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맛, 전주 콩나물국밥 / 김정길
예로부터 전북 사람들은 음식문화의 본고장답게 어머니 손맛이 우러나는 콩나물국밥을 즐겨 먹었다. 전북은 음식의 맛뿐 아니라 멋과 소리를 함께 즐겼던 풍류의 본향이다. 전북의 음식문화는 온 백성을 위한 문화요, 온 겨레문화나 마찬가지였다. 전주콩나물국밥 맛을 모르면 전주비빔밥 맛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음식 맛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북의 음식문화를 씹어보면 작고 가난하고 가냘픔이 아니라 이 겨레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생각의 어두움을 깨우쳐 줄 수 있는 문화다.
걸쭉한 육자배기 가락과 녹두장군의 <파랑새> 노래, 아삭아삭한 콩나물국밥과 투박한 막걸리 맛에서 전북의 음식문화를 씹으면서 한국다운 것의 본질을 배우게 된다.
최근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이 경향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화제다. 그곳에는 꼭두새벽부터 애쓰는 환경미화원, 밤새 당직한 경찰관, 밤을 하얗게 지새운 근로자, 조기퇴직과 이직 등으로 동료들과 작별하면서 눈물로 콩나물국밥을 말아먹었던 온갖 애환이 서려있다.
2021년 4월 28일부터 2일간 전주에서 열린 제21회 수필의 날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수필가들이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을 먹고 탄성을 자아냈다. 아삭아삭한 콩나물과 오징어와 파가 들어있는 시원하고 칼칼한 이 맛이 바로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이구동성이었다.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고 다시마, 무, 황태포 등으로 밤새 우린 국물과 멸치 육수를 반반 섞어서 만든 육수가 입맛을 돋우기 때문이다. 한약재를 넣어 만든 모주를 곁들여 먹으면 숙취로 아린 속이 확 풀리게 된다.
전주에는 일찍이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한 삼백집, 전국 최대 체인망을 가진 현대옥, 민초들의 숙취를 확 풀어주는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집이 유명했다. 요즘은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이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 집이 번창하는 이유는 명절에도 손님을 위해서 새벽부터 불을 켜고 육수를 팔팔 끊이기 때문이다. 간판도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끊고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내걸었다.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에는 네 가지가 없는 게 특징이다. 예컨대 가맹점이 없고, 배달이 없고, 종업원들이 절대 손님 옆에 앉지 않고, 콩나물국밥과 궁합이 맞는 모주와 막걸리를 제외한 주류는 절대 팔지 않는다. 여사장에게는 그 흔한 명함도 없다.
옛 영화를 잃고 전주의 변방으로 밀려난 경원동 동문사거리에 1989년 ‘왱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 뒤부터 적막강산으로 변해있던 동문사거리가 황금의 상권으로 변했다. ‘왱이’라는 유래도 특이하다. 선산에 성묘를 갔다가 만난 벌집에서 왱왱거리는 소리에 착안했다고 한다. 벌떼처럼 손님들이 많이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은 남부시장 토렴식 국밥의 지존인 현대옥 방식을 벤치마킹해서 대박이 났다. 26명의 종업원들의 다른 업소보다 급여 수준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주 왱이집 종업원들은 10년 이상 근무하는 베테랑들이다. 주인 정신으로 무장한 종업원들이 손님을 명랑하고 친절하게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업 성공은 물론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집의 손님들은 콩나물국밥이 나오는 동안 구수한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다. 콩나물 값 아껴서 자녀들을 가르친 부모님 이야기, 먼지가 자욱한 신작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던 콩나물시루 같던 통학버스에 얽힌 이야기, 고향 집 콩 시루에 물을 주던 추억거리, 콩서리했던 철부지 이야기, 콩나물 심부름 등 콩나물에 얽힌 아련한 추억들이 깃든 이야기 등 다양하다.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은 투박스럽고 얼른 보기엔 남부시장 아낙이나 시골집 어머니처럼 촌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머니 손맛이 깃든 전주콩나물국밥은 곱씹을수록 숭늉처럼 구수하고, 구성지고 걸쭉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김정길] 수필가. 산악인. 2003년 수필과비평 등단.
전북문인협회 수석부회장, 영호남수필 전북회장, 전북예총 전문자문위원, 행촌수필 회장 역임
* 《어머니 가슴앓이》외 4권, 교양도서《천년의 숨결》외 10권
* 대한민국 국민포장, 전북문학상 외 다수
콩의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생각해 봅니다. 저도 콩나물 예찬론자예요. 콩나물국밥 사랑도 자별나죠.
콩 농사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들은풍월로 콩은 거친 땅에서도 적응력과 생육이 왕성하다고 합니다. 깜깜한 시루 속에서 검은 천을 쓰고 앉아 고독의 시간을 소요해야 하죠. 수없는 소나기 세례를 감내해야 황금빛 음률의 새싹 날개를 피워내잖아요. 그의 변신, 콩의 꽃 콩나물, 콩나물국밥.
김정길 수필가님은 전문산악인으로 ‘모악산 지킴이’ 수장이고요, 전북의 문인 중 아마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듯해요. 두루 관장하는 일이 많은 가운데, 발간한 책도 놀랍네요. 전북사랑, 수필사랑은 더할 나위 없지요. 주말에는 천변을 좀 걷고 나서 콩나물국밥을~~
첫댓글
정말 클릭하니까 예쁜꽃이 커지네요.^^
클맄하시면 사진 커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콩나물 시루를 앉혀놓고 때맞춰 물을 주어 기르던, 그리고 시루 밑으로 떨어지던 물소리가 아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