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출가제도에 대한 유교의 비판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기 이전에 중국의 전통문화는 농업에 기초한 가족제도가 중심이 되어 있었으며, 그 핵심에 효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대 중국 사회에서 효는 모든 문화와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효도를 빼면 중국이라는 국가도 사회도 존속하지 않을 것이라 할 정도로 효(孝)는 중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에 있어 최고 절대의 도덕이고 모든 덕의 근원이었다. 이것은 유교를 배경으로 하여 상고(上古)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3,000여 년이 넘도록 조금도 변하지 않은 도덕이었다. 부모에 대한 효(孝)가 절대시되어 그것이 마침내 모든 것에 통하는 원리로까지 전개되어간 것이다. 한편 불효도 또한 그것에 비례해서 대역죄와 똑같이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사서오경(四書五經) 등 유교의 주요 경전은 모두 효(孝)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증자(曾子)가 엮은 것으로 전해지는 <효경(孝經)>은 부모에 대한 효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효경>을 중심으로 유교의 효(孝)사상을 정리하면서 효와 관련하여 불교가 비판받았던 내용을 논의하고자 한다.
1)후손을 단절하는 불효
유교에서는 가족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후손을 낳아, 대를 이어가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에 비추어볼 때 출가하여 후사를 끊는 불교의 전통은 그들의 눈에는 분명 불효의 종교임에 틀림이 없다.
유교의 입장에선 출가는 후손을 단절하는 불효의 행위이다. <예기(禮記)>에 '시집가서 3년 안에 자식이 없으면 떠난다.'라는 구절은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혼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여 가문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자식을 두지 못한다는 것은 그 가문의 단절을 의미한다. 가계(家繼)의 단절이란 가문을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선조를 받들어 모실 후손이 끊기는 일이므로 이보다 더 큰 불효는 없다.
자식이 많으면 선조에 제사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부모와 선조에 대하여 효(孝)를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효경>에서는 후손을 낳아 가계를 간단없이 계승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부모가 나를 낳았으니 대를 잇는 것보다 중대한 것은 없다."
<홍명집(弘明集)>에 수록된 모자(牟子)의 [이혹론(理惑論)]에선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복은 후사를 계승한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후사가 없는 것보다 더한 불효는 없다. 사문은 처자를 버리고, 재화를 버린다. 평생 결혼하지 않으니 어찌 그것이 복 받는 효행을 위배하는 것이 아닌가?"
맹자는, '불효가 셋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자손을 못 낳아 조상의 대를 끊기게 하는 것이 제일 크다.'고 하였다. 조파(趙岥)는 세 번째 불효에 대해 부연한다.
"아내를 맞이하지 않아 자식이 없어서 조상의 제사를 끊는 것이 세 번째 불효다."
손작(孫綽, 300-380)은 <유도론(喩道論)>에서 3,000개의 잘못 중에서 후손을 남기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효의 핵심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출가는 곧 불효라고 인정되어 불교는 효사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2)삭발은 불효의 행위
유교에서 출가자의 삭발은 불효의 행위라고 규정한다. 비구와 비구니는 주기적으로 삭발을 한다. 유교인들은 출가자의 삭발을 불효의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삭발은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훼손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불교는 불효를 가르치는 것으로 비난하였다. 이러한 비난의 근거로 애용되었던 구절은 <효경>의 서두에 있는 다음의 구절이다.
"자신의 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부모로 받은 몸에, 심지어 머리터럭까지도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고 명시하는 <효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삭발하는 승려는 불효자가 된다. 삭발은 불교가 유교가 중시하는 효(孝)를 어기는 행위로 효행의 시초를 어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삭발은 중국에서 불교가 배척받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가 되었다.
모자(牟子)의 <이혹론(理惑論)>에 <효경>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증자(曾子)의 고사를 제시하며 삭발의 불효를 한탄하고 있다.
"증자가 임종에 이르러 자신의 손과 발을 보이며 말했다. 지금 사문은 삭발하니 성인의 말씀을 어긴 것이 아니겠는가? 효자의 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증자는 자신의 손발에 어떠한 훼손도 없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몸을 잘 간수하였다는 것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사문을 삭발을 하여 불효의 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3)부모를 저버리는 불효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다면 유교에서는 패륜아로서 사회로부터 배척당했다. 유교의 관점에선 출가 행위는 부모를 저버리는 불효이다.
<효경>에 의하면 자녀는 반드시 물질적으로 부모를 공양해야 한다.
"효자가 부모를 섬기는데 보통 거처할 때에는 공경하는 마음을 다한다. 봉양할 때는 부모가 즐거워하도록 한다. 부모가 병이 있으면 몹시 근심한다. 돌아가시면 슬픔을 다한다. 제사지내는 일에는 엄숙한 마음을 다한다. 다섯 가지가 완비된 연후에야 어버이를 섬긴 것이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땐 곁에 있으면서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도록 공급하고 질병이 나면 간호하도록 하는 것이 효행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불교에선 출가하면 부모를 가까이 모시면서 물질적으로 공양할 수 없다. 사문은 출가하여 수행을 하기 때문에 세간의 관습과 법에 구속되지 않는다.
붓다 당시 인도에서 종교 수행자는 일반인으로 존경을 받았고 물질적인 지원을 받았다. 인도의 불교에서의 출가자에 대한 일반인의 존경과 예경은 중국 문화에서 그대로 수용되기 어려웠다. 부친에 대한 자식의 순종과 존경, 국왕에 대한 신하 내지 백성의 존경이 당연시되었던 중국인에게 출가자가 부모와 국왕에게 기존의 예의를 표시하지 않자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불교의 입장에선 출가 사문은 이미 세간의 법을 벗어났기 때문에 가장인 아버지에 대해서도 출가 이전처럼 예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입장에서 이런 행위는 부모를 업신여기는 행위로 보였던 것이다.
"부모님 위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자칭 사문이라 한다. 군주 앞에서 오만하면서 석가의 씨앗[釋種]이라 한다."
왕에게 예경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게 예경하지 않는 것은 유교에선 용납하기 쉽지 않았다. 왕에게 예경할 필요는 없지만 부모에겐 반드시 예경해야 한다는 칙령이 내려지곤 하였다. 북주의 무제(武帝)는 폐불(廢彿)을 실행하면서 다음의 조칙을 발표한다.
"부모의 은혜가 중한데도 사문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 인륜 즉 도리를 어기는 것이 심해 국법도 이를 허락지 않는다. 모두 출가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효양을 다하라."
<이혹론>에선 가족을 사랑하지 않고 낯선 이를 사랑하는 수대나 태자의 보시행을 비판하고 있다.
"불교경전에 의하면 수대나(須大挐) 태자는 부친의 재산을 낯선 사람에게 주었다. 나라의 보배인 코끼리를 원수의 집에 주었다. 처자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 어버이를 존경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니, 이는 예(禮)에 어긋나는 것이다.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친애하는 것이니, 이것은 덕(德)에 어긋나는 것이다. 수대나(須大挐) 태자는 불효하며 불인(不仁)한데도 불가에서 존중하니 그 어찌 이상한 것이 아닌가?"
<태자수대나경>에 의하면 부처의 전신이었던 수대나가 자기의 처자까지 바치면서 불도를 닦은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불도를 닦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수대나 태자의 보시행을 이 경전을 담고 있다. 이 경에서는 불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의 처자까지도 서슴없이 바쳐야 한다는 것을 설교하고 있다.
그런데 유교 측에선 이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부모의 뜻에 반하고 가까운 가족까지 저버리고 오히려 낯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유교에서는 <효경>에선 부모의 이름을 널리 세상에 오래도록 드러내는 것이 효(孝)의 완성이라고 보고 있다.
"몸을 세워 도(道)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날려서,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끝이다".
무제는 출가보다 효양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부모의 은혜는 중하기 때문에 물질적인 효양을 다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부모를 버리고 멀리하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부모의 이름을 떨쳐도 아직 효(孝)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다."
출가해서 유명한 출가 수행자가 되더라도 가까이서 부모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효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손작의 <유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사문이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부모를 버리고 곧 멀리하여 머리를 깎아 부모로부터 받은 자연적인 모습을 해친다. 살아 있을 떼는 부모를 공양하는 것을 그만두고 결국에 혈통을 끊는다. 골육의 부모도 길거리를 지나가는 주변의 타인과 같이 한다. 도리를 등지고 인정을 손상시키는 일은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출가 즉 불효라는 유교의 비판에 대비한 붓다의 견해/ 안양규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