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술붕어입니다.
박순경 시리즈 2탄입니다.
처음 배치를 받은 오산지서.
아직 경찰복도 지급받지 못하고 전투복을 입고 근무를 시작한 첫 날.
야간 근무를 서는데 폭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동내 어르신들이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어 싸운 사건인데,
지서에 와서도 계속 싸웠습니다.
일선 서(署) 첫 사건.
간신이 싸움을 말리고 조서를 받아야 하는데 난감했습니다.
“ 이거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야? ”
고민 끝에 잠을 자고 있는 고참 순경을 깨워 물었더니
그런 일로 깨웠냐고 하면서 하품을 하면서 다시 잠을 자러
숙직실로 들어가면서 하는 말.
" 경찰학교에서 뭘 배웠나 배운 데로 하면 되지. "
“ 에이 씨! 좀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 할 수 없다. 죽이 되 든 밥이 되 든 조서를 받아보자?”
먼저 인정심문.
주소? 이름? 전과가 있는지? 국가 유공자인지? 여부 등등.
다음 사실심문.
육하원칙에 의거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등등.
그런데 폭해 사건의 범죄 구성 요건이 무엇인지 아리송했습니다.
" 아이고! 오줌 마려워! "
화장실에 가는 척 하고 재 빨리 경찰학교에서 배웠던 노트를 훔쳐봤습니다.
" 음! 이게 빠졌구나? "
노트를 커닝하고 돌아 와 몇 마디 물어보고 나니
또 뭘 물어봐야 할지 밑천이 떨어져 몽롱해 졌습니다..
몇 마디 물어보고 또 오줌,
몇 마디 물어보고 또 오줌.
그날 밤 박순경 수도 없이 오줌을 누러 화장실에 다녔왔습니다.
악전고투 끝에 생애 처음으로 죄를 묻는 조서란 것을 작성하여
다음 날 아침 출근한 지서장님에게 결재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조서를 대충 넘겨보더니,
" 박 순경! 이걸 조서라고 받았나? 경찰학교에서 뭘 배웠나? “
" 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고
(시비 건 놈이 가해자가 아니고 디지게 터진 놈이 피해자란다)
조서에 사용한 단어가 많이 틀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서장이 고쳐준 조서 내용을 보니,
" 그리고 "를 " 연(連)하여 ", " 힌 내의 "를 " 난닝고 " 로
기존 일본 물을 먹은 경찰들의 조서가 아닌
순수 우리나라 말로 조서를 작성하라고 배운 경찰학교 교육과는
전혀 다른 온통 한자와 일본어 투성 이었습니다.“ 이건 아닌데? ”
그러나 어쩝니까?
결재권자가 지서장인데
시키는 대로 다시 조서를 작성하여 결재를 올렸더니
이제는 아예 조서를 처다 보지도 않고 가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소위 왈 동내 유지란 분들이 지서에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지서장과 소곤소곤 뭐라 말을 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 지서장님! 24시간 이내에 검찰에 송치를 해야 되고
아니면 검사의 지휘를 받아 48시간 이내에 .... "
형사소송법 운운 하며 은근히 빨리 결재하라고 압력을 넣었더니,
" 알았다니까? “ 하면서 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결재를 안 한지 3일 째.
지서장이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합의가 이뤄졌다며 조서를 찢어 버리라고 하면서 삼칠제라며
꽤 두터운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소위 왈 당시 경찰에 만연했던 뇌물의 실체를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돈을 받았는지 여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받았다고 해도 40년이 지난 이야기로
이미 뇌물죄 공소 시효가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