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지가 나타나는 석탑 중에는 최고는 원원사지이다. 그 전에도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밝혀 진 것이 없다.
원원사지는 밀교의 사찰로 사천왕사지 보다는 조금 뒤에 세워 졌다고 보며, 명랑대사의 제자로 보이는 승려들이 세운 것이다.
즉 밀교의 술법을 위한 사찰로 생각된다.
사천왕사지에는 12개의 구멍이 있는 돌 판이 있는데 이것에 대한 의문은 12지가 새겨진 탑과 대입을 하여 보니
어느 정도 맞은 것으로 보이고. 구멍에 커다란 기둥을 세워서 기둥 꼭대기에 12지신 모양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즉 사자석주의 모양을 본 뜬 것으로 생각된다.
경복궁 호랑이
12지 상을 좌우에 두고 그 가운데는 제단을 두어서 명랑법사가 문두루 비법을 행하는 의식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 그러면 12지상 두고 문두루 비법을 행 하였을까 하는 것인데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10진법이 아니고 12진법이다. 시간을 12로 하였고 방위도 12지에 나오는
동물로 하였다고 보면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것이 12지로 생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명랑 법사가 문두루 비법으로 당나라 수군에게 풍랑을 일으켜 당나라 군대를 물리 쳤다면 이것은
문두루 비법이 시간과 공간을 다룰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고 생각되며 신 라 땅 에서 문두루비법 만으로
수군을 물리 쳤다면 공간을 장악하고 풍랑을 당나리 군대가 움직이는 시간을 맞춰서 일으켰다면 시간을 통제 할 수 있는 비법이 문두루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추정은 필자의 오래된 생각어었는데 삼국유사를 자세하 분석 한 결과 이다.
그러면 왜 사천왕사에 이러한 비법을 행 하였을까 하는 것인데 사천왕은 사방에서 부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12지신을 권속으로 두거나 아니면 사천왕상이 다룰 수 있는 존재이기에 사천왕사에서 문두루 비법을 행 하였다고 생각된다.
원원사지에 나오는 쌍탑은 좌우로 12지상두고 가운데에서 문두루 비법을 행 하였기에 쌍탑을 두었으며
탑에 12지를 새긴 이유는 명랑법사가 스승이고 문두루 비법을 전수 받았으면 그와 비슷한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공간이기에 방위를 통제하고 공간을 장악하는 문두루 비법이 부처의 능력이 합쳐서 2배가 되도록 하고 영구히 문두루 비법을 행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탑의 면에다 새긴 것으로 생각한다.
12지가 나타나는 12지 부도 또 한 그러한 영향으로 만들었다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신라의 변고가 있다
하며 급히 신라도 돌아와서 12지상 부도를 만들었다고 추정도 가능하다.
문두루 비법이나 아니면 부도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기에 12지신과 함께 신라의 변고를
없애기 위해서 부도에 12지를 새겼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자장율사가 신라에 와서 세운 사찰이 통도사 태화사 등인데 명랑법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자장율사의
사위라는데 그러면 사천왕사에서 행한 문두루 비법 보다 태화사지의 12지부도가 먼저 세워 졌다는 것이고
원원사지 보다는 더 빠르게 세웠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뭔가 좀 어색하다.
대부분의 생각이 원원사지에 나오는 12지 탑이 최고의 기준이 되는데 명랑법사가 자장의 사위가 되면 12지 탑에 세운 시기에 대한 것이 맞지 않는다.
많은 고민을 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생각을 더 하여서 글을 더 보충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