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고궁산책,
창경궁과 창덕궁 2.
2018.2.16
2부, 창덕궁
창경궁과 창덕궁은 간단한 담장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오늘은 창경궁을 먼저 둘러본 후에
창덕궁까지 함께 둘러보고 왔다. 창덕궁에 간 김에 한국의 유명 정원인 후원까지 보고 올려고 했으나
예약 관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오늘은 외국인들만 입장을 시켜주었다.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시대 궁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대대적인 공사를 감행, 경복궁을 건설했으나
2대왕인 정종은 터가 좋지 않다며 수도를 다시 개성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3대 태종이 다시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법궁인 경복궁과 별도로 궁궐을 하나 더 지어 보조궁으로 활용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창덕궁이다.
그래서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과는 달리 터를 잡으면서 땅을 다듬지도 않고 산과 언덕 등 생긴대로 두고 건축을 하였다.
그런 탓인지 창덕궁은 궐 안에 호수와 개천 나무 등이 너무 잘 어우러지는 등 경치가 아름답고 정서적이었고
그래서 왕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고, 5백년 조선 역사 중 가장 오래동안 가장 많은 왕들이 거처한 궁궐이 되었다.
창덕궁은 1호선 전철인 종3역에서 가작 가까운데, 창경궁과 함께 보려면, 4호선인 혜화역이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오늘은 먼저 혜화역에서 내려 서울대병원을 거쳐 창경궁을 먼저 보고 이어서 담너머 창덕궁을 마저 보고 왔다.
정문인 돈화문(보물제383호)
창덕궁의 정문으로써 유일하게 정면이 5칸 규모로 되어있다. 태종 1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선조 40년에 재건하여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으로 1963년에 대한민국 보물 제 383호로 지정되었다.
돈화문 다음의 문, 진선문
진선문 다음의 숙장문
선정전 입구의 선정문
인정전 입구의, 인정문
가장 중심 건물인, 인정전(국보 제225호)
궁궐에서 가장 중신적이고 으뜸이 되는 건물로 궁궐의 권위를 나타내는 동시에
의식을 치르는 공간이었으므로 상징성에 초점이 맞추어 크고 높고 화려하게 지었다.
정1품 자리에 한번 서 보고....
보춘문
희정당(보물 제815호)
왕과 욍비의 생활공간인 대조건(침전)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궁궐에서 가장 접근하기 힘든 곳이었다.
선정전과 더불어 임금의 집무공간으로 사용되었는데 선정전에 비하여 편안한 업무공간으로써
건물의 최고 위계를 나타내는 '전'(선정전)을 붙이지 않고 한칸 낮은 위계인 '당'(희정당)을 이름에 붙였다.
대조전의 정문인 선평문
대조전(보물 제816호)
왕비의 생활공간이자 임금과 왕비의 침전이었다. 성종, 광해군, 인조, 효종, 철종, 순종 등이
거처하였으며 폐비 유씨, 효현왕후, 효정왕후 등 왕비들이 거처했던 곳이기도 하다.
궁밖에서 대조전까지 가려면 돈화문과 진선문, 숙장문을 지나 적어도 5개 이상의문을 통과해야 했다.
려춘문
낙선재(보물 제1764호)
헌종 13년에 후궁이었던 경빈 김시를 위해 지은 것으로 석복헌과 수강재 등 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에 낙선재가 있고 동쪽으로 석복헌, 더 동쪽에 수강재가 있는데 이 영역을 통털어 흔히 낙선재라 부른다.
낙선재는 임금이, 석복헌은 왕비가, 수강재는 대비가 거처하던 곳이다. 마지막 왕인 순종이 승하하자
계후인 순정효황후(문황후)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도 이곳에서 살다가
1989년에 죽었다. 낙선재의 의미는 선한 일을 즐겨한다는 뜻이고 석복헌은 복을 준다는 뜻이라 한다.
나가는길에....
금천과 금천교(보물 제1762호)
돈화문을 드어서면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에 금천이라 이름하는 작은 내가 흐르고 그 위로 금천교가 있다.
금천교는 태종 11년에 세워진 것으로, 궁궐을 든드나드는 관리들이 맑고 바른 마음으로
나랏일을 살피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