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우리는 그가 소유한 것 보다는 ‘그인 그대로(ce qu’il est)‘를 사랑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현상들(phénomènes)에 지나지 않는 대상들(objets)이 아니라, 존재들(êtres)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루이라벨, 『가치론』 중에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것이 ‘인간관계’인 것 같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 같은 말에 참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인간은 관계성의 존재들이고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가지고 또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랑하는 삶’도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려운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거나’ 혹은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상들(objets)’처럼 취급하거나 ‘인격(personne) 대 인격’이 아닌 ‘인격 대 사물(choses)’처럼 취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대상’이나 ‘사물’처럼 취급 받는 곳에서 나는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 자신이 ‘인격’으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것’ 때문에 사랑받는 것 같은 경우가 많다. 그것이 ‘돈’이건, ‘직위이건’, '명성이건', ‘아름다운 외모’이건 혹은 ‘재능’이나 ‘기술’이나 ‘지식’이나 무엇이건 ‘있는 그대로의 나의 총체’ 즉 ‘나의 인격’이 아닌 그 어떤 것도 나의 인격에 비하면 그저 하나의 ‘소유물’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나 자체’ 혹은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면, 소유한 것을 획득하자마자 사랑의 행위는 무관심의 행위로 추락하고 만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에게서 획득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할 경우에는 ‘내가 한갓 타인의 자기-사랑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심할 경우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도 굳이 이러한 관계성에 이름을 부여하자면 ‘약탈적인 관계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약탈적인 관계성’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언제나 ‘무관심의 행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타인으로부터 내가 무관심한 존재가 된다는 것, 이는 내가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아니 모든 존재자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그인 그’라는 이유만으로 그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가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은 누군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이 사람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온 세계의 모든 것에서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다른 한 인간에 대해서 ‘그가 무가치한 존재’라고 판단할 권리가 없고 그럴 자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는 신의 자리에 자신을 두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오직 ‘나의 선호함’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우리는 ‘이기주의’라고 부른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오직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가치 있는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내가 선호하지 않아도 ‘타자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게 된다. 사람이 인격적이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치의 판단에 있어서 ‘나의 선호함’이란 편협한 기준을 넘어 ‘보편적인 질서(un ordre universel)’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내가 선호하지 않아도 즉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타자에 대해 그가 가진 존재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존경, 감사, 우정, 사랑 등의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인격적인 관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인격적인 관계에 있어서 비로소 공정함, 정당함의 의미가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읽어 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