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 - 구룡산 종주 산행기
오늘은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 8월 산행지로 대모산과 구룡산을 오르는 날이다. 산행 준비를 하다 옥상 화단에 물을 주었다. 요새는 물을 주어도 주어도 허덕인다. 시든 식물에 물을 주는 것만큼 급한 일이 없다. 물을 주다보니 언뜻 가을 바람결이 느껴졌다. 더위가 물러갈 듯 아주 시원한 바람이었다. 어제 입추를 지났다. 폭염 속에서도 어디선가 가을이 오고 있을 것 같다.
가을바람
김석환
폭염의 나날 속에
언뜻
서늘한 바람이 스쳐간다
아!
가을바람
언젠가
올줄 알았던
좋은 시절
아련한 기억
서둘러 집결지인 수서역으로 향했다. 거리가 멀어 시간이 빠듯했다. 다섯 정거장을 앞두고 9시 30분에 예고된 산행 출발 시간이 되어 전화연락을 했다.
9시 40분 수서역 6번 출구로 나가서 산행을 시작했다. 산길을 가로 막듯 입구에 계단이 높다랗게 설치되어 있었다. 큰 도로를 낼 때 산자락을 깎아내며 생긴 절벽일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 완만한 산길에 접어 드니 요란한 매미소리가 들렸다.
한참 가다가 일행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A팀 B 팀이 거기서 코스를 나눠 걷는 갈림길 지점이었다. 오늘은 이 지역 강남건축사등산동호회와 연합 산행을 하기로 했다. 아까 전화를 한 강남건축사등산동호회 백회장과 회원들도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다시 출발해 오르다 보니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 숲길에 빛 그림자가 영롱하게 비추고 있었다. 완만한 흙산이라 보행에 편안함이 느껴졌지만 폭염의 날씨라 그늘 속에서도 열기가 뻗쳤다.
오늘 오르는 코스는 오래전에도 강남건축사회와 함께 오른 적이 있다. 벌써 오래전 일이 되었다. 하지만 평소 대모산을 혼자서 찾아온 적은 없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올라간 북한산에 비해 낮고 암릉미가 없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모산은 서을의 남쪽 경계를 이룬다. 산세는 낮지만 어머니의 산이라는 명칭답게 어쩐지 포근하게 다가오는 산이다.
대모산은 고도가 낮고 완만하지만 능선 길이가 긴 편이다. 수서역에서 대모산 정상까지 3.4 km 이고 대모산에서 구룡산 까지는 1.8km 이다. 하산 길을 더하면 오늘 산행 거리가 8km 정도가 된다.
산을 오르며 편안한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인근 주민 가운데 여가와 휴식을 위해 동네 산으로 여기며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정상이 600m 쯤 남은 지점을 가다보니 좌측에 헌인릉 울타리가 나타났다. 대모산이 헌릉 인릉의 진산인 형국이다.
10시 44분 대모산(291.6m)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표지판 우측에 대모산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 대모산은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하여 할미산으로 불리다 태종의 헌릉을 모시며 어명으로 대모산으로 바뀌 부르게 되었다. 한편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산 모양이 여승이 앉은 모습과 같다하여 대모산이라 하는 설과 여인의 앞가슴과 비슷한 모습이라 하여 대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방을 둘러보니 숲에 가려 시야가 트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리려는데 조망이 안 된다고 하자 조금 너머 헬기장으로 가면 잘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헬기장으로 갔다. 대모산 정상에서 100여 미터 지난 곳이다. 거기 서니 서울쪽 시야가 훤칠하게 트여보였다. 좌로부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 등이 좌우로 펼쳐보였다. 서울의 경계 지점에 놓인 산들이다. 그야말로 서울의 입지가 한눈에 펼쳐진 의미 있는 경관이었다. 특히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것이 반가웠다.
흡족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늘날씨도 매우 덥게 예고되었다. 올여름은 전국 각지에서 최고 기온을 갱신하는 매서운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열기가 군불을 지피듯 느껴지기도 한 올해 신설된 폭염중대경보 가 계속 발효중이다. 그 경보 시에는 외출과 야외 활동을 자제 하라고 했다.
앉아 있다 보니 열기가 불을 때듯 이글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땡볕에 앉아 그리는 모습을 보고 걱정하며 말을 건넸다. 한 젊은 분은 사진가인 듯 진지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폭염
김석환
맑은 하늘이
가마솥처럼 끓는다.
이글대는 태양의 열기가
숲그늘을 뚫고 온다.
이제는 제풀에 꺽이길 기다릴 뿐
피할 곳이 없다
꺼지지 않는 들불처럼
기나긴 폭염의 날들이
초목을 태우고
지친 마음을 태우며 지나간다.
젖을 보채는 아이처럼
멀리서 오는 가을을 치근댄다.
집중해 그림을 그리다보니 우리 일행이 다가왔다. 오다가 식사를 했다고 했다. 도시락은 준비했는데 식사할 여유가 나지 않았다. 일행이 잠시 머물다 구룡산으로 앞서 출발했다. 나도 그림을 다 그리고 구룡산으로 뒤따라갔다. 길 옆 철조망 울타리에 걸린 군사시설 표지가 눈에 띠었다. 그 남사면 쪽에 이 산세를 보호막 삼은 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걷다보니 오래전 서울 경계를 걸었던 때가 떠올랐다. 헌인릉 앞을 지나 성남시 경계쪽으로 한참을 에둘러 돌아갔었다.
가다보니 구룡사 갈림길 이정표가 보였다. 중간에서 내려가는가 싶어 일행에게 진행 방향을 물어보니 구룡산 정상을 들러 갈 거라고 했다.
좌측 구룡산 방향 표지를 보며 내려서다 능선을 한참 에둘러 갔다. 잠시 후 구룡산 오름길에서 B팀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정상으로 향하다 보니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종로 건축사가 구룡산 정상을 들러 가겠다고 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알겠다 하며 앞서 갔다.
12시 48분 구룡산에 도착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산에 살고 있던 열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인근을 지나가던 임신한 여인이 크게 놀라 소리를 질러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승천을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일행이 아직 머물고 있었다. 아까 지나온 헬기장처럼 서울 전경이 시원스레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시야가 너 너르게 펼쳐졌다. 전에는 거기서 양재 꽃시장 쪽으로 내려갔었다. 그 양재 너머에 한남 정맥의 청계산이 놓여 있다. 구룡산 대모산은 한남 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에 해당한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일행이 먼저 내려갔다. 나는 시원스런 조망에 끌려 그림을 조금 더 손보기하다 뒤따라갔다.
청계산 쪽으로 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지도로 식당 위치를 확인하며 우측 계단 길로 내려갔다. 옆에 지나던 분이 아까 헬기장에서 일행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며 식당 쪽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인근에 살고 있는 분이라 잘 아는 것 같았다.
가다보니 도시의 시야가 트여보였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니 지나온 대모산의 형상이 오롯히 보였다. 처음으로 대모산의 편안하고 봉긋한 면모가 눈에 담겼다.
잠시 후 너른 양재대로가 내려보였다. 도로가 지나는 터널 위를 지나갔다. 잠시 후 서울포이초등학교 앞에 도착해 식당을 찾아갔다. 먼저 온 일행이 식사를 하다 자리를 권해 앉았다. 산에서 갈증이 많이 났던 터라 시원한 맥주와 물이 반가웠다. 구룡산에서 물이 떨어져 식당에 도착하면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식당에 모인 인원이 산행에서 만난 일행보다 많았다. 식당으로 직접 온 분들도 있었다. 강남 건축사 분들이 많이 참석해 주었다. 한 분이 우리는 C코스 팀이라고 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 황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새로 나온 분들을 소개했다. 산행을 함께 한 강남건축사회 회장을 소개하며 강남 건축사 등산동호회가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의 모태가 되었다고 했다. 대학원 동기인 강남건축사회 소속 고 백기현 건축사 등도 출범의 주축이 되었다. 올해가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가 창립한지 20주년이 되어 기념으로 자료집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나도 창립맴버로서 그사이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사이 산행의 추억이 많다. 춘천 오봉산 산행 때 독사에 물려 긴급 후송된 적도 있고 하루에 혼자 50km를 걷을 때 빗속 밤길에서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그 사이 새로 만나 친분이 쌓인 분들도 많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간 분들도 있다. 산에 다녀올 때마다 꼬박꼬박 산행기를 써서 카페에 올려온 글도 많이 쌓였다. 아울러 갈 때마다 그린 전국의 산 그림도 많아져서 한국의 산하전을 가질 생각도 하고 있다. 가슴 한편 흘러간 세월이 애틋해진다.
산행을 하면서 체력이 길러진 덕분인지 회원들이 모두 건재한 모습이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히 산을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뒤풀이 찻집에서 따뜻한 대추차를 마시고 걸어서 양재 시민의 숲 역으로 갔다. 역사로 내려가는 사이 아까 헬기장에서 인사를 나눴던 분 전화가 걸려왔다. 무사히 내려왔는지 궁금해 안부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땡볕에 앉아 있는 모습이 걱정스레 비친 듯 했다. 산벗의 고마움을 느끼며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