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얼굴 그리고 망각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마음 따라 피어 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 갔던 오색 빛 하늘 아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 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는 얼굴'
많이도 불렀던 노래이다. 어쩌면 시골의, 우리 시대에 걸맞는 노래인 것 같다. 동요인줄 알았더니 동요로 불려진게 아니었다. 이노래를 부른 가수가 또래(52년생)이고, 1972년에 이 노래가 불려졌단다.
뭐 별로 감흥이 없었던, 단순 지난시절의 노래인줄 알았더니 잠들기전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들으니 어린 아이처럼 여러 얼굴들이 떠올라 지난밤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노래가사에서 어린시절의 친구 얼굴만 상상했을 까?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인생을 여는 시작의 길이었다. 그리고 일정 삶이 지난다음 세월을 회고하며 추억을 들추어내는 그러한 노래였다.
보리쌀 반섞은 아침밥 숫갈 던지고, 책보 대각선 동여맨채 검정고무신에 10여리 신작로길 달리던 국민학교의 추억, 2인용 나무책상에 금 그어가며 짝지랑 타격대던 일이며, 운동장 구석에서의 땅따먹기, 구슬치기와 고무줄 놀이...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한방에 여럿자던 3대, 보릿고개 언덕빼기 배고파도 먹을것 서로에게 먼저 먹으라고 밀어내며, 배려했던 대가족의 정을 느끼던 시절을 어찌 잊으랴?
그렇게 시작한 고난의 세월속에 민족중흥이 있었건만, 한때는 그럼에도 잘못키운 자식세대들에게서 헬조선이란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얼굴, 수십억명을 대조해도 흡사 닮은 얼굴은 있어도 100% 똑같은 얼굴은 없다. 잘못되면 하늘과 조상이 원망듣는 그 XY란 타고난 유전인자(팔자)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마주한 얼굴이 있고, 가끔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까마득히 잊혀진 얼굴이 있는가하면 잊으려해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이 있다.
부모님이 그렇듯 얼굴은 잊혀지지 않으나 실물은 먼저 사라져버린 사람들도 많다.
이제 나이가 들어드니 그 숫자가 하나 둘 늘어만 간다. 언젠가는 내가 그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것이란 생각을 당겨 해보았다.
프랑스 작가 '모러'는 '가장 놀랄 만한 기억력은 연애하는 여인의 기억력이다.'라고 하였다. 이 감성 메마른 나이에도 가슴 떨리는 말이다.
그러나 기억은 사랑하는 사람만 남는게 아니다. 미운 사람도 머리속에 남아 미운 인연으로 기억되고 있다. 살아가며 남에게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할 이유이다.
인류문명의 획기적 발명품인 휴대전화, 그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올렸다간 사라져간다. 전화기의 앞자리에 이름이 자리 잡힌다는 것, 갑작스런 이별을 예고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생에서 남기고 떠나는 친소관계의 표상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얼굴...' 예전엔 영상을 잡을 기술이 없어 손으로 도화지에나 땅바닥에 그리으로 그렸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은 영상을 잡고 보관할 기기들이 늘려있어 힘들게 동그라미 그리지 않고, 보고싶을때 마다 펼쳐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편리한 도구를 두고도 예전보다 쉽사리 얼굴들을 잊어간다. 까치도 앉지 않는 삶의 전선들이 더욱 복잡하게 엮이기 때문이다. 망각에 대한 이런 글이 있었다.
'망각은 즐거운 것일 수 있으나
거기 죽음이 있고,
기억은 고통스러우나
거기에 즐거움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얼굴이 기억에 오래 남을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파티나 친목모임처럼 즐거운 장소에서 밝고 환한 인상을 주면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좀 더 오래 남게 된다고 하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밷는다'고도 하였으니 많이 웃고 남에게 오래 기억되는게 남는 장사같다. 건강이 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