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건널목에도 이름표가 있다
늦었다. 사라질 해운대의 철길 건널목을 둘러보니 벌써 수영 1, 2건널목은 흔적도 없다. 재송동 방면에서 우동 쪽으로 오다 센텀센시빌아파트 앞에서 만나던 철길 건널목이 수영 1, 그리고 삼호가든아파트 입구에 있던 것이 수영 2건널목이었다.
우동 쪽의 건널목은 없어져 버렸지만 중동 쪽엔 아직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기계공고 아래 신동아아파트 입구의 우 2, 스펀지 앞 우일시장 옆의 우 3, 그리고 이마트 못 미쳐 해운대 고등학교 진입로의 해운대 건널목은 지금도 기차가 지날때면 ‘땡땡’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고 있다. 그 다음에는 해수욕장에서 신시가지로 가는 고가다리 아래의 우 4건널목이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있는 달맞이길 입구의 건널목 이름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여기는 ‘우 1’건널목이다. 그 이유를 건널목지기(감시원)에게 물어본다. “옛날에 이곳에 처음 건널목이 생겼지. 그래서 여기가 우 1이 된 것이여.” “그런데 여긴 중동이 아닙니까?”란 질문을 하다 해운대 철길 건널목 이름에 거의 다 우동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중동은 어디가고 우동이라니….
이어 건널목지기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쏟아진다. “과거 건널목이 생길 때는 이곳도 우동이었다”, “그 후 중동과 좌동으로 분리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좌동, 중동보다 우동이 더 오래된 이름이란 말인가? 대천을 경계로 중동, 우동, 좌동의 지명이 생겨난 때가 대체 언제란 말인가?
철길 건널목은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주민들의 애환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래서 철길 건널목과 더불어 건널목 관리동과 인근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있다. 옛 본래의 모습을 지닌 우 1, 2와 달리 해운대와 우 4는 건널목 관리동이 새롭게 지어져 옛 모습이 없다.
제일 관심을 끄는 관리동은 바로 우 2건널목이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이 관리동은 내부가 연탄아궁이를 지닌 그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도 난방을 연탄난로로 하고 있다. 그래도 큰 수리 없이 지금껏 버텨온 건물치곤 아주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다만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다. 해운대역이 1987년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할 때 아마도 그 당시가 아닌가 한다. 이곳 건널목 감시원은 “지은 지가 20년 전 쯤이다”며 이전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만 전한다.
또 건널목 관리동을 돌아보다 알게 된 사실이 철길 건널목 관리를 맡고 있는 기관이 철도공사가 아니라 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 테크 측이라는 것이다. 우 1건널목 감시원은 “건널목이 폐쇄되면 어떻게 되는냐?” 란 질문에 한참을 뜸들이다 이내 “그만 두어야겠다”며 쓸쓸히 웃는다. 그 역시 건널목 관리동에 대한 연혁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또 해운대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1년에서 2년 안에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인지 철길 건널목이 더 쓸쓸해 보인다.
우 2건널목 옆에 만들어진 텃밭
춘천이 흐르고 있는 우 4건널목 다리 아래
그리고 좀 더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건널목 주위에 크고 작은 다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곳은 메우고 재포장하는 작업이 있었지만 철길 부분은 쉬 작업을 할 수 없었는 지 작은 하천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주 오래된 교각 아래 도랑엔 상상 이상의 오폐수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다른 곳은 복개되어 지저분한 모습을 감추었어도 철길 주변만큼은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철길의 역사만큼 옛날의 흔적과 현재 변화된 모습 모두를 철길 건널목은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