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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12(화)
2. 왜 나단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는 왕과 대립했는가? p. 15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1) 왜 나단은 왕(다윗 왕)과 대립했는가?
(2) 왜 엘리야는 왕(아합 왕)과 대립했는가?
(3) 왜 이사야는 왕(히스기야 왕)와 대립했는가?
(4) 왜 예레미야는 왕(시드기야 왕)과 대립했는가?
(1) 왜 나단은 왕(다윗 왕)과 대립했는가?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과 대립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요즘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대통령 면전(面前)에서 대통령에게 대놓고 쓴소리로 직언을 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왕정 시대 왕에게 가서 그 면전에서 당신이 잘못한 그 사람입니다라고 직언을 했다는것은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나단은 왜 목숨을 걸고 왕에게 직언을하며 왕과 정면으로 대립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제사장 나라의 법(율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하나님의 법(율법)을 어긴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과 경고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존재 이유입니다
다윗은 왕정을 시행하는 나라가 된 이스라엘의 왕이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부여받은 나라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으로 세우신 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시민으로 이끌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 죄 없는 우리아를 일부러 죽였습니다 전쟁을 가장 잘 아는 다윗이 자신이 군대장관 요압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마치 전사한 것처럼 사주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셨고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삼하 11장14-17절
11: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1: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1: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11: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그런데 놀랍게도 역시 다윗입니다 보통 왕정에서 왕의 이 정도의 잘못은 잘못으로 이야기되지도 못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나라에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다윗은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시민으로 잘못에 대한 지적을 겸허하게 받았습니다
이런 나라가 제사장 나라입니다 제사장 나라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나라와 모든 백성들은 거룩한 시민으로 율법을 지키며 모든 민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평화를 만드는 나라입니다
삼하 12장13절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며 지은 시가 바로 시편 51편입니다
시 51편10-15절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고 나단은 이스라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단은 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기에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잘못을 저질럿을 때에 왕과 정면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 나라의 공의입니다
(2) 왜 엘리야는 왕(아합 왕)과 대립했는가? P.16
나단이 다윗 왕과 대립했다면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대립한 선지자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여로보암 왕조를 무너뜨리고 오므리 왕조를 연 오므리 왕의 아들로 베니게(페니키아)의 도시국가들 가운데 한 나라인 시돈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합의 아버지인 오므리 왕은 사마리아를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고 시돈의 공주를 자기 며느리로 맞이했습니다 오므리 왕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상당한 경제력을 확보한 나라로 국제적 위치 또한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었습니다 그 힘으로 시돈의 공주를 자기 며느리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로 시돈 아라두스 베리투스 등의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였던 베니게(페니키아)는 일찍부터 바알과 아세라를 그들의 신으로 셤겼던 나라였습니다 시돈의 공주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에게 시집오면서 자기 나라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가지고 들어왔고 얼마 지나자 않아 바알과 아세라를 북이스라엘의 전역에 퍼뜨렸습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 때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난 후 이제 바알과 아세라 우상까지 섬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제사장 나라의 사명은 오간 데 없고 북이스라엘은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베니게(페니키아)의 종교적 식민지가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완전히 망각한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에게 엘리야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때문에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북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3년간 북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예언대로 북이스라엘에는 3년간 비가 내리지 않았고 3년간의 가뭄으로 북이스라엘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가문을 격는 3년이 거의 다 지나가는 시점에 엘리야와 아합 왕이 만났습니다
아합이 3년간의 가뭄에 대해 분노를 엘리야게게 퍼부으며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냐?
이에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오므리 왕입니다 당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는 것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그러니 갈멜산에서 한판 붙어봅시다
그래서 그 유명한 갈멜 산 대결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갈멜 산 대결의 결과는 엘리야 승 아합 페였습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꿈쩍도 안 했습니다 덕분에 이 싸움은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로까지 이어지고 결국 북이스리엘에 오므리 왕조가 무너지고 예후왕조를 등장시키게 됩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 왕과 대립한 것은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망각하고 마침내 아세라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제사장 나라에서의 선지자들은 이처럼 왕이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 앞에 잘못했을 경우 담대하게 가서 하나니의 뜻을 전하며 왕과의 대립도 불사했던 것입니다
(3) 왜 이사야는 왕(히스기야 왕)와 대립했는가? P.17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아하스 왕 그리고 아하스 왕의 아들 히스기야 왕과 대립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지독하게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고집만 부리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하스 왕의 아들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벗은 몸으로 3년간 예루살렘 시내로 매일 출근을 하는 독한 퍼포먼스를 시행했습니다
사 20장3-5절
20: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20: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20:5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히스기야 왕이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외교정책을 통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하스 왕이 친앗수르정책을 펼쳤다면 히스기야 왕은 반 앗수르정책과 친애굽 정책을 펼치며 남유다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했습니다
아하스 왕과 히스기야 왕은 남유다가 지켜야 할 제사장 나라의 정체성을 완전히 망각한 채 보통 나라들이 시행하는 왕정 체제하에서의 왕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나라를 통치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에게 만약 그의 아버지 아하스처럼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망각하고 외교적으로 나라를 구하려고 생각했다면 이는 옳지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당대의 지식인 이사야가 부끄러움과 수치를 무릅쓰고 벗은 몸으로 3년간 매일 예루살렘으로 출근했던 것은 히스기야가 그토록 의지하는 애굽이 얼마가지 못해서 이처럼 수치와 모욕을 당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사장 나라는 친앗수르 정책이나 친애굽정책과 같이 어떤 외교적 전략으로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장 나라의 율법을 준수함으로 나라를 지킵니다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가 전했던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직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다 지켜 행하면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으로 인해 묵은 곡식을 그만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 26장10절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으로 말미암아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다 지켜 행하면 전쟁이 날 경우에도 5명이 나가 100명과 맞서 싸워 이길 것이고 100명이 나가 1만 명과 맞서 싸워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 26장8절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지켜본 남유다는 다른 나라들처럼 인간적인 전략으로 외교와 국방 쪽에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사장 나라의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 길만이 나라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뛰어난 지식인인 이사야가 그토록 힘들게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감당하며 왕과 대립했던 것입니다
결국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앗수르가 포위한 예루살렘 성안에서 히스기야는 애굽에 도움을 청하거나 항복의 표하러 성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순종을 보시고 앗수르의 18만 5,000명의 군인들을 치십니다
왕하 19장35절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폴 존슨은 이때의 상황을 헤로토스를 인용하여 페스트 즉 쥐가 옮긴 전염병으로 군인들이 모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 나라를 회복하고자 결심하므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로부터 오히려 나라를 지키고 그 후로 150여년간 나라를 더 유지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처럼 왕과 대립했던 이유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4) 왜 예레미야는 왕(시드기야 왕)과 대립했는가? P.19
에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과 대립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다른 선지자들에 비해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정말 많이 울고 또 울었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토록 많이 울었던 이유는 예레미야가 대립했던 남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끝내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던 바벨론 군인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의 집들이 모두 훼파되고 예루살렘 시내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어린아이들이 죽은 엄마의 젖을 빨다가 죽어가는 끔찍한 상황 그 자체였습니다
그 상황을 미연에 막고자 예레미야가 그토록 애타게 시드기야 왕에게 설득에 설득을 더하며 왕과 대립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확고하셔서 남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면 제사장 나라에 대해 재교육을 받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예루살렘 땅은 70년간 안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뜻을 정하신 이유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래로 남유다의 시드기야 왕 때까지 약 900년에 걸친 기간 동안 그들이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은 날수를 다 계산하면 70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수학 천재 하나님의 계산이었습니다
당시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바벨론의 남은 수명이 2년이라고 주장하므올 남유다에서 큰 호을을 받았고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수명을 70년이라 주잠함으로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징계 70년
둘째 교육 70년
셋째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은 날수 70년
넷째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벨론 제국의 수명 70년
하나님께서는 에레미야 선지자 이전까지 이스라엘에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다시금 일깨우고자 부단히 애쓰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통한 경고의 말씀에 끝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사장 나라를 잊고 그들 마음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를 통해 나라의 문을 닫게 하셨고 이제 남유다는 70년간 나라의 문을 닫고 바벨론에 포로로 다녀오도록 결정하셨습니다 때문에 바벨론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항복하는 것이 남유다가 취할 최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시드기야 왕에게 만약 남유다가 순순히 바벨론에 항복하면 왕도 살수 있고 백성들도 살 수 있으며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도 불타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은 자신이 만약 바벨론에 항복한다면 이미 바벨론에 1차와 2차로 먼저 끌려가 있는 남유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조롱할까 그것이 두려워 바벨론에 항복하지 못하겠다고 끝내 하나님으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토록 긴 예레미야를 기록하고 또 슬픔의 노래인 예레미야애가를 지어 기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남유다 시드기야 왕과 대립했던 것도 제사장 나라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70년간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안식하게 하시고 남유다 사람들을 70년간 바벨론으로 보내신 이유는 다름 아닌 다시 시작하는 제사장 나라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함께 제사장 나라를 처음 셋업하실 때에 그들을 교육한 시간으로 40년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왕정 500년을 보내고 다시 제사장 나라를 시작하기 위한 재교육 시간으로 70년을 쓰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뜻을 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예레미야 선지자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 왕과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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