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10장10~16절
제목 :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라
10: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 이번에는 영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의 행동 지침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코마이'는 사신들(ambassadors)을 환영하거나 그들이 전달해 주는 통지문을 환영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제자들 개인의 자격이나 권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것임을 가리킵니다.
또한 '거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라테이아'는 '넓은 길' 또는 '노천의 넓은 거리'를 뜻하는데 이것은 거절하는 사람 또는 동네에 대한 제자들의 행동이 공개적이어야 함을 뜻합니다.
10: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 복음을 거절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하는 행위로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것입니다(9:5 주석 참조). 결국 이런 행위는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하나님의백성이 되기를 거부한 행위로 인해 필연적으로 결과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경고성 행위는 반대나 불이익을 뜻하는 여격이 사용된 '너희에게'(휘민)로써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 이 말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1)마지막까지 회개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 행위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복음을 거역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한 사실로서 다가오며 어떤 악한 세력에 의해서도 지연되거나 저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그 날에 소돔이...쉬우리라 - '그날'은 마태복음의 병행 본문에 기록된대로(마10:15) '심판의 날'을 뜻함이 분명합니다(21:34;마 7:22;살후 1:10;딤후 1:12,18).
또한 마태는 구약적 표현에 일치되게 '소돔과 고모라'로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고모라를 생략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악의 상징이며(사 1:9;렘50:40) 본래 이 두 성읍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 심판을 받아 멸망한 도시였습니다(창 19:24-28).
한편 '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는 표현은 심판의 강약을 뜻한다기 보다는 그들의 심판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확정지우며 그 심판의 준엄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10: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 여기서 '화 있을 진저'는 반대자들에 대한 보복 보다는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될 대상에 대한 슬픔과 유감을 표시합니다(6:24).
고라신은 마태복음의 병행본문(마 11:21)과 이곳을 제외하고는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지명입니다.
고라신은 당시의 가버나움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4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인데 현재는 텔 흄(Tel Hum)으로부터 동부쪽으로 5km정도 거리에 있는 '케라제'(Kerazeh)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곳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두로'와 '시돈'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셨으리라 추측됩니다.
벳새다 - 이 곳에 대해서는 9:10의 주석을 참조.
예수께서 이곳에서 사역을 하신 기록은 9:10-17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 - 이 문구는 앞에서 언급한 두 장소에서 행하신 사역들이 성경의 기록보다 훨씬 많음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권능'(뒤나미스)은 4:14과 9:1에도 나오는 데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곳에서 두로와 시돈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나님의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 - 이 두 도시는 갈릴리 북방에 있는 베니게의 항구도시로 두로는 B.C.2750년 경에, 시돈은 B.C. 1400년 이전에 건설되었습니다.
이 두 도시는 번영과 쾌락과 이교도의 도시로 유명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한 결과(암1:9;욜 3:6)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습니다(사 23장;겔 26-28장).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 베옷(삭코스)은 염소털로 만든 거친 옷으로 회개나 애도의 표시로 입었습니다(왕상 21:27).
재(스포도스) 역시 애도의 표시였고(욥 2:8;욘 3:6;마6:16) '삼베'와 연결되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에4:2,3).
10: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심판 때에...쉬우리라 - 12절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두로와 시돈이라는 두 패역한 도시에 비유하여 고라신과 벳새다의 심판이 얼마나 중할 것인가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도 심판을 면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에 대해서 엄한 심판이 있을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
가버나움 - 문자적으로 '나훔의 마을'이며 '나훔'은 '자비로운'이라는 뜻으로 이마을 이름은 결국 '자비의 마을'이 되는 셈인데(Hendriksen) 예수의 심판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 마을의 이름은 역설적인 의미에서 '완악한 마을'이라고 해석해야 옳을 것입니다.
아무튼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중심적 제자들이 그곳에서 선택되었고(5:10), 많은 이적과 교훈이 그곳에서 베풀어졌습니다(4:23,31-37;7:1-10).
그리하여 마태는 가버나움을 예수님의 '본 동네'라고 하였습니다(마 9:1).
그러나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그렇게 주어진 기회를 저버리고 말았는데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거역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네가 하늘에 까지 높아지겠느냐"는 표현에 의해 그들이 매우 교만하였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늘에까지...낮아지리라 - 이는 이사야가 포로후기 시대에 오만불손했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말씀(사 14:13,15)을 가버나움에 적용한 것입니다.
'네가...높아 지겠느냐'(메 휩소데세)에서 '메'는 부정적인 대답을 예상하는 조사로서 결코 하늘에까지 높아질 수 없음을 반어법적으로 강조해 줍니다.
하늘의 영광과 음부의 파멸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교만한 가버나움이 당할 파국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음부'(하데스)는 구약에서 죽은 사람들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며, 신약 시대에는 그 의미가 조금 변하여 무신론자들이 벌을 받는 장소로 여겨졌습니다(Marshall).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너희 말을...것이라 - 제자들의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위에 의한 것임을 밝힘으로써 제자들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함을 보증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권위를 존중해주지 않고 거역할 때 그 행위는 예수를 거역하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제자들로서는 자신들의 권위가 자생적(自生的)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것임을 인식해야 하며 따라서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한다는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제자들을 박대하고 말씀을 거부한 성읍에 저주가 내립니다(12~15절)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위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16절).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자들을 배척했기 때문에 이들은 우상숭배했던 이방도시들보다 더 가혹한 심판을 받았습니다.(13~14절)
오늘날 비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신중히 복음에 귀 기울여야 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전파된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즉시 순종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백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