 안양의 경계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시간,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예정했던 산행, 들머리를 찾아
건널목을 지나고 골목을 돌아 오른다.
석수빌라 옆으로 표시된 들머리는 찾지 못하고
주민으로 보이는 행인에게 물어
금산초등학교 오른쪽 별장빌라에서 시작되는 산길로 접어든다.
다리 왼쪽에 있는 이정표에
'관악산(서울둘레길)'이라는 명칭이
관악산이 멀지 않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오늘 목적지는 해발 481미터, '삼성산'이다.
초입부터 시작되는 완만한 오르막,
바닥을 뒤덮은 갈빛이 계절을 채색하고 있다.
나들이 나온 유치원 아이들 뛰노는 모양이 자유롭다.
이 순간만큼은
잔소리도, 공부도, 학원도, 간섭도, 눈치도, 경쟁도
세상일이 아니다.
좌측 능선으로 올라 붙어야하는데
산길은 오른쪽으로 치우친다.
왼쪽으로 뚜렷해지는 산길을 따라간다.
오래 전, 깨끗한 물을 담아
오가는 길손에게 내어주었을 약수가
오늘은, 마르기도 했거니와
목으로 넘길수 없을만큼 순수함을 잃어
버림받은 모습이 애처럽다.
'참나무시들음병 방제 중'으로
훼손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는 안내문을 붙인채
까만 비닐을 드텁게 뒤집어 쓰고
겨울 날 준비를 마친 무더기가 곳곳에 보인다.
'불로천약수터'다.
급히 나오느라 물을 챙기지 못했는데
갈증을 달랠까, 기대했는데
'음용 부적합' 판정이 야속하다.
이 곳에서 잠시 방향을 잃고
반대 방향,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이, 삼 백미터 갔을까?
지도에서 벗어나는 모양새가 불안해
산책하시는 분에게 길을 묻는다.
역시나 반대방향으로 가고있다.
지나쳐 온 불로천약수터에서
윗쪽방향으로 갔어야했다.
아직 '삼성산' 이정표는 만나지 못했다.
대신 '호암산' 이정표를 쫓아가야한다.
오른쪽 아래 방향이 '서울둘레길'이다.
나는 정면으로 보이는
소롯길로 올라가야한다.
허물 벗는 계절이 다양한 색을 연출하고 있다.
그 켜 걷어낸 길을 구불구불 따라돌면
어린 시절 어울리던 얼굴들을 만날수 있으리란
좋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능선에 올라선다.
도심 공원같은 넓은 산책로를 오가는 이들이
제법 눈에 띈다.
자주 만나는 바윗길이다.
경사는 급하지 않고 발딛기도 편안하다
평지를 걷다 모롱이를 돌면
험하지 않은 바윗길과 완만한 경사를 오른다.
능선에 닿으면
앞이 터져 두른 산은 울긋불긋하고
아주 가끔씩 연무에 가린 도심이 나타난다.
양 옆으로 곱게 바래가는 나무를 거느린,
내내 지루할새없는 가을 산행 묘미를 만끽한다.
지도를 쫓아가지만
의외로 갈림길을 자주 맞닥트린다.
마주치는 등산객에게
방향을 자주 묻는다.
'삼성산', 표시된 높이를 보고 얕잡아봤다.
편하게 올랐지만 시간에 쫓길듯 하다.
혹시 모자라면 급히 걷고
그도 안되면 뛰면 될 일이다.
이정표에서 만나는 '신랑각시바위'가
갈 길을 약간 벗어나 40미터 거리다.
비록 먼 발치에서 봐야하지만
뭔가 사연을 가졌슴직하다.
호암산 아랫마을,
믿음직한 총각과 어여쁜 낭자가 이웃하고 살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양가가 대대로 앙숙으로 지내온 터라
부모는 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혼인시키려 한다.
낭자는 부모의 강압을 이기지 못해,
깊은 밤 목숨을 끊으려 산으로 올라간다.
뒤 늦게 이를 알게 된 총각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낭자를 찾아 온 산을 헤맨다.
그러다 산 중턱 절벽위에 서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낭자를 발견한다.
그 앞에서 만난 이들은 손을 맞잡고
달님에게 세상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
굳은 맹세를 하며 밤을 지새운다.
이들의 절절하고 애틋한 사연은
마침내 달님에게 전해진다.
달님은 진실된 이 연인들의 사랑에 감동하여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마주보고 선 그 자리에 우뚝 선 바위로 만들어주었다.
이 후,
연인들이 이곳을 찾아 손을 맞잡고 사랑을 고백하면
혼사가 이루어졌다 한다.
또 결혼을 한 부부가
달 밝은 보름날 이곳에 올라 기도를 드리면
옥동자를 점지해 주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때 까지 백년해로 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주었다 한다.
넓지않은 개활지에
군부대 비행장시설로 무단 훼손 등을 금지하며
위반시 법에 의해 처벌할수 있다는
어마무시한 경고판이 붙어있다
국가사적 343호로 지정된,
'서울호암산성 제 2 한우물 및 옛건물터',
문화재로 보호하자는 안내문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우거진 수풀 사이로
건물 또는 산성 돌벽 흔적이 보인다.
미로처럼 길은 계속 갈라지고
지도에 표시되는 내 위치로 방향 가늠하기는 버겁고
절벽아래 떨어지는 돌처럼
나를 쫓아오는 시간은 지체없다.
그 와중에 포근히 안아주는 듯한 산길은
그냥 가지마라 애원한다.
이정표가 보인다.
석구상 20 미터.
고지식하게 가르키는 방향으로
허물어진 돌담을 넘어 길을 따라간다
어림잡아 사오십미터 지났을까?
바닥에 엎드린 형상의 바위가 보인다.
거북이(龜)? 개(狗)?
아닌듯하지만,
일단 사진을 찍고 나중에 확인하자.
역시 아니다.
잠깐 '석구상'자료를 보면
관악산 화기를 눌러 한양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는
조선시대의 도읍설화와 연관된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석상이 해태보다는 개의 형상에 더 가깝고,
<시흥읍지> ‘형승조’에도 이를 뒷받침해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구상(石狗象)인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석구상>
다시 돌아나와 길을 따라가는데
앞에 돌기둥사이로 길이 나있다.
저 기둥을 넘어서면
포졸들이 창으로 막아서 검문이라도 할것 같다.
119 산악구조 위치표시봉에
'불영암쪽'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짐작에 사찰의 암자로 생각했는데
화강암 바위를 가르키는 '암(巖)'으로 해석해 본다.
마침 바위봉우리에 간식을 먹는 등산객이 있어 물어본다.
"이 바위가 불영암 인가요?"
머뭇거리며 하는 대답,
끝을 흐리는 태도에 신뢰가 안간다.
"저 아래부터가..."
"네, 감사합니다."
결국 인근에 '불영암' 암자가 있슴을 확인하며
스스로 어리석음에 실소가 나온다.
드디어 '삼성산'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바위봉우리를 오르는데
윗쪽 평평한 곳에 식사중인 부부가 보인다.
그 바위에 올라 보이는 조망이다.
마치 깊은 산 능선에 선 듯
산 넘어 산, 산첩첩이다.
올 가을,
때를 놓친 단풍구경이 애석했는데
만추를 담도록 허락한 자연과
맞춰 찾아 든 스스로에게 감사한다.
아름다운 길이 끝이 없을듯 하다.
이대로 이어지고 내내 따라 걸어도 좋으련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속보로 걷다 풍경에 취해 사진을 담으며
지체한 시간을 보충하고자 달음박질을 한다.
가을 끝, 와이셔츠 차림,
구름 사이로 내비취는 햇살은 아련하다.
그래도 땀이 얼굴과 몸을 타고 흐른다.
'참자'는 의지를 지날즈음
시커먼 구멍과 그 앞쪽 바가지, 약수터가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음용가능여부 표시가 없다.
주위를 청소하시는 분에게 여쭙는다.
"저, 이 물을 마셔도 됩니까?"
"네."
짪은 대답이 고맙다.
바위앞에 '찬우물'이라고 음각해 놓았다.
두 바가지를 연거푸 마신다.
갈증 끝이라 그랬을까.
시원하고 달다.
도심 산행길에
마음놓고 약수를 마셔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때로는 아기자기하고,
때로는 웅장한 바위군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저 앞으로 보이는 평평해 보이는 곳이
내 목적지인 삼성산 정상일까?
오른쪽 솔잎 끝으로 우뚝솟은
송신탑 보이는 곳이 관악산 정상이라 짐작한다.
바위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지않고 발디딤이 좋다.
애써 찾는 이들을 위해
한 여름 그늘을 드리웠던 잎사귀들은
겨울산객을 위해
하늘을 오롯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몸부림에
불꽃처럼 피어오른다.
곧 스러질 육신의 발광같다.
갈림길은 끝이 없을듯 나타나고
방향을 일러주는 등산객 손길은 애매하다.
'관악산 초록숲길', 길 이름이 예쁘다
목적지까지 1.2킬로미터 남았다.
'깔딱고개'라는 이름만큼 돌계단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리 가쁘지도, 길지도 않다.
고개마루다.
다시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이정표가 달라졌다.
삼막사 방향으로 따라간다.
어디에선가 본듯한 형상이다.
자연의 조각품은
투박한만큼 생각속으로 사람을 끌고간다.
저 곳에 닿을때까지는 관악산 정상으로 믿는다.
능선 고개마루에서 시멘트 길을 만나
삼막사 가는 길로 판단하고 걸어 오른다.
앞서가는 등산객에게 정상 방향을 물으니
돌아 내려가 소롯길로 따라가라 알려준다.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오른쪽 부복한 바위 기둥이 인상적이다.
그 사이로 내려오는 노인께
다시 한 번 방향을 확인한다.
등산 잘하고 내려가시라는 산악인사에
먼저 건네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등산로가 낙엽에 덮여
잘 분간하지 않으면 돌아설 수도 있겠다.
앞 쪽 능선길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며 마주보이는 철탑,
삼성산 정상에도 송신탑이 있었구나.
한탄같은 탄식이 나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관악산 송신탑은 한 기가 아니지 않은가.
바위를 타고 넘는다.
초보가 걷기에도 썩 위험하지 않다.
정상 표지석 뒷면에서 셀카를 찍는다.
'중요시설물 관계로 이동하여 세움'
한편으로는 얹짢다.
시설물을 조금 더 옆으로 세워도
성능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텐데...
삼성산 정상 표지석에서 셀카를 담는다.
뒷면 철탑이 자리잡은 곳이
삼성산의 실제 정상부분이다.
정상석 앞 촛대처럼 서있는 바위에
삼국시대 중요한 기록이
세월의 풍상에 지워졌을것 같은 상상에 빠져본다.
'삼성산'은 관악구 신림동과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있다.
삼성산은 신라시대 고승 세 분이
암자를 짓고 수행정진하던 곳이라 하여
'삼성산(三聖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 다른 설로는,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삼성(三聖)'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오른 맞은 편으로 길 흔적이 보인다.
시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험하리란 짐작에
올랐던 길을 돌아 내려간다.
정상부 우람한 바위군을
좁은 공간, 아무리 위치를 바꿔보아도
온전히 담을수 없다.
이럴 때 드론을 활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접어들었던 시멘트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올라간다.
스마트폰 지도에서는
다음 목적지, 삼막사에서 멀어지고 있다.
발길을 돌려 내려가다보니
시주자 이름과 상형문자로 쓴 비석이
계단을 따라 세워진 반월암이 나온다.
네 기의 부도가
유서있는 사찰이라고 웅변하는 듯 하다.
반월암은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삼성산에 원효가 삼막사를,
의상이 이막사를, 윤필이 일막사를 창건하였는데,
그 뒤 일막과 이막사는 없어지고 삼막사만 남았다고 하며,
고려 말기에 나옹이 이 절을 중창하고 반월암이라 하였다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반월암 [半月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삼막사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용주사의 말사이다.
말사라기엔 규모나 역사가
여늬 절을 능가한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때 창건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 폐사되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
삼막사는 신라시대 원효, 의상, 윤필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막을 치고 수도하였다.
그 후 절을 짓고 삼막사라 하였다.
사찰 기록에 의하면, 원효가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이 중건하여 관음사라 개칭하였는데,
고려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하였다 한다.
고려 말, 나옹이 이 절에 머무르며 수도하였고,
조선 개국 초기에 왕사 무학이 국운 융성을 기원한 인연으로
왕명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조선시대 도성 주변 4대 명찰 중 하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막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찰임을 입증하듯
'삼성산 삼막사', 일주문이 웅장하고 품위있다.
주변 암석과 고목, 산세가
기와, 단청과 어우러져 두드러지지 않아 좋다.
범종각이다.
본당 명패가 '육관음전'이라고 되어있다.
삼성각이다.
'망해루'다.
볼 수 없는 바다를 꿈꾸는 걸까?
사위를 덮는 구름바다를 기다리는 걸까?
본당안 본존에 모셔진
여섯 관음이 저마다의 형상으로 자리잡고있다.
움푹 파인 부분에 양각한 관음보살님이
중생과 함께 하고자 풍상을 맞고있다.
유형문화재 제 112 호로 지정된
'삼막사 삼층석탑'이다.
고려말, 삼막사 승려였던 김윤후는
려몽전쟁이 일어나자 승장으로 참전해
처인성 전투에서 몽고군 원수 살리타이를 사살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탑이다.
나라와 중생을 구제하기위한 명분은
불교의 교리를 앞선다.
김윤후장군이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있을 때
몽고가 재침하여 성이 포위당한 지 70여 일이 지나
식량이 떨어져 위태롭게 되자
병사들을 독려하는 한편
"만일 힘을 다하면 귀천없이 모두 관직을 제수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관노의 명부를 불사르고 노획한 소와 말을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에 모두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물리쳤다.
그 공으로 감문위상장군이 되었고,
군공을 세운 관노·백성에게 약속대로 관직을 주었다.
<출처 : 다음백과>
천가지 형상의 불상이 안치된
'천불전'이다.
산사 뜰에 서서
낙엽으로 스러질 단풍을 본다.
화려하지만 덧없다.
파랗게 불꽃으로 피어오르다
숯이 되어 벌겋게 타고있는 잉걸불같다.
그렇게 재처럼 낙엽이 된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다.
유형문화재 제 125 호로 지정된
'삼막사 사적비'이다.
마모가 심해 정확한 판독은 어려우나
사찰의 위치와 이름,
조선 숙종 33년(1707)에 건립되었슴을 전하고있다.
'산신각'으로 가는 길 돌계단이
주변 지세와 어우러져 풍치있다.
암벽을 파 불화를 양각하였다.
그 오른쪽 오석에는
석화조성 시주자 명단이 적혀있다.
양각화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삼귀자(三龜字)'다.
'구북 귀(龜)'자 세 개를
다른 글자체로, 상형문자로 음각하였다.
조선말기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이
삼막사에 은거하며 쓴 글을
암석을 다듬어 음각하였다.
원문 글은 1920년,
지운영이 꿈에 관음보살을 본 후 썻다.
'칠성각' 가는 길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고 싶은 마음 가득한데
'삼막사' 매력에 빠져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다.
사찰 앞 너른 공터에 내려,
되돌아가려던 계획을 수정한다.
가장 빠른 길을 찾아보니
'삼막사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삼성산에 깃든 사찰의 위용을 본다.
대충 방향을 잡고 내려서는 길로 접어드는데
길 찾기가 수월치않다.
도심에 연한 산이 험해야 얼마나 험할까?
조급하고 안이한 마음이
더듬듯이 길을 헤매면서도 달음질친다.
삼성산을 오르거나,
삼막사를 찾는 가장 빠른길임에도
사람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다.
지도에서는 왼쪽으로 꺽어지라 알려주는 우회로에
진행방향으로 폭우에 패인듯한 길이 보인다.
'디귿 자('ㄷ') 모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똑바로 가면 만나겠지 여겨진다.
서두르는 걸음을 잡는 돌탑이
계곡가에 서있다.
보통 재주가 아니다.
우리 삶도 저런 균형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저런 아슬아슬함이 아닌
넓적한 돌에 얹혀진 평온함이길 바란다.
계곡을 따라내려오다
길의 흔적을 잃어버렸다.
계곡 왼쪽 돌무더기 위에 올라서니
다행히 길이 드러난다.
마침내 삼막사계곡 하류 끝,
도로에 안전하게 닿는다.
내려온 길을 되돌아 본다,
오늘도 하루, 비록 숨가빴지만
세웠던 계획을 달성하고
훌륭한 경치에 흠뻑 젖을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출발지로 돌아가야하는데
시간은 없고 걷기에는 조금 멀다.
이정표를 찾아 경인교대 앞까지 걸어내려가
카카오택시를 부른다.
10분 후 도착 예정이다.
잠시 너른 공터에 심어진 가로수가 연출한 단풍을
마음에, 사진에 담는다.
타의에 의해서 지역을 배정받고
나름대로 주변을 검색하며 여정을 잡는다.
생각보다는 자주 놀라운 곳을 발견한다.
보물찾기같다고나 할까?
숨겨진 보물종이를 찾아 조심스레 펼치는 기분,
특히 예상보다 큰 선물이 적혀있는 종이를 펼치는 기분은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행복이다.
삼성산, 막상 산에 들어
마주치는 많은 이들에게 물어보지만
늘 곁에 두어서일까,
웅장하면서도 포근히 안아주는 그 매력을 모른다.
심지어는 산이름에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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