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미안합니다. 모임이 있어 갔는데 양선례 선생님이 손을 다쳐 글을 못 썼느냐고 해서 쉬는 주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 올리는 글은 교수님 마음 밖에 난 글이라는 것 알면서 이왕 쓴 글이라 올립니다. 주책부려서 미안합니다.
마음이 예쁜 그녀 / 이임순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느낌 또한 같을 수 없다. 향긋함이 묻어나는 그녀는 오늘도 제일 먼저 와서 급식 준비를 하더니 정리까지 마치고 마지막에 간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고 어르신 급식 자원봉사를 한 것이다. 허리가 아파 똑바로 서지도 못하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틈틈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아린다.
육십 대 초반인 그녀는 일용자가 주고객인 식당을 한다. 공무원 퇴근 시간에 맞추어 영업하면서 오전에는 나눔 일손을 많이 돕는다. 손님 대부분은 작업복 차림의 단골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 수를 알려주고 자리에 앉으면 금방 상이 차려진다. 밥그릇 위로 올라온 고봉밥에 반찬은 접시마다 가득이다. 그러고도 반찬통을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접시가 동이 나면 보충해 준다. 손님들이 계산을 마치고 나가면서 오늘도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면 그녀도 목례를 한다. 영양사의 조언을 받아 한 달 단위로 식단을 짜서 제공한다. 값에 비해 양과 질에서도 일반 음식점과 다르다. 손님에게 밥 장사한다는 마음보다 내 집에 온 동기간 밥상 차리는 마음으로 식당을 운영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무슨 일이나 즐기듯 하기까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었고 생의 나락에서 헤매기도 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는데 아이들이 배고파 우는 모습을 보며 자식들에게 더 고통을 주는 것보다 함께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맏이를 꼭 껴안으며 “우리 고통 없는 세상에 가서 살자?”고 했다.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엄마,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동생들 보살피는 것은 제가 할게요. 힘 내세요.”하며 울고 있는 동생들 눈물을 닦아 주었다. 철없는 아이들도 위기상황을 느꼈을까? 다섯 살짜리 막내가 그녀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엄마, 우리 배고프지 않아요.”하며 해맑은 웃음을 짓고 얼굴에 입맞춤을 해댔다. 순간 저토록 티 없는 아이들한테 몹쓸 생각을 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보란 듯이 잘 키우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웃집 과부와 눈맞아 집 나간 남편을 더는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이 세 아이의 보호자며 양육자란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을 깨끗이 씻겨 옷을 갈아입히는데 과부집에 세 들어 사는 할머니가 양푼에 밥을 담아 김치와 함께 갖다 주며 기운 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때, 좋은 것은 먹이지 못할망정 배는 굶기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일거리가 있으면 몸을 아끼지 않았다.
할머니가 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일곱 정거장을 걸어 다니며 알뜰하게 지냈다. 교통비를 모아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이며 피자를 사주었다. 종업원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하니 주인도 반찬거리를 챙겨주어 서로가 힘이 되었다. 무엇 보다 할머니가 손주들 돌보듯 아이들을 챙겨주니 마음이 놓였다.
저녁 찬거리를 부산스레 준비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상기된 얼굴로 와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남편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2년 만의 귀환이었다. 남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지냈는데 내심 반가웠다. 과부와 정리하고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돈을 요구했다. 함께 사는 여자의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집 마련하는 데 일조를 했으니 집값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면 아이들은 혼자 낳았느냐며 데리고 가던지 양육비를 달라고 했다. 짐승도 지새끼는 거두는데 당신은 어린 자식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그 여자만 있느냐고 따졌다. 더는 남편이 아닌 짐승에 불과했다. 바가지에 물을 퍼와서 마당에 서 있는 남편에게 물세례를 했다.
말은 남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남편이 언젠가는 내 가정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이 헛된 망상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아이들 과자라도 한 봉지 사 왔으면 덜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화가 나 참을 수 없는 것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남편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우려고 애썼다. 언제 왔는지 할머니가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으라고 했다. 남자들이 추파를 던지면 남편이 있다고 완강하게 말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편은 없는 존재다. 그리고 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리라 다짐한다,
동생들 데리고 마당에 들어서는 맏딸이 믿음직스럽다. 오랜만에 저녁밥을 지어 자식에게 밥상을 차려준다. 맛있다고 엄마도 먹으라는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어 먼 허공을 바라보며 애궂은 눈만 깜박인다.
순리대로 열심히 살면 뜻밖의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할머니가 늘 말했다. 그럴 때면 복 있는 사람한테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꿈같은 일이 생겼다. 이십 년을 일하던 곳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 주인이 그녀에게 식당을 물려준 것이다. 그러면서 건강은 꼭 지키라고 당부했다. 저녁에만 영업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봉사하리라 결심했다. 허리가 아프면서도 오늘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그녀한테서 향기가 난다.
첫댓글 글을 써서 나누는 것도 큰 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씩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밥 한번 사먹고 싶네요.
늦은 글 읽어주셔거 감사합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정도 많답니다.
그분, 어려운 시기 잘 이겨냈으니 앞으론 즣은 일만 생기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복을 짓고 있으니 좋은 일도 생기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