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4 주일설교
본문: 딤전 3:15
제목: 진리의 기둥과 터
1.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내 입술에서만 살아 있고, 실상은 죽어 있는 하나님이 아니다.
입으로는 공경하고 입술로는 경외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난 하나님이 아니다.
빌면 복 주는 미신의 하나님이 아니다.
살아계시며 통치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여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서 불러낸 자들의 모임이다.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성품과 삶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이 미리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의 모임이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교회는 사람의 교회, 세상의 교회이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셨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교회는 항상 그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실을 믿지 않고, 미혹되었던 것처럼,
시대 시대마다 그것은 반복되었고, 오직 거기에 속한 사람들만 모르는 진실이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항상 많았다.
홍해를 건넜어도 그 다수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고 광야에서 다 멸망시키셨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하셨다.
사람의 교회인지, 살아 있는 하나님의 교회인지 분별이 안되고 깨닫지 못하면,
그 영원한 형벌의 운명, 그 신세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현대교회들은 하나님을 떡주무르듯이 주무르고 있다.
믿으면 축복해야 하는 하나님이고, 그들의 말에 그 하나님은 복종해야 한다.
적극적 사고방식에, 긍정의 힘에, 목적이 이끄는 삶에, 4차원의 영성에 복종하는 하나님이다.
개혁주의 신앙에, 근본주의 신앙에, 자유주의 신앙에, 그 하나님은 복종해야 한다.
그 하나님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누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만든 하나님이다.
성경의 말씀을 동원하고 교리체계를 세우고 철학적 명언들을 만들어 낸다.
명설교를 하고, 유명한 목사가 되고, 대형교회 대형교단을 이룬다.
그러나, 초대교회처럼 믿음과 행함과 소속에 변화가 있는 회심이 없다면, 미혹의 교회일 뿐이다.
2. “하나님의 집은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다.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면, 그 진리는 이론일 뿐이요 사람의 지혜와 학문일 뿐이다
그것은 사람의 전통이요, 그 학문을 성경은 초등학문, 초등교사라 한다.
그 이론과 사상, 교리나 신조를 따르는 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혀 미혹의 영을 따르는 것이다.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일 뿐이다.
진리는 세상이 아는 것처럼, 이론이나 사상이나 학문의 산물이 아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 하셨고, 주님은 내가 곧 진리라고 하셨고,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진리는 사상이 아니요 존재인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인 것이다
진리이신 존재 없이 진리는 행할 수 없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오시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마음 가운데 오셔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가 비로소 행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의 진리들이 이론적으로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그대로 행하거나 실천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머리에만 있을 뿐 마음에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지 머리에 있는 것은 행하지 않는다.
인간들의 교육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아무리 도덕과 선을 가르쳐도, 마음 속을 지배하는 이익과 탐욕을 제거하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 헛수고요 처음과 같다. 입술 따로 마음 따로, 입술 따로 행함 따로일 뿐이다.
공자와 맹자왈 평생을 공부하면서도, 행함은 그것과는 전혀 별개이다.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노트에 옮겨쓰고 줄줄 읊으며 다녀도, 행함은 없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모세오경을 줄줄 외우면서도 그 말씀대로는 살지 않았다.
진리의 사랑을 나타내어도 자기 이익을 따라 살 뿐이었다.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음을 알리라”(겔33:31-3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했다.
믿음은 진리의 존재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지,
입술로 머리로 관념적으로 내가 믿는 것이 아니다.
영접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는 믿음이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접하게 된다.
율법조문 교리조문 철학조문들은 다 먹으로 머리 돌판에 쓰는 것들이고,
영으로 마음판에 쓰는 것들이 아니다.
먹으로 쓴 교리조문들은 죽이는 것이요, 오직 영은 살리는 것이다.
주님은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는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는,
오직 진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의 영이신 성령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기둥이 되고 터가 되어야 한다.
율법 조문들이 교리 조문들이 철학 조문들이 기둥과 터가 되어있는 교회들은
곧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할 견고한 진들이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은 오직 발도인교회들을 통해서 이어져 왔다.
이 역사적 사실에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 참 교회를 찾아나서야 한다.
오직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회복하고 계승하고 살려야 한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고,
미혹의 역사를 따르는 것이고, 거짓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갖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가르치는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있게 되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가르치는 믿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된다.
교리 조문들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권을 지배하고 장악한 교회들은 항상 정부 권력과 연합하고 한 통속이 되었고,
그들의 실상을 지적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참 교회들을 잔인하게 대량학살하였다.
로마교회는 참교회 발도인교회들을 대량학살하였고,
어거스틴은 참교회로 돌아가려는 도나투스파를 이단으로 몰고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참교회로 돌아가려는 제세례파를 이단으로 몰고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3. 하나님의 집은 교훈의 본을 따라 행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5절)
사도가 명한 것을 행하고 또 행해야 한다.
사도들은 본을 보이며 사도들을 본받게 하였다.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하신다.
교훈도, 오직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는 교훈이어야 한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영으로 마음에 쓰고 생명으로 사는 곳이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내 제자이고 복을 받는 자라고 하셨다.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고,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다.
믿음에 변화가 없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 사람은 참 교회에 속할 수 없다.
초대교회는 믿음의 변화로, 행함의 변화로, 소속의 변화로 회심을 하는 교회였다.
말이 아니라, 이들의 굳건한 믿음과 이웃사랑의 헌신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매력이 되었고
가는 곳마다 교회는 세워지고 급성장을 이루었다.
로마교회가 크고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의식과 큰 무리로, 강제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십자군을 동원하여 발도인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화형에 처해도
발도인들은 믿음을 지켰고 그 의연한 삶과 죽음을 보며 사람들은 참 교회를 알아 보았고 따랐다.
성령이 거듭하게 하는 역사로, 말씀이 거듭나게 하는 역사로,
마음속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행함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소속하는 교회가 달라져야 한다.
그의 믿음에 변화가 없었다면, 행함에 변화가 없었다면, 소속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협착한 길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찾는 이가 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문과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뜨뜻미지근한 사람이나 뭉그적거리는 사람은 결코 갈 수 없는 길이 이 길이다.
서글픈 일은, 현재 4만명에 달한다는 발도인 교단이 개혁주의 교단과 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단과 연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닌 것이다. 관련 선교사도 아닌 것이다.
순수하게 발도인 교회여야 하고, 사도의 가르친 전통을 지키는 교회를 찾아나서야 한다.
제세례파도 현대교회화한 교회는 피하고, 순수한 전통의 아나벱티스트와는 연대해야 한다.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위그노들도 찾아나서고 연대해야 한다.
진리가 기둥이 되고 터가 된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가야 할 연합이고 회복이고 부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