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41 -이 법이었다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의 수행지도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참고는 수행자를 돕기 위한 묘원의 글입니다. >
질문 : 좌선을 할 때 몸이 아파서 수행을 계속하기 어려웠습니다.
답변 : 좌선 중에 몸이 아픈 것도 느낌이다. 수행자가 느낌을 극복하지 못하면 안 된다. 아픈 느낌을 극복해야 집중력이 생긴다. 지금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수행을 해서 얻으신 부처님의 법이다. 삼계의 어디에도 이 법보다 더 공경해야할 법은 없다. 법을 얻지 못했으면 얻어야 한다. 법을 얻기 위해서는 법에 대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 법을 얻지 못한 수행자는 법을 얻도록 공경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 참고 >
좌선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뜻은 대상에 개입하지 않고 하나의 현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현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지 말고 하나의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움직이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면 통증과 졸음과 망상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고 알아차려야 할 대상입니다. 이때 나타난 대상은 모두 손님입니다. 손님이 왔으면 정중하게 알아차리면서 대해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먼저 몸과 마음에서 나타난 모든 현상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차림을 지속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극복되었을 때 지혜가 나서 법의 성품을 봅니다.
경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두 가지 단어가 빨리어로 사띠(sati) 사마디(samādhi)입니다. 사띠(sati)는 알아차림이고 사마디(samādhi)는 집중입니다. 수행은 먼저 알아차려야 하고 다음에 알아차림을 지속해야 합니다. 이때의 알아차림의 지속이 바로 집중입니다. 이렇게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집중에 계속되면 고요한 상태가 되고 여기서 지혜가 납니다. 이때의 지혜를 빤냐(paññā)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띠(sati) 사마디(samādhi) 빤냐(paññā)가 수행의 전부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팔정도의 계정혜(戒定慧)입니다. 이때의 계를 수행에서는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팔정도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계정혜, 중도, 위빠사나라고 합니다. 이것의 시작은 바로 알아차림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나타난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길은 지금까지 알려진 25분의 붓다가 가신 길이며 수많은 아라한이 가신 길이며 수많은 아나함, 사다함, 수다원의 성자가 가신 길입니다. 지구가 생겼다 없어지고 또 다른 행성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는 반드시 이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인간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현상이라도 붓다나 성자가 가신 길이므로 공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앞에서 이끄는 믿음이 없으면 계정혜의 길을 가기 어렵습니다. 이 길은 붓다께서 가신 길이므로 상좌불교의 독단적 교리가 아닙니다. 이러한 내용은 붓다께서 직접 설하신 빨리어 경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