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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77편1~20절
제목 : 환난에서의 기도
77편은 이삽의 시라고 하였으나 그 자손의 시이겠는데,
그 자손 중 누구라고 하는 것도 분명치 않거니와
저작 시기에 대해서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시대에 당한 국난이,
본편 국난과 같았을 것으로 미루어보아,
갈대아 민족 곧 바벨론의 침략으로(합1:6~11)
아직 나라가 완전 멸망하지는 않은 때입니다.
1~3절은 기도 응답이 없음에 대하여,
4~9절은 철야 기도함에 대하여,
10~20절은 애굽에서 구속하여 주신 역사를 회상하여 대하여 말합니다.
Ⅰ. 기도 응답이 없음(1~3절)
1. 음성으로 부르짖었음(1절)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음성으로”구함은 간절하게 호소하는 기도를 뜻하며,
“부르짖으리니”란 말은 “소리를 지른다”는 뜻으로서,
통곡하며 기도하는 것을 가르 킵니다.
본문은 기도의 결과를 예기하면서 부르짖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부분에만 관한 기도가 아니고, 전체에 대한 기도입니다.
아직은 응답이 없어도 반듯이 응답하여 주실 것을,
단순한 기대가 아니고 확신을 가지고 부르짖음입니다.
기도는 반듯이 응답하여 주시기로 언약되어있습니다.
(시91:15,사58:9,렘29:12~13,마7:7)
*시91:15절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사58:9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렘29:12~13절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마7:7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하셔서,
들으시고 신실되이 그 능력으로 이루십니다.
다만 그 응답하는 시간이 빠르고(사65:24,단9:21,23,10:12),
늦음이(눅18:1~17)있으니, 낙심하지 말고(갈6:9) 의심하지 말고(약1:6),
끝까지 믿음으로 간절히 구하면 주십니다.
2. 환난날에 주를 찾았음(2절)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민족의 환난을 자신의 환난으로 알고 애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피곤해 쓰러질지언정 위로받기를 거절하면서,
생명 걸고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환난날에 갈 곳은 주님 한 분밖에 없으니,
환난을 제거하여 주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라고 하였는데,
“손을 드는 것”은 유대인의 기도의 자세이니 밤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거두지 아니함”은 계속 기도함을 뜻합니다.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라고 함은 기도 응답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응답이 없는데 어떻게 위로를 받겠는가?
그러나 피곤한 줄 모르고 팔이 내려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간절히 하는 기도라면 불원한 시간에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3. 부르짖음과 묵상이 교차되는 기도(3절)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라고 하였습니다.
전일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기도할 때마다 즉시로 응답해 주시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렇지 못함을 인하여 마음에 불안과 근심이 일게 되고 하여 심령이 상한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오래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하게 되므로 피곤해 짐을(시107:5) 뜻합니다.
팔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심신이 다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Ⅱ. 철야 기도(4~9절)
4절에서는 자지 않고 기도함에 대하여,
5~9절은 과거를 회상함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 자지 않고 기도함(4절)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시인은 그 밤을(2절) 자지 않고 조금도 쉬지 않고 철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이 시인은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눈을 지켜 붙들어 주시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철야 기도할 수 있게 하여 주신 것이 주의 은혜였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코 자기는 싫은데 주께서 강제로 시키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인간이 피곤하여지면 기도하면서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 깨어 기도할 수 있게 하여 주신 것을 뜻합니다.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라고 함은 잠을 자지 못하고 기도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말도 못하도록 재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소리 내어 기도할 힘도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음성으로 통곡 기도하다가(1절),
다음에는 소리내어 기도하다가 묵상하였는데(3절),
이제는 소리 낼 힘조차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2. 과거를 회상함(5~9절)
5~6절에서는 과거 은혜 받던 때를 생각함이고,
7~9절은 주께서 버리셨는가 걱정함입니다.
1) 과거 은혜 받았던 때를 생각함(5~6절)
“[5]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재난의 고통에서 과거 은혜 입었던 때를 회상합니다.
이는 단순히 우울증에서 나오는 과거를 그리워함이 아니고,
은혜 받던 때를 회상함으로써 현재 그 은혜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음입니다.
그때에 어떻게 은혜 받았던가를 그 원인을 찾아 지금도 그렇게 하여 같은 은혜 받기를 원함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언제나 참된 회개의 기도는
항상 응답하시고 은혜를 베부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참된 회개로 은혜 받아 구원된 성도라면
현재의 어떠한 난관이라도 과거와 같이 참된 바를 회개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면 구원 못될 아무 위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노래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기를 신명기 32:7절에서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란 과거 밤에 기도하던 중 응답을 받고 기뻐서 찬송 부르던 것을 말 합니다.
시인은 이렇게 밤에 기도하는 일을 힘썼던 것입니다.
기도의 재미를 본 사람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34: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100:5절“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그대로만 하면 은혜가 또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그때의 일을 마음에 묵상하고
심령에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전도하다가 매맞고 옥에 갇혀서도 밤중에 기도하다가 찬송하였고(행16:25),
베드로, 요한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행5:41).
2) 주께서 버리셨는가 걱정함(7~9절)
“[7]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진지하게 탈진하도록 밤을 세워 기도하였는데도 서광이 보이지 않으니 마치 영원히 버리시고,
은혜 베플지 않으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여섯 가지로 의문을 말한 것은 회의함이나 실망하는 낙심이 아니고 외모로 그렇게 보여진다는 것을 진술한 것뿐입니다.
아니, 도리어 그렇게 하지 않으시리라는 소망에서 부르짖는 탄원이요
애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앙의 발로이지 결코 불신앙의 발설은 아닙니다.
아무리 극단의 비애에서라도 낙망함은 신앙에 있어서 금물입니다.
불신앙에 빠지는 첫 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Ⅲ. 애굽에서 구속하신 역사 회상(10~20절)
10~12절에서는 옛적에 행하신 일을 기억함이고,
13~15절에서는 주의 도는 거룩함에 대하여,
16~20절에서는 자연계가 복종하였음에 대하여 말합니다.
1. 옛적에 행하신 일을 기억함(10~12절)
10절에서는 지존자의 권능을 생각함에 대하여,
11~12절에서는 주의 옛 기사를 기억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1) 지존자의 권능을 생각함(10절)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라고 하였습니다.
환난날에 지난날의 은혜 받았던 때를 생각함으로써 새 힘을 얻는 유익에 대해서는 이미 5절에서 잠깐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말하기를”하고 말을 시작함은 지금까지 응답이 없어 침묵 중에 침울하던 것을 깨뜨리고 새 힘을 얻은 스스로의 격려입니다.
7~9절에서 하나님께 말한 의문적 물음의 말들은 병든 말이지 정상적인 말이 아님을 뜻합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 백성을 환난에서 구원하시던 때를 말합니다.
그 대표적 역사가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신 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니 앞에서 진술한 인간들 보기에 아주 버리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발언은 병든 자의 생각이니 주님의 그 능력만 의지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시므로 지금도 그 권능의 역사 그대로 행하시어 구원하여 주실 수 있으신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2) 주의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함(11~12절)
“[11]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12]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때에 이적 기사의 능력적 역사로 그 백성을 구원하여 주신 일을 기억하고 명상하면서 현재의 환난에서도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이란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면서 행하신 이적들과 또 구원하여 내신 후 홍해와 광야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가리킵니다.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깊이 생각하리이다)”라고 한 말이 6절에서 묵상한다로 번역된 말과 똑 같은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하신 일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한다면 항상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깊이 명상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2. 주의 도는 거룩함(13~15절)
13절에서는 하나님은 위대하신 신이심에 대하여,
14~15절에서는 이적으로 백성을 구하셨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은 큰 신이심(13절)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것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거역하거나 제어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능력의 역사로 구원하여 주십사하는 호소인 것입니다.
“도”는 “길”이라는 말이어서(창3:24)
이적 기사를 행하시는 방법을 일컬음입니다.
“극히 거룩하시오니”로 번역된 말은 “성소 안에”로 되어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 곧 그 역사하시는 방도가 성소 안에 있다는 것은,
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55:8~9절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역사를 깨달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롬11:33~34, 시10:5, 139:6, 잠24:7, 전8:17)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라고 하였는데,
원문에는 “어떤 신이 하나님같이 큽니까”로 되어 있어서 하나님 보다 위대한 신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을 못하도록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이요,
또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없다고 하는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2) 이적으로 백성을 구하셨음(14~15절)
“[14]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5]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 (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적적 능력의 역사로 바로와 열국들 앞에 그 능력을 알리시고 그 능력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음을 역설함입니다.
특히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한 말은
애굽에서 이적을 행하신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일한 분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지금도 그러한 이적으로 그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라고 한 것은 이적을 행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민족들 가운데 나타났다는 뜻인데,
“민족들”은 애굽과 열방들을 가리킵니다.
“ 주의 백성”은 12지파를 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를 “야곱과 요셉의 자손”이라고 하였는데,
야곱은 12지파의 아버지니까 12지파 전체를 가리킴이겠으나,
요셉은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의 아버지요 이들은 모두 북국 10지파 이스라엘 나라에 속해 있으므로 북국을 가리킨 것입니다.
“야곱”의 이름중에 12지파가 다 포함되어 있으므로 북국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 따로 독립적으로 특별히 첨부한 것은 북극의 멸망을 슬퍼하는 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속량하심”은 속전을 지불하고 매입에서 풀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예표이므로 그 그림자의 모형이 되는(히8:5,10:1) 유월절 양으로 구속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3. 자연계가 복종하였음(16~20절)
16~19절에서는 물들이 복종하였음에 대하여,
20절에서는 백성을 주께서 인도하셨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 물들이 복종하였음(16~19절)
“[16]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18]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렛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19]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어 그 백성을 구원하시고 뒤따르던 원수들을 남김 없이 수장하여 버리신 장엄하신 능력의 역사를 언급함입니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였다고 함은 의인법적 표현으로
물을 사람과 같이 보고 두러워하여 물러가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니 벽과 같이 양편에 일어서서 벽이되고 말았습니다(출14:22).
“두려워 함”은 괴롭다는 뜻이 있어서 “고통”으로도 번역된 말이니 물이 벽으로 서 있으려니 그 괴로움 그 고통이 보통이 아니겠으나 창조주이 명령이니 어찌하겠는가?.
“깊음도 진동하였고”는 깊은 물 속 바닥이 드러났다는 것을 말하고,
“소리를 발함”은 천둥소리를 뜻하며,
“화살도 날라 감”은 번개치는 것을 일컫음입니다.
폭풍우에 뇌성 벽력이 우당탕거리고 번갯불이 눈 앞을 캄캄하게 하는 천둥지변이요, 바다가 둘러 빠지는 것 같은 대변동에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다 죽어버리게 한 대 참사를 묘사함입니다.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는 물이 제 위치로 돌아가 덮여 버렸으니 조금 전에 보이던 길이 어리도 갔는지 간데 온 데도 없고,
또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며 뒤따르던 애굽 군대도 어리로 갔는지,
흔적조차 없어져 버리고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출렁이는 물뿐이니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어느 누가 감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인간으로서는 측량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2) 백성을 주께서 인도하셨음(20절)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결론 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무리 양같이 인도하시되
모세와 아론을 시켜 하셨다고 하여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어 가나안 복지까지 인도하시는,
전과정에서 그렇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물론 아론이 도중 호르산에서 죽지만 그때가 출애굽한지 40년5월1일(민33:38) 123세 때였으니까(민33:39),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 안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이 되므로(수5:10) 출애굽과 광야 40년 동안의 지도자였음이 틀림 없습니다.
모세도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요단 동편 느보산에서 죽었으니,
아론이 죽은 해와 같은 해입니다.(신34:7, 민33:39, 출7:7).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친히 선한 목자가 되시고(시23:1)
그 백성을 양으로(시95:7, 100:3),
먹이시고 기르시는데(시74:1),
양이 이동할 때는 무리를 이루어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대이동에 무리 양같이 인도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시74:1절에서는 포로되어 방황하는 양이었으므로
그저 “치시는 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당장에 기도의 응답이 없는 같으나
철야 기도함과 같이 열심히 기도하시면 반듯이 기도를 응답하여 주심을
애굽에서 구속하여 주신 역사를 회상하면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마시고 기도하는 여러분 됮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