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오른쪽)가 27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건물(워싱턴주 레드먼드 소재)에서 스티브 발머 CEO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직원에게 연설하고 있다. 레드먼드 로이터=연합뉴스 |
‘컴퓨터 천재’ ‘정보기술(IT)의 황제’ ‘세계 최고 갑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53) 회장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그가 27일(현지시간)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다.
이날 오전 9시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에 있는 MS 본사 콘퍼런스룸. MS 임직원 800여 명이 게이츠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의 부인 멜린다 게이츠와 세 자녀도 자리를 함께했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임직원은 인터넷으로 생방송을 지켜봤다. 같은 시간 게이츠는 연단의 검은색 커튼 뒤에서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며 팔짱을 낀 채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넥타이 없는 셔츠 차림으로. 그는 오랜 친구이자 MS의 CEO인 스티브 발머가 이름을 부르자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으며 커튼 앞으로 나섰다.
“MS와 MS가 하는 위대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은 날은 내 인생에서 단 하루도 없을 것이다.” 그는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닦으며 환호하는 임직원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발머도 목이 메어 “빌에게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빌은 창업자이며, 리더였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준 것이 바로 빌이었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임직원과의 대화에서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라며 MS가 인터넷 검색과 광고 분야에서 구글에 뒤져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게이츠는 이날 이후 일상적인 회사 업무에서 손을 뗀다.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해 이사회 의장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그는 1975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단돈 1500달러로 MS를 세웠다. 세계 모든 사람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설치되길 꿈꾸던 그의 꿈은 이뤄졌고, 세계 IT 황제로 군림했다. 앞으로 그는 IT 황제가 아니라 ‘자선사업의 황제’가 될 참이다. 580억 달러(약 60조원)의 재산가로 포브스로부터 세계 3대 부자에 선정된 그는 재산 대부분을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13년 연속 세계 최고 갑부 자리를 지켜 왔으나 최근 MS의 주가 하락으로 두 단계 내려앉았다.
자선 사업에 힘 쏟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한 게이츠는 이날 임직원의 질문에 정성껏 답했다.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우리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이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탁월한 사람들을 투입하지 않을 경우 그렇다. 이게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일은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는 횟수를 줄이는 게 좋다. (When we miss a big change and we don`t get great people on it, that is the most dangerous thing for us. It`s happened many times. It`s OK, but the less the better.)”
-MS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는 지금 어떻게 떠날 수 있느냐.
“심각한 경쟁이란 언제나 있어 왔다. 나는 지금 MS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한다. MS의 지적 능력은 매우 높지만 항상 그 지적 능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금씩 줄어들기도 하는데 바로 그것이 MS에 닥친 과제의 하나다.”
게이츠와 발머는 MS가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인 IBM과 벌인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을 회상했다. 발머는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컴퓨터 회사와 정면으로 맞섰으며, 이겼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색시장에서 구글에 뒤진 데 대한 세간의 우려와 관련, “우리는 또다시 뒤에서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갖게 됐으며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MS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MS를 평가절하하는 것을 좋아한다. 맞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서 배웠고 우리의 많은 업적이 바로 그 결과다.”
-앞으로 MS는 얼마나 더 커질까.
“중요한 것은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더 민첩해지는 것이다. 나는 우리 회사 규모가 곧 두 배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 예측은 여러 번 틀렸었다.”
-분신처럼 아끼던 회사를 떠나는 소감은.
“나의 부재는 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나는 이제 물러나야 하며, 뭔가 새로운 일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이츠의 고별사가 끝나자 MS 임직원들은 기립 박수로 그를 보냈다.
‘신(神)은 곧 말씀’이라는 말이 있다. 신의 언어는 시(詩)일까 산문일까.
정보기술(IT)·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빌 게이츠 MS 회장의 퇴임식은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 방식으로 진행됐다. 8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와 질의응답, 마무리 발언이 있었다. 오전 9시 시작된 행사는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의 마무리 발언(concluding remarks)은 2분21초였다.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게이츠는 자신의 MS 인생 30년을 담아냈다.
빌 게이츠의 연설들은 외국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IT업계 흐름이나 MS 제품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는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쏟아내곤 한다. 구어체라 당연히 문법에 맞지 않는다.
이번에 그는 기회(opportunity)·변화(change)를 화두로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경고했다.
9시20분 연단에 선 게이츠는 IBM과 MS 간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을 회고하고, 오늘날의 치열한 경쟁 상황에 대해 말했다. ‘앞으로도 소프트웨어 분야에 MS가 집중하는 게 절실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말했다. “우리에겐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We have so many opportunities to surprise people.)”
게이츠는 ‘위기와 단결’의 함수 관계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에도, 어떤 면에선 말이죠, 바로 그런 때가 우리를 단결시키는 때입니다.(Even the times that were the toughest, in some ways, those are the ones that bond you the most.)”
재능 있는 사람이나 노력하는 사람도 재미 때문에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흥겹고 신나게 일할 때 위대한 일이 가능하다. 빌 게이츠도 이 진리를 확인했다. “여러분 덕에 너무나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하루하루 우리 회사와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위대한 일에 대해 생각할 것입니다.(You’ve made it so much fun for me. There won’t be a day when I’m not thinking about Microsoft and the great thing that it’s doing.)”
감사하는 마음은 또 다른 감사하는 마음을 낳으며 전염된다. 빌 게이츠의 뒤를 이을 스티브 발머는 환송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빌에게 어떻게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진짜 엄청난 기회를 줬습니다. 빌은 우리 회사의 창업자입니다. 빌은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빌에게 마치 자식과 같습니다.(There’s no way to say thanks to Bill. We’ve been given an enormous, enormous opportunity. Bill’s the founder. Bill’s the leader. This is Bill’s baby.)”
빌 게이츠가 발언을 끝내자 CEO인 스티브 발머는 게이츠와 관련된 각종 사진과 자료가 담긴 스크랩북을 증정했다. 둘은 흘러내리는 눈물과 싸웠고 사원들은 환호했다. 그 순간 게이츠와 MS 사원 간에 가장 밀도 높은 소통이 이뤄졌을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신(神) 빌 게이츠의 ‘말씀’은 눈물이었다.
‘IT 거인’ 빌 게이츠가 걸어온 길 |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스티브 발머는 27일 빌 게이츠의 퇴임 행사에서 “우리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IBM)와 정면으로 맞서 승리했다”고 언급했다. 세계 경영사에서 MS와 IBM의 경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된다. 1970년 중반에 창업한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컴퓨터업계의 공룡인 IBM보다 더 돈 잘 버는 회사가 된 것은 드라마틱한 사건이다. 지난해 MS는 140억 달러, IBM은 104억 달러의 순익을 기록했다. 신화의 원동력은 빌의 유연한 사고와 비즈니스 마인드였다.
빌의 경영을 분석한 작가 로버트 헬러는 “빌은 천재 기술자라기보다는 천재 사업가로 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가 토머스 에디슨처럼 발명을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주위에 널린 지식과 기술을 조합해 사업화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세계를 바꿨다. 그래서 천재 사업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내린 하나 하나의 결단은 21세기 세계인의 생활에 큰 자취를 남겼다.
제1결단
하버드를 뛰쳐나가다1973년 빌은 1600점 만점의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1590점으로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 미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유명한 변호사였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는 물론 어머니 메리 게이츠도 빌이 변호사의 길을 걷길 원했다. 그러나 이미 중·고교 시절 컴퓨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빌은 부모의 바람을 저버렸다. 75년 1월 빌은 어릴 적 친구인 폴 앨런과 함께 한 전자 잡지에서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에 관한 기사를 읽고 흥분했다. 그는 즉시 이 컴퓨터를 만든 MITS에 전화를 걸어 컴퓨터 언어인 베이직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계기가 돼 그는 하버드를 뛰쳐나와 MITS가 있던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로 날아갔다. 여기서 MS가 태어났다.
제2결단
소프트웨어를 팔다빌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국에서도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는 것이란 인식이 없었다. 그러나 빌은 달랐다. 앞으로 컴퓨터 시장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장악할 것이란 생각을 갖고 IBM에 접근했다. IBM과의 다리는 어머니가 놨다. 빌의 어머니는 IBM 최고 경영자 존 에이커스와 같은 자선단체 회원이었다.
마침내 80년 IBM 관계자들이 빌을 찾아왔다. 그들은 IBM PC에 사용될 운용체계(OS)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OS를 갖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빌의 특기가 잘 드러난다. ‘먼저 팔고 뒤에 만들어라’는 원칙이 빛을 발한다. 그는 IBM과 이야기를 나눈 지 이틀 만에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사가 갖고 있던 Q-DOS를 5만 달러에 샀다. 약간 수정한 뒤 이 프로그램을 MS-DOS로 이름 붙여 IBM에 8만 달러에 납품했다. 빌은 IBM이 이 프로그램을 무기한 사용하는 대신 MS가 다른 회사에도 이 프로그램을 팔 수 있다는 조건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공룡 IBM에 납품한 프로그램을 마다할 회사는 없었다. 95년 발간한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빌은 이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소프트웨어를 줌으로써 전략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그 후 컴퓨터 업계에서 잘 확립된 마케팅 기법이 됐다.”
제3결단
표준을 장악하다빌은 일찌감치 ‘전 세계 모든 책상에 개인용 컴퓨터(PC)를 놓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최대 걸림돌은 프로그램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것이었다. 즉 IBM사가 만든 PC와 DEC사가 만든 PC에는 각기 다른 OS가 사용돼 응용 프로그램도 각기 달랐다. 이로 인한 비용 부담이 만만찮은 것은 물론 이용자들이 여간 불편해하지 않았다. 빌은 IBM을 기반으로 보폭을 넓혀 나갔다. 마침내 세계 PC 운용체계가 MS의 윈도로 통일되자 PC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MS는 독점과 관련해 비난을 받을 때마다 “OS가 표준화된 덕에 이용자들은 호환 문제를 걱정할 필요 없이 저렴한 가격에 PC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반박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제4결단
인터넷 시장에 뛰어들다93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웹 사이트가 생겼고, 곧이어 넷스케이프가 웹브라우저를 내놓았을 때 빌은 인터넷 시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처음에 우리는 인터넷을 사업의 우선 순위에서 5~6번째에 뒀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95년이 되자 빌은 달라졌다. 직원들에게 ‘인터넷의 거대한 파도’라는 이름이 붙은 메일을 보냈다. 이 메일에서 그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인터넷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는 이듬해 11월까지 익스플로러 개발에 14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는 넷스케이프 전체 매출의 7배가 넘는 규모다. 개발인력도 넷스케이프보다 7배 많았다. 물량 공세와 함께 빌은 OS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즉 익스플로러를 윈도 시스템에 공짜로 끼워 팔았다. 반면 자금력이 취약했던 넷스케이프는 초기 무료로 제공했던 웹브라우저를 돈 받고 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문을 닫았다.
제5결단
거대한 자선재단을 설립하다199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의 잇따른 반독점 소송으로 빌은 미국의 전설적 부호였던 존 D 록펠러와 유사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즉 석유 수송망을 장악해 석유 산업을 쥐락펴락했던 록펠러처럼 빌도 PC의 운용체계를 장악해 거대한 독점 사업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때 그는 차원이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록펠러처럼 그도 재단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2000년 그는 자신과 아내 멜린다의 이름을 딴 ‘게이츠 앤드 멜린다’ 재단을 출범했다. 이후 이 재단은 387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거대한 재단으로 성장했다.
회한
“검색시장을 가볍게 여겼다”빌은 인터넷 검색시장을 등한시했다. 오히려 미디어 기능에 주목했다. 그래서 NBC와 공동으로 뉴스방송인 MSNBC를 설립했고, MS의 인터넷 사업부인 MSN도 검색보다는 채팅과 미디어 기능에 주안점을 뒀다. 빌은 인터넷업체의 수익이 검색 부문에서 대부분 나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음이 급해졌다. 구글이 미국 검색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 반면 MSN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구글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MS의 최고 기술자를 잇따라 스카우트했다. 그래서 빌은 일거에 반전하기 위해 얼마 전 야후 인수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