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방통’ 막강 로마 군단의 필수 휴대 음료. 식초
갈증 해소·에너지 보충
소독 및 고대 정화제 기능
스페인 정복 전쟁 나선루
클루스 장군 때부터 휴대
전선에서 마시기 위해
만든 식초음료가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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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정복 후 쌓은 로마 장벽. 필자 제공 |
시중에는 다양한 식초 음료가 나와 있다. 적당량 마시면 건강에 좋고 피로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마실 수 있지만 피부미용에 좋은 데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다 보니 주 소비층은 아무래도 젊은 여성들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식초가 피부 미용에 좋다고 믿었다. 서양에서도 고대 그리스 트로이 전쟁의 실마리를 제공한 헬레네 왕비가 목욕할 때 식초 떨어뜨린 물을 애용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1세기 전후 로마 병사들의 휴대품 중에도 식초 음료가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막강 로마 군단 병사들이 식초 음료를 왜 가지고 다녔을까? 현대 여성들처럼 피부를 가꾸거나 살을 빼려고 식초 음료를 마셨을 리는 없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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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루스 장군 초상화 |
로마 군단의 정규 보급품 포스카 음료
로마 병사가 식초 음료를 휴대했다는 것은 떠도는 속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성경에서도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누가복음 23장 36절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언덕을 향할 때 군병들이 신 포도주를 주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신 포도주라고 번역했지만 사실 로마 병사들이 언제나 휴대하고 다녔던 포스카(posca)라는 식초 음료다.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호송하던 로마 병사가 목마른 예수에게 수통에 든 음료를 건네준 것인데 포스카란 어떤 음료였을까?
포스카는 1세기 무렵 로마 군단의 정규 보급품이었다. 로마 병사들은 행군 중 하루 약 2L의 물을 공급받았다. 그리고 물과 함께 시어진 와인으로 만든 식초를 공급받았는데 이 식초를 허브와 함께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 포스카라는 음료다.
포스카는 다목적용이었다. 첫째는 갈증 해소. 식초를 떨어트린 만큼 목마름 해소에 효과가 탁월했다. 둘째는 지금으로 치자면 에너지 음료였다. 시어진 와인을 재활용해 제조했기에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와인 한 병의 열량이 약 500㎈이니까 보급이 차단됐을 경우 포스카만 마셔도 어느 정도 힘을 낼 수 있었다. 셋째는 의료용이다. 옛날 식초는 기본적으로 조미료라기보다는 의료용이었다. 기원전 400년 무렵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다양한 질병 치료에 식초를 썼는데 이를테면 사과 식초를 꿀에 섞어 기침 감기를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았을 때 사람들이 예방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한 것도 식초였다.
서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고려 시대 의학서인 향약구급방에는 식초를 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적혀 있고, 중국에서도 청나라 황후가 병들었을 때 전국의 명의를 불러 모아 약을 짓게 했는데 그때 만든 20종류의 약에 모두 식초가 사용됐다고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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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 |
전투환경에 최적화된 다목적 음료
로마 병사에게 지급된 포스카는 음료수 정화제 역할도 했다. 현대에도 주둔지가 아닌 곳에서는 오염된 물을 함부로 마실 수 없기에 정화제를 지급한다. 2000년 전 로마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전투 중 현지의 오염된 물 혹은 질 나쁜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는 것에 대비해 소독 기능이 있는 포스카를 지급했다. 서양 문헌에는 식초 음료인 포스카를 고대 로마의 서민이나 군인이 마시던 싸구려 식초 음료라고 표현해 놓았지만 사실 포스카는 이렇게 전투 환경에 최적화된 다목적 음료였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작가 지롤라모 카르다노가 로마 군대의 강점 세 가지로 신속한 병력 동원 능력, 훈련에 따른 강인함, 햄과 치즈 등 양질의 식사를 꼽았는데 여기에 식초 음료, 포스카도 포함돼 있다.
2세기 무렵부터 식초 음료 보급
로마 군단에서는 언제부터 식초 음료인 포스카를 병사들의 필수 음료로 보급했을까? 기원전 2세기 무렵 로마 장군 루클루스(Lucullus)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루클루스는 로마를 침공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을 도왔던 스페인 부족을 응징한 장군이다. 그는 사치스러운 음식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루컬런(Lucullan)의 어원이 될 만큼 대단한 미식가였지만 전선에서는 사치는커녕 병사와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가 전쟁터에서 마실 음료를 해결하기 위해 식초 음료를 만든 것이 로마군의 음료 포스카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병사들과 숙식을 함께 하고 전투에서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용감한 능력자였지만 욕심이 지나쳐 전리품을 혼자 차지했기에 결국에는 병사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탐욕이 화를 부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