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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모음집 스크랩 백제실의 `백제금동대향로`
언제나 기쁘게 추천 0 조회 430 08.09.10 21: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을 보고 나서 (6)

 

*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 백제(百濟)는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하나로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마한 50여 개 소국 중의 하나로 출발해 한반도 중부와 남서부를 차지하고 고구려, 신라와 삼국을 이루고 있다가 660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삼국사기'의 건국설화에 의하면, BC 18년에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그의 형 비류와 함께 남하해 위례성(慰禮城:지금의 서울)에 건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백제의 최고 지배층을 형성한 집단 중 일부가 고구려와 관련을 가진 이주민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과 풍납동 일대를 비롯한 한강 하류지역에 산재한 백제 초기의 적석총이 고구려의 발상지인 압록강 중류지역의 무덤양식과 통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국가체가 이들 고구려계 이주민집단의 남하로부터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 중남부지역에는 고조선의 멸망 이후 파상적으로 남하해온 북방 이주민들이 토착주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이미 성장하고 있었다. 온조는 그 이주민집단의 우두머리로 토착세력을 누르고 정치 지배권을 장악해 후대에 백제 왕실에 의해 혈연적이고 관념적인 시조로 인식된 존재일 것이다. 즉 백제는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마한의 한 세력으로 자체 성장하던 정치체가 모체가 되고, 그후 고구려계 이주민 세력이 융합됨으로써 성립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밀양시립박물관 연꽃무늬수막새

 

♧ 백제의 건축과 미술

 

 동성왕 때의 임류각(臨流閣), 의자왕 때의 태자궁(太子宮)과 망해정(望海亭) 등을 비롯해 많은 사찰이 건축된 기록이 있으나 현존하지 않고 익산의 미륵사지를 비롯한 절터와 석탑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부여의 정림사지 5층석탑, 익산의 미륵사지석탑 등이 유명하다. 불교와 관련된 조각품으로 석불과 금동불, 납석제(蠟石製) 불상 등이 현존한다. 고분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일대와 공주와 부여 일원에 많이 있는데,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져 있는 것도 있다.

 

 후기에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전축분(塼築墳)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무령왕릉에서는 양(梁)과의 활발한 교류를 반영하는 국제적으로 세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는 양을 비롯한 중국 남조의 각국과 활발하게 문화를 교류했다. 양나라에는 사신을 보내어 열반(涅槃) 등의 경의(經義)와 모시박사(毛詩博士), 공장(工匠), 화사(畵師)를 청하는 등 문화수용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백제의 사상과 문화는 이웃 왜에 전파되어 그들의 고대문화를 꽃피우는 데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일찍이 한성시대에 아직기나 왕인 등이 왜에 한학과 유교를 전했는데, 특히 왕인은 '천자문'을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오경박사가 교대로 왜국에 파견되었으며 기술자인 봉녀(縫女), 야공(冶工), 양주인(釀酒人)을 비롯해 와박사(瓦博士), 조사공(造寺工) 등의 건축기술자도 파견되었다. 백제문화는 일본 고대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아스카[飛鳥] 문화를 꽃피우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다음 백과에서 뽑음)

 

 

* 국보 제289호 백제 왕궁리 석탑

 

♧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제실
 
 백제는 부여계 이주민들이 한강 유역에 세운 백제국伯濟國이 점차 마한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나라이다. 그 후 도읍을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한강 유역에 도읍한 한성기(기원전 18∼기원후 475년)는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백제 문화의 기틀이 마련된 시기이다. 이러한 특징은 석촌동 무덤과 몽촌토성, 풍납토성 등의 생활 유적에서 확인된다.

 

 웅진기(475∼538년)는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문화 강국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이는 중국 남조와 관련성이 엿보이는 무령왕릉과 그 출토 유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사비기(538∼660년)는 참신한 조형 감각과 세련된 공예 기술이 발달한 백제 문화의 절정기이다. 이 시기에 백제인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된 백제금동대향로가 만들어졌다. 한편, 백제 문화는 일찍부터 왜倭에 전해져 일본의 고대 아스카(飛鳥) 문화가 형성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 목걸이(金製頸飾)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목걸이로, 7개의 금막대가 연결되어 있어 7절 목걸이라고도 한다. 금막대의 양끝에는 둥근 연결고리가 있어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멋이 있다. 무령왕릉에서는 이와 같은 모양의 9절 목걸이도 출토되었다. 이 목걸이는 고구려는 물론 신라나 가야지역에서 볼 수 없는 백제만의 특징을 지닌다.

 

 

♧ 관 꾸미개(金製冠飾)

 

 무령왕비 관의 좌우에 꽂은 꾸미개로 얇은 금판을 뚫어 무늬를 새긴 것이다. 중앙의 꽃병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연꽃잎들이 그 위로는 넝쿨이 펼쳐진 모습이다. '구당서(舊唐書)'의 '(왕은) 검은 천으로 된 관에 금꽃을 장식하고…'라는 기록은 이 관꽂이가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충청남도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되었다. 

 

 

♧ 합(盒)

 

 생활유적에서 주로 출토된다. 이러한 합은 동일한 크기와 형태의 것들이 같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어 사비시기에는 국가의 주도 하에 토기가 대량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굽의 바리와 보주형 꼭지가 달린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궁 터로 추정되는 충청남도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되었다.

 

 

♧ 금동관(金銅冠)

 

 전라남도 나주 신촌리의 독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내관과 외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관은 3개의 세움 장식이 있으며 내관인 관모는 반원모양의 금동판 2장을 맞붙여 만들었다. 금동신발이나 장식대도 등 함께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이 금동관의 주인은 이 지역 최고의 지배자로 짐작된다. 특히 관모는 익산 입점리와 일본 에다후나야마고분[江田船山古墳]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된 바 있어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살필 수 있다.

 

 

♧ 산수봉황무늬벽돌(山景鳳凰文塼)

 

 건물이나 회랑의 바닥에 깔았던 것이다. 아래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그 뒤쪽으로 세 개의 봉우리[三山]가 연속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좌우로 기암절벽이 있다. 가운데의 산봉우리 위에는 큰 봉황이 비상하려는 듯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상서로운 구름들이 떠돌고 있다.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三神山), 봉황, 상서로운 구름 등에서 백제인의 도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충청남도 부여 외리에서 출토되었다.

 

 

♧ 초두(액체를 데우는 그릇)
 
 몸체와 3개의 다리,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접합한 것이다. 다리는 끝 부분이 말발굽 모양이며 밖으로 휘어져 있어 안정감을 더해준다. 손잡이 끝에는 용머리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그릇은 한성 도읍기에 중국 청자와 함께 들여온 것으로, 백제의 대외교류를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서울 풍납토성에서 출토되었다.

 

 

♧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악취를 제거하고 부정을 없애기 위해 향을 피우던 도구이다. 아래에는 다리 하나를 치켜들고 있는 한 마리의 용이 갓 피어나려는 연꽃봉오리를 입으로 받치고 있고 그 위에 신선들이 사는 박산(博山)이 있다. 박산의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모습이다. 연기는 봉황의 가슴과 뚜껑에 뚫려 있는 12개의 구멍으로 피어오르도록 고안되어 있다. 국보 제287호로, 충청남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 연꽃무늬수막새(蓮花文圓瓦當)

 

 백제의 왕궁이나 사찰 등 주요한 건물의 지붕을 장식한 수막새이다. 7개의 넓은 연꽃잎이 표현된 전형적인 백제 기와이다. 연꽃무늬가 중심 무늬인 백제의 기와 양식은 웅진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사비기에 완성되었다. 백제 연꽃무늬 기와는 꽃잎의 볼륨이 낮고 곡선적이다. 충청남도 부여 부소산 절터에서 출토되었다. 
 

 

♧ 고리자루칼(環頭大刀)

 

 손잡이 끝에 은으로 장식된 둥근고리가 달린 장식 칼이다. 백제의 고리자루칼에는 둥근고리 안에 용이나 봉황이 장식된 칼도 있다. 무령왕릉에서도 용이 장식된 칼이 출토된 바 있어 고리자루칼은 왕이나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만든 위세품일 가능성이 높다. 천안 화성리 나무널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노란 사진 외의 사진과 글은 박물관 홈에서 뽑았음)

 

 

*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

 

명상음악 - 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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