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범(동작구 사당2동 주민자치회장, 변호사)
** 이 글은 동대문구 마을자치센터에서 발행한 마을자치저널 2021. 5. 20.자에 실린 필자의 원고를 제목과 내용의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지난 해 말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지방자치법은 32년만의 전부개정이라 그 내용과 폭도 컸고, 기대도 많았지만 아쉽게도 주민자치회 조항이 여야 합의로 전부 삭제되었습니다.
이에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민자치회 위원들뿐만 아니라 주민자치 활동을 지원하는 지원단, 지방자치학회 등 전문가집단, 다양한 형태의 마을 활동가들이 문제점을 심각하게 느끼고 즉각 주민자치회 조항 복구 및 주민자치활성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 서명운동을 개시하였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고 광범위한 서명운동을 통해 전국의 주민들이 주민자치회에 대한 열망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인식한 국회의원들은 즉시 재개정안 및 주민자치회 개별법에 대한 발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필자는 주민자치회 일원으로서 주민자치 활동 경험에 비추어 이번 사태의 의미와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작은 의견을 보태려 합니다. 다만, 이 글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활동에서 나타난 주민들의 생각 및 필자의 생각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으로서 다분히 주관적인 것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동대문구 마을자치센터에서 발행한 마을자치저널 2021. 5. 20.자에 실린 필자의 원고를 제목과 내용의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임을 밝힙니다.
2. 현행 주민자치회의 근거와 의의 및 활동 현황
현행 주민자치회의 근거는 헌법 제1조(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지방자치를 규정한 제117조, 제118조에 있으며, 개별법으로는「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고 합니다)」제27조 ~ 제29조에 있습니다.
주민자치회는 위 특별법 제27조(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하여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에서 알 수 있듯이,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하여 읍면동에 설치되고 주민을 대표하여 주민자치와 민관협력에 관한 사항을 수행하는 조직을 말합니다.
즉, 주민이 주인이 되어 마을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스스로 실행하고 필요하면 관과 협력하는 민관협치기구입니다.
주민자치회는 각 읍․면․동에 살고(거주민) 있거나 일하고(생활주민) 있는 주민들이 하는 것으로, 주민들은 정치사회적으로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주관심리적으로는 마을에서 행복하고 보람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들 생각이 다양하므로 취미나 선호도별로 분과를 만들고 분과별로 관심사에 대하여 논의하고 의제를 정리하여 주민총회의 승인(의결)을 받으면 함께 실행하는 것이며, 주민총회는 주민자치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입니다.
의제를 실행할 때도 가급적 많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므로 따라서 대의제의 단점을 보완하며,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주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또한 주민자치회는 자발성이 생명이므로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공무원조직이나 효율성을 중시하는 회사조직과 달라서‘어머니 품’과 같은 따뜻한 분위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어머니 품과 같은 자세가 갖고 ‘차이를 인정하고 내용이 풍부한 하나’로 나아가려 할 때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의 잠재력과 참여 열망이 활짝 꽃피우는 것 같습니다.
3. 주민자치회 조항 삭제 이유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주민자치회 조항이 삭제된 이유가 주로 ①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와 차별성이 분명하지가 않고, ②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가.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위원회와 법적 근거와 역할, 권한이 매우 다릅니다.
① 근거와 목적
주민자치위원회는‘자치회관 설치 및 운영 조례’에 따라 “주민편의 및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주민자치기능을 강화하여 동에 두는 자치회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주민자치회는‘주민자치회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하여 동에 두는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② 구성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원은 동장이 추천하여 구청장이 위촉하는데 반해, 주민자치회의 위원은 일정시간의 주민자치 소양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구성인원을 초과하면 공개추첨을 통하여 구청장이 위촉합니다.
③ 권한
주민자치위원회는 자치회관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거나 결정하는 것에 반해, 주민자치회는 자치계획을 세우고 이를 자체적으로 이행하거나 주민자치회의 자율적인 조직과 운영을 위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④ 소결
이처럼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들의 편의 및 복리증진을 위하여 설치되는 자치회관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결정하는 것으로서 동장이 추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며, 주민자치회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하여 일정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공개추첨을 통해서 선정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마을의 자치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거, 구성, 역할이 매우 다릅니다.
즉, 주민자치위원회가 동장의 자문역할이 강한 자문기구라면, 주민자치회는 동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공동의 문제를 찾고 토론하고 함께 실행함으로써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자치기구라 할 수 있습니다.
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는 기우 또는 과장입니다.
이는 특별법과 제29조에서 보듯이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으며, 공직선거법 제60조(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 제86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 및 제255조(부정선거운동죄)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격히 선거관여가 금지되는 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는 터무니없는 기우 또는 과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다. 소결
따라서 주민자치회 조항을 삭제한 이유는 모두 부당합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하여 대의제를 표방하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인식부족 혹은 풀뿌리 주권자인 주민들의 잠재력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4.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와 주민자치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단체자치는 능률적인 행정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서의 지방자치가 강조되고, 주민자치는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이 강조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 지방자치법이 처음으로 제정되었는데 도지사와 서울시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시․읍․면장은 지방의회에서 선출하며, 동장과 이장은 주민이 직접 선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후 1958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시․읍․면장과 동,이장을 임명제로 바뀌었고, 1960년 제2공화국하에서는 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 시․읍․면장과 동,이장을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5.16쿠데타로 모든 단체장을 임명제로 바꾸고, 지방의회도 폐지하였으며, 1972년 유신헌법에는 부칙으로“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후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부칙에서는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구성하되, 그 구성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였으나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제6공화국 헌법에서 위 부칙조항이 삭제되고, 1988년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됨으로써 1991년에는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1995년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선출됨으로써 일단 단체자치의 형식은 갖추어졌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민자치는 2013년에 특별법에 의해 시범사업으로 31개 읍면동에서 실시하였고, 2020년 전국 626개 읍면동에서 실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 주민참여의 열기와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주민들의 창의성에 기초한 성과들이 나오게 되었으며, 바야흐로 주민자치회 꽃이 피기 시작할 즈음에 주민자치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물론 지방자치법에 규정하지 않더라도 특별법에 근거규정이 있기 때문에 당장 주민자치회 활동이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법은 한시적 성격이 강합니다. 또한 위 특별법에 의해 주민자치는 행정안전부장관이 시범적으로 설치․운영할 수 있기에 더욱 더 안정적인 시행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따라서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법 속에 규정되어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주민자치회의 활동을 담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민자치가 지방자치와 동떨어진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단체자치와 버금가는 지방자치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지방자치법에 주민자치회 조항을 복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 주민자치회 활동은 법적 근거가 없어도 가능한지 여부
주민자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주민에게 일부 주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원래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주권의 일부를 대표자에게 위임한 것을 주민들이 다시 돌려받는 것이라는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하듯이 인간은 단순히 군집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을 둘러싼 환경과 자원,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분배하면서 살아온 것이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사회적 본성을 갖고 있으며 이는 자발성과 협동 및 연대의 본성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만물의 영장으로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주민들은 주민자치회 조항이 없더라도 마을에서 자발적으로 협동하고 연대하며 공동관심사를 다양한 형태의 집단 활동을 통해 해결하여 왔다고 할 것입니다.
즉, 주민자치회 조항과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어왔으며, 이는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법제화의 의미와 입법을 위한 노력
주민자치회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주민자치는 훨씬 넓고 빠르게 발전하고 확대될 것입니다. 즉, 합법성을 가지게 되면 확장성과 지속성이 담보될 것입니다.
아울러 마을에서 공식적 대표자격을 갖게 되면 여러 단체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고, 연대를 통하여 마을 공동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마을의 발전과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국회에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을 다시 넣자는 지방자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이 3개(한병도안, 김영배안 및 이해식안), 그리고 주민자치회에 관한 개별 법률안이 4개(김영배안, 이명수안, 김두관안, 김철민안)가 입법발의된 상태입니다.
우선은 지방자치법에 주민자치회 조항을 다시 넣는 것이 시급하고 나아가 4개 개별법의 장단점을 검토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현실타당한 입법의 조율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입법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도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개정하거나 제정함으로써 주민자치회의 실시 및 운영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 나가며
주민자치회 활동을 하면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마을이 잘 살면 나라가 잘 살고, 마을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입법여부와 관계없이 각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 활동을 끊임없이 해나가되, 지방자치법에 주민자치회 조항 복구 및 바람직한 주민자치 활성화 개별법의 입법을 위해 전국의 주민들과 주민자치회 위원 및 활동가, 전문가, 학자, 정치인들이 힘을 합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