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주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주체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에 동의하고 행동할 때, 우리를 결정하도록 하는 동기가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가 혹은 외부에 있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동기들이 더 이상 우리의 바깥에 있지 않고 우리의 내부에 있을 때, 우리는 주체적일 수 있다. 나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무엇이 불의한 것인지를 묻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고자 할 때, 나는 주체적인 사람이다. 반면 나의 판단과 결정이 오직 외부적인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이익만을 바라고 이미 내려놓은 결론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것은 주체성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이를 때는 말을 할수록 거짓말이 늘어난다.
현재의 한국적 상황은 좌파에도 우파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한국적 상황은 우파가 진보 같고 좌파가 보수 같은 역전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절대로 진실이나 팩트를 알고자 하지 않고, 오로지 이미 내려놓은 결론을 고수하려는 무지막지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예를 들면 유튜브를 보면 총선부정에 대한 이슈가 많고 증거도 참 많이 제시하고 있다. 서울대생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대검 앞에 검은 우산시위가 제법 많지만, 어떤 공영방송이나, 어떤 언론 신문에도 보도를 않는다. 다만 몇 몇의 의식 있는 사람들만이 진실의 목소리를 낸다. 나는 이에 대해 아직 뚜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를 하고 다양한 인사들이 견해를 말해주어야 교차검정을 통해 나의 견해를 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기를 펴지 못하게 하고, 숨죽이며 살게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나의 주체성을 완전히 포기할 때, 나는 그 무엇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인간은 인간답다는 것만으로도 고귀한 존재이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다. 내가 나의 생각과 나의 행동의 주인이 되어서 그냥 평범하게 하루, 하루를 사는 것, 이것이 가장 고귀하고 소중하다. 누구도 더 인간, 덜 인간이 없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귀한 존재로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진리가 어느 사이 조금씩 사라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자아와 주체성을 조금씩 그 무엇에 양보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어떤 이유도 인간으로서의 당연히 가져야할 이 같은 책임성을 회피하는 것을 정당화시켜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 대다수가 ‘노예 같은 상태’에 이르면 결국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언젠가 그 자리를 떠나게 될 것이고, 결국 어떤 나라도 국민들의 주체성과 주권정신이 살아 있을 때, 당당하고 선진화된 국가를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당이나 누구를 편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일들에서, 내가 보고 듣는 일들에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정의롭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나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진실, 정의, 올바름, 정직함, 참됨, 공동선, 양심 ... 이러한 개념은 참으로 중요하다. 진리라고 말할 때, 이 같은 가치들을 제외한다면 어디에 진리가 있겠는가? 공자는 “아침에 道(진리)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을 하였다. 죽어도 좋은 만큼 ‘진리’라는 것이 그토록 소중한 가치라는 말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역할을 하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성경에서도 "사람이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자기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은 나약하다. 이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은 진실에 눈을 감고, 불행을 외면하고, 많은 경우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늘 그렇게 산다면 나는 이미 노예나 다름없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항상 나약하지는 않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용기를 낼 때가 있고,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도 과감하게 희생정신을 발휘할 때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종의 욕망의 총량, 희생의 총량, 용기의 총량, 일탈의 총량, 객기의 총양, 사랑의 총량 등이 있다고 한다. 인생의 언젠가는 이러한 것들이 한 개인에게서 드러나게 마련이고, 문제는 어느 시점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심리학자들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겠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은 있다. 어떤 때에 나의 일탈을 용인하고, 어떤 때에 나의 의로움을 발휘하고, 어떤 때에 객기를 부리고, 어떤 때에 나의 희생정신을 발휘할 것인가, 어떤 때에 방관자가 되고 어떤 때에 용기를 발휘할 것인가를 현명하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돈내코 탐방길에서 본 한라산 봉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