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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까지 바라보는 신앙
2025년 3월 23일 / 창 13:14-17, 벧후 1:1-9
▶ 창 13:14-17과 벧후 1:1-9을 연결하니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창세기 13:5-13에서는 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갈라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이 나온다.
롯도 아브람처럼 양 떼와 소 떼뿐만 아니라 그의 식솔들 그리고 여러 종들이 딸려 있었다. 이렇게 가축 떼가 많이 늘어나게 되자 아브람과 롯은 함께 가축을 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넉넉한 목초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아브람의 가축 떼를 치던 목자들과 롯의 가축 떼를 치던 목자들이 싸우기도 하였다. 또한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니 땅이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브람이 롯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서로 한 핏줄이 아니냐? 그러니 네 가축 떼를 치는 목자들과 내 가축 떼를 치는 목자들이 서로 싸워서야 되겠느냐? 그러니 우리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 아무 쪽이든 네가 원하는 곳을 골라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고 또 네가 오른쪽으로 간다면 내가 왼쪽으로 가마.’ 롯이 둘러보니 소알까지 펼쳐져 있는 요단 들녘에는 물이 매우 넉넉하였다. 이때는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이었기 때문에 요단 들녘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매우 기름져 보였고 또 애굽 땅과같이 비옥해 보였다. 11) 그래서 롯은 이러한 요단 들녘에 마음이 끌려 요단 들녘을 차지하기로 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다. 아브람과 롯은 이렇게 해서 헤어져 살게 되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그냥 머물러 살았으나 롯은 요단 들녘에 있는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다가 소돔 가까이에 자리잡게 되었다. 13) 그런데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습게 알 정도로 못된 짓만을 일삼았다.
▶ 창세기 13:14-18에서는 아브람과 롯이 서로 헤어져 살게 된 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신 말씀과 이에 순종한 아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브람과 롯이 서로 헤어져 살게 된 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다. ‘아브람아,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찬찬히 둘러보아라. 15) 네가 지금 둘러보고 있는 땅을 내가 모두 너와 너희 후손에게 주겠다. 앞으로 영원토록 이 땅이 너희의 차지가 될 것이다. 16) 또 내가 네 후손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하겠다. 땅의 티끌만큼이나 많게 할 것이다. 사람이 땅의 티끌을 모두 셀 수 있다면 네 후손이 얼마나 되는지도 셀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엄청나게 불어나게 하겠다. 17) 그리고 온 땅을 사방으로 왔다 갔다 해보아라. 내가 그 땅을 모두 네게 주겠다.’ 18) 그리하여 아브람은 식솔들을 이끌고 치고 살았던 천막을 거두어 가지고 헤브론에 있는 상수리나무 숲 부근으로 옮겨 자리잡았다 그 상수리나무 숲은 마므레라고 부르는 숲이었다. 아브람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도 베드로는 핍박 가운데 있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의 지킬 덕목들을 갖추고 경건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벧후 1:1-9 / [인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시몬 베드로가 같은 믿음을 가진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믿음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또한 그러한 같은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갖게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의롭고 선하신 분이신지요!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더욱더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배우십시오. 3)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4) 그리고 그같은 권능으로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내려 주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욕과 부패에서 해방되어 그분의 품성을 나누어 받게 된 것입니다. 5) 그러나 이런 은사를 받아 간직하려면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6) 더 나아가 여러분은 욕망을 버리고 인내와 경건을 몸에 익히며 기쁨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7)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즐겁게 사귈 수 있고 친밀해지며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9) 믿음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더 이상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장님이든지 심한 근시안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해 강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죄에 물든 옛 생활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편지하노니(1-2) 베드로전서에서는 과거 철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자신도 성령님의 이끌리심을 받은 후 이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하였다(벧전 1:1).
그런데 베드로후서에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라고 하였다. 편지를 받은 이들을 위한 사랑과 권위의 표현이다. 이 편지를 받는 대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고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키고 있는 성도들이다(벧전 1:1; 벧후 3:1).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사도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다. 베드로는 그들이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알게 되었으니,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더욱 풍성해지기를 축복하였다.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3-4)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신 뜻은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닮았다. 또한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간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성도들의 생활에서 드러나는 것이 경건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사람의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정욕을 이기고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다(슥 4:6; 행 1:8).
더욱 힘써 더하라(5-9) 베드로는 경건 생활의 발전 과정에서 성도가 배우고, 갖추어야 할 여덟 가지 덕목을 단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힘써 더하라고 하였다. 이런 덕목들이 갖추어지면 게으르게 되거나 열매를 못 맺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없는 자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며, 과거에 지은 죄가 깨끗해졌다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경건한 생활을 위하여 여덟 가지 덕목을 지니고 있는가? 나 자신을 점검해 보고, 서로 나누고, 주님께 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믿음은 하나님께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결정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믿음은 보배로운 것이다. 나와 우리 모두를 살리는 영원한 생명이 된다.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 앞에서 당신이 겪는 자그마한 불편 때문에 믿음을 소홀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그 성장은 베드로 사도처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이루어진다. 어린아이의 신앙을 넘어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베드로 사도처럼 성장하여야 한다.
1. 짧은 생각을 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 고(故) 김홍도 목사님이 설교에서 하신 말씀이다.
지난번에 애리조나의 미국인 교회 집회를 인도했는데 그 도시는 라스베이거스처럼 도박의 도시이기 때문에 도박을 전문으로 하는 큰 호텔에 머물면서 집회를 인도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호텔 정문에 서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니 들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돈을 딸 거라는 기대감으로 얼굴에 생기가 넘치고 활발해 보이지만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둡고 어깨가 축 늘어지고 근심에 싸인 얼굴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돈을 다 잃었기 때문입니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들어갔지만, 있던 돈을 다 잃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음식을 시켜놓고는 한숨만 푹푹 쉬다가 밥도 못 먹고 음식을 쓰레기통에 쓸어 넣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당장 눈앞에 돈이 쏟아질 것만 생각했지 돈을 잃은 다음에 오는 경제적인 타격과 좌절감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도박에 빠져들고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마카오에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돈을 다 잃고 나면 반지나 시계를 팔고 다음에는 여권을 맡기고 돈 빌리고 그래도 또 잃으면 마누라를 인질로 맡기고 그래도 잃으면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사람이 해마다 몇 명씩 있다는 것이다. 1,000불 잃고 100불 땄으면 후에 1,000불 잃은 것은 생각 안 나고 100불 딴 것 생각이 나서 자꾸 하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고 가정이 파탄되고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도박장에 드나드는 사람은 무서운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이다. 투전, 도박은 아예 손을 대면 안 되고 생각도 하면 안 된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에 ‘악은 그 모양도 버리라’라고 했다.
도박뿐 아니라 모든 일에 그 결과를 내다볼 줄 알아야 지혜로운 사람이다. 눈앞의 것만 생각지 말고 그 다음에 오는 결과를 생각하는 원시안을 가져야 지혜 있는 사람이다. 베드로후서 1장 9절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었느니라’라고 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소경이라고 했다.
말을 해도 그 말의 결과가 어떨까를 생각해 보고 말을 해야지 감정, 기분대로 툭툭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의 나쁜 결과를 거두어들여야 하는 때가 온다. 영어에 ‘생각해 보고 말하라’는 뜻의 ‘thinking cap’을 쓰라는 말은 ‘생각하는 모자’를 쓰라는 뜻이다. 그 말의 결과를 생각하는 사람, 지혜 있는 사람이다.
■ 오늘 밤의 일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눅 12:13-21)
눅 12:13-21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말하였다. ‘선생님, 제 형더러 제 몫의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예수께서 ‘누가 나를 그런 것이나 판결해 주는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참 생명과 참삶은 우리가 얼마나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16) 그러고 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기름진 농토를 가지고 있었는데 풍년이 들었다. 17) 그래서 곳간을 가득 채우고도 곡식이 남아 더 넣어 둘 데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18) 속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야겠군. 그러면 충분히 쌓아둘 수 있겠지.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물건을 몇 해 동안 쓰고도 남을 만큼 쌓아 두었다. 이제는 편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아가리라. 그러고 나면 네가 모은 재산이 다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21) 그렇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지 않고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다.’
■ 으뜸이 되고자 하거든 종이 되라(마 20:28, 막 10:35-45)
하나님은 높아지는 것 자체를 부인하시지 않았다. 마가복음 10장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 아들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주십시오’라고 할 때 다른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화를 내고 미워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높아지려는 욕망 자체를 틀렸다고 하시지 않으시고 ‘그렇다면 십자가의 쓴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고, 10장 44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23장 12절에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고 하셨다. 높아지는 그것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남을 섬기고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정말 높아지려면 멀리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신앙생활도 널뛰는 것과 같다. 자기가 내려오면서 상대편을 힘껏 높여주면 그 사람이 또 내려오면서 힘껏 자기를 높여준다. 잠언 29:23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라고 하였다. 높아지는 것이 틀렸다고 하시지 않았고 영원히 낮아지라고도 하시지 않았다. 그 대신 높아지려면 남을 섬기고 자기를 낮추라고 하였다. 당장 높아지고 세도 부리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섬기고 낮추라고 하셨다.
2. 멀리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에 가서 숲속에서 앞만 보면 나무만 보인다. 그러나 위에 올라가 멀리 보면 다 보인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보면 모두가 다 보인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에 올라가 보았다. 에펠탑은 당시 세계에서 제일 높은 탑이었다. 할아버지가 설계만 하였고, 아버지가 평생 에펠탑을 건설하였다. 손자가 돈을 벌기 시작한 유명한 탑이다. 올라가기 전에 에펠탑을 보면 탑의 일부만 보였다. 그러나 올라가서 보니 파리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파리 어느 곳에서든지 에펠탑이 보였다. 에펠탑을 만들어 놓았을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여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에펠이 탑 꼭대기에서 아예 살았다.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다. 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멀리 보면 다 보인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리고 한번도 가보지 아니한 땅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4-17)
이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멀리 동서남북을 바라보았고 후일 그 땅은 아브라함의 땅이 되었다.
➊ 공간적으로 멀리 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 여기저기 멀리 보라고 하셨다. 멀리 보는 이가 다 볼 수 있다. 배를 타고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까이에 요동치는 물만 보기 때문이다. 멀리 산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멀미하지 않는다.
➋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당사자는 잘 보지 못하는 것을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은 정확하게 볼 줄 알게 된다. 멀리에서 보기 때문이다.
➌ 시간상으로 멀리 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으로 바라보는 땅을 다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정작 아브라함에게 주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430년 후에 주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다. 야곱의 식구가 70명 되었다. 애굽으로 들어갔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가나안 땅에는 가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굽은 풍년으로 양식이 많았기에 양식 따라 애굽에 들어가서 금방 나온다고 하는 것이 430년을 살았다. 200만 명이 되었다. 가정이 들어갔다가 민족이 나왔다.
모든 면에서 멀리 내다본 요셉(창 45:4-11) /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형님들! 이리 좀 가까이들 오시지요.’ 형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잘 보세요. 형들이 애굽에 팔아넘긴 바로 그 요셉이란 말이에요. 5) 형들이 나를 애굽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신 거지요. 우리 식구들 생명을 구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미리 애굽으로 보내신 것 아닙니까? 6) 이 땅에 기근이 든 지 올해로 2년째입니다. 앞으로도 5년은 더 기근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씨 뿌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더구나 추수하는 것도 아예 바라지도 못할 것입니다. 7) 하나님께서는 형님들과 또 형님들의 아이들까지 목숨을 구하시려고 나를 미리 이곳 애굽으로 보내셨지요.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나를 보내신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을 내리신 것인가요? 8) 나를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밑에서 일하는 애굽의 총리로 삼으셨지요. 그래서 나는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내 명령에 따라 움직입니다. 9) 형님들! 이제 어서 서둘러 고향에 계신 아버님께 말씀을 전해 주시지요. 아버님의 아들 요셉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삼으셨으니 지체하지 마시고 이리로 올라오십시오. 10) 아버님께서는 고센 땅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그곳은 제가 있는 곳과 가까운 곳입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자식들과 손자들 또 양떼, 소떼 등 가지고 계신 모든 재산을 이끌고 이리로 오셔서 사세요. 11) 아버님께서 고센 땅에서 사시면 제가 아버님을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기근이 끝나려면 아직도 5년은 더 있어야 됩니다. 아버님뿐만 아니라 아버님이 거느리고 계신 식솔들이 기근 때문에 굶주릴까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꼭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꿈을 비전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해 나간 행함의 본이 되었다.
■ 하버드 대학 에드워드 밴필드 박사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다. <시간 지평(地平)> 이런 단어를 만들어 냈다. <시간 지평>이라는 말로 사람을 연구하였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가 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는 단 한 가지가 있다. 성공한 사람은 시간 지평이 멀리 보고 장기 계획을 세우고 착실하게 살아간 사람이다. 실패한 사람일수록 시간 지평이 짧았다. 오늘만 본다. 금년만 본다. 길게 보지 못하는 시간 지평이 짧은 사람은 실패하였다.
■ 스탠퍼드 대학 윌터 미셀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다. 4살짜리 아이들을 모아 놓았다. 그리고 입에 대면 살살 녹고 맛있는 마시멜로라는 사탕을 하나씩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탕을 먹지 말고 15분 들고 있으면 한 개씩 더 준다.> 그런데 3분의 1 아이들이 15분을 참지 못하고 사탕을 먹어 버렸다. 자라는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다. 15분 전에 사탕을 먹어 버린 아이들은 자라나면서도 조그만 일에 참지 못하고 자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혈질로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15분을 참고 견딘 아이들은 어려움이 있어도 참아 내며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다. 시간 지평이 길어야 큰 사람이 된다.
■ 세계적으로 투자 전문가 위렌 버핏이 유명하다. 그가 투자하라고 하는 곳에 투자하면 돈을 억수로 벌게 된다. 그래서 그와 식사 한번 하는 데 1억원을 내고 식사하는 이들이 줄을 서 있다. 1억 원을 내고 식사하면서 느긋하게 투자할 곳을 물으면 잘 가르쳐 준다. 그곳에 투자하면 백발백중 성공한다. 위렌 버핏의 투자 성공 방법은 간단하였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이 법칙이다. 멀리 보면서 다 보며 투자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다. 멀리 보면 다 보인다. 나무는 특정 기업의 주식이다. 숲은 세계적인 경제 흐름이다.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에 팔면 돈을 버는 것이다. 살 때와 팔 때를 잘 구별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었다. 저평가 때 주식을 사들여서 고평가 때 팔면 된다. 그러면 저평가는 어느 때인가? 위렌 버핏는 주식 가격의 70-80% 떨어지면 저평가 시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때 집중적으로 매입한다. 그리고 고평가는 어느 때인가? 초조하거나 조급하지 않고 오를 때를 고평가 시점으로 여긴다. 그때 판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3. 하나님께 바치고 이웃에게 베푸는 이치를 실천하라.
성경 어디에도 가난하고 거지처럼 살라고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 이삭도 부자였고 야곱도 부자였다. 성경은 진짜 풍성한 복을 받고 참된 부자가 되는 비결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린 후에 풍성히 받고 주의 이름으로 풍성히 베푼 후에 넘치도록 부어주겠다는 말씀이다.
눅 6:38 /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아까워도 풍성히 하나님께 드리고 주의 이름으로 줄 때 주고 쓸 때 쓰면 하나님께서 꽉꽉 누르고 흔들어 줄줄 넘치게 해서 콱 안겨 주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멀리 내다보는 원시안을 가져야 풍성한 복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복 받기 위해 바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내리실 때 반드시 보상과 축복을 말씀하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 …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했다. 반드시 보상과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 물질도 한 번 죽었다가 부활해야 풍성해지고 안전해진다. 고린도후서 9:6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는 말이로다’라고 연보, 헌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이 말씀하셨다. ‘심는다’라는 것은 땅에 묻혀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도 한 번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고 풍성하게 거둔다는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다.
우유를 화분에 주면 잘 자랄 그것 같지만, 화초가 죽는다. 우유를 썩혀서 주어야 영양이 된다. 죽어야 유익하다. 우유가 몸에 좋고 영양이 많다고 혈관에 직접 주입하면 사람이 죽는다. 위 속에서 죽고 소화가 된 다음에 흡수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물질도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아무리 아까워도 하나님께 드릴 때 드리고 도와야 할 때 도와줘야 한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누르고 흔들어서 안겨주신다. 헤아린 그릇만큼 크게 부어주신다. 간장 종지에 담아드리면 그런 그릇에, 말로 되어 드리면 그런 그릇에,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신다고 하셨다.
옛날에는 짐승이 죽어서 성전으로 들어와야지 산 채로 들어오면 안 되고 채찍으로 내쫓았다. 죽음을 통과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소용이 없다. 물질도 한 번 죽어야 했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100세나 되어서 낳았기 때문에 아들이라기보다 손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 그렇게 귀한 독자를 하나님이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지만 순종했다. 3일 길을 걸어오도록 마음이 변치 않았다. 제단 위에 묶어놓고 칼을 들어 치려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네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라고 하시며 준비하셨던 산양으로 대신 제사 드리게 하고 아들을 장막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가장 깊은 마음의 지성소에 있던 독자를 내보내고 지성소에 하나님이 계셔서 다스리기를 원하셨던 것이지 잔인하게 독자 이삭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물질도 우리 마음의 지성소를 차지하고 있다면 용감하게 죽여야 하나님께서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라고 하시면서 쏟아부어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2: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은 물질에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물질도 하나님 앞에 한 번 죽어야 30배, 60배, 100배로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근시안으로 눈앞의 이해타산만 따지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바라보아라.
■ 네 번째 동방박사 알타반 / 중세 전승에 의하면 세 동방박사 외에 알타반(Artaban)이라는 네 번째 동방박사가 있었다. 비록 역사성이 희박한 전승이지만 그 속에는 신앙적 교훈이 잘 집약되어 있고 실제로 중세에는 이런 삶을 살았던 이들이 많았다. 페르시아의 수도 엑바타나 출신인 알타반은 메시야의 탄생별을 보고 세 박사와 함께 유대로 가기로 약속하였다. 그는 아기 왕에게 바칠 선물로 푸른 사파이어와 붉은 루비와 하얀 진주를 마련하였다. 다른 박사들과 합류할 장소로 가던 중 알타반은 길에서 열병으로 죽어가는 유대인 병자를 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사파이어를 팔아 이 병자를 치료하고 낙타를 사는 데 썼다. 회복된 유대인은 알타반에게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알타반은 세 박사와의 약속 장소에 늦어 일행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늦게 베들레헴에 도착했으나 아기 예수도 동료 박사들도 만날 수 없었다. 바로 그날 헤롯의 병사들이 베들레헴 아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알타반이 머문 집에도 어머니와 어린 아기가 있었는데 로마 장교가 들이닥쳤다. 알타반은 그에게 붉은 루비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를 살려주면 루비는 당신의 것이오.’ 장교는 빛나는 그 보석을 받고 아기를 살려주었고 밖의 부하들에게는 자신이 아이를 처리했다고 말하였다. 알타반은 비극의 베들레헴을 떠나 다시 예수님을 찾으러 나섰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진주뿐이었다. 30년이 지난 어느 해 유월절 알타반은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였다. 그때 이 도시는 예수라는 청년의 처형 문제로 큰 소동이 일고 있었다. 알타반은 순간 그 예수가 바로 자신이 찾던 아기 왕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남은 진주로 그의 목숨을 사기로 맘먹었다. 알타반이 골고다 언덕으로 예수를 찾기 위해 향하던 중 한 소녀가 나타나 눈물을 흘리면서 알타반을 잡았다. 소녀는 아버지의 빚 때문에 노예로 팔릴 처지에서 쫓기고 있었는데, 그녀를 붙잡아갈 흉포한 사내들이 나타났다. 유일한 보물로 예수의 목숨을 구하느냐 아니면 소녀를 구하느냐 사이에서 알타반은 고민하다가 그 진주를 노예 잡이에 주고 소녀를 해방시켜주었다. 얼마 후 알타반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죽음을 멀리서 봐야 했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자, 이 늙은 동방박사는 지붕에서 떨어진 타일을 맞고 쓰러졌다. 피 흘리는 알타반이 숨을 거두는 순간 놀랍게도 하늘의 음성이 이렇게 들려왔다. ‘너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승리하는 삶의 비결 / 16세에 주님을 영접하여 93세까지 80년 가까이 기도한 사람으로, 자기가 낳은 일곱 자녀뿐만 아니라 손자, 증손자들과 수천 명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주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그녀가 남을 비판하거나 불친절한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오직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삶을 의탁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한다. 그녀가 이처럼 놀라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경건 훈련에 있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시간을 정하여 그 시간을 기도와 말씀과 예배의 시간으로 삼았다. 삶의 최우선을 경건의 시간에 두었기 때문에 그는 어떠한 중대사가 일어나도 경건의 시간만은 지키려고 하였다.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거동하기도 불편해졌을 때 자녀들이 모시겠다고 했으나 아직 기도할 수 있고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동안은 혼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이제 93세가 된 연로한 노인이지만 기도하는 일과 말씀 공부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녀는 기도의 명단을 작성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서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도의 열매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신앙의 사람으로 바뀌어졌다고 한다.
히 12:2-3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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