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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단기출가 학교를 지원할 때가 떠오른다. 출가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수행하는 삶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단기출가를 신청하게 되었지만 신청서를 내고도 과연 갈 수 있을까 의문이었는데 막상 입학을 하게 되어 기뻤다.
고불식과 연비를 하면서 뭔가 새로은 문 하나를 막 열고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뭔가에 떠밀려서 어떤 인연의 끈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나 하는 의문이 가슴에 솟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처음 불교 경전을 접하고 4성제를 알게 되어 눈 앞이 확 트이는 듯한 벅참을 느끼고 나서 몇 년 만인가? 부처님을 스승으로 알고 그 분이 걸어가신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이렇게 잠시이나마 출가를 한다는 것은 감동이었다.
23일간 잘 살아봐야지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산과 같이 不動하는 如如함을 지녀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행자복으로 갈아입고 전나무 숲길을 삼보일배할 때 무척 힘들었지만 내 몸을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 몸이 나인줄 알고 그것에 끌려다니는 내 모습을 바로 보려고 순간순간 발바닥을 느끼고 이마에 닿는 젖은 흙과 나뭇잎도 느끼고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무릎관절과 종아리 근육도 느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니 벌써 어느새 삼보일배가 끝나있었다. 그때 찰중스님이 열심히 목탁치시면서 석가모니불을 선창하시며 절도 같이 하시는 것이 무척 인상깊었다.
이후 출가기간 내내 절을 할 때마다 우리 행자들과 함께 절하시면서 本을 보이시는 스님이 존경스러웠다. 어떤 교육이든지 말보다는 行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부터 시작해서 이어지는 교육기간 내내 힘들고 빡센 프로그램에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모르게 열흘이 지나 있었다. 힘들고 지쳐서 정말 먹고 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평소 집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나태한 것인지 깨달았다. 몸에 쌓인 군살이 빠지면서 기운도 맑아지고 행자들 얼굴이며 눈빛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뜻으로 행으로 입으로 짓는 업을 짓지 않고자 원을 세우고 탐진치를 여의고자 순간마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다 알아차리는 순간마다 그것들은 사라진다.
월정사에서 지내는 동안은 일상을 벗어나서 또 다른 낯선 일상을 산다. 전나무 숲길의 그지없이 향기로운 공기를 호흡하며 오대천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한 줄로 걸러가는 우리 행자들의 모습은 그대로 천상세계의 나들이 같기만 하다. 코끼리처럼 걸으려고 호흡을 길게 하면서 내 속을 바라보며 걷는 포행은 너무나 행복하다. 어느때는 포행 하나만 해도 본전은 다 챙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도량전체가 청정하고 스님들과 행자들 상호간 서로 챙겨주고 돌봐주는 따뜻한 마음씀도 세상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아름다운 정경이다. 좋지 않은 습에 물들어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정화하고 새로 가다듬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모든 집착과 잠마오욕락을 다 버리고 맑은 마음과 눈빛으로 주위를 밝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도 마음에 다 내려놓지 못하는 짐이 있지만 아직도 싫고 좋은 것이 많아서 스스로 괴로움을 짓지만 그래도 공부가 되어서 맑고 밝게 살아가시는 스님들을 보며 우리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을 바라보며 꾸준히 정진하고자 한다. 自他不二하고 同体大悲, 임을 마음으로 몸으로 진하게 느끼는 그 때가 될 때까지.
‘서로 부처되기’ 시간에 돌아가면서 행자들에게 9배씩을 하는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이 일어남을 느꼈다. 앞에 앉은 부처가 끝없이 행복하기를, 모든 번뇌를 여의고 보리과를 성취하기를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말 그대로 지극한 마음으로 축원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내 本性에서 나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 모두는 하나인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 임을. 더불어 환희심도 느껴졌다. 단기출가 학교가 아니라면 어느때 이런 마음을 느껴 보겠는가. 늘 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부당하고 부정적인 행동들 앞에서는 포용성없이 마음의 문이 아직도 닫혀짐을 보면서 스스로 안타깝고 더욱 수행해야 할 이유를 되새긴다.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나를 들여다 보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인연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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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진님!! 말없이 조용하면서도 부처님 닮아가려는 그 마음을 느끼곤 했는데~ 이글을 보면서 가슴이 따스해져 옴을 느낍니다..우리 13기님들~ 모두 그날의 그 마음 변함없으시길 바램하며..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