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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여, 임하소서! / 시 109:15-22, 행 2:1-13
요즘 불황이 너무 심하다. 진로가 부도 위기를 맞았고, 삼립식품은 부도가 났다. 장사가 잘된다는 음식점도 문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요즘 전주시내에서 택시 운전을 하려고 해도 줄을 서야할 판이고, 그나마 자리도 쉽게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 근검 절약하며 사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미덕이다. 기독교의 3대 절기는 성탄절과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함께 모여있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충만하게 강림하셨다.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신 그 날을 기념하면서 우리들에게도 성령의 은총이 충만한 날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함께 하나님의 3위 중의 한분이시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성부 하나님, 인간으로 오셔서 33년의 생을 사신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으로 활동하시는 분을 가리켜서 성령 하나님,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활동하심는 분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흔히 신앙의 시대를 3등분할 때 구약시대를 성부 하나님 시대, 그리고 예수님 공생애 기간을 성자 하나님 시대, 오늘날 교회의 시대를 가리켜서 성령 하나님 시대라고 말을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시대를 따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언제나 하나님의 시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이기도 하고 성령의 시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교통사고율이 많은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더욱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인명피해는 미국에 비해 20배나 높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운전을 하거나 자동차를 탈 때 안전벨트를 거의 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사고가 나도 큰 인명 피해가 일어난다. 안전벨트는 생명벨트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운전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안전벨트를 꼭 매야한다고 강조하지만 단속할 때 뿐인 것 같다. 육신생활에 더욱이 운전자에게만 안전벨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생활에도 안전벨트가 꼭 필요하다.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육신의 문제만 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문제가 더 크다. 여러분의 하루하루 생활을 생각해 보기 바란디. 마음 속에 느끼는 번뇌와 고통, 실패와 좌절, 낙심, 이런 문제들이 수없이 많이 생기고 있다. 무엇을 시도해보면 된 일보다 잘 안되는 일들이 많다. 희망을 붙잡기 보다는 오히려 좌절할 때가 많은 것이 우리들이 실제생활이다. 더욱이 불의한 사회구조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우리의 매일 생활에서 겪고 있다. 항상 마귀가 우리를 움직이고 있고, 우리를 시험하고 있고 가정과 일터, 심지어 신앙생활까지 흔들어 대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들 역시 영적인 안전띠가 꼭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매어주시는 영적 안전띠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영적 안전띠가 무엇이겠나? 그것은 바로 성령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보내주시는 성령이야말로 영적 생명을 구하게 하는 영적인 안전벨트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40일 동안 활동하신 뒤에 하나님 나라에 승천해 올라가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다. 주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오순절날 성령을 충만하게 보내 주셨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제자들은 용기와 희망과 새로운 권능을 가지고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성령강림은 2천년전 마가의 다락방에만 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 우리들 가운데에도 임하고 계신다. 그러면 성령이 임재하시면 어떤 일이 생기나? 성령께서 내 속에 역사하시면 어떤 일이 내 속에 일어나나?
1. 회개하는 마음이 생긴다.
죄악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다. 롬 8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성령의 법이 너희를 죄악에서 해방하였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해 주시면 성령은 우리 마음의 양심을 움직이셔서 무엇이 죄인가, 죄를 깨닫게 해주신다. 잘못과 허물을 깨닫게 해주신다. 그리고 이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받게 해주신다. 성령은 우리를 타락하게 하고 우리를 흔들어대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이기게 해주신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 죄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합력하여 선한 결실을 맺게 해주신다.
인간이 강한 것 같지만 때로는 약할 때가 있다. 건강한 분도 질병 때문에 힘없이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정신적으로도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생활도 그렇다. 성공한 순간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겪는 것이 우리 일상생활이지 않나? 이러한 때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우리가 흔들릴 때 우리를 바로 세워주시고, 우리가 쓰러질 때 우리를 일ㄹ으켜 세워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과 소망을 주신다. 성령의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사람은 결코 죄절하지 않는다. 성령의 사람은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성령은 항상 우리의 위로자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3. 성령은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
그래서 요 14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라고 하셨다. 성령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계시해 주신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 살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좋은 계획을 세우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 계획대로 다 되어진다고 하면 실패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두 사람이 똑같은 일을 똑같은 방법으로 시작을 해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또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진행할 때 어떤 때는 성공하는데 어떤 때는 실패한다. 속된 말로 표현해서 운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때 성취해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킬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때 합력하여 선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성령을 받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감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영감이 불꽃 튀듯이 튀어 오른다. 성령의 사람에게는 영감이 있다. 영적인 감각이 있다. 때로는 인간이 합리적 생각으로나 과학적 방법으로 잘되지 않던 일들, 경험이나 어떤 지식이나 기술로되지 않던 일들이 영감 속에 진행되어질 때가 있다. 하나님의 영감은 어떤 물질이나 과학이나 기술의 힘보다 더 초월적인 능력을 우리들에게 주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앞 길을 인도해 주신다.
4.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해 주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마가의 다락방에 움츠려 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되자 힘을 내고 예루살렘은 물론 세계 각지로 다니면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복음의 증인이니 된다는 것은 크게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다. 작게는 나의 말과 나의 생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자기 삶을 통해서 드러내진다.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권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나?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2-4절상에 있는 말씀이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서는 성령이 임한다고 말씀한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들에게 임하는 깃이지, 마치 귀신이나 잡신들처럼 굿을 함으로 불러들이거나 쫓아버리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인간의 어떤 힘에 의해서, 인간의 어떤 방법에 의해서 성령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들에게 임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셔서 우리가 성령을 받을 수 있다. 행 8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를 하고 기도할 때에 많은 이적이 일어났다. 베드로가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면 병자가 나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시몬이라는 사람이 ‘나도 저런 권능을 가졌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고 베드로에게 와서 ‘돈은 얼마든지 드릴 터이니 나에게도 성령의 권능을 허락하여 주소서. 나도 누구를 위해서 안수하면 병이 낫게 해주시고 기적을 일으키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꾸짖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네 자신과 네 돈이 함께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령은 인간적인 어던 수단과 방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주셔야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영감을 주셔서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겠나? 성서를 통해서 몇가지 찾아볼 수 있다.
1.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성령이 강림하셨다.
행 1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여기에 함께 모여 있으라’라고 하셨다. 성령을 받기 전까지 모여 있으라고 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120여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있을 때 성령이 그들 가운데 충만하게 강림하셨다. 성도들의 모임이 무엇인가? 교회이다. 교회란 어떤 건물이나 조직이나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 그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한다.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식이 예배이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성령께서 임재하셨다. 예배는 거룩한 것이다. 예배를 많은 시간 중의 한 시간을 내서 교회에 와서 예배시간에 참여한다는 그런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배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받으면서 나 자신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여러분이 한 시간 예배드릴 때,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주시는 성령을 받고, 예배를 마치고 나갈 수 있을 때에 한 주간을 성령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살 수 있다. 예수님게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임재하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셨다. 마음을 모두 드리는 그 예배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