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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목진(鐵木眞)의 선조(先朝), 그들은 ‘카스피해(海)’를 건넜다.
○「기악온철목진(奇渥溫鐵木眞)!」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초원(草原)의 대제국(大帝國)을 건설(建設)했다는 ‘징기스칸’이다. 몽고족(蒙古族)이라고 하며, 지금(只今)의 ‘몽골공화국’ 수도(首都) ‘울란바토르’ 동(東)쪽에 있는 ‘알난하(斡難河)’ 상류(上流)에서 출생(出生)했으니, 그곳이 몽고족(蒙古族)들의 고향(故鄕)처럼 알려져 있으며, 역사(歷史)상식(常識)처럼 되었다. 과연(果然), 이러한 역사해설(歷史解說)이 진실(眞實)을 담고 있을까?
○ 역사통설(歷史通說)에는 : 『수많은 거짓과 위선(僞善)과 비겁(卑怯)함이 숨어 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것은, 공교육(公敎育)이란 미명(美名)하여 저질러지는 세뇌(洗腦)과정(過程)을 거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 70년 현대사(現代史)속에는, 기록(記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거짓 이야기들과 위선(僞善)과 비겁(卑怯)함, 배신(背信)의 추악(醜惡)함이 가득 차 있다.
특히 지배자(支配者) 또는 지배층(支配層)들의 이야기는 미사려구(美辭麗句)로 포장(包裝)되어, 대중(大衆)의 인기(人氣)를 한 몸에 받기도 한다. 시중(市中)에 떠도는 유언비어(流言蜚語)라고 말하는 것들을 잘 새겨보면, 밑도 끝도 없이 떠도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것들이 실제(實際)사건(事件)으로 터지는 경우(境遇)도 허다(許多)했다.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大部分), 권력층(權力層)인사(人士)들과 재벌(財閥)들의 부정부패(不正腐敗), 결탁(結託), 인사(人事)비리(非理), 추잡(醜雜)한 염문(艶聞), 정치적(政治的) 야합(野合)에 의한 것들이기 때문에, 국민(國民)들이 알아서는 곤란(困難)한 것들이다.
무지(無知)한 국민(國民)들을 속이고자 할 경우(境遇), 아름다운 꽃처럼 포장(包裝)하여, 『애국충정(愛國忠情)이니, 일대결단(一大決斷)이니, 최상(最上)의 선택(選擇)이니, 구국(救國)의 일념(一念)』이니 하는 말로 그럴싸하게 만들어, 관변(官邊) 소식통(消息通)이나 언론(言論)등을 통해 흘려보낸다. 그리고는 관변(官邊)학자(學者)나 어용학자(御用學者)들을 동원(動員)하여,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式)의 말로 꼬리를 감춘다. 우리나라 현대사(現代史)가 대부분(大部分) 이런 경우(境遇)에 해당(該當)되는데, 지금도 똑 같다. 세월(歲月)은 수없이 흘렀는데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 말은 “국민(國民)들이 무지(無知)해, 그 속셈을 파악(把握)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저 『애국충정(愛國忠情)이니, 일대결단(一大決斷)이니, 최상(最上)의 선택(選擇)이니, 구국(救國)의 일념』이라는 아름답고, 꽃처럼 화사한 말에, 감동(感動)되어 눈물을 흘리며 박수(拍手)치며 놀아나기 때문이다. 이 자(者)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요거다.
권력층(權力層)인사(人士)들과 재벌(財閥)들의 부정부패(不正腐敗), 결탁(結託), 인사(人事)비리(非理), 추잡(醜雜)한 염문(艶聞), 정치적(政治的) 야합(野合)에 의한 것들이 요렇게 반전(反轉)되어, 국민(國民)들에게는,『애국충정(愛國忠情)이니, 일대결단(一大決斷)이니, 최상(最上)의 선택(選擇)이니, 구국(救國)의 일념이라는 감동적(感動的)인 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속셈을 간파(看破)하지 못하는 무지(無知)한 국민(國民)들! 이러한 무지(無知)는, 오늘도 반도(半島) 하늘을 뒤덮고, 진실(眞實)은 돼지우리에 쳐 박혀 있다.
대통령(大統領)이나 그 밖의 권력자(權力者)들이, 국민(國民)들에게 자신(自身)의 이상(理想)과 철학(哲學), 국정(國定)운영(運營)에 관한 생각을 밝히는 것은, 국민(國民)들에게 책임(責任)과 의무(義務)를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소위(所謂) “짜고 치는 고스톱” 이란 유행어(流行語)가 있다. 이 말은 상대방(相對方)과 미리 짜, 맞추어 놓고, 경기(競技)를 한다는 뜻이다. 지도자(指導者)가 국민(國民)들을 대신(代身)한 기자(記者)들과의 일문일답(一問一答)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국민(國民)들은 지도자(指導者)에게 가졌던 희망(希望)을 버리고, 불신(不信)하게 된다.
그러나 이건 사실(事實)이다. 질문(質問)의 요지(要旨)를 미리 받고, 답변(答辯) 역시 그렇다. 그리고 이에 대해 미진(未盡)한 것에 대한 질문(質問)도 받지 않는다. 서로 짠 고스톱을 치고 있을 뿐이다. 이게 무슨 ‘5일 장날’의 약 팔이도 아니고…그러나 현실(現實)은 현실(現實)이다.
세뇌(洗腦)로 가득 찬 뇌(腦) 세포(細胞)는, 스스로 사고(思考)한다는 것에, 엄청난 통증(痛症)을 수반(隨伴)한다. 세뇌(洗腦)된 자(者)는,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같아, 그저 입력(入力)한 것만을 알고 있다. 정치가(政治家)들은 입으로 먹고사는 자(者)들이다. 이러한 자(者)가 원고(原稿)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면…이것은 보통(普通)문제(問題)가 아니다. 얼마나 국민(國民)들을 우습게 알면 사전(事前)에 연습(演習)도 하지 않았을까?
선거(選擧)에서 공약(公約)이란 무엇일까? 공약(公約)이란 : 정부(政府)·정당(政黨)·임의단체(任意團體)등에서 입후보자(立候補者)들이 어떤 일에 대하여 실행(實行)할 것을 약속(約束)하는 것이다.
예(例)를 들어 : 대통령(大統領) 선거(選擧)에서 대통령(大統領)이 되겠다고 나선 대통령(大統領) 입후보자(立候補者)가 국민(國民)들을 상대로, 「0 ∼5 세 미만(未滿)의 유아교육(幼兒敎育)은 대통령(大統領)에 당선(當選)이 되면 책임(責任)을 지겠다.」고 공약(公約)했다면, 그것을 본 유권자(有權者)들이 선택을 했을 것이고, 당선(當選)되었다면, 당연(當然)히 일차적(一次的)으로 실행(實行)을 해야 한다.
만약(萬若) 그것을 실행(實行)치 않는다면, 대통령으로써, 공약(空約)을 한 셈이 됨으로, 지도력(指導力)에 대한 의심(疑心) 때문에, 통치력(統治力)이 약화(弱化)되어, 결국(結局)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狀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國民)들은 허상(虛像)을 보고, 헛된 약속(約束)을 남발한 사람을 선택(選擇)한 것이 되며, 결국(結局) 무지(無知)한 국민(國民)들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 현실(現實)이다.
● 몽고족(蒙古族)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도, 세뇌(洗腦)된 이야기로만 채워진 것이, 현재(現在)의 역사통설(歷史通說)이다. 그렇다면 본래(本來) 몽고족(蒙古族)들은 어디에서 시원(始原)하는가? 당연(當然)한 질문(質問)이고, 질문(質問)에 대한 답변(答辯) 역시(亦是), 당연(當然)하게 해야 할 의무(義務)를 갖는다. 몽고족(蒙古族)에 관한 것들을 찾아, 옛 기록(記錄)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신원사(新元史) 1 본기(本紀) 서기(序紀)를 보자 :
《蒙古之先,出於突厥.本為忙豁侖,譯音之變為蒙兀兒,又為蒙古. : 몽고(蒙古)의 선대는, 돌궐(突厥)에서 나왔는데, 본래 ‘망활륜’이며, 역음이 변하여 ‘몽올아’이어서, 또 몽고(蒙古)이다. 金人謂之韃靼,又謂之達達兒.蒙古衣尚灰暗,故稱黑達達.其本非蒙古 : 금인(金人)이 부르기를 ‘달단(韃靼)’이라 했는데, 또 ‘달달아(達達兒)’라 불렀다. 몽고(蒙古)는 회색의 어두운 옷을 숭상하는데, 고로 ‘흑달달(黑達達)’이라 불렀는데, 그들은 본래의 몽고(蒙古)인이 아니다. 而歸於蒙古者,為白達達,野達達.詳氏族表.突厥語譯義灰色目睛,蒙古以灰睛為貴種也. : 돌아온 몽고(蒙古)인들은, ‘백달달(白達達)’이요, ‘야달달(野達達)’이다. 씨족(氏族)표에 상세하다. 돌궐(突闕) 말의 역의(譯義)로 회색(灰色) 눈동자를 말하는데, 몽고(蒙古)에서 회색(灰色) 눈동자는 신분(身分)이 귀(貴)한 자이다. 중략. 同渡騰吉思海,徙於斡難河源不兒罕山之下,生子曰巴塔赤罕. : 등길사해(騰吉斯海)를 함께 건너, 알난하(斡難河)가 발원하는 불아한산(不兒罕山)아래로 이동했는데, 아들 파탑적한이 태어났다.》고 하였다.
➊ 등길사해(騰吉斯海)를 건너…알난하(斡難河)가 발원하는 불아한산(不兒罕山)아래로 이동(移動)하였다. : 海國圖志 卷 74 / 國 地 總 論 上 / 釋 崑 崙 下 : 《雷 翥 海 即 裏 海(一名鹹海,一名北高海,一名加土比唵,一名騰吉思海,一名格騰裏海,一名達裏岡阿泊): 뇌저해(雷翥海)는, 곧 리해(裏海)이다. (일명 함해(鹹海)요, 일명 북고해(北高海)요, 일명 가토비암(加土比唵)이요, 일명 등길사해(騰吉思海)요, 일명 격등이해(格騰裏海)요, 일명 달리강아박(達裏岡阿泊)이다.) 》라고 하였다.
『등길사해(騰吉斯海)는 리해(裏海) 곧 카스피 해(海)』를 말하는 것이다. 『철목진(鐵木眞)의 바로 윗대 선조(先祖)가, 카스피 해(海)를 건넜다.』는 이야기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은 대한민국(大韓民國) 국민(國民)들을 세뇌(洗腦)시키는 표준(標準)교과서(敎科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미래(未來)는, 혼(魂)없는 자(者)들로 가득 찰 것이다.
➋ 본래(本來) 몽고족(蒙古族)의 원류(原流)는 돌궐(突厥)이며, 이들 또한 구라파(歐羅巴)종족(種族)이란 뜻이고, 몽고족(蒙古族)은 글란(契丹)에 속한 조그만 부락(部落)이라고 하였으니, 글란(契丹) 역시 구라파(歐羅巴)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종족(種族)임과 동시에,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 역시 구라파(歐羅巴) 또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종족(種族)이란 뜻이다. 바로 색목인(色目人)이다.
『철목진(鐵木眞)의 윗대 선조(先祖)들이, 카스피 해(海)를 건넜다.』는 말은 : 이들 몽고족(蒙古族)들은 카스피 해(海) 서(西)쪽 지방에 살고 있었으나, 주변(周邊)의 종족(種族)들에게 밀려났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현재(現在)의 몽골공화국은 무엇인가? 1900년대에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신생국(新生國)일 뿐이며, 옛 몽고족(蒙古族)들과는 전혀 다른, 조선(朝鮮)의 백성(百姓)들이라고 말한다.
< ➌『알난하(斡難河)가 발원하는 불아한산(不兒罕山)아래로 이동(移動)하였다.』 : 海國圖志/卷031/西南洋.北印度西北鄰部附錄.邱長春西遊記 / 七月二十五日,至阿不罕山北.鎮海相公來謁 : 해국도지 권 31 / 서남양. 북인도서북 인부(鄰部) 부록(附錄). 구장춘서유기(邱長春西遊記) / 7월 25일, 아불한산에 이르렀다. 진해(鎭海)상공이 와 만났다.【阿不罕山,在金山東北,今阿集爾罕山也.鎮海傳:太祖屯田於阿魯歡,立鎮海城.阿魯歡,即阿不罕之音轉 : 아불한산(阿不罕山)은, 금산(金山)동북(東北)있는데, 아집이한산(阿集爾罕山)이다. 진해(鎭海)전(傳)에 : 태조(太祖)가 아노환(阿魯歡)에 둔전(屯田)하고, 진해(鎭海)성(城)을 세웠다. 곧 아불한(阿不罕)의 음이 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신원사(新元史) 서기(序紀)에서의 “불아한산(不兒罕山)”은,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와 해국도지(海國圖志)의 “아불한산(阿不罕山)” 이다. 똑같은 산(山)을 두고, 다르게 부르는 것이다.
➍ 讀史方輿紀要 山西 :《阿不罕山,亦在漠外,斡難河源出於此.又迭里溫孛答山,在斡難河旁.志云:元鐵木真生於此. :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산서(山西) :《 아불한산(阿不罕山)은, 막외(漠外)에 있는데, 알난하(斡難河)의 근원(根源)이 나오는 곳이다. 또 실리온발답산이 알난하(斡難河)에 가깝다. 지(志)에 따르면 : 원(元)의 철목진(鐵木眞)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➎ 海國圖志/卷031/西南洋.北印度西北鄰部附錄.邱長春西遊記 / 七月二十五日,至阿不罕山北.鎮海相公來謁 : 해국도지 권 31 / 서남양. 북인도서북 인부(鄰部) 부록(附錄). 구장춘서유기(邱長春西遊記) / 7월 25일, 아불한산에 이르렀다. 진해(鎭海)상(相)공이 와 만났다.【阿不罕山,在金山東北,今阿集爾罕山也.鎮海傳:太祖屯田於阿魯歡,立鎮海城.阿魯歡,即阿不罕之音轉. : 아불한산(阿不罕山)은, 금산(金山)동북(東北)있는데, 아집이한산(阿集爾罕山)이다. 진해(鎭海)전(傳)에 : 태조(太祖)가 아노환(阿魯歡)에 둔전(屯田)하고, 진해(鎭海)성(城)을 세웠다. 곧 아불한(阿不罕)의 음이 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➏ 위 ➍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는 산서(山西)지방에 대한 지세(地勢)를 기록(記錄)한 것에 주목(注目)해야 한다. 또 위 ➎의 구장춘서유기(邱長春西遊記)에서는 : 「아불한산(阿不罕山)은 “금산(金山)의 동북(東北)에 있다.」고 하였다. 「금산(金山)은, 알타이 산(山)이며, 벨루하 산(山)이다.」 이 산(山)의 동북(東北)에 있다는 말은 : 동북(東北)으로 뻗어있는 당노오랍산(唐努烏拉山)을 말한다.
➐ 오늘날의 지도(地圖) 및 역사해설(歷史解說)에서는 : 알난하(斡難河)는 극노륜하(克魯倫河)이다. ‘울란바토르’의 동북(東北) ‘배특산(背特山)=배특령(背特嶺)’에서 발원(發源)한다. 그렇다면 고전(古典)에서 말하는, 그 지리적(地理的) 위치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철목진(鐵木眞)의 바로 윗대 조상(祖上)들이, 과연(果然) 알타이산맥(山脈)을 넘어, 오늘날의 몽골 땅에 정착(定着)했을까? 아주 회의적(懷疑的)이라고 본다. 그 증거(證據)가 없다는 뜻이다.
아불한산(阿不罕山)=불아한산(不阿罕山)=알난하(斡難河)는?
➑《아불한산(阿不罕山)=불아한산(不阿罕山)는 알난하(斡難河)의 발원지(發源地)》는,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에서는 산서(山西)편에 기록(記錄)되어 있고, 해국도지(海國圖志) 구장춘서유기(邱長春西遊記)에서는 『금산(金山)의 동북(東北)에 있다』고 하였다. 즉 고전(古典)에서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곧 서토(西土)이며, 오늘날의 러시아 땅으로, 외몽골 최 서(西)쪽의 북방(北方)지대(地帶)이다.
해국도지(海國圖志)로 비춰보면 : 신원사(新元史)와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의 아불한산(阿不罕山)=불아한산(不阿罕山)=알난하(斡難河)에 대한 기록(記錄)은 조작(造作) 되었다는 것을 증거(證據)하는 이야기다. 아래의 삭방비승(朔方備乘) 일부(一部) 기록(記錄)을 보면, 이해(理解)할 수 있게 된다.
● 삭방비승(朔方備乘) 40 아라사(峨羅斯)총기(叢記)편 :《俄國近蒙古 : 夷情備采曰蒙古在西北之地與歐羅巴相近故飮食性情頗近歐羅巴之人. : 아라사(峨羅斯)국(國)은 몽고(蒙古)와 가깝다 : 이정비채(夷情備采)에 따르면, 몽고(蒙古)는 서북(西北)의 땅에 있는데, 구라파(歐羅巴)와 서로 가까워, 고로 음식(飮食)이나 성정(性情)이 자못 구라파(歐羅巴)인(人)들과 가깝다.》고 하였으니, 해국도지(海國圖志) 구장춘서유기(邱長春西遊記)에서 말하는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와 매우 유사(類似)한 곳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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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靑莊館全書 卷 23 / 宋史筌蒙古列傳 에서는 : 《歷四世曰海都.始爲君長.中略.子孫蕃衍.各自爲部居.于烏桓之北.與畏羅,乃蠻,九姓,回鶻,故城,和林接壤.世修貢遼金.役屬于韃靼. : 그리고 4대를 내려와서 해도(海都)가 비로소 군장(君長)이 되었다. 중략. 그 후 자손들이 번창하여 저마다 부족을 이루어 오환(烏桓)이북 내만(乃 蠻)ㆍ외라(畏 羅)ㆍ구성(九 姓)ㆍ회골(回鶻)의 고성(故城) 화림(和林) 부근에 흩어져 살며, 대(代)마다 요(遼)ㆍ금(金)에게 조공(朝貢)하다가 다시 달단(韃靼)에게 붙었다.》
➊ 본래(本來)의 몽고(蒙古)종족(種族)은 : 돌궐(突厥)족의 한 지파(支派)이다. 또 이들은 달단(韃靼)과 별 차이(差異)없는 자(者)들이다. 또,《兩顴高.眼碧髥紫.皆悍惡麤健.不思室居.雖極寒之時.只設帳於車上而宿於道路.朝乃拂雪而起. :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나는 자들이다.》라고 설명(說明)하는데, 이는 본시(本是) 몽고(蒙古)인을 말하는 것이다.
➋ 본래(本來)의 몽고(蒙古)족들은, 회색(灰色) 또는 벽안(碧眼)의 눈동자를 가진 종족(種族)이나, 그 중에서도 회색(灰色) 눈동자를 가진 자들은 신분(身分) 귀(貴)한 자들이라고 한다.
➌ 이들은 글란(契丹)의 소(小) 부락(部落)으로, 해마다 ‘글란(契丹)=요(遼)’, ‘여진(女眞)=금(金)’에게 조공(朝貢)하며, 의탁(依託)해 살았던 종족(種族)인데, 철목진(鐵木眞)이 태어나기 전(前)에, 그 부락(部落)이, <등길사해(騰吉斯海)=카스피 해(海)>를 함께 건너, 알난하(斡難河)가 발원(發源)하는 불아한산(不兒罕山)아래로 이동(移動)했다고 말한다. 문제(問題)는 불아한산(不阿罕山)이 금산(金山)의 동북(東北)에 있다고 한 것이다.
➍ 이들 몽고족(蒙古族)들은 :「오환(烏桓)이북 내만(乃 蠻)ㆍ외라(畏 羅)ㆍ구성(九 姓)ㆍ회골(回鶻)의 고성(故城) 화림(和林) 부근」에 흩어져 살았으며, 이들 대부분은 글란(契丹)과 발해(渤海)에 속했으며, 일부(一部)만이 ‘음산(陰山)=천산(天山)=박격달산(博格達山 : 5445m)’에 기대어 흩어져 살았다는 것이, 사서(史書)의 공통적(共通的)인 기록(記錄)이다.
➍-1) : 오환(烏桓)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 《사막(沙漠)지중(之中)에 있었으며, 정령(丁零)의 서남(西南), 오손(烏孫)의 동북(東北)지대에서 살았다.》
➍-2) : 내만(乃蠻) :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서역(西域) / 《乃蠻國,亦在蔥嶺西南.宋嘉定中,蒙古鐵木真擊滅乃蠻諸部,是也.其後復立其種類為乃蠻王. : 내만국(乃蠻國)은, 총령(蔥嶺)의 서남(西南)에 있다. 송(宋) 가정(嘉定)중에, 몽고(蒙古) 철목진(鐵木眞)이 쳐서 내만(乃蠻)의 여러 부(部)를 없앴다. 이것이다. 그 후에 다시 일어나 그 종족들이 내만(乃蠻)왕(王)을 세웠다.》고 하였으니, 내만(乃蠻)은 총령(蔥嶺) 서남(西南)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에 있었던 나라이다.
➍-3) 회흘(回紇) : 통전(通典) 북적(北狄) / 《迴紇在薛延陀北境,居延婆陵水,去長安萬六千九百里. : 회흘(迴紇)은 설연타(薛延陀)북쪽 지경에 있으며, 파릉수에 연해 살았는데, 장안(長安)까지 16,900 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➎ 위에서 언급(言及)한 오환(烏桓)=오환(烏丸)이나, 내만(乃蠻), 회흘(回紇)=회흘(迴紇)등의 종족(種族), 부족(部族), 나라(國)등은,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지방의 남(南)쪽과 서북(西北)쪽과 북(北)쪽에 살던 자(者)들」이다. 「이러한 자(者)들의 북(北)쪽 모퉁이에서 소수민족(少數民族)으로, 노예(奴隸)처럼 살던 자(者)들이 몽고족(蒙古族)」이었다는 이야기다.
➏ 海國圖志/卷031/西南洋.沿革《北印度西北鄰部附錄:西域民多是土耳其,蒙古各族類,所自出此時,國地已分. : 북인도(北印度)의 서북(西北)에 이웃한 부의 부록 : 서역(西域)백성(百姓)들은 토이기(土耳其), 몽고(蒙古)의 각 족류(族類)가 많은데, 나라 땅이 이미 나누어졌다.》고 한 기록(記錄)을 주목(注目)하자.
➐ 이곳에서의 서역(西域)이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을 뜻하는데, 오늘날의 인종(人種)분포(分布)를 보면 :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들은, 총령(葱嶺)의 동(東)쪽인 동방(東方) 땅에는 분포(分布)되어 있지 않다.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들은, 현재(現在)의 러시아 또는 동(東)구라파(歐羅巴) 혹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종족(種族)들에게 흡수(吸收)되고 동화(同化)되어 그 본래(本來)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으로 이해(理解)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은 현재(現在)의 동양인(東洋人)들과는 인종(人種)적으로, 전혀 다른 형상(形相)을 갖고 있었다.
➑『철목진(鐵木眞)의 선대(先代)가 카스피 해(海)를 건너, 알난하(斡難河)가 발원(發源)하는 불아한산(不阿罕山) 아래로 이주(移住)했다』는 설명(說明)에서, 이곳은 오늘날의 ‘울란바토르’ 북(北)쪽 주변의 <배특령(背特嶺)=배특산(背特山)>아래로 이주(移住)하여, 알난하(斡難河) 상류(上流)에 살았다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조작(造作)된 것이며, 조선사(朝鮮史)를 동(東)쪽으로 왜곡(歪曲)하는 과정(過程)에서, 함께 이동(移動)된 것으로 파악(把握)된다.
➠『철목진(鐵木眞)의 바로 윗대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에 있는, 《카스피 해(海)=등길사해(騰吉斯海)를 건넜다》』면, 몽고족(蒙古族)! 이들은 본시(本是), 카스피 해(海) 서(西)쪽의 흑해(黑海) 주변(周邊)의 러시아 땅이나, 또는 지중해(地中海) 연안(沿岸)의 터키 땅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현재(現在)의 ‘몽골공화국’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본래(本來)의 몽고족(蒙古族) 터전이 될 수 없다. 이 땅은 본래(本來)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嶺土)였다는 것이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이라고 본다.
➒ “라시드”의 “집사”에 나오는 한 구절(句節)에 : 『철 목 진(鐵木眞 : 징기스칸)의 아버지(父)는, 파란 눈(靑眼)을 가졌는데, 그의 후손(後孫)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였는데,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一般的)인 역사(歷史)이야기는 진실(眞實)과는 많은 차이(差異)가 있다는 것이다.
○ 결론적(結論的)으로 : 몽고(蒙古)라는 옛 종족(種族) 및 그들이 세웠다는 “원(元)” 제국(帝國)의 역사(歷史)이야기는, 우리가 극복(克服)해야 할 과제(課題)일 것이며, 절대적(絶對的)으로 재고(再考)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2016년 01월 15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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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역사상식 특히 반도사관과 식민사관에서 가르쳐 준 한국사는 우리들을 눈 뜬 장님으로 만들어 줍니다. 조선사를 알면 알수록 화가 나는 이유가 뭘까요? 식민사관 논자들의 비열한 짓거리에 분노가 치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과 대한민국 하늘 아래 함께 살고 있다는 것, 그것에 분노합니다.
안녕 하십니까? 항상 노고가 많으십니다. 역사의 기록과, 현지에서 옛 역사를 잊지 않고 기념하고 기록하며, 역사를 기리는 기념물을 세우는 것을 보면, 다소 근소한 차이는 있으나, 조선사의 진실은 분명하고도 명확 합니다.
일만년 조선사와 중국사의 경계 선상에 있는 요동과 요서, 그리고 산서와 산동은, 중앙 아시아의 발하슈호를 기점으로 하여 있었던 지역임이 모두 밝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역사의 본 모습을 찾아서 그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이, 희망이 없는듯이 보이기도 하며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나, 역사의 진리는, 거짓과 위선이 오래 계속되어 역사에 뿌리를 내린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고금의 흥망성쇠 속에서 수 많은 나라들이 명멸해 갔으며, 그들도 한때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세로 일세를 풍미 했으나,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거짓과 왜곡을 일삼은 자들은 후대에 모두 지탄의 대상이 되었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습니다.
역사를 속이며, 선대 조상님들을 능멸하고 국민과 후세들을 속이며 우롱하는 하는 자들은, 역사의 준엄한 순리와 진리의 길에서, 절대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버리고, 조상을 능멸하고 버리며, 국민을 기만하고 후세를 속이며, 학문의 정도를 버리고 권력과 사욕을 위하여 곡학아세하는 자들이 역사를 잇는다는 것은, 천하의 진리와, 천하의 정도와 천하의 순리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점 흰구름이 끝없이 높이 떠 흘러가는 청천백일을 우러러, 조선사의 진실과 본 모습은, 반드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문무 선생님 늘 두루 평안 하시고, 강건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 겨울중에 가장 추운 날씨가 이번 주일 것 같군요. 아주 춥습니다. 바람까지 부는 바람에 체감온도는 더 내려갈 것 같구요. 님의 말씀대로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정치인들은 반도사관이나 식민사관을 더더욱 고착화하고, 학자들은 이들과 야합하여 자신들의 안위 지키기에만 급급한 실정입니다. 오늘 기사에서 전한 말의 왕망의 "신"나라 때 사용하던 화페가 무너기로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이 화폐는 그곳 말고도 몇 군데에서도 과거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왜 하필 다른 왕조의 것은 없는 데, 왕망시대의 것만이 발견되는 것일까요? 또 이러한 화폐는 당시의 것인지를 무엇으로 고증하는 것일가요? 궁금합니다.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흑수는 현 흑룡강이 될 수 없다는 많은 자료를 고증하여, 게재하였습니다. 흑수는 부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기에 그 지리적 위치가 아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런데 또 다른 사료에서 "흑수는 현재의 우랄산맥 동쪽 가까이에 있는 이르티슈강과 그 수계, 하류는 오브강"이라는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흑수는 동해에 물 쏟는 것이 아니라 북해에 물을 쏟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비정했던 볼가강이란 증거는 찾지 못했고, 우랄산맥 가까운 동쪽의 수계와 연결되는 하천이 흑수라고 합니다. 이럴 때, 그 남쪽은 발하슈호와 자이산 호 주변이 됩니다. 부여는 이 흑수의 남쪽에 있었다는 것이 되죠.
이러한 기록의 증거는 조선사를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부여는 중앙아세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성립되며, 동부여는 당연히 이곳의 동쪽지방에 있었을 것이며, 여국은 총령의 서남에 있는데, 이곳의 모든 정보는 옥저의 현인들로부터 제공받았다는 대륙사 기록으로 볼 때, 부여와 옥저등의 옛 조선사 왕조의 지리적 위치를 고증할 수 있는 자료가 또 확보되는 것이죠. 지금 번역하고 해설을 하고 있는 중인데, 아쉬운 것은 재야사학에서 가능하면 하나로 통합되어 정리해 나가는 과정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조선왕조를 무슨 외계인 왕조인 냥 하는 카페들을 보면, 한 숨만 나옵니다. 걱정이 됩니다
<조선황제의 교화가 사해를 진동했다고 해서, 조선왕조의 강역이 사해이다>라는 말은 코메디죠.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이해 가능성이 큰 것들을 먼저 주제로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행성이 조선이라든가, 조선왕실이 백인이라든가하는 고증없는, 대책없는 이야기들은 대륙조선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 근거가 된다는 것들을 보면, 고증 하나 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일반인들은 아예 귀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담을 허물수 있는 어떤 획기적인 대책이나 아이디어는 없을까요?
강추위가 엄습하는 이때,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어느사이 겨울이 깊어지니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말씀 하시는 바와 같이, 조선사의 본 모습과 조선사의 진실을 찾는 것은 난망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사서들이 어지럽다 보니 수 많은 억측과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역사의 사실을 찾는다고 한다면, 역사서가 말하고 있는 지역의 지리를 살피고, 이를 고찰하여, 역사서의 진위를 구별하고, 사서의 거짓과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들은 개인이 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
지리를 알지 못하고 어떻게 역사의 사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
조선사와 중국사의 경계 지역이며,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심 무대였던 요동과 요서, 그리고 불함산과 연산, 의무려산, 등 이러한 지역을 분명히 한다면, 역사에 대한 억측과 가설이 우리의 역사를 다시 어지럽게 하는 일들은 없을 것 입니다.
고지도를 조작하고, 유적과 유물을 왜곡하며, 역사를 날조하여 거짓의 역사로 세상을 속이려 하는 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러한 일들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며, 오욕만을 남기게 된다는 역사의 진리를 깊이 명심해야 할 것 입니다.
식민의 잔재이며, 조선사 말살의 반도사관으로 인하여, 역사를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오늘 이 시간에도 그 들이 하는 짓을 보면, 참으로 천하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를 말하면서, 역사서의 중요한 내용들을 제외하고, 역사를 왜곡시켜 자기들의 생각이 역사라고 말하는 자들의 추태는 가관이 아닙니다.
국민들과 역사의 사실과 진실을 소통하여 이를 알게하며, 이를 공유하고, 일만년 조선사의 본 모습을 찾아 선대의 위업을 잇고, 조상의 업적을 기리며, 조선사의 후예들이 나아갈 길을 분명히 밝히는 일에 어찌 방책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