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2.1.23.) 말씀/ 삼하 18-19
질문하는 그리스도인
19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그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대답하십니다.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지난 주에 질문의 7가지 힘이라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세계적 동기부여 강사이자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저자가 쓴 책입니다. 이분은 질문의 일곱 가지 힘에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①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② 질문은 생각을 자극한다 ③ 질문은 정보를 가져다준다 ④ 질문을 하면 통제가 된다 ⑤ 질문은 마음을 열게 한다 ⑥ 질문은 귀를 기울이게 한다 ⑦ 질문은 스스로를 설득시킨다 한마디로 “질문의 힘을 잘 활용하면 삶이 변하고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만있으면 밥도 죽도 나오지 않지만 질문을 잘 하면 밥도 나올 뿐 아니라 빵도 나오고 다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라라 윌터스(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 아트 링크, 래리킹 이런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잘 해서 이야기하게 만드는 재주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이명남 집사님 전국 초우수 기자상을 받았는데 기자도 질문을 잘 해야 좋은 기사거리를 만들지 않습니까? 책의 결론은 이겁니다. “훌륭한 질문은 우리를 근사한 곳으로 안내한다” 그러므로 만족스러운 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을 계속 하라“ 그러면 답을 얻고 뜻밖의 놀라운 결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질문을 잘하면 변화되고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아멘
어느 날 저자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작가가 여자분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다지 자상하지 않은 의사에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졌지만 유방 절제술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포기치 않고 다른 의사들을 찾아가 계속 묻고 질문을 거듭했습니다. 결과 당시 새로운 치료법을 알게 됐고, 완치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질문이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저자는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 대부분이 질문의 결과였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말기 암 선교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가정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건강을 유지하기 힘든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치료를 받으면서 계속 연습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든 희망을 포기 했지만 그는 계속 운동을 했고, 1999년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지 3년 후에 국제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였습니다. 질문에 대해 우리가 유의할 한 가지는 부정적인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렇게 못 생겼을까? 왜 나는 이렇게 운이 나쁠까? 왜 나는 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을까? 이런 질문은 답이 없고 더 코너에 몰린다는 것입니다. 질문은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운명적 가정에서 태어났을지라도, 또 심각한 병에 걸렸지만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열심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질문은 발명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1943년 에드윈 렌드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며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딸은 어서 빨리 사진을 보고싶어서 조바심을 치며 물었습니다. 아빠 왜 사진을 바로 볼 수 없는거야? 결과 딸의 질문으로 에드윈 랜드는 폴로라이드 즉석 랜드 카메라를 발명했습니다. 그 후 20년 아서프라이는 성가대원들이 찬송가에 표시를 해두는 종이 조각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책갈피에 종이를 붙여두었다가 찢어내지 않고 다른 페이지에 다시 붙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서프라이는 포스트윗 메모지를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게도 합니다. 뉴톤이 박사학위 과정을 들어가려고 할 때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습니다. 지역의 모든 대학이 문을 닫았고 성인이 된 그는 아무것도 못 하고 낙담하며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몸과 마음은 이미 청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이였을 때와 똑같이 사과나무 아래 주저앉아 푸념하는 것 말고는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내 인생은 출생부터 지금까지 모두 변변치 못하네.'' 그때 사과 한 개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청년은 생각했습니다. '왜 사과는 옆으로 안 떨어지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이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인류 과학사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 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 인류의 문명 발전들이 질문 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모든 발명이나 발견 혹은 이론은 질문이 사고를 자극한 결과물 이었습니다. “우리도 새처럼 날 수는 없을까?”, 비행기가 발명되었습니다. “왜 사는가?” 많은 철학이 생겨나고 종교가 생겼습니다. “좀 더 편하게 살 수는 없을까?” 자동차,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등 문명의 이기들이 탄생 되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하고 질문을 던진 인간은 분명을 창조하고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질문이 없이 본능으로 사는 짐승들은 어제니 오늘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카테고리 속에서 인간에게 종속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역시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질문이 없었다면 오늘날 문명의 발전은 없었을 것입니다. 원시인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처럼 누구나 질문의 혜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아브라함 모세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역시나 하나님 앞에 질문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시떨기 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시자 그 때 무세가 질문을 하였습니댜. “그런데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을 텐데 뭐라고 대답하리이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면서 하나님이 누군지 모른다면 안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I am who I am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만드신 분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처음부터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질문에서 이 하나님 근본 존재에 대한 답이 나왔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잘 합니다. “하나님 누가 만들었어?” “글세 아빠도 잘 몰라”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임을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 연단받은 욥에대한 이야기를 잘 압니다. 욥은 의롭고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시험을 받아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시련 중에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걸 알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나의 문제이고 죄인가? 그 질문은 따지는 듯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다분히 들어있는 질문입니다. 욥기는 욥의 잘 잘못을 말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의로운 욥을 연단하셔서 정금 같이 단련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거기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끝에서 하나님은 이런 욥에게 묻습니다. “무지한 2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욥 38:1-6) 비로소 욥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지한 자였는가 비천한 자임을 고백하며 입을 가립니다. 이러한 연단과정 속에 질문을 답을 들으면서 욥은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한 가지 더 살펴보면 이스라엘 역사 속에 가장 훌륭한 믿음의 사람 다윗의 예입니다. 그는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신앙의 특징을 보면 그 역시 하나님 앞에 질문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상 30: 8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 아기스 왕와 함게 이스라엘과 싸우려하다가 때시글락에 이르러보니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혀간 것을 알고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웁니다. 그 때 다윗이 격한 감정으로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머저 여호와께 묻습니다.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십니다.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그는 60인으 데라고 가다 브솔시내에서 지친 자들 200명은 놔두고 400명으로 가서 모든 재물과 사람들을 다 찾아옵니다. 사무엘하 5 장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17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후에 블레셋과 싸우는 싸우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이 다윗과 싸우려고 나아와 르바임 골짜기를 가득 메웠습니다. 삶들은 대게 이런 상황이 오면 바로 출정명령을 내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에도 다윗은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먼저 여호와께 나아가서 올라가야 할지를 묻습니다(18-19절). 19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그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대답하십니다.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순종한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20절). 이후 블레셋이 복수전으로 다시 공격해 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전 승리에 도취되거나 교만하지 않고, 다시 한번 여호와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여쭙니다(22-23절). 23“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24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러 대승을 합니다. 다윗은 이처럼 계속해서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답을 주셨고 백전 백승을 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법도를 가볍게 여겨 불순종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양을 죽이고 제사장이 드려야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여러분, 문제 앞에 두려워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며 질문하는 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질문을 하고 묻는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물으면 바드시 하나님은 어떤 모양이던 답을 주십니다.그러나 묻지 않으면 문제 앞에 설 때 문제거리가 됩니다. 오늘날 정치현실이 기독교인들을 보십시오. 도대체 생각을 하는 것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을 못합니다. 답담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 문제가 무엇일까? 스스로 묻기도 안 되면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묻고 하나님은 답을 주시면 그 답은 정확합니다. 저도 뒤돌아보니 오늘 여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질문을 통해서 얻어진 답이었습니다. 역사가 무너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신다는 답을 얻게 되었고, 양들은 떠나고 새로운 전도나 피싱 역사도 없는 때에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답을 얻어서 재중집사님과 함께 주영 정공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교회를 세우고 우주교회를 섬기는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또 한국 학생이 없고 캠퍼스 사역이 힘들 때 어떻게 학생들을 도우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때 조현우 형제 한 사람을 도우면서 중국 유학생 선교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결과 10년 동안 60명이 넘는 학생들 성경공부와 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의 역사를 내다보며 무엇을 할까 기도할 때 색소폰을 배우고 독서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 오늘날 독서모임도 이루고 새벽 큐티로 우주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평안북도 정주군에 한 시골 교회가 갑자기 부흥하게 됐습니다. 예배당은 점점 좁아졌습니다. 교회를 증축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농민들이 교회를 증축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 셩도 중에 백영순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건축헌금을 낼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래도 건축헌금을 하고 싶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건축헌금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열심히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는데 이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없는 돈을 구하지 말고 네게 있는 것으로 내면 될 것 아니냐." 그는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옆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계속 기도하는데 또 한 번 그 목소리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그는 그 목소리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논 세 마지기를 팔아 건축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러자 교회 성도들이 수군거렸습니다."제 주제를 알아야지." 동네 사람들도 입방아를 찧었습니다."예수쟁이가 되더니 논까지 팔아 바치는군. 내년부터는 머슴살이를 하게 되겠지." 별별 소문이 다 나돌았습니다. 선교사들이 그를 불러 되물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논을 팔아 헌금했는데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설마 우리 가족을 굶어죽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선교사들은 그를 어느 교회의 사찰로 취직시켜 주었습니다. 또 선교사들은 그의 아들에게 교육비를 제공했습니다.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그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 갔습니다. 그 아들은 열심히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고 1927년 귀국해 연세대 교수가 됐습니다. 그 아들은 1950년 문교부장관이 됐고 1957년 연세대 총장이 됐습니다. 그분은 백낙준 박사입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대답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질문하고 묻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믿음의 선인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묻고 답을 얻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숙제가 있다는 것은 성장 발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피할 것이 아니라 묻고 풀어야할 과제입니다. 문제 앞에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답을 듣고, 또 계속 배우고자 하는 열정과 믿음으로 질문함으로 더욱 성장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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