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사극 〈여인천하〉에서는 요즘 세자책봉 문제를 둘러싼 조선 왕실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세자로 책봉된 원자가 계모 문정왕후에 게 시달리는 모습은 로마 황실과 비교해보면 한결 흥미를 더한다. 조선 왕실과 로마 황실의 후계자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반목과 대립 은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조선은 일부다처제, 로마는 일부일처 제로 부부관계에서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처제 아래에서는 적실과 첩실의 차이는 있지만 부계 혈통이 동일한 왕자들 사이에서 후계자가 정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갈등은 외척들간의 암투에서 나온다.
반면, 로마 같은 일부일처제 아래에서는 결혼 자체가 후계자 결정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해 아들 네로를 황 제 자리에 앉힌 아그리피나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로마사에 등장하는 아그리피나는 둘이다. 아그리파와 율리아의 딸인 대(大)아그리피나는 남편 게르마니쿠스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과 두 아들이 계승 투쟁에서 희생당한 비운의 여인이다.
네로의 어머니 소(小)아그리피나는 대아그리피나의 딸이다. 그녀는 도미티우스 가문의 아헤노바르부스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네로를 두 었으나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인 황궁에 돌아와 있었다. 그녀가 아들 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행동에 옮긴 계획은 충격적이었다. 숙부 클 라우디우스와 재혼해 아들을 후계자 반열에 올려놓은 후 클라우디우 스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가 계승 경쟁자가 되기 전에 황제를 살해 한다는 것이었다.
클라우디우스는 제위에 오르기 두 해 전에 발레리아 메쌀리나와 세 번째 결혼을 해 슬하에 옥타비아와 브리타니쿠스를 두었다. 그러나 메쌀리나가 정부 실리우스와 공모해 황제를 제거하려다가 발각돼 처 형된 후 마침 홀아비 상태로 있었다. 아그리피나는 이런 클라우디우 스를 유혹했다. 결국 클라우디우스는 법적·도덕적 장애에도 불구하 고 여러 명의 재혼 후보들 중에서 조카딸인 아그리피나를 선택한다.
황제의 선택을 거부할 수 없었던 원로원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 유로 의원들이 결혼을 강권하는 모양새를 갖춰 이 결혼을 승인했다. 간통이나 다름없는 클라우디우스와 조카딸의 결혼을 합법화한 것이 다.
결혼이라는 일차 목표를 달성한 아그리피나는 황제가 네로를 입양해 후계자로 삼도록 집요하게 설득했다. 환갑에 가까웠던 클라우디우스 는 친아들 브리타니쿠스가 5살밖에 안 된 터라 그녀의 말대로 네로 를 양자로 삼고 친딸 옥타비아와 결혼시켜 후계자로 삼았다. 아그리 피나는 이후 황제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아들이 후계자로 정해진 지 4년 후인 54년에 황제는 그녀의 소원대 로 타계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아그리피나가 요리한 독버섯을 먹고 죽었다는 설도 있다.
황제 만들기에 성공한 아그리피나는 5년 후 아들 네로에 의해 살해 당하고 만다. 어린 아들 대신 실권을 잡은 황모의 정치적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데 대해 불안을 느낀 근위대장 부루스와 철학자 세네카 가 네로를 부추긴 것이다. 네로가 어머니의 잔소리와 위협에 반항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네로는 자객을 보내 어머니를 제거했 다. 아름답고 영악했던 희대의 여인 아그리피나는 그렇게 비참한 최 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