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노루의 댄스판타지소설]
광무(狂舞)(49회)
24.저승 호송버스(2)
잠시 평온한 분위기로 호송버스가 시공간을 넘어서 인간세계로 날아가고 있었다.
감찰대장은 호송버스의 분리된 특별 좌석에서 초선낭자와 함께 가는 게 마음은 설레었지만 꿈처럼 달콤했다.
그때 뒤 칸에서 첨단 장비로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던 실무 저승사자가 감찰대장과 초선낭자가 있는 특별 좌석으로 급히 왔다. 구분은 되어 있었지만 위쪽은 오픈된 상태였다.
"대장님, 모니터 좀 보십시오! 놈의 행적을 찾았습니다."
실무 졸개 저승사자가 큰 소리로 보고했다.
"뭐라고, 이놈아? 자세히 말하지 못할까!"
감찰대장이 초선낭자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졸개 저승사자한테 괜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 놈입니다!"
졸개 저승사자도 초선낭자를 곁눈질로 슬쩍 훔쳐보았다. 그러면서 감찰대장의 특별 좌석 옆쪽에 설치된 모니터를 켜 주었다.
"놈이 지금 이곳에 나타났습니다."
졸개 저승사자가 켜 준 모니터로 감찰대장이 눈길을 돌렸다.
초선낭자도 마찬가지로 감찰대장의 시선을 따라서 모니터로 눈길을 주었다. 모니터에 한 사내가 여성한테 접근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음성이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영상은 선명했다.
단번에 화면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속의 남성이 두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는 박달재와 장승백이었다. 한 몸에서 두 얼굴 모습이 겹쳐서 나타나 보였다. 그 앞에 있는 상대 여성은 백장미 원장이었다. 화면 속의 남성의 행동에 초선낭자의 인상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그 모습을 슬쩍 본 감찰대장이 얼른 졸개 저승사자더러 소리쳤다.
"이놈아 누가 여기서 켜랬어?"
그는 졸개 저승사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다 움찔 하면서 멈추었다. 바로 옆에서 초선낭자가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놈아 얼른 꺼. 내가 밖에 나가서 볼 테니까."
감찰대장은 한결 부드러운 말투가 되어서 움켜쥐었던 주먹을 슬그머니 허리 뒤로 감추었다.
졸개 저승사자는 한 대 얻어터질 걸 모면했다. 그는 모니터를 끄고 감찰대장용 특별 좌석실에서 나갔다.
"잠깐 나갔다 올께요."
감찰대장이 매우 부드럽게 초선낭자한테 말했다.
"네, 그러세요."
초선낭자가 미소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이 괜찮아요. 그냥 계세요."
감찰대장이 어린아이 마냥 어쩔 줄 몰라서 손짓으로 일어나려는 초선낭자를 만류했다. 그리고 실무진들이 있는 뒤 칸으로 나왔다.
"얼른 가서 놈을 잡지 않고 뭣들 하는 거야!"
초선낭자 앞에서와는 달리 그는 이내 본래의 험상궂은 인상으로 졸개 저승사자들을 다그쳤다.
박달재가 학원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홀에 학원생들이나 수업하는 강사들이 없었다. 한 쪽에 있는 사무실에는 백장미 원장이 그가 들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파에 편안히 기댄 채 졸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들어서 잠깐 잠이 들거나 졸기만 하면 꿈속에서 장승백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엘리트클럽의 가면무도회가 있기 전후로 해서부터인 듯 했다. 지금도 막 잠이 들려는데 장승백이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때 공교롭게도 박달재가 그녀가 기대고 있는 소파 곁으로 다가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기대어서 졸고 있는 옆 자리에 앉았다. 바싹 붙어 앉은 그는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넣었다. 한 쪽 팔로 백장미 원장을 끌어 당겼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에다 그의 입술을 갖다 대어서 키스를 시도했다.
백장미 원장도 너무나 익숙하게 그의 키스를 받아주었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은 자세로 상체를 돌린 채 깊은 포옹을 하며 깊고 진한 키스를 이어갔다.
"아 오빠. 너무 좋아. 왜 자주 안 오는 거야. 난 오빠가 너무 보고 싶단 말이야."
그녀가 장승백의 입술을 떼어 내고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그가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입술에다 키스를 또 했다. 백장미 원장의 눈에는 장승백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시 키스를 하고 있는 남성은 분명히 그녀의 애제자 박달재였다.
그때 백장미 댄스 학원 건물 바깥에는 저승에서 온 호송버스가 막 도착했다. 저승 버스가 서자마자 문이 열리고 체포조 저승사자들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저승사자들은 모두 바늘이 뾰족뾰족 튀어 나온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졸개 저승사자들이 내려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백장미 댄스 학원으로 몰려갔다. 그 뒤를 따라서 감찰대장 저승사자도 내렸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초선낭자도 내렸다.
저승사자들이나 저승 버스는 형체가 없었다. 당연히 인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장승백 꼼짝 마라."
댄스 학원으로 들이 닥친 저승사자들이 댄스 학원의 사무실로 몰려가서 소리 질렀다. 그 순간에 장승백은 사라졌다.
대신에 졸고 있던 백장미 원장이 번쩍 눈을 떴다. 동시에 그녀를 포옹하고 달콤한 키스를 하던 박달재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의 자세를 보고 흠칫 놀랐다.
더군다나 자신이 사부인 백장미 원장을 껴안은 채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이 포개져 있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 번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죄송합니다. 제가 왜 이런 짓을..."
박달재가 자신도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서 쩔쩔 매고 있었다.
반면에 눈을 뜬 백장미 원장은 눈만 말똥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보며 입을 뗐다.
"괜찮아요."
그녀가 짧게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박달재는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그러나 그는 왜 그랬는지 생각도 안 나고 그 상황에서 의식이 없는 듯 했다.
그는 학원 문으로 들어설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몽롱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학원 사무실까지 왔는지... 백장미 원장 옆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순간부터는 그의 몸속에 숨어 있던 장승백의 영혼이 활동을 한 것이었다. 장승백 영혼은 평소에는 박달재의 몸속에 잠복해 있었다.
그러다가 백장미 원장과 박달재가 마주 칠 때만 그가 활동을 했다. 지난번에 가면무도장에서 처럼... 그러나 장승백의 영혼이 활동하지 않을 때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있었다.
이럴 때는 박달재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을 인간세계에서는 귀신이 붙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백장미 원장이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했다. 그러면서 당황스러워 하는 박달재를 오히려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장님."
제 정신이 돌아온 박달재가 일어서서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사과했다.
"네. 걱정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
그녀는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을 하면서 웃어 보였다.
사실 그랬다. 그녀는 일찍 눈을 뜬 게 아쉬웠다. 그녀는 분명 꿈속에서 장승백과 달콤한 키스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하던 대로 사랑을 나누기를 기대하며 그를 맞아들이고 있던 중이었다. 조금만 더 깨지 말았더라면 싶은 게 아쉬움이 남았다.
그들을 둘러싸고 저승사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감찰대장과 초선낭자도 함께 들어와서 댄스학원 사무실에 있었다. 백장미 원장이나 박달재의 눈에는 당연히 보이지도 의식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놈들아?"
초선낭자와 함께 조금 늦게 도착한 감찰대장이 졸개들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그게 저어..."
졸개 저승사자 중에서도 고참 저승사자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놈아 똑바로 말 안 해!"
감찰대장의 인상이 더 험상궂어 지며 졸개 저승사자를 향해 발길질을 하려다 흠칫 하고 멈추었다. 바로 곁에 초선낭자가 함께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놈아 어떻게 된 거야, 똑 바로 말 안 해!"
그는 약간 누그러진 말투였다.
"체포하려는데 한 발 차이로 또 놓쳤습니다."
졸개 저승사자가 머뭇거리며 겨우 말했다.
"그럼 놈이 어디로 간 거야?"
감찰대장이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고참 저승사자한테 물었다. 물론 옆에 있는 초선낭자를 의식해서였다. 그렇게 너그럽게 졸개 저승사자들을 대하는 것도 모두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미 졸개들은 감찰대장의 발길질에 죄다 나가 떨어졌을 게다. 또한 감찰대장 제 성질에 못 이겨서 펄쩍 펄쩍 뛰고 난리를 쳤을 게 분명했다. 그 화풀이는 고스란히 졸개 저승사자들이 당했을 게다. 하여튼 졸개 저승사자들은 초선낭자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놈은 지금 이 안에 있습니다."
고참 저승사자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러면서 감찰대장의 눈치를 여전히 살피고 있었다.
"이 안에 어디 있단 말이야?"
감찰대장이 화는 안냈지만 눈을 부라리며 졸개 저승사자한테 물었다.
"네, 그게 저어..."
졸개 저승사자가 바로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감찰대장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 모습을 눈치 챈 졸개 저승사자가 겨우 입을 뗐다.
"사실은... 박달재의 몸속에 잠복해 버려서..."
졸개 저승사자는 말을 하면서도 감찰대장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폈다.
"그럼 당장 끄집어 내지 않고 뭐하느냐?"
감찰대장이 역정을 내며 졸개들을 둘러보았다.
"그게 저어... 간단하지가 않아서..."
졸개 저승사자가 말을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뭣들 하느냐 이놈들아. 당장 끌어내지 않고!"
감찰대장이 여태 참았던 걸 잊고 버럭 소리 질렀다.
"활동을 하지 않고 인간의 몸속에 잠복해 있는 영혼을 강제로 끌어내면 더 곤란해집니다."
고참 저승사자가 나서서 감찰대장에게 조리 있게 설명했다.
"왜 더 곤란해진다는 거야, 이놈아?"
감찰대장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예에, 사람의 몸속에 잠복해 있을 때 강제로 영혼을 끌어내면 본래 몸 주인의 영혼도 함께 끌려 나와서 그 인간도 함께 죽게 되지요. 그래서 강제로는..."
졸개 저승사자가 말을 맺기 전에 감찰대장이 성급하게 물었다.
"그럼 강제로 안 끌어내면...?"
"네에. 영혼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오면 본래 몸 주인은 전혀 다치지 않죠."
고참 저승사자가 알아듣기 쉽게 조리 있게 설명했다.
"...?"
그 설명을 들은 감찰대장은 눈만 멀뚱거리며 옆에 있는 초선낭자를 쳐다보았다.
초선낭자도 졸개 저승사자가 보고하는 걸 바로 옆에서 다 듣고 보고 있었다.
"제가 한 번 설득해 볼께요."
그녀가 한 발짝 나서며 박달재 앞으로 다가섰다. 물론 박달재는 이 상황을 알 길 없는 상태였다. 저승에서 온 저승사자들이나 초선낭자가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하니까. 하지만 박달재의 몸속에 잠복해 있던 장승백의 영혼은 이 상황을 모두 보고 있었다. 또한 초선낭자가 인간세계까지 온 것이 그로서는 의아했고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