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행/목포여행)유달산 노적봉. 이순신 장군의 환생 노적봉 큰바위 얼굴, 신기한 다산목을 만나는 유달산 노적봉 여행
4월 주말 서울 용산역에서 목포로 운행하는 KTX를 타고 도착했던 목포 유달산, 한창 목포 유달산에는 목포를 대표하는 “꽃피는 유달산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벚꽃과 함께 진달래, 개나리 등 봄을 알리는 모든 꽃이 한꺼번에 펴 마치 유달산이 꽃 대궐을 이루듯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목포하면 유달산 하는 수식어가 어릴 적부터 머리에 세 겨졌습니다. 또한, 트로트를 좋아하여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랫말에도 유달산과 노적봉, 삼학도가 등장하여 목포시는 유난히 나의 인상에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제주도에서 목포로 나와 유달산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아쉬움이 너무 커 이제 사 목포를 찾아 가장 먼저 올라 본 목포 유달산, 축제로 많은 사람으로 붐볐지만, 노적봉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노적봉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지혜가 숨어있는 바위봉우리입니다. 왜군은 우리나라를 수시로 침략을 해왔습니다. 그중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우리 국토는 쑥대밭을 이루었고 아마 정유재란 때의 일이라 여겨집니다.
1597년 10월부터 4개월 동안 충무공 이순신은 목포에 머물렀는데 왜적에게 군사를 많게 보이기 위해 꾀를 내었습니다. 높이 60m의 암봉을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농사를 짓고 나면 나오는 짚 마름으로 군량미를 쌓아 둔 노적가리로 꾸며 아군의 군사가 많게 보여 왜군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이 바위봉우리는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노적봉하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연유인지 모르지만, 노적봉에는 일제강점기 때 유난히 많은 쇠침을 박아 놓았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정기인 노적봉의 기운을 끊기 위한 수작을 부렸던 가 봅니다.
300여 년이 지난 뒤에도 바다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이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나 봅니다. 노적봉은 유달산에서 보면 사람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누군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아닌가합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왜군을 향해 호령하고 계시는 충무공 이순신이 노적봉의 큰 바위 얼굴로 다시 태어나 우리나라를 지켜주실 것 같습니다.
아직도 악마의 발톱을 숨기지 않는 바다 건너 일본입니다. 부디 이 나라를 보살펴 주세요하며 빌어봅니다. 이곳 노적봉에는 특이한 모양을 한 나무가 있습니다. 노적봉 다산 목으로 이 나무가 다산을 이루게 한다며 마을 주민들이 은밀하게 숨기며 보존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2000년 10월 새천년 시민의 종 종각 건설 과정에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나무를 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로 많은 분들이 찾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아랫마을은 출산율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자 신앙의 발로라 여겨지며 팽나무의 모습이 매우 신기합니다,
이곳 노적봉은 우리나라 첫 기상관저였던 신안군 하의면 옥도리의 목포 기상대가 1906년에 이곳으로 옮겨와 1997년 12월까지 91년 동안 기상업무를 관장했던 곳입니다. 또한, 목포 MBC가 있던 곳입니다.
노적봉을 찾아간 이 날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유달산 꽃 축제 기간에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의 종 타종식이 열렸고 한해의 복을 기원하는 행사였습니다.
전란과 혼돈의 역사와 함께한 목포 1번지 유달산은 목포의 관문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목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달산 여행 노적봉도 꼭 찾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기운을 듬뿍 받아가세요.
첫댓글 목포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유달산 시민들의 쉼터도 되네요
유달산에 오르면 확 트인 목포 앞바다가 눈에 가득들어 옵니다......
신령스러운 유달산
멋진 추억은 간직한 유달산입니다.
이번에 정상을 갔었거든요.
유달산 이순신장군의 행적이 보여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