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가, 육체를 괴롭히는것에 의해, 깨달으려고 필사적이었다.
어느 집단의 주변에는 요기마저 서려 있었다.
적(赤), 흑(黑), 회색이 있는 색채가 그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위에 둘러싸고,
김이 오르는 것처럼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황금빛이나, 녹색, 자색 등의 색조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육안으로는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정기(精氣)를 볼 수 없다.
이를테면 제3의 눈,
심안(心眼)을 통해서 그 색채를 똑똑하게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육체에서 나오고 있는 정기의 색채는,
그대로,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노여움, 질투, 욕망, 불평,... 이러한 상념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으면,
적색, 흑색, 회색으로 싸여 있다.
반대로, 자비와 사랑의 마음, 자아 욕망이 적은 사람의 색채는
금색이나 녹색 혹은 자색의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의 상태는, ₍₁₎심안(心眼)이 열린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속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정기(精氣)의 색채는, 그대로 저 세상으로 통해서, 반영된다.
이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
그 색채에 따라, 저 세상의 마왕, 지옥령, ₍₂₎동물령을 끌어들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여러 가지 현상으로 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면 괴벽, 비상식, 질병, 사고 등은
저 세상의 저변의 생물이 작용하는 것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색채가 아름답고, 평안이 깃든 녹색, 황금색(이 세상의 황금색과는 다소 다르다)이 되면,
저 세상의 천사가 그 사람을 이끌어 주기 때문에 안심한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된다.
육체 고행에 몰두하고 있는 사로몬들의 배후에는
마왕이나 동물령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고 있었다.
사로몬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지지 않으려고,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마음의 응어리를 제거할 줄 모르고
그저 고행을 하면 초능력을 갖춘다고 생각하고 있다.
초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정법 실천을 위한 편법이며,
그것이 (수행의) 목적에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로몬들은,
목적과 편법을 잘못 알고 초능력을 갈구하는 자가 많았다.
따라서 그들의 수행장은, 육안으로도 일종의 이상한 광경이 많았으며
심안으로 보면, 동물령이나 잡귀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의 고행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행장의 요기(妖氣)는 그들의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붓다는, 처음 그들 중 하나를 붙들고,
육체고행 중심의 수행은 깨달음으로부터 벗어난 우회의 길이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생각했으나
앞서 길거리에서 만난 사로몬과 마찬가지로
들을 귀를 갖지 못한 자에게, 아무리 이야기하여도 소용없었다.
인연이 없는 자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은 또한, 도를 구하는 자에 대해서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부터 정법을 배워, 이것저것 지식으로 알고 있어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깨달을 수 없다.
정법은, 믿음(信)과 실행(行)과의, 수레의 두 바퀴처럼 믿음이 섰으면 우선 실천해야 한다.
실천하면, 여러 가지 문제에 부닥쳐 의문이 생긴다.
의문은, 실천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풀릴 수 있도록 틀이 짜여 있다.
의문이 풀리면, 이해는 한층 깊어지고 믿는 마음은 넓고, 깊게 되어 간다.
이와 같이 신(信)과 행(行)은 점점 그 폭을 넓혀, 안심의 깨달음에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붓다는, 수행장을 지나면서,
『언젠가는 이곳에 와서, 정도를 설법하리라.』
하고 다짐했다.
라자그리햐의 북문을 나선 붓다는, 날란다의 마을로 향했다.
날란다 마을에는, 매우 이론적인 '사잔'이라고 하는 사로몬이 있어 대개의 사람은 굴복당했다.
붓다는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얼굴을 마주쳐도 논쟁은 피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그런 기회도 없이,
날란다를 빠져나와 일로 북상하자 파다라가마에 도착, 강 하나를 건너면 벳사리의 마을이었다.
벳사리는 그리운 마을이다. 지난 날엔, 곧잘 이 마을에 놀러 왔었다.
거리도, 상점도 옛날과 별로 다름이 없다.
그 거리 속을 걸식을 하면서, 누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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