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나니 흰머리가 유독 신경 쓰인다. 가기 전에 염색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한다는 것이, 왠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마음이 흔들리는 듯해서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두어 군데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마스크가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 흰머리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염색하지 않은 내 머리를 보고 놀랐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나 역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사실 팬데믹 전에는 미용실에 가서 늘 머리를 단정하게 쇼트커트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빼놓지 않고 셀프 염색을 했었다. 얼굴에 화장은 하지 않아도 반곱슬에다 날이 갈수록 숱이 줄어드는 머리에는 신경이 쓰였다. 머리카락이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쭈뼛하게 삐치면 바로 잡느라 심혈을 기울일 정도였다. 나는 그것이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행위의 일환일 뿐 타인을 의식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팬데믹 초기, 미용실 출입이 통제되고부터 부부끼리 서로 머리 손질을 해주면서 염색도 덩달아 중단되었다. 그렇잖아도 눈 질환이 악화되어 염색 중단을 고려하고 있던 터라 기회가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사십 대 초반부터 새치가 생겨나면서 보기 흉하다고 뽑기 시작하다 결국은 염색약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는 별 고민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하는 일이었고 흰머리로 그들 앞에 선다는 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하고 난 뒤에도 머리 염색은 습관적으로 이루어졌다. 모공에 악영향을 미치고 게다가 눈에도 안 좋은 염색을 왜 끊지 못하는지 염색할 때마다 드는 갈등이기도 했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다는 게 은근히 편하고 좋았던 이유도, 흰머리 노출 시기와 맞물렸던 듯하다. 타인을 별달리 의식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했어도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은, 묘한 쾌감과 해방감을 불러일으켰음이라.
이곳 한인 동포 사회조차도 남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흰머리를 그대로 노출하고 사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관점에서 볼 때 흰머리 소수자는, 미(美)를 포기했거나 게으른 사람 내지는 지병이 있는 사람, 또는 노화를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사는 사람 부류로 인식되고 있지 않나 싶다.
한국 최초 여성 외교부 장관이 은발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 나 또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백발의 첫인상이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공적인 지위에 있는 여성치고 백발을 한 모습을 본 적이 없기도 했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도 상당히 벗어나 보였기 때문이리라.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길래 대중 앞에 과감히 흰머리로 나설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본래의 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 내가 일하는 유엔에선 머리 색깔에 대해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그런 기류 때문인지, 그의 활동 무대와 당당함 때문인지, 그의 흰머리 스타일을 오히려 높이 평가하는 기사 일색이었다.
캐나다 최대 규모의 민영 방송사 CTV의 간판 여성앵커가 흰머리로 카메라 앞에 섰다가 해고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는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에서 '베스트 뉴스 앵커'상을 받은 유능한 앵커였다. 뉴스를 진행할 때 그의 안정된 목소리와 자신감 넘치는 자세를 보며 멋진 방송인이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은발의 모습으로 출연했을 때는 전혀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더 근사해 보였다. 앵커 교체는 사업상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방송사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은 거세었다. 나이 든 남성의 권위와 편안함은 신뢰하면서 나이 든 여성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여론은 꼬집었다. 내부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능력 있는 한 여성앵커가 흰머리 때문에 해고됐다는 현실은, 남녀평등 수준이 높다는 캐나다에서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흰머리를 하고 한국에 나가게 되면 분명 친구, 친지로부터 염려스러운 눈길과 함께 질문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늘 하던 대로 내 상태를 설명하고 그들의 걱정스러움을 잠재울 터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그 생각을 이따금 하면서 마음이 어수선해질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끊는 손쉬운 길은 염색을 해 버리는 것일 수 있으나, 그것은 어렵사리 세운 내 소신을 무너뜨리고 자존심을 버리는 태도라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리라. 내가 다시 염색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노화를 거부하는 몸부림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행위처럼 느껴져 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궁금증은 싹트기 마련이다. 나도 사실 타인의 첫인상이나 변한 외모에 호기심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일 뿐, 관심이 지속되는 시간은 지극히 짧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짧은 순간이나마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걸 보면 나도 그다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