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금년해도 어버이 날이 왔다. 어머니 연세 92세..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평생 반려자이셨던 남편을 2016년 2.26일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4년여를 잘 견디시며 살으셨다. 지금도 상당한 분량의 농사를 지으신다. 어머니의 삶은 두가지, 신앙과 농사다. 수도자의 삶이 그렇다. 노동과 기도다. 노동은 그만큼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예수님이 그랬다. 기도하고 일하셨다. 노동은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농사를 지으시는 그 기쁨을 만끽하고 사신다.
서울에서 두 아들도 직장에 연가를 내고 할머니를 뵈러 왔다. 동생도 한걸음에 왔다. 며느리는 직장의 중요한 보직을 맡아 오지 못하고, 제수씨도 직장일로 못왔지만 마음은 여기와 있을 것이다. 태화장으로 모셨다. 1954년부터 시작했으니 그 세월의 무게만큼 대전에선 유명한 집이다. 나이들면 입맛도 변한다고 한다. 고기 종류를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어머니다. 된장찌개를 즐겨 하시고 칼칼한 칼국수, 짜장면, 올갱이국을 즐겨 드신다.
중국집에서 선택 코스요리와 짜장면이 제격일 것 같아 태화장으로 모시기로 했다. 큰 손자 학이가 모시기로 했다. 아침 7시 미사에 어머님을 위한 미사예물은 둘째 손자 결이가 했다. 도착하니 차량행렬이 줄을 이었다. 몇 명의 안내요원들이 차를 인수받아 정리를 하고 있다. 열쇠를 맡기고 예약한 룸으로 들어갔다.
20살에 장손의 며느리로 들어와 증조부모, 조부모를 모셨고, 시동생, 시누이들을 보살피며 큰 살림을 하셨던 어머니셨다. 옛적에는 가톨릭신앙을 가진 사람끼리 인연을 맺었기에 아버지 어머니의 인연은 하느님이 맺어 주셨다. 아버지 21세, 어머니 20세의 열혈 청년과 꿈 많던 처녀는 부부가 되었고, 둘은 67년을 함께 살며 깊은 신앙과 사랑안에 사셨다. 아버지는 2016년 2.26일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내려 놓는 연습을 하신 것인지 이젠 많이 내려 놓으신 것 같다. 내려 놓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한다. 내려 놓지 못하면 둘다 불행이다.
지금도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는 어머님을 뵈면 나는 점점 작아진다. 어머니의 농사는 으뜸이다. 왜 그럴까? 그곳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농사는 삶이며 기도고 신앙이다. 가장 신성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현자다. 생명줄인 먹을거리를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인 것이다. 그 일을 평생 기쁨으로 하신 어머니의 생이야말로 득도의 삶이 아닌가 한다.
아들 며느리, 손자들 속에서 기쁨 가득한 92세 어머니, 사랑합니다.
저녁에는 수녀님 세분이 오셨다. 카네이션을 들고, 어머님을 위한 기도와 어머님 은혜 노래 소리가 울려퍼진 방안이 보름달처럼 환했다. 수녀님들은 우리집이 편안한 안식처다. 늘 어머님을 살피는 수녀님들이 있어 고맙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