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감상
답 철선장로(答鐵船長老) /이색(李穡)
불교가 말세에 있어서는 / 梵雄在叔世
배 잃은 중류에서 천금의 병 같았거니 / 中流千金壺
도의 크기가 가이 없는데 / 道大無津涯
이씨(불ㆍ로(佛老))는 한 구석에도 차지 못하였네 / 二氏不滿隅
철선장로가 그 근원까지 깊이 들어가 / 鐵船窮其源
바깥 인연을 모두 잘라버렸네 / 外緣俱剪屠
산에 살매 귀신의 글귀를 화답하였고 / 居山和鬼句
바다 지나매 교주를 만났네 / 過海逢蛟珠
남으로 놀아 월나라를 다 보고 / 南游盡於越
북으로 달아나 선우(몽고 임금의 칭호)에 이르렀구나 / 北走窮單于
흰 구름은 지팡이를 따르고 / 白雲逐筇杖
감로(불법(佛法))는 사발 위에 가득하여라 / 甘露盈鐵盂
날마다 쓰는 것이 어찌 얕다 하랴 / 日用豈云淺
복을 받들어 나도로 돌아갔네 / 奉福歸蘿圖
이미 오욕의 쾌락을 일소하여 / 已將五欲樂
저포(도박)를 비워버렸나니 / 一掃空摴蒱
기어(여기서는 시문(詩文))를 오히려 면하지 못하여 / 綺語尙未免
억지로 시를 읊조리니 파리하구나 / 强作哦詩癯
시편마다 호일한 기운을 띠어 / 篇篇帶豪逸
맹교ㆍ가도와는 형연히 다르도다 / 逈與郊島殊
기이한 글자는 양웅에게 물었고 / 奇字問楊雄
비밀한 글은 호로에게서 전하였네 / 祕書傳瓠蘆
미친 선비 시 재료가 떨어졌으나 / 狂生乏詩料
경ㆍ병 두 글자를 어찌 감히 빠뜨리리요 / 竸病安敢逋
높은 담론에 아름다운 흥이 발하여 / 高談發佳興
가끔 돌아오는 길을 잊노라 / 往往忘歸途
[주D-001]교주(鮫珠) : 바다에 교인(鮫人)이 있는데, 울면 그 눈물이 구슬이 된다고 한다.
[주D-002]억지로 시를 읊조리니 파리하구나 : 맹교(孟郊)와 가도(賈島)는 당나라 헌종(憲宗) 때 같은 시대의 시인인데, 당시의 사람들이 그들의 시를 평하기를, “맹교는 차고, 가도는 여위었다[郊寒島瘦].” 하였다.
[주D-003]경(競)ㆍ병(病)두 글자 : 양나라 조경종(曹景宗)이 무장(武將)으로 전승(戰勝)하고 돌아오니 축하하는 연회(宴會)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시를 지었으나 조경종은 무장(武將)이므로 시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가서 운(韻)이 몇 자나 남았는가 하고 물으니, 경(競)ㆍ병(病) 두 글자만이 남았다. 경종이 그 운을 따라 시를 부르기를, “갈 때에는 아녀들 슬퍼하더니, 돌아올 때는 피리 북이 다투어 울리누나.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자. 한(漢)나라 대장으로 흉노(凶奴)를 치고 온 곽거병과는 어떠한고[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藿去病].” 하니, 모두들 놀라서 칭찬하였다.
부작 견흥(復作遣興) /이색(李穡)
약을 파는 이상한 사람이 있어 / 賣藥有異人
저자에 항상 병을 매달고 있다 / 市上常懸壺
나에게 봉래산을 가르쳐 주니 / 指我蓬萊山
멀고 아득하여 하늘 가로다 / 迢迢天一隅
너는 마땅히 욕심을 경계하라 / 汝當戒有欲
신룡도 오히려 도륙을 당하느니라 / 神龍猶被屠
청옥결로 주고 / 授之靑玉訣
명월주를 주었네 / 贈以明月珠
이로부터 번화한 것을 버리고 / 自玆斥繁麗
우위우를 높이 노래한다 / 高歌于蔿于
새벽에 태산 꼭대기에 오르니 / 晨登泰山頂
동해가 사발만하구나 / 東海如杯盂
구부려 옛 사람의 자취를 보고 / 俯視昔人跡
여지도를 훑어 보았네 / 流觀輿地圖
흥망은 똑같은 궤철이요 / 興亡一軌轍
승부는 참으로 도박이었다 / 勝負眞樗蒱
일월이 수레 바퀴 같으니 / 日月如車輪
대개 유자의 파리함이 아니로다 / 蓋非儒者癯
돌아와서 현빈을 지키니 / 歸來守玄牝
한 근원이 만 가지로 나뉘었음을 알겠도다 / 一源分萬殊
푸르고 푸른 산 시내의 소나무요 / 靑靑寒磵松
멀고 아득한 봄 물가의 갈대로다 / 漠漠春汀蘆
천공이 만물의 우리가 되었으나 / 天公囿萬物
달관한 이는 혹 벗어나기도 하네 / 達者或能逋
도규가 선약을 얻으면 / 刀圭得仙藥
청운 길에 학을 타리라 / 駕鶴靑雲途
섭공소와 함께 짓는 한풍 3수[寒風三首與葉孔昭同賦] /이색(李穡)
찬 바람이 서북에서 불어오니 / 寒風西北來
나그네가 고향을 생각하네 / 客子思故鄕
서글프게 긴 밤을 함께 하니 / 悄然共長夜
등불 빛이 내 잠자리에 흔들린다 / 燈光搖我床
옛 도가 이미 멀어졌다 하니 / 古道已云遠
다만 뜬구름 나는 것을 볼 뿐이다 / 但見浮雲翔
슬프다, 뜰 아래 저 소나무는 / 悲哉庭下松
가을 겨울에 더욱 푸르러라 / 歲晩逾蒼蒼
원컨대 교의를 두터이하여 / 願言篤交誼
금옥 같은 바탕을 잘 보전하세 / 善保金玉相
찬 바람이 서북에서 불어 와 / 寒風西北來
밤낮으로 불어 그치지 않는다 / 日夜吹不休
구름은 날고 푸른 하늘은 넓은데 / 雲飛碧空闊
숲 소리는 쏴쏴하고 들려 온다 / 樹木聲颼颼
아침에 공사 있어서 / 早衙有公事
겹 갖옷 입고 말을 채찍질하누나 / 策馬披重裘
무부는 관도에 벽제 소리를 치는데 / 武夫喝官道
마음 속에는 백 가지 근심이 타오르네 / 心中焦百憂
해가 세 발이나 높은 뒤에 천천히 일어나서 / 何如日三丈
머리 빗질도 하지 않음과 어떠한고 / 徐起猶蓬頭
찬 바람이 서북에서 불어 오니 / 寒風西北來
두터운 음기가 점점 맺혀진다 / 漸見層陰結
앉아서 풍세가 높아지는 것을 들으니 / 坐知風勢闌
눈이 또 오려나 보다 / 又是天欲雪
잠깐 동안에 만 마리 학이 춤을 추니 / 須臾舞萬鶴
변화는 참으로 눈 깜짝할 사이로다 / 變化眞一瞥
문을 닫고 홀로 가늘게 읊조리니 / 閉戶獨微吟
길에서는 수레 굴대가 꺾어지누나 / 途中車軸折
때로 초석금을 들으면서 향을 태우니 / 時聞楚石琴
맑기가 그지없어라 / 焚香更淸絶
유감(有感) /이색(李穡)
이사가 순황에게서 나왔으니 / 李斯出荀況
어찌 유아한 선비가 아니리요 / 豈非儒雅士
진나라를 도와서 그 임금을 빛내었으니 / 相秦顯其君
도가 참으로 여기있다 하겠도다 / 道固在於此
마침내 분갱의 꾀를 내었으니 / 竟起焚坑謀
고담을 좋아하는 말폐로다 / 高談之弊耳
그 마음이 금수가 아니어든 / 其心非禽獸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달리함이 어찌 본심이랴 / 異好豈本志
많은 제자 모인 함장(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는 자리)에서 / 侁侁函丈閒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 搖脣勿容易
한 글자 잘못된 해석으로 / 一字訓之非
화를 끼친 것이 역사에 밝게 있다네 / 流禍明在史
[주D-001]마침내 분갱(焚坑)의 꾀를 내었으니 고담(高談)을 좋아하는 말폐로다 : 진(秦)나라 승상(丞相)은 처음에는 유학자(儒學者) 순황(荀況)의 제자인데, 후일에 진시황(秦始皇)을 권하고 모두 서적(書籍)을 불태우며, 유생(儒生)을 잡아서 무찔러 죽였다. 송나라 소식(蘇軾)이 순경(荀卿 순황(荀況))론을 지어서 말하기를, “순경이 기발하고 높은 말하기를 좋아하여, ‘사람의 성품은 악하다. 천하를 요란하게 하는 자는 자사(子思) 맹가(孟軻)다’ 하는 등의 해괴한 의론을 하였으므로, 그 폐단으로서 그로부터 배운 이사(李斯)가 끝에 가서는 서적을 불사르는 해괴한 일을 저질렀다.” 하였다.
의고(擬古) /이색(李穡)
옛날 사람들은 도 좇는 것을 귀하게 여기더니 / 古人貴從道
지금 사람들은 시세 좇는 것을 중히 여긴다 / 今人重趨時
복희씨가 대역을 긋고 / 庖羲畫大易
문왕이 처음으로 괘사를 매었으며 / 文王初系辭
주공과 공자가 번갈아 법을 말하였으니 / 周孔迭有術
군자는 마땅히 이것을 생각할지어다 / 君子當念玆
변동하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은 것 / 變動如流水
천리가 호리로 나뉜다 / 天理分毫釐
호리의 차이에 천 리로 틀리나니 / 差之信千里
경을 지켜 스스로 위태하지 말지어다 / 守經無自危
옛날 사람은 배우는 것에 법이 있더니 / 古人學有法
지금 사람은 배우는 데 스승이 없구나 / 今人學無師
저절로 아는 것은 참으로 하늘에서 낸 사람이거니 / 自得信天挺
착한 일 하기를 마땅히 부지런히 해야 하리 / 爲善當孜孜
내가 우리 도에 뜻을 둔 뒤로 / 自我志吾道
바깥 근심이 어찌 나를 흔들 수 있으랴 / 外患何曾移
아침 저녁으로 공경하여 지키면 / 朝夕愓以守
갈리거나 물들지 않으리라 / 庶不磷而緇
상로가 날로 처량하거니 / 霜露日惻惻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 甚矣吾之衰
옛날 사람들은 명을 아는 것을 중히 여기어 / 古人重知命
천지의 마음을 순하게 받들었네 / 順受天地心
천지는 내가 나온 바요 / 天地我所出
부모는 은혜와 사랑이 깊어라 / 父母恩愛深
예로 제도를 정하고 / 禮以定制度
지혜로 고금을 헤아리는 것 / 智以酌古今
때에 따라 큰 도를 밟아서 / 隨時蹈大道
개활하고 또 침잠하여야 하리 / 敞豁仍沈潛
지금 사람은 도리어 자기를 작게 여기니 / 今人反自小
더럽구나, 소나 말에 옷 입힌 격이로다 / 鄙哉牛馬襟
[주D-001]주공(周公)과 공자(孔子)가 번갈아 법을 말하였으니 : 《주역》의 상(象)은 주공(周公)이 짓고, 계사(繫辭)는 공자(孔子)가 지었다고 한다.
유감(有感) /이색(李穡)
천지가 홍로를 주재하니 / 天地帝洪爐
만물을 만들어 내기에 얼마나 수고 하였으리 / 鼓鑄一何勞
이로 주장을 삼고 / 理以爲之主
기로 종류를 나누었네 / 氣以分其曹
적은 것은 혹 기린 뿔 같기도 하거니 / 少或似麟角
많은 것은 어찌 쇠털 같을 뿐이랴 / 多奚翅牛毛
인의는 고량같이 여기고 / 仁義是膏梁
예법으로는 홀과 도포를 삼누나 / 禮法爲笏袍
찬연히 천하에 입혔으니 / 粲然被天下
우리 인생이 어디로 도망하랴 / 吾生安所逃
고의(古意) /이색(李穡)
일찍 가더라도 너무 이르게는 말아라 / 早行莫太早
너무 이르면 아득해지리로다 / 太早令人迷
밤중에 수레가 출발하니 / 夜半便發軔
앞길이 울퉁불퉁하여라 / 前途互高低
인가는 어디에 있는고 / 人家在何許
때때로 숲 밖의 닭소리 들려 온다 / 時聞林外鷄
갈림길에 당하니 벌써 희미해져서 / 趨岐旣已迷
산의 동서쪽을 분간할 수 없구나 / 未辨山東西
하늘이 밝은 뒤에 비로소 뉘우치니 / 天明始知悔
내 갈길이 어찌 그리 바쁘던고 / 我行何栖栖
자감(自感) /이색(李穡)
근심이 없는 이가 성인이요 / 無悶是聖人
이것을 보내는 것이 현인의 일이라 / 遣之賢者事
근심 걱정으로 몸을 마치는 것 / 戚戚以終身
이것이 곧 소인이니라 / 斯爲小人耳
내 학문은 본래 텅비고 소홀하니 / 我學本空疏
내 행실은 괴이한 짓이 많아라 / 我行多乖異
무슨 소리가 귀에 부닥치면 / 有聲觸于耳
망령되게 움직임을 어찌 다시 그치랴 / 妄動寧復止
꾀꼬리 말은 내 심신을 융화시키고 / 鶯語融吾神
벌레 울음은 내 뜻을 슬프게 하네 / 蟲鳴悽我志
나는 내 자취를 밟는데 / 我則踐我迹
세월은 그저 흘러만 가누나 / 歲月其逝矣
억계가 해와 같이 밝으니 / 抑戒皎如日
오히려 자기 없기를 기약하네 / 尙期無自棄
[주D-001]억계(抑戒) : 《시경》에 억편(抑篇)이 있는데, 위(衛)의 무공(武公)이 나이 90세에 그 시를 지어서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증 조계선사 운감(贈曹溪禪師云鑑) /민제(閔霽)
도인이 일찍 뜻을 품고 / 道人抱夙志
세상 밖으로 멀리 갔었네 / 物外遂長往
참된 근원은 고요하여 파란이 없고 / 眞源静無瀾
법희는 날로 점점 / 法喜日方丈
고요하게 앉았으면 바위 골짜기가 깊숙하고 / 宴坐巖谷深
문을 닫으면 송회만이 / 閉門松檜長
높은 자취 티끌 세상과 막혔으니 / 高蹤隔塵凡
바라보는 내가 한갓 상상만 할 뿐이로다 / 企子徒想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