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은 표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70편과 71편이 한 세트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표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있느냐 하면 ‘다윗의 시, 요나답의 자손들과 처음으로 포로가 된 사람들이 부른 시’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70편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고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도 있는 여지가 둘 다 있습니다. 우리는 연관성을 생각하면서 분리된 시편으로 보려고 합니다.
먼저 70편과 71편을 비교해보면 전반적으로 71편은 70편과 비교해서 조금은 덜 급박합니다. 70편은 아주 긴박하고 아주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을호소하고 있다면 71편은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일생의 긴 순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호소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길이가 길 뿐만 아니라 6절에 보면 모태에서부터 9절에 보면 “늙을 때에”를 말하면서 아주 긴 시간, 신자의 평생에 걸친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대해서 노래하는탄식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시면 시인은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나서 다급한 70편에서 하나님께 바로 간섭을 요청하는 것과 달리 먼저 :내가 하나님께 피합니다.” 라는평서문을 먼저 언급하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건져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70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겠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원수들에게서 건져 달라는 요청을 똑같습니다. 4절을 보시면 악인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들은 불의한 자들이고 흉악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손아귀, 그들의 지배에서 건져 달라고 호소하는 탄식이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5절에서 시인은 악인의 이런 지배 가운데도 하나님은 자신의 소망이시고 어려서부터 의지해 온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그가 태어나기 전에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시인을 택했다고 고백합니다. 태어나기도전에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은 시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태어나기 전부터 맺어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은 시인을 하나님께서 모태에서부터 붙드셨다는 말이지 실제로 시인이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시인과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혼란과 원수의 공격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합니다. 비록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님께 영광을 종일토록 돌리겠다고 합니다. ‘이상한 징조’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이상한 일처럼 보인다는뜻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부정적인 본보기와 같이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다 잘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어려움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주님이 자신의 견고한 피난처라고 고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송하고 종일토록 영광을 돌리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보시면 시인이 젊었을 때 뿐만 아니라 그가 백발이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지금 원수들이 나를 공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굳게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이가 많이 늙어 힘이 없을 때, 원수들이 다시 서로 꾀하고 그들이 볼때 시인이 너무 약해져서 하나님이 그를 버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쇠약해 졌을 때에도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붙들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멀리하지 말고 건져달라고 9절에서 12절까지 하나님께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원수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하시고 자신을 악담하고 괴롭히는 자들에게 수치로 덮이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그렇게 해 주실 때 어떻게 합니까? 14절을 보시면 시인은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그 찬송이 곧 하나님의 측량할 수없는 공의로우심과 구원을 입으로 증거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죄가 없는 자를 영원한 고통 가운데 두지 않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잠시 고난을 받고 어려움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돌보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면 이러한 삶의 태도가 시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시면, 시인은어려서 부터 하나님의 교훈을 배웠고 하나님께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전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렇게 살아 온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18절을 보시면늙고 머리가 백발이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면 주의 힘과 능력을 대대로 후대에 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계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이십니다. 또 시인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큰 일을 행하신 것을 친히 알기때문에 주와 같은 분이 없으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심한 고난을 보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그 백성들을 다시 살리시고 깊은 땅에서 다시 이끌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더 큰 위로를 주실 것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19절-20절 말씀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악기로 찬양하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즐겁게 찬양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속량하신 것, 죄에서 건져주시고 원수들에게 건져주신 그 구원의 은혜로 기쁨이 넘치고 영혼이 즐거운 것입니다. 너무 즐겁고 기뻐서 하루 종일 하나님께서 하신 일, 주의 의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의 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붙드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주의 의를 종일토록 읊조립니다. 읊조림은 흥얼흥얼하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계속 생각하고 곱씹고 즐거워서 자꾸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무력함과 어려움에서회복이 되고 자신을 모함하던 자들은 결국 수치와 무안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시 시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신뢰한 자신은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원수들은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되는 하나님의 공의를 요청한 것이 실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우리의 신앙 생활의 전반을 담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신앙인의 삶이 어떠한 지 잘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긴 신앙의여정 가운데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기도 하고 원수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해달라는 간구도 합니다. 일종의 부르짖음이 있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순간도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오늘 말씀을 보시면 찬송이 더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호소하고 어려움도 분명히 있지만, 그 가운데 찬송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힘듦과 어려움 속에서 건지시고 위로해 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시인이 어려서부터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 더 많이 늙어힘이 없을 때에도 겪게 될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신뢰하도록 하시고, 혹은 테스트를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다시 깊은 구렁텅이 건져 주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어려운 일을 겪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한꺼번에 감당하지 못할 일들도 생기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 대해서 좋지 않게 평가하고 우리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고 비방하는 것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몸이 아프기도 하고 정말 깊은 구렁텅이 있는 것 같이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우리는 이 시인과 같이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행적과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불평보다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위로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일을 경험할 때 자연히 찬송을 하게 되고 기쁨을 표현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려움이 오면 그 상황에만 집중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이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고 또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를 예전과는 또다른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힘이 없고 늙었을 때에도 원수에게 잡아 먹힐 것 같은 그 순간에도 간섭하셔셔 우리를 건지시는 놀라운 일을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짧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릴 때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늙어서도, 우리의 평생에 피난처와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지금 겪고 있는 여러가지 고난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