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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연애] 03
1. 경찰서 사거리 _ 건널목 / 밤
주저앉아 고개 숙이고 있던 윤혜, 고개를 들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
김윤혜 : … 아파요.
재광, 고개 돌려 윤혜를 쳐다보면,
윤혜, 재광을 한 번 보고, 자신의 팔목을 잡은 재광의 손을 본다.
재광, 그제야 너무 꽉 잡은 윤혜의 손목 보더니, 스르륵… 놓는다.
윤혜, 천천히 일어나면,
한재광 : … 속였어요? 아빠… 계속 만나고 있었던 거예요?
김윤혜 : … 아니라고 하면… 믿어요?
한재광 : … (선뜻 대답 못한다.)
김윤혜 : 이렇게 멀어요, 그쪽하고… 나… (가려하면,)
한재광 : … (다급히) 아니, 안 멀어.
김윤혜 : …
한재광 : 아빠 아니라며. 믿는다며. 그 말… 나도 믿고 싶어졌다구.
김윤혜 : …! (건조하게 체념적으로,) 그런다구… 뭐가 달라져요. 난 7년을 믿고 또 믿어도… 맨날 이 모양인데,
겨우 믿고 싶은 거 가지고… 뭐가 달라져…
재광, 막막한 얼굴로 윤혜를 보면, 윤혜, 기운 추스르고는 그대로 길 건너간다.
재광, 뭔가 더 말하려다 말고, 가는 윤혜의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보기만 한다.
윤혜, 길 다 건너가면, 재광, 그제서야 반대편으로 건너가려 등 돌린다.
동시에 신호등 빨간색으로 바뀌고,
길을 따라 걷는 윤혜와 건널목 가운데 갇혀 막막한 얼굴로 서 있는 재광.
2. 강 목수 공방 / 밤
경자 언니, 무덤덤하게 대패질 하고 있는 강목수를 보다,
경자 언니 : 왜 그랬어?
강 목수 : 원래 주인한테 준 거 뿐이야.
경자 언니 : 주려면 진작 줬어야지, 이제 와 왜?
강 목수 : …
경자 언니 : 덕분에 당신한테 관심 많아, 그 동생.
강 목수 : …
경자 언니 : 7년 전, 그날… 거기 가지 말았어야 했어, 당신.
강 목수 : (단호하게) 그런 말 할 자격, 있어?
경자 언니, 속상해하며 강목수를 보고, 강 목수, 다시 무뚝뚝하게 대패질 한다.
3. 윤혜 집 앞 / 밤
윤혜, 대문을 열지 못하고 쳐다만 보며 집 앞에 서 있다.
4. 윤혜 집 _ 마당 / 밤
윤혜, 문 열고 들어서다, 정화수 떠놓고 빌고 있던 할머니를 보더니, 외면한다.
할머니, 그런 윤혜의 기색을 살피며,
할머니 : 왔어? (이내 눈 못 맞추고 땅만 본다.)
김윤혜 : … (뭔가 따지려다 정화수 보고 할머니 보더니 참으며,) 네.
할머니 : 저기… 그게…
김윤혜 : 좀 쉴게요.
윤혜, 안으로 들어가고, 할머니, 걱정스런 얼굴로, 들어가는 윤혜 뒷모습을 본다.
5. 재광 숙소 앞 / 밤
재광, 건물 벽에 기대 서 있으면, 신 여사, 저쪽에서 목발 짚고 온다.
한재광 : (다가가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요.
신 여사 : 내가 애야? 걱정을 왜 해!
한재광 : (부축하며,) 오늘은 일찍 자자, 피곤하다.
신 여사 : (손 뿌리치며,) 자면 뭐해, 눈 뜨면 또 지옥인데.
한재광 : … (신 여사를 빤히 보다,) 잡히면… 범인 잡히면… 지옥 아니구?
신 여사 : 그래두 지옥이지, 자식이 죽었는데. (한숨) 좀 낫기야 하겠지…
한재광 : … (미안한 표정으로 신 여사를 쳐다보면,) …
신 여사 : (쳐다보더니,) 표정이 왜 그래, 죄졌어?
한재광 : (정곡 찔려 외면한 채 어색하게 웃고,) …
신 여사, 뚱하게 쳐다보더니, 그냥 퉁명스럽게 앞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재광, 힘들게 걸어가는 신 여사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보다 따라 들어간다.
6. 윤혜 집 _ 안방 / 밤
윤혜와 할머니, 나란히 누워 있는데, 할머니, 맘 불편해 쑤석거리며 못 주무신다.
김윤혜 : (천장보고 누워,) …
할머니 : (천장보고 누워 있다 뭔가 말을 걸려고 윤혜를 보지만,) …
김윤혜 : … 왜 말 안 했어요…?
할머니 : (천장 보며,) 말해 뭐해, 니 속만 아프게…
김윤혜 : 언제부터였는데?
할머니 : 일 나구, 한 이년 지났나, 전화가 왔더라구… 나도 첨엔 뭔 소린지 몰랐다, 가 보구 알았지.
김윤혜 : … 매년 그랬어요?
할머니 : 그랬지… 고작 고거 보고 지나가겠다고… 그래도 애비라고 그렇게라도 지 자식 얼굴은 봐야 숨이라도 쉬지…
김윤혜 : (등보이고 돌아 모로 누우며,) 연락할 방법은… 있어요?
할머니 : (윤혜 등을 보더니 다시 천장 보며,) 그럼 좋게… 언제까지 저러고 떠돌아 다닐라나…
할머니, ‘관셈보살’ 하시고, 윤혜, 눈 뜬 채 생각에 잠겨 있다.
7. 재광 숙소 / 밤 → 아침
바닥에 깐 침낭 속에서 자던 재광, 잠이 안 오는지 뒤척이다, 일어나 앉는다.
윤혜 손목을 잡았던 손을 빤히 본다.
[Insert] 씬1. 경찰서 사거리 _ 건널목 / 밤
잡고 있던 윤혜 손목.
김윤혜e : … 아파요.
[현재]
재광, 손바닥을 문지르더니, 다시 자려 하는데,
침대에서 자고 있는 신 여사, 끙끙 앓는 소리 내며 뒤척인다.
재광, 일어나 가까이가 이불 잘 덮어주고는 안쓰러운 얼굴로 한참을 내려다본다.
재광, 미안한 마음에 얼른 고개 돌려, 어두운 창을 바라본다.
[시간경과] / 아침
아침 햇살 들어오고, 신 여사, 자다가 소스라쳐 놀라 일어난다.
신 여사, 몸 일으켜 방안을 둘러보면, 잘 말아 놓은 침낭, 구석에 보이고, 재광은 어느새 나가고 없다.
8. 카페 ‘그곳’ 앞 / 아침
카페 문에 ‘Closed' 팻말 걸려 있고,
재광, 그 앞에 서서 추운지 몸 잔뜩 웅크린 채 종종대며 기다리고 있다.
9. 윤혜집 _ 안방 / 아침
윤혜, 방 정리를 하다가,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빤히 보더니,
지난 밤 재광이 잡았던 손목을 내려다 보다, 다시 방 정리를 마저 한다.
10. 카페 ‘그곳’ 앞 / 아침
재광, 춥고 기다림에 지쳐 가는데,
카페 문 열리고, 경자 언니, 나오다 재광과 마주친다.
11. 카페 ‘그곳’ / 아침
재광, 어색하게 앉아 있으면, 경자 언니, 등 돌린 채 커피 만들고 있다.
경자 언니 : 그래, 뭐가 궁금한데요?
한재광 : 혹시… 우리 형 아시나요, 한재민이라고… 그 //
경자 언니 : (멈칫 놀라더니 이내 평정 찾으며 가볍게,) 네.
한재광 : !? 어떻게… (눈이 동그래져 경자 언니 등만 쳐다보는데,) …
경자 언니 : (커피 들고 와 앉으며 담담히,) 사랑하는 사이였어요, 한재민 씨랑.
한재광 : ?!!! …
경자 언니 : 같이 도망가려고 했어요, 유치하게. 재민 씨 어머니가 무지 반대하셨거든요… 형이 워낙 잘났잖아.
한재광 : 아… 네.
경자 언니 :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결국 못 왔어요, 형이…
[Insert] 터미널 앞 / 저녁 (7년 전)
끼이익, 급정거 하는 소리와 동시에, 퉁 차에 치어, 바닥에 툭 떨어지는 재민.
저만치 바닥에 떨어지는 쇼핑백.
[현재]
한재광 : … 그래서 형이 여길 내려온 거군요. 궁금했어요, 형이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도시에 내려왔었는지…
경자 언니 : …
한재광 : (문득) … 그럼 선물은?
경자 언니 : (씁쓸한 미소 살짝 짓더니,) 형이 떠나기 전에 동생에게 주고 싶어 했어요. 버릴 수가 없어서 그냥 갖고 있었는데,
동생 내려왔다는 소문이 들리니까 전해주고 싶었나 봐…
한재광 : … 근데 왜 직접 주시지 않고…
경자 언니 : 이런 얘기 다 해야할 것 같아서요.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한재광 : 네… (일어나며,) 고맙습니다, 선물 전해 주셔서…
경자 언니 : (같이 일어나며,) 가게요?
한재광 : … 네. (그냥 일어나 가면서 망설이다,) 근데, 그분은 누구예요? 파란 잠바…
경자 언니 : 아… 그냥 아는 사람요.
한재광 :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이름은…
경자 언니 : (곤란해 하며,) 좀 그래요. 심부름 한 번 해 준 것뿐인데… 공연히 그 사람 귀찮게 하게 될 것 같아 조심스럽고…
경자 언니,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눈 피하면,
재광, 살짝 의심하는 표정이 된다.
12. 경찰서 앞 / 아침
강 형사, 쇼핑백과 사진 재광에게 내민다.
한재광 : (받으며, 머쓱해,) 죄송합니다.
강 형사 : 수사하다보면 다 그렇죠, 뭐. 이제 서울 가시나?
한재광 : (대답 얼버무리며, 인사하고 돌아가려다,) 그… 저한테… (쇼핑백 보이며,) 이거 전해준 사람, 누구예요?
강 형사 : 아, 강목수라고, 무슨 공방 차려놓고 예술 하는 사람이래요, 아트. (저쪽 보더니, 손들어 보이며,) 어, 여기!
보면, 저쪽에서, 운전해 온 형기 차에서 막 내린 대웅, 이쪽으로 온다.
다가온 대웅, 여기서 뭐하냐는 표정으로 재광을 보며, 강 형사에게 차 열쇠 내민다.
강 형사 : (열쇠 받고, 저쪽 형기 차 쳐다보며,) 싹 고치셨나?
권대웅 : 뭐 일단 잡을 건 다 잡았는데, 위에다 하나 사달래세요, 너무 너덜거려.
한재광 : 그럼 전 이만. (인사하고 가려고 하면,)
강 형사 : 어머니도 같이 모시고 갈 거죠? 누누이 말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이 자꾸 와서 이래봤자,
김주평 잡는데, 절대 도움 안 돼요.
대웅, 뭐? 하는 표정으로 재광 보면,
재광, 곤란한 표정으로 대웅 눈치 보더니, 건성으로 대답하고 돌아간다.
13. 경찰서 _ 주차장 / 아침
재광, 차 뒷좌석에 쇼핑백 넣고, 폴라로이드 사진은 그대로 손에 쥔 채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주먹 날아와 빡! 맞은 재광, 기우뚱하며 사진 바닥에 떨어뜨린다.
맞은 재광, 확 쳐다보면, 대웅이 버티고 서 있다.
재광, 맞은 데 문지르며 빤히 쳐다보다 피해 돌아서면,
권대웅 : 덤벼, 자식아!
한재광 : … (무시)
권대웅 : 하… 전투력이 바닥이구만.
재광, 무시하고 바닥에 떨어진 폴라로이드 사진 집으려 하면,
대웅, 그 사진 끝을 발로 탁 밟으며,
권대웅 : 두 말 안 한다. 우리 윤혜한테서 떨어져.
한재광 : (구부린 채, 대웅 보며,) 발 빼라.
권대웅 : 니가 누구든 걔 아빠가 뭘 했든, 냅둬!
한재광 : (손 떼고 쳐다보며,) 안 냅두면.
권대웅 : 전쟁이지! (밟았던 사진 주워 들며,) 윤혜도 아냐? 뉘집 도련님이신지?
한재광 : 알아.
권대웅 : (깜짝 놀라며,) 알아? 진짜? 그런데 왜 같이 다녀!
한재광 : 좋은가부지.
권대웅 : 아놔… 농담 한번 격하게 하네. (사진 내밀며,) 서울 가라.
한재광 : (받으려고 사진 잡으며,) 일 끝나면. (사진 당기는데,)
권대웅 : (사진 끝 놓지 않고 실랑이하다 사진 보더니,) 뭐야, 찾았네!
한재광 : 뭘?
권대웅 : (맞잡은 사진 가리키며,) 이거! 이제 가면 되겠네, 서울.
한재광 : (사진 보더니 혹시나?) 알아 이거?
권대웅 : 그거잖아, 파란 잠바.
한재광 : (깜짝 놀라,) 어떻게 아는데?
권대웅 : 차 고치러 와서, 차만 맡기냐, 차키도 맡기지. 그거 무슨 돌에 숫자 써 있는 거 아냐? (자세히 보더니,) 맞네.
한재광 : 확실해? 그 파란 잠바?
권대웅 : (손가락으로 브이 만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나 2.0이야. 그니까 조심해, 너 내 눈에 또 띄면! 죽는다.
재광, 사진을 뚫어져라 보며 곰곰 생각한다.
14. 윤혜 집 _ 안방 / 아침
윤혜, 무릎 세우고 앉아, 방바닥에 들어온 햇살을 가만히 보면서 바닥에 손을 댈까 말까 망설이는데,
갑자기 집 전화벨이 울린다.
벨소리에 깜짝 놀란 윤혜, 일어나 전화를 받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긴장된다.
윤혜, 침착하게 수화기 귀에 대더니,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김윤혜 : … 아빠? (사이) 아빠지? 만나요. 어제 그 정류장요, 지금 나갈게.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일단 만나서 //
(전화 끊겼는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윤혜, 당황하고 손이 떨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15. 공사장 _ 함바집 옆 / 아침
공중전화 수화기 들고 있다 내려놓고 돌아서는 주평, 표정이 스산하다.
동료1 : (지나가다 보더니,) 아직 안 갔어? 섭섭하네, 막상 떠난다니까.
주평, 고개만 끄덕끄덕 하며 공사장 바깥쪽으로 걸어가는데, 뒷모습이 초라하고 지쳐 보인다.
16. 윤혜 집 앞 / 아침
윤혜, 황망하게 뛰어 나와 대문을 잠그려는데, 맘이 급해 열쇠가 잘 안 들어간다.
한재광e : 어디 가요?
윤혜, 놀라 열쇠 떨어뜨리고 보면, 재광이 다가와 열쇠 집어 내밀며,
한재광 : 급한가 보네.
김윤혜 : (당황해,) … 여긴 왜?
한재광 : 공방 몇 개나 있어요, 전주에?
김윤혜 : 그거… 안내소 가면 알 수 있는데, 리스트 있거든요.
한재광 : 좀 보여줄래요?
김윤혜 : (당황해,) 지금요…?
한재광 : 네.
김윤혜 : …
한재광 : 강목수란 사람 찾아야 돼요. 형 열쇠고리 가지고 있거든.
김윤혜 : (당황) …
한재광 : ? 반응이 왜 이래요? 당장 찾아주겠다 해야지.
김윤혜 : 나중에, 있다가 찾아다 드릴게요. 지금은 좀… (하며 일단 가면,)
한재광 : (보며,) 저기 문 안 잠갔잖아.
김윤혜 : (다시 와 급하게 문 잠그는데, 허둥대는 게 역력하다.) …
한재광 : (의심스러워하며,) 어디 가는데? 이거보다 급한 일이 뭔데요?
김윤혜 : … (빤히 보다,) …
한재광 : 말해요, 안 하면 따라갈 // (거예요.)
김윤혜 : (다급히 도리도리,) …
한재광 : ? … (의심에 찬 눈으로 고집 부리듯 쳐다보면,)
김윤혜 : (망설이다 결심한 듯) 아빠요… 아빠 만나러 가요.
한재광 : !
17. 도로 _ 차 안 / 낮
재광, 운전하고 있고, 윤혜, 휴대 전화를 꼭 쥔 채, 창밖만 보다,
김윤혜 : 안되겠어요, 그쪽 보면 아빠 왔다가도 그냥 갈지 몰라.
한재광 : 안 들키게 한다니까.
김윤혜 : … (여전히 불안하다.) …
한재광 : (흘끔 윤혜를 보며,) 어쩔 거예요, 만나서…?
김윤혜 : … 다시 제대로 들을 거예요, 아빠가 안 그랬다는 말.
한재광 : … 혹시 그 반대면?
김윤혜 : (불안한 표정으로 창밖만 쳐다본다.) …
한재광 : … 자수… 하시라고 해요.
김윤혜 : (다짐하듯) 그럴 리 없어요.
윤혜, 입술을 꼭 다물고, 재광, 차 속도 높인다.
18. 묘지 근처 _ 정류장 / 오후
저만치 멀리 서 있는 재광의 차.
재광, 차에 그대로 앉아 윤혜를 보고 있고, 윤혜, 길을 따라 내려온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긴장된 얼굴로 서 있는 윤혜.
[시간경과]
왔다 갔다 하며, 서 있는 윤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재광은 차에 기댄 채 윤혜를 보고 있다.
[시간경과]
버스 와서 서고, 사람 하나 내린다.
버스 지나가고 나면, 윤혜, 실망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서 있는데, 춥고 불안한 얼굴이다.
[시간경과]
윤혜, 볼이 빨갛게 언 채 버스 오는 쪽을 보고 서 있다가, 추운지 몸을 잔뜩 웅크린다.
저만치 떨어져 왔다 갔다 하던 재광, 그런 윤혜를 보더니, 자기 코트를 벗어 든다.
19. 묘지 근처 _ 산등성이 (모퉁이) / 오후
주평, 등성이 너머 멀리 도로 쪽을 살펴보면, 윤혜, 혼자 서 있는 모습 보인다.
주평,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얼굴을 한손으로 썩썩 부비고는 조심스레 윤혜에게 다가가려 하는데,
윤혜, 저쪽을 보고는 고개를 흔든다.
주평, 윤혜 시선 따라가 보면, 코트 벗어 들고 다가오다 말고 망설이더니, 저쪽으로 다시 가는 남자(재광) 보인다.
주평, 얼른 몸을 숨긴다.
20. 윤혜 동네 / 늦은 오후
신 여사, 목발 짚은 채 힘들게 수배 전단지를 벽에 붙이고 있으면,
할머니, 빈 장바구니 들고 내려오다, 벽에 붙어있는 전단지 보고 가슴 철렁해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다, 신 여사와 마주친다.
할머니 어쩔 줄 몰라 하며 몸 돌려 서면,
신 여사 : 김주평이 어딨어요?
할머니 : (당황해) 몰라요, 몰라. 어디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지만, 몰라요.
신 여사 : (노려보며,)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할머니도 엄마잖아.
할머니 : …
신 여사 : 죄를 졌으면 벌을 받아야지, 왜 도망을 쳐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냐구.
이러다 죽인 것도 모자라, 죽은 사람 만신창이 만들겠어! 그러구두 그 집 식구들은 밥이 넘어가!
할머니 : … (미안해 몸 둘 바 모르기만,) …
신 여사 : 어떻게 된 놈의 세상이 까꾸루야! 죽인 놈 집구석은 멀쩡히 돌아가고, 우리는! 나는! 자다가도 미치고 팔짝 뛰는데!
아니, 에미는 안 찾아도 지 딸년한텐 연락할 거 아녜요!
할머니 : … 걘 놔둬요. 자식 잘못 키운 내가 죄지, 걘 부모 잘못 둔 죄밖에 없어요.
신 여사 : (할머니를 노려보더니,) 그래도 핏줄이라고 감싸긴… (전단지 들어 삿대질 하며,) 자기네들이 아직도 인간인 줄 알아!
하는데, 삿대질 하던 손과 목발이 엉키면서 전단지들 화르륵 땅에 흩어진다.
신 여사, 아랑곳 않고 씩씩대며 쳐다보면,
할머니,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바닥에 구르는 아들 사진부터 줍기 시작한다.
신 여사, 싸늘하게 돌아서 가는데, 목발, 김주평의 전단지를 짚고 지나가고,
할머니, 흩어진 전단지를 하나하나 주워 손으로 싹싹 펴면서 모으고 있다.
21. 묘지 근처 _ 정류장 / 저녁
날은 어두워오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윤혜, 춥다.
저쪽에서 보고 있는 재광,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버스, 다가오자, 윤혜, 일어나 보는데, 버스, 서지 않고 그대로 스쳐 지나가면,
윤혜, 따라가며 기웃기웃 대며 쫓아가더니 실망해 다시 돌아오는데 휘청한다.
저쪽에 서 있던 재광, 안절부절 못하며 쳐다보는데,
정류장 쪽으로 돌아와 팻말을 붙잡고 있던 윤혜, 휙 돌아서더니, 갑자기 토한다.
재광, 뛰어 다가와 물만 겨우 토한 윤혜를 부축하려 하면서,
한재광 : 괜찮아요?
김윤혜 : (재광 손 물리치며,) 저리가요, 그쪽이 있으니까 아빠가 안 오잖아!
한재광 : … (윤혜를 보다가,) … 가자, 그만.
김윤혜 : 저리 가라니까!
한재광 : 안 와. 올 것 같았으면 벌써 왔다구.
김윤혜 : … 올 거예요.
한재광 : 가자구, 안 온다구.
김윤혜 : (째려보며,) …
한재광 : (달래듯,) … 아는데… 아빠가 아니다 믿고 싶은 맘은 아는데… //
김윤혜 : 그쪽이 어떻게 알아요!
한재광 : 나도 그러니까! 이젠 혹시나도 아니고 어쩌면도 아니고, 제발… 절대로 아니어야 하니까!
김윤혜 : … (고개 숙인 채 바닥만 본다.)
22. 묘지 근처 _ 산등성이 (모퉁이) / 저녁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어두운 산속(혹은 모퉁이).
주평, 고개 숙인 채 바닥만 보는 윤혜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본다.
재광이 윤혜를 부축해 데리고 차 쪽으로 가는 것을 본 주평, 조금은 안심하며, 몸을 돌려 자리를 뜬다.
주평, 조금 걸어가다가 다시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다시 뒤돌아, 울 것 같은 얼굴로 허둥지둥 뛰어간다.
23. 묘지 근처 _ 정류장 / 저녁
재광, 윤혜를 데리고 와 차에 태우려 하는데, 윤혜, 딴 생각에 빠져 탈 생각을 않는다.
김윤혜 : (문득 혼잣말 하듯,) … 왜 안 왔을까요, 아빠는.
한재광 : 못 온 걸지도 모르잖아요.
김윤혜 : … 도무지 모르겠어요. 대체 아빠가 왜… 무능하긴 해도 착한 사람이었는데…
길에서 강아지를 자꾸 주워 와서, 엄마한테 잔소리 듣고 그랬었는데… 대체 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한재광 : … 그만 생각해요.
김윤혜 : 왜… 왜… 그 생각에 한 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가 없어요. 사방에서 숨을 죄 오던 그 물 속처럼…
깜깜하고, 무섭고… 그러다, 아냐, 아빠가 아니랬어… 하면 잠시… 숨이 쉬어져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아빠가 그랬다구 하구… 난… 어떻게 된 일인지 밝힐 방법은 없고… // (목이 멘다.)
한재광 : … (안타까워 못 보겠다.)
김윤혜 : … (끊일 듯 겨우 숨 돌리고,) …
한재광 : … 있을지도 몰라요.
김윤혜 : ?
한재광 : 강목수… 열쇠고리가 자꾸 맘에 걸려. 대체 그 사람이 그걸 왜 가지고 있는지… 같이 가볼래요, 그 공방?
김윤혜 : … 가서… 아니면요?
한재광 : 다른 사람 또 찾아봐야죠, 아니라고 했다며, 아빠가.
윤혜, 재광을 쳐다보면, 재광, 힘겹게 미소 지어 보인다.
24. 여행 안내소 / 밤
모두 퇴근해 비어있는 안내소 안, 윤혜, 쓸쓸히 자신의 빈 책상 쳐다보더니, 서랍 열어 리스트를 꺼낸다.
25. 여행 안내소 앞 / 밤
재광, 게시판 위 김주평 수배전단지 심각하게 보고 서 있으면,
사진 가방 든 상아, 미진과 같이 들어온다.
주상아 : (재광에게) 뭐해, 여기서?
한재광 : (돌아보며,) 어… 늦었네. (미진에게 어정쩡하게 인사하면,)
미진도 어정쩡하게 인사하고는 둘에게 자리 피해주듯, 안내소 쪽으로 걸어간다.
주상아 : 일이 많네, 누구 대신 하느라.
하는데, 윤혜, 리스트 종이 들고 걸어 나온다.
주상아 : (윤혜 보더니, 재광 향해) 아니라며? 아니긴…
한재광 : (오는 윤혜 흘긋 보고는 시선 다른 데로 돌리며,) …
주상아 : … 부정도 안 하네.
상아, 티는 낼 수 없으나 속상해져 냉랭하게 안내소 쪽으로 간다.
윤혜, 스쳐지나가는 상아가 살짝 신경 쓰이지만 일단 누르고, 재광에게 다가와 무덤덤하게 리스트 적힌 종이 내민다.
한재광 : (받아서 보며,) 있어요?
김윤혜 : … 강씨공방이라고…
한재광 : (보며,) 아, 여기… 주인 이름이… 강… 상훈… (훑어보더니,) 한 명밖에 없네, 강씨는… (보여주며,) 여기 어딘지 알아요?
김윤혜 : (보더니,) 건지산 못 가서.
한재광 : 한 번 더 해야겠네.
김윤혜 : …?
한재광 : 길 안내요. (앞서 간다.)
26. 공방 근처 _ 도로 일각 / 밤
재광의 차, 큰길가에 세워져 있고, 재광과 윤혜, 도로에서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 길을 걷고 있다.
한재광 : 이쪽 맞아요?
김윤혜 : 네… 근데 가서 어떻게 할 거예요?
한재광 : … 가보면 알겠지. 다짜고짜 물어볼 수도 있구.
김윤혜 : …
한재광 : … (걸어가며,) … 사랑하는 사이였대요, 그 까페 주인이랑 형…
김윤혜 : …
한재광 : 둘이 도망가려구 했었대, 신 여사가 반대해서. 완전 반전이야, 초특급 엄친아였거든요, 우리 형이.
김윤혜 : … 닮았어요, 형이랑?
한재광 : 아뇨, 전혀. 그래서 우리 신 여사가 더 괴롭지…
김윤혜 : …?
한재광 : 형이랑 나, 동시에 물에 빠지면, 두말 않고 형부터 건졌을 거예요, 신 여사는.
김윤혜 : … 아닐 거예요.
한재광 : … 모르잖아, 우리 신 여사.
김윤혜 : 그래도 아니에요… 엄마잖아…
한재광 : …
김윤혜 : 그런데… 신 여사라고 부르면 어머니가 뭐라고 안 하세요?
한재광 : … (덤덤하게 지나가는 말처럼 툭,) 그러게, 안 하시네.
재광, 쓸쓸하게 웃는데, 윤혜,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그런 재광이 좀 짠하다.
27. 강 목수 공방 앞 / 밤
공방, 불 다 꺼져 있고, 윤혜와 재광, 주변에서 기웃거리며 서 있다.
재광, 공방 문에 걸린 자물쇠를 보더니,
한재광 : 멀리 갔나 본데요.
김윤혜 : … 어쩌죠?
한재광 : 아… 어디 간 거야.
하며 자물쇠를 잡아당기는데, 쑥 자물쇠 걸쇠가 빠진다.
재광과 윤혜, 깜짝 놀라 자물쇠를 본다.
윤혜, 어쩔 줄 모르는데, 재광, 조심스레 문을 잡아 당겨 본다.
김윤혜 : 뭐 해요?
한재광 : 몰라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김윤혜 : 안 돼요.
한재광 : 안되죠, 절대. 그러니까… 망이나 봐요.
윤혜, 불안해하며 쳐다보면,
재광, 훅! 심호흡 한 번 하더니, 휴대 전화 꺼내 라이트 켜고 안으로 들어간다.
28. 강목수 공방 / 밤
재광, 휴대 전화 들고 여기저기 뒤지는 중이다.
재광, 쓰레기통 안을 보다 버려진 시든 노란 꽃(다발) 꺼내 본다.
의심에 마음이 급해진 재광, 다급하게 여기저기 더 뒤진다.
재광, 작업대에 달린 서랍을 뒤지다, 열쇠고리를 발견해 꺼낸다.
손전등 비춰 보면, ‘20001224’ 라는 숫자가 새겨진 돌 펜던트가 달려있다.
[Insert] 2부, 씬51. [회상] 재광 집 _ 거실 / 아침 (8년 전)
재광, 바닥에 놓인 돌멩이 펜던트 달린 열쇠고리 본다.
돌 펜던트 가운데 커다랗게 ‘20001224’ 새겨져 있다.
재민, 나가며 손 흔들면, 손가락에 걸린 열쇠고리 돌 펜던트 같이 흔들린다.
[현재]
재광, 당황해 다른 서랍을 열면, 웨딩드레스 입은 경자 언니와 턱시도 입은 강 목수의 바스트 사진 보인다.
사진을 보던 재광, 강 목수와 경자 언니가 부부였다는 사실 깨닫고 놀란다.
29. 공방 근처 _ 도로 일각 + 차 안 / 밤
정면을 보고 운전하던 강 목수, 뭔가를 발견한 듯 속도를 늦추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면,
운전석 창 너머로 재광의 차 서 있는 것 보더니, 조금 동요하는 표정 된다.
30. 강 목수 공방 / 밤
놀라 강 목수와 경자 언니의 결혼사진을 쳐다보던 재광, 강 목수 옆 쪽 1/3 정도 접힌 부분 펴 보면,
정장 입은 재민, 강 목수 옆에서 어정쩡한 표정 짓고 있다.
재광, 완전히 놀라고, 날짜 보면, 2004년 5월이다.
31. 강 목수 공방 앞 / 밤
불안한 표정으로 망을 보던 윤혜, 저쪽에서 라이트 켠 차 다가오자,
김윤혜 : (놀라) 저기…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다 안으로 들어간다.)
32. 강 목수 공방 / 밤
재광, 한 대 맞은 표정으로 사진 속 강 목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원래 접혀있던 형 부분을 도로 접고는 형의 열쇠고리를 꽉 쥐는데,
김윤혜 : (뛰어 들어 오며, 작은 소리로,) 누가 와요!
사진보고 있던 재광, 놀라 열쇠고리와 사진, 급하게 주머니에 넣고는 윤혜와 밖으로 나가려는데,
밖에 차 와서 서는 소리 들린다.
재광과 윤혜, 얼음!
33. 강 목수 공방 앞 / 밤
강 목수, 승합차 라이터 끄며 내리고는, 공방문 열려 하는데, 자물쇠 빠져 있다.
날카롭게 긴장하는 강 목수, 주변을 둘러보더니, 문을 확 연다.
34. 강 목수 공방 / 밤
문 확 열리는데, 안에 아무도 없다.
강 목수, 불을 켜고 안을 둘러보는데, 살짝 열린 서랍 보인다.
강 목수, 서랍을 열어 안을 보는데, 결혼사진 (재광이 가져가서) 없다.
당황한 강 목수, 불 탁 끄고 좀 허둥지둥 나간다.
e. 차에 시동 거는 소리 들리고, 잠시 후 차 움직이는 소리, 멀어지는 소리 들린다.
작업대 아래, 어둠 속에서 손을 꼭 쥔 채 구겨지듯 나란히 누운 모습으로 숨어 있던 재광과 윤혜, 휴… 마주 보더니,
문득 손잡고 있었던 것 깨닫고 당황해 동시에 얼른 놓는다.
재광, 흠… 살짝 딴청하면, 윤혜, 무안해 외면하며 먼저 기어 밖으로 나가고,
재광, 애써 태연한 얼굴로 따라 나간다.
35. 공방 근처 _ 도로 일각 / 밤
재광의 차, 급하게 출발하면,
저쪽에 세워진 승합차 안에서, 멀어지는 재광의 차를 바라보던 강 목수, 공방 쪽으로 차 돌린다.
36. 도로 갓길 _ 차 안 / 밤
재광과 윤혜, 나란히 앉아 있다.
재광, 차에 시동 끈 채, 앞만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한재광 : … (문득) 아내가 다른 남자랑 도망가려 했다면, 근데 그 남자가 자기 친구라면… 그 남편 심정이 어떨 것 같아요?
김윤혜 : ?
한재광 : 죽이고 싶지 않겠어요? 자기 와이프랑 바람난 친구를.
김윤혜 : … (놀라 쳐다보면,)
한재광 : (사진 보여주며,) 부부였나 봐요, 까페 주인이랑 강 목수.
김윤혜 : (사진 보더니, 좀 놀라,) …?
한재광 : (이어, 접힌 부분 펼치더니,) 형이랑은, 친구고.
김윤혜 : (사진에서 갑자기 재민 얼굴을 마주하자, 덜컥해, 얼른 시선을 피하며,) …
한재광 : (그런 윤혜 맘 눈치 못 챈 채, 사진 주머니에 넣으며,) 강 목수가 형을 처음부터 죽이자, 했을 수도 있고…
뭐 미행 같은 거 하다 맞닥뜨려 어쩌다보니 죽였을 수도 있고.
윤혜, 석고처럼 굳어 있으면, 재광, 맘이 급해져 차에 시동 건다.
37. 경찰서 _ 사무실 / 밤
강 형사, 서류를 뚫어지게 보는 중이고, 형사1, 페이퍼 들고 다가오더니,
형사1 : 그… (강 형사에게 보여주며,) 김주평이네 집 전화가 요즘 좀 이상해요. 그 딸 전화도 그렇고…
공중전화에서 오는 전화가 있는데요?
강 형사 : (서류에서 눈 안 떼고 건성으로,) 응…
형사1 : (반응을 이상해하며,) …? 근데 뭐 보십니까?
강 형사 : 그 까페 주인 말야, 알고 보니까 강 목수, 본명 강상훈이랑 부부였네.
2004년 5월에 결혼해서 2005년 3월에 이혼을 했단 말이지. 한재민은 2005년 2월에 죽고…
형사1 : 이거 김주평이 확실한 거 아닙니까?
강 형사 : 김주평이 사고를 내고, 차에 치인 한재민을 싣고 산까지 간 건 확실한데.
만일 그냥 버리고만 왔으면… 그 사이에 누군가 따라가 한재민을 죽였다면?
형사1 : 그럴 만한 사람이 있어요? 동기가 있어야죠.
강 형사 : 당시엔 워낙 증거가 많아서 꼼꼼히 안 봤는데 말이지. 다시 보니 동기를 가질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같고…
(곰곰 생각하다,) 일단 김주평 가족들 전화, 실시간 모니터 걸어 놓고, 담에 오면 바로 대처할 수 있게 해놔.
형사1 네, 하고 나가는데, 재광, 급하게 들어와,
한재광 : (일단 사진과 열쇠고리 강 형사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공방에서 찾은 겁니다. 까페 주인이 형 연인이었던 건 들으셨죠?
강 형사 : (열쇠고리 보고 살짝 심각한 표정짓다, 금방 아무 일 아닌척 재광을 보며,) 그냥 줬을 린 없고, 어떻게 들어갔는데요?
한재광 : … (당황)
강 형사 : 무단 침입했습니까? 아 나… 이 식구들 진짜 못 말리겠네.
어머닌 대낮부터 서장님 면담 요청한다고 서장실에 진치고 계시고, 아들은 //
신 여사e : 뭐해! 여기서!
돌아보면, 신 여사 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다.
재광, 완전 당황한 얼굴이고, 강 형사, 골치 아프다.
38. 경찰서 _ 복도 / 밤
재광, 불안 불안한 표정으로 신 여사 따라 나오는데,
윤혜, 여자 화장실에서 씻은 손 털며 나오다 마주친다.
신 여사 : (확 몸 돌려 재광을 노려보더니,) 또! 또!
한재광 : … (낭패)
신 여사 : (재광에게 다가와 목발을 확 들며,) 너 미쳤어!
한재광 : (잡아 만류하며,) 사정이 있었어.
신 여사 : (속 터져,) 뭔 사정!
한재광 : (주변 둘러보며,) 나가 얘기해요.
신 여사 : (버럭!) 뭘 나가!
한재광 : (체념하고 달래듯) 아닐지도 모른다구… 범인 따로 있을지도 몰라요.
신 여사 : 뭐? … 그래서 좋아? 좋아서 둘이 이러구 다녀!
한재광 : (윤혜 걱정돼 슬쩍 쳐다보곤, 바로 신 여사에게,) 그게 아니라…
신 여사 : 아니면! 이제와 아니면 어떡하라구. 누군지 알고도 못 잡고 7년인데, 이제 와 딴 놈이면 그걸 어디 가 잡아!
나는? 김주평이 개다, 7년 내내 죽어라 이갈았던 나는 어떡하구. 범인 따로 있다니까, 난 내장이 다 내려앉는 거 같은데,
넌 좋아! 그래서 그 범인이 누군데! 누구야 도대체 그 찢어죽일 종자가!
한재광 : … 확실하지 않아요.
신 여사 : 아니! 확실해! (윤혜를 노려보며,) 저거 애비, 김주평이야!
신 여사, 이를 앙다물고 밖으로 나가면, 재광, 몹시 미안한 얼굴로 윤혜를 쳐다본다.
39. 경찰서 _ 건물 앞 / 밤
신 여사, 절뚝이며 계단 걸어 내려오면, 바로 뒤에 재광, 내려오고, 좀 떨어져 윤혜 내려온다.
건물에서 나온 형사1, 형사2. 바쁘게 뛰어 스쳐 가며,
형사2 : 강상훈은 왜 데려오라는 거야? 이 밤에.
형사1 : 갑자기 김주평한테는 없는 동기가 강상훈한테서 튀어나왔다잖냐.
형사2 : 여차하면 재수사하겠는데요.
재광과 윤혜, 놀라 서로 바라보는데, 신 여사, 휙 뒤를 돌아본다.
얼른 서로 눈길을 거두는 재광과 윤혜.
신 여사 : 너, 당장 서울 가! 여기서 분탕질 말고 당장 올라가!
한재광 : … (신 여사 부축하며,) 알았으니까, 일단 가자구요.
신 여사 : 놔! (재광의 팔 뿌리치고는 앞서 가면,)
한재광 : … (일단 따라가는데,)
신 여사 : 따라올 생각 마. 절대로!
재광, 멈칫하면, 신 여사, 입구까지 들어오는 택시 잡는다.
40. 윤혜 동네 / 밤
재광과 윤혜, 나란히 걸어 올라오고 있는데,
윤혜, 잔뜩 경직돼 휴대 전화 꼭 쥐고 걷는다.
한재광 : (윤혜 보더니,) 그건 왜 그렇게 쥐고 있어요.
김윤혜 : … 전화 올 까봐.
한재광 : 누구, 아빠?
김윤혜 : …
한재광 : 오면, 뭐라고 할 건데요.
김윤혜 : … 똑같은 거 물어보겠죠… 아직 모르는 거니까.
한재광 : … 한 가진 확실해요.
김윤혜 : … (재광 보면,) ?
한재광 : (씩 웃으며,) 가능성이 생겼다는 거. 7년 만에 처음으로.
윤혜, 울컥, 안심되면서, 새삼 기쁘다.
41. 강 목수 공방 / 밤
강 목수, 급하게 짐 챙기고 있는데, 형사1, 형사2, 들이 닥친다.
가방에 넣으려던 짐, 툭 떨어뜨리는 강 목수.
42. 윤혜 동네 / 밤
재광과 윤혜,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한재광 : … 만약에… 진짜로 아빠가 아니라고 하면… (윤혜를 보며,) 뭐하고 싶어요?
김윤혜 : …
한재광 : … (시선 돌리며, 지나가듯,) 나는… 연애하고 싶어요, 그쪽이랑.
김윤혜 : … (우뚝 멈춰 선다.)
한재광 : 그냥, 남들 하는 거처럼 평범하게…
김윤혜 : … (재광을 빤히 본다.)
한재광 : 그러니까… 힘 빼자구요. 아직은 아닌 거니까. 나중에 아빠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모르는 거니까…
김윤혜 : …
한재광 : 그런 의미에서…
김윤혜 : …?
한재광 : (윤혜를 빤히 보더니,) 우리… 내일도 만날래요?
김윤혜 : …!
43. 거리 / 밤
신 여사, 하염없이 걷고 있다.
44. 윤혜 집 _ 마당 / 밤
윤혜, 대문에 등지고 기대 설레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으면,
담 너머로 골목 따라 내려가는 재광 보인다.
45. 카페 ‘그곳’ / 밤
경자 언니, 안에 있는 쪽방에서 나와, (영업 끝난) 카페 문 조심스럽게 열면,
신 여사 서늘한 표정으로 노려보더니, 철썩 따귀부터 날린다.
46. 경찰서 _ 취조실 / 밤
강 목수, 강 형사 앞에 앉아 있다.
강 형사, 사진과 몇몇 자료 등을 놓고 무언가 묻고 있는데,
강 목수, 입 꾹 다문 채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
47. 재광 숙소 / 밤
재광, 쓰러지듯 벽에 기대앉는다.
재광, 바닥에 놓인 가방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잡아당겨 연다.
쑤석쑤석 안을 뒤지더니, 형이 준 드럼 스틱을 꺼낸다.
드럼 스틱을 손가락에 낀 채 위 아래로 건들건들 흔들던 재광, 문득 멈추고는 가만히 드럼 스틱을 보더니,
갑자기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건다.
한재광 : 강 형사님…
48. 경찰서 앞 / 밤
강 형사, 통화 중이다.
강 형사 : 아.. 나, 어머니나 아드님이나 똑같네. 그런 거 못 가르쳐드린다니까. (사이) 도와줘 고맙긴 한데…
(사이, 인상 쓰더니 마지못해,) 하… 긴급 구속영장 떨어졌어요, 강 목수. (사이) 자백이든 증거든
뭐가 확실한 게 나왔으니까 영장이 떨어졌죠. 아, 몰라 몰라, 나 수사해야 돼 그만 끊읍시다.
강 형사,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49. 재광 숙소 / 밤
재광, 전화를 끊고는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드럼 스틱을 바라본다.
50. 윤혜 집 _ 마당 / 밤
할머니, 정화수 떠 놓고 빌고 있고,
윤혜, 휴대 전화 손에 쥔 채 뒤쪽에 떨어져서 그런 할머니를 가만히 보고 있다.
딩동, 윤혜 전화기에 문자 들어온다.
윤혜, 전화기 열어서 보면, ‘구속영장 떨어졌대요, 잘됐죠?’
문자를 본 윤혜, 울컥한다. 애써 눈물 참아 어룽어룽한 눈으로 그 문자를 다시 보더니, 한숨 돌리고는,
연신 두 손 비비며 몸 숙여 빌고 있는 할머니에게 얘기하려다, 일단 참는다.
51. 재광 숙소 / 밤
재광, 바닥에 깐 침낭 속에서 색색 잘 자고 있는데,
신 여사만, 허리를 곧추 세운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넋이 완전히 나갔다.
52. 윤혜 집 _ 안방 / 밤
할머니, 세상 모르고 주무시고,
윤혜, 앉아서 잠든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다 거칠게 주름진 손을 가만히 잡는다.
53. 재광 숙소 / 아침
머리 감은 재광, 수건으로 말리며 나오다, 이불 싸매고 누워 있는 신 여사를 본다.
한재광 : (가까이 가,) 어디 아파요?
신 여사 : (누운 채) 서울 가라니까.
한재광 : …
신 여사 : (이불 확 젖히고 일어나며,) 대체 왜 안 가는데? 언제부터 니가 그렇게 니 형 일에 관심이 있었다구!
왜 갑자기 수선을 부려서 사람 속을 후떡 뒤집어, 뒤집길! 당장 가, 서울!
한재광 : … 모시고 가야지, 신 여사. 여기 돌아가는 상황 정리되는 것도 보고…
신 여사 : 돌아가는 상황 뭐? 그 니가 말하는 범인일지도 모르는 그거!
한재광 : …
신 여사 : 꿈 깨, 좀 있음 풀려날 거야. 못 믿겠음, 가봐, 경찰서.
한재광 : (한 대 맞은 얼굴,) !
신 여사 : 서울 가, 그리고 다시는 니 형 일에 상관하지 마.
재광,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이불 확 덮고 눕는 신 여사를 본다.
54. 윤혜 집 _ 안방 / 아침
윤혜, 하얗게 셔츠를 다려 옷걸이에 걸다, 문득 집 전화기를 본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
55. 경찰서 앞 / 아침
재광, 차에서 내려 헐레벌떡 건물 쪽으로 뛰어가다 멈칫 선다.
보면, 경자 언니, 강 목수와 함께 강 형사 배웅 받으며 경찰서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뛰어오던 재광과 눈이 마주친 강 형사, 이마를 긁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재광, 차에 오르는 강 목수와 경자 언니를 보더니, 자신의 차로 뛰어 간다.
56. 강 목수 공방 앞 / 오전
승합차 와서 서면, 경자 언니, 운전석에서 내리고, 보조석에서 강 목수 내린다.
재광의 차, 뒤에 와서 서고, 재광, 내리면,
경자 언니, 재광을 보더니, 안으로 들어오라는 표시 하고는 들어간다.
재광, 머뭇머뭇하다 따라 들어간다.
57. 강 목수 공방 / 오전
강 목수, 커피 만들고, 경자 언니, 정수기에서 물 받아 들고 온다.
한재광 : (머뭇거리다, 참지 못하고 불쑥,) 어떻게 된 겁니까? 구속영장까지 나왔다던데, 대체 어떻게…!
강 목수, 외면하고 있고, 경자 언니, 재광을 한 번 보더니,
경자 언니, 손에 들고 있던 차 키 등이 달린 열쇠고리, 강 목수 작업대 위에 얹어놓는다.
경자 언니 : 이건, (강 목수 가리키며,) 이 사람 꺼. 이건 (백에서 뭔가를 꺼내 열쇠고리 옆에 나란히 놓으며,) 한재민 씨 꺼.
재광, 금방 이해가 안가 두 개의 열쇠고리를 쳐다만 본다.
똑같은 날짜가 새겨진 똑같은 열쇠고린데 한 쪽만 열쇠들이 달려있다.
재광, 얼떨떨해 경자 언니를 보면,
경자 언니 : 2000년 12월 24일… 둘이 처음 만난 날이래요.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었어요.
58. 터미널 앞 + 터미널 안 / 저녁 (7년 전) - 회상 <교차편집>
- 터미널 앞,
택시에서 내린 경자 언니, 길에 서 있는 재민에게 따지듯 다가가려 하면,
재민, 길 건너 터미널 입구 쪽을 보더니 활짝 웃는다.
재민의 시선 따라가 보면, 터미널 안으로 막 뛰어 들어가는 강 목수의 뒷모습 보인다.
경자 언니e : 그날… 같이 도망가기로 한 사람 말예요.
재민, 뭐가 그리 좋았는지 급하게 서둘러 건널목 건너려는 순간,
끼이익, 급정거 하는 소리와 동시에, 차에 치어, 바닥에 툭 떨어지는 재민.
저만치 바닥에 떨어지는 쇼핑백.
- 터미널 안,
설레어 기다리고 있는 강 목수.
- 터미널 앞,
사람들 몇 몰려들고, 놀란 주평, 차에서 뛰어 내려와 주변을 보더니, 재민을 번쩍 안아 들고는 차에 싣는다.
차에 실리며, 반 쯤 펼쳐진 재민의 피 묻은 손에서 툭 떨어지는 열쇠고리.
경자 언니, 바닥에 떨어진 쇼핑백을 들고, 차 쪽으로 가면, 주평의 차, 급하게 출발했다.
경자 언니, 바닥에 떨어진 피 묻은 열쇠고리를 줍는다.
- 터미널 안,
가방 든 강 목수, 돌멩이 펜던트가 달린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으면,
경자언니, 다가와 피 묻은 같은 펜던트가 달린 열쇠고리를 내민다.
강 목수, 놀라 그 펜던트를 잡아채고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 터미널 앞,
뛰어나온 강 목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빈 길을 바라보더니, 풀썩 무릎 꺾여 앉는다.
손에 들려있는 똑같은 펜던트를 단 두 개의 열쇠고리, 하나에는 피가 묻었다.
절망하는 강 목수.
59. 강 목수 공방 / 오전
여전히 절망적인 표정의 강 목수, 괴로운지 밖으로 나간다.
한재광 : … (당황한 얼굴로 나가는 강 목수 보다,)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건데요?
경자 언니 : 어머니요…
한재광 : !…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세요?
경자 언니 : 예전에 내가 찾아갔었거든요, 재민 씨 좀 말려 달라고. 물론 그땐 아예 못 들은 척 하셨었는데…
형 그렇게 되고 찾아오셨었어요. 밖으로 얘기 새면 나도 죽을 거다, 니 눈앞에서… 그러시더라구요.
재광, 벌떡 일어나 팔을 들어 머리를 감싸고, 경자 언니, 역시 쓸쓸한 표정이다.
60. 강 목수 공방 앞 / 오전
재광, 절망해 거칠게 문 열고 나오는데,
공방 옆에 기대 서 있던 강 목수, 재광을 쓸쓸히 쳐다본다.
재광, 그런 강 목수를 외면한 채 바닥만 툭툭 차더니, 좀 멀리 떨어져 나란히 기대선다.
강 목수 : … 동생 힘들어질 거라고… 많이 미안해했어요, 형이…
한재광 : … (맘이 아려,) …
강 목수 : (가슴이 저릿해 고개 돌려 먼 곳 본다.) …
한재광 : …
강 목수 : … 미안해요…
한재광 : …
강 목수 : …
한재광 : … 그냥… 평범하게… 그러니까, 보통으로 하는 연애같은 거… 해야겠단 생각… 한 적 없으세요?
강 목수 : … (담담히) 그런 게 따로 있나, 뭐…사랑하면 보고 싶고, 보고 싶으니까 자꾸 만나고… 그러면 다 보통의 연애죠.
강 목수, 쓸쓸히 웃으면, 재광, 그런 강 목수를 보다가 자기 발끝만 쳐다본다.
61. 윤혜 집 _ 안방 / 오전
윤혜, 흰 셔츠 차려 입고 거울 본다.
윤혜, 화장대 서랍을 빤히 보더니, 가만히 열어 보면, 귀걸이 나란히 놓여 있다.
윤혜, 그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다 들어 귀에 대본다.
귀걸이랑 수수한 옷이 안 어울려 갸우뚱 하던 윤혜, 뒤돌아 장롱을 본다.
62. 재광 숙소 / 낮
문 열리고, 재광, 들어오면, 신 여사,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재광,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화나 거칠게 짐을 싸면,
신 여사 : 다 개소리야, 믿지마. 아니 들은 적도 없는 거야.
한재광 : … (쳐다본다.)
신 여사 : 니 형이 너무 잘났으니까 못 잡아 먹어들 그러는 거야.
한재광 : (다가가) … 어떻게 이래… 형이 선택한 거잖아. 어떻게 그런 걸 송두리째 무시하고 부정할 수 있는데?
신 여사 : 누가 무시하고 부정을 해! 상식적으로 말이 돼? 니 형이 어떤 사람이야? 완벽했어.
완벽한 아들에 주변에서 다 탐내는 일등 사윗감이였다구, 근데 뭐? 어따 대고 모함이고 수작들이야!
한재광 : 그건, 그냥… 사랑한 거예요. 형이 누군가를 사랑한 거뿐이라구요!
신 여사 : 더 크게 떠들어! 그렇게 떠들고 다녀 봐! 찬 바닥에서 그렇게 죽은 것도 분이 안 풀리는데, 니 형 얼굴에 똥칠해봐, 어디!
이놈의 김주평이가 빨리 잡혀야지, 도무지 끝나지가 않아. 뻑하면 수사한다고 들추려들고…
동생이란 놈은 정신이 나가 저 지경이고. 내가 니 형 목숨은 못 지켰어도, 니 형 명예는 지켜. 죽어도 그건 할 거야.
한재광 : 그건 명예도 뭣도 아니구, 그냥 신 여사가 믿고 싶은 걸 지키는 거뿐이라구.
그거 깨뜨리지 않으려고 형이 사는 내내 얼마나 숨차했는지 알아요?
신 여사 : (확 쳐다보더니,) 숨이 왜 차? 니 형이!
한재광 : … 형은 신 여사만 아니었으면,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았을 거예요. 맨날 일등 일등 타령만 안 했어도,
적당히 놀면서 2~3등 하면서 살았을 거고, 연애도 눈 딱 감고 모른 척 해줬으면, 그렇게 도망칠 생각까진 안 했을 거고,
그럼 어쩌면 여길 내려오지도 않았을 거고 //
신 여사 : 그럼 죽지도 않았을 거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더 지옥인거야. 니 형이 그런 원망 갖고 구천을 떠돌 테니까,
다 알고 나면, 너도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 거니까. 근데 아냐!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죽인 놈 따로 있는데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김주평 그 쳐 죽일 놈 때문이지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신 여사,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재광, 숨을 몰아쉬며 신 여사를 쳐다보다, 확 밖으로 나간다.
63. 다리 위 + 버스 정류장 / 낮 <교차편집>
- 다리 위,
재광, 미친 듯이 뛰어 다니다 우뚝 멈춰 서더니, 숨이 턱에까지 차, 허리를 반으로 접고는 숨을 몰아쉬며 강을 본다.
- 버스 정류장,
원피스 예쁘게 차려 입고 귀걸이까지 한 윤혜, 설렘을 누르며 기다리고 있다.
- 다리 위,
재광, 시계를 보고,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한 발 떼더니, 더 가지 못하고 도로 난간에 기대선다.
64. 버스 정류장 / 낮
풀죽어 발끝 보며 기다리고 있는 윤혜, 시계를 보더니 일어난다.
저쪽에서 뛰어오던 재광, 예쁘게 차려 입은 윤혜를 보더니 쿵…! 마음이 내려앉아 멈칫 서서 한동안 바라본다.
윤혜, 고개 빼고 반대편을 보다가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누군가의 가슴팍에 거의 부딪힐 뻔 해 놀라 쳐다보면, 숨 몰아쉬는 재광이다.
한재광 : (애써 밝게,) 미안해요, 늦었죠?
김윤혜 : (반갑지만 뚱한 얼굴로,) 원래 여자가 늦는 거라던데.
재광, 복잡한 표정으로 윤혜를 바라보는데, 버스 들어온다.
한재광 :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다가,) 일단 타죠.
김윤혜 : ?
재광, 윤혜 손을 바라보더니, 일단 탁 잡고 버스에 오른다.
재광의 손에 끌려 버스에 오르는 윤혜.
65. 도로 _ 버스 안 / 낮
재광과 윤혜, 손잡고 올라온다.
윤혜, 잡힌 손이 불편한데 딱히 비틀어 빼기도 좀 그래 그냥 잡힌 채 있는 중이다.
두 명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 비어 있는 것을 본 재광.
한재광 : (빈자리를 빤히 보더니 윤혜에게,) 앉을래요?
윤혜, 망설이다 자리 쪽으로 가면서 잡힌 손을 슬쩍 뺀다.
윤혜, 안쪽에 앉으면, 재광, 바깥쪽에 앉는다.
윤혜, 창문을 조금 열면, 창으로 이른 봄바람이 들어오자,
윤혜, 숨통이 약간 트이는 듯, 흠… 작게 숨을 들이 마신다.
재광, 그런 윤혜를 바라보다, 반대편 창 너머를 바라본다.
김윤혜 : (재광 보며,) … 지금 어디 가요?
한재광 : (마주 보며,) … 어디 갈까요?
김윤혜 : … 뭐 할 건데요?
한재광 : 뭐 하고 싶은데?
김윤혜 : (픽 웃으며,) 그냥, 남들 하는 거…
한재광 : 그래 그거. 밥 먹구, 영화 보고, 차 마시고, 뭐든 남들이 하는 거 다…
윤혜, 다시 창으로 눈을 돌리면, 재광, 그런 윤혜(귀걸이)를 빤히 본다.
재광의 눈길 느껴져 돌아보는 윤혜. 새삼 귀걸이 한 게 생각나 쑥스러워 어색하게 귀걸이를 가리듯 만진다.
그런 윤혜를 보는 재광, 속이 쓰리다.
66. 영화관 _ 매표소 / 오후
윤혜, 영화 포스터를 보다 다가오는 재광을 보고 빙긋 웃으면,
재광, 예매한 티켓 들고 애써 밝게 마주 웃으며 다가오더니,
한재광 : (티켓 두 장 코트주머니에 넣으며,) 한시간 반 정도 기다려얄 것 같은데…
김윤혜 : 네…
한재광 : 일단… (곰곰) 밥부터 먹을까요?
김윤혜 : (끄덕끄덕) …
67. 한식 식당 / 오후
한상 가득 한정식 차려져 있고, 재광과 윤혜, 마주 앉아 식사 중인데,
둘 다, 반찬엔 제대로 손도 안 대고 먹는 게 시원치 않다.
한재광 : (고개 들어 윤혜 보더니,) 맛없어요?
김윤혜 : 아니… 이렇게 거한 상은 좀… 어색해서…
한재광 : 나둔데…
김윤혜 : … (조심스레,) 강 형사님 한테… 새로 들은 거 없어요?
한재광 : (밥 떠 넣다 목이 턱 막혀, 말도 못한 채 고개만 도리도리,) …
김윤혜 : … 언제까지 할까요? 수사는…
한재광 : (힘들게 꿀떡 삼키고는, 얼버무리듯) 거의 끝나가나 봐요…
김윤혜 : … 그럼… 곧 확실해지겠네요. (재광을 빤히 보면,)
한재광 : … (무마하듯) 일단 먹자구요, 많이.
윤혜, 어디로 젓가락을 가져가야할 지 여전히 망설이고, 황망해진 재광, 결국 밥을 물에 만다.
윤혜, 그런 재광을 빤히 보더니, 자기도 밥 한 숟가락 떠 물에 만다.
물에 만 밥 급하게 입에 떠 넣는 재광, 편하게 먹는 윤혜와 마주 보며, 웃는다.
68. 거리 / 오후 (식당 → 영화관)
윤혜와 재광, 나란히 걷는데, 윤혜, 표정이 한결 부드럽다.
그런 윤혜의 옆모습을 보는 재광,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아파, 쳐다보며 걷는데,
재광의 눈길을 느낀 윤혜, 고개 들어 재광을 쳐다본다.
김윤혜 : …?
한재광 : (쳐다보며,) 어렸을 때도… 하앴어요?
김윤혜 : …?
한재광 : (앞쪽으로 시선 돌리며, 문득 궁금해져,) 어떤 어린이였어요, 그쪽?
김윤혜 : … (혼자 빙긋 웃더니,) 1등이었어요.
한재광 : 공부 잘했구나.
김윤혜 : 훌라후프…
한재광 : 훌라후프?
김윤혜 : 5학년 때 갑자기 훌라후프 돌리기 대회를 했었거든요.
한재광 : …?
김윤혜 : 1시간 11분 34초, 내 기록이에요.
한재광 : 우와! 한 번도 안 떨어뜨리고?
김윤혜 : (약간 으쓱하며,) 네…
한재광 : (윤혜의 아래 위 훑으며,) 쭉 좀 하지, 그럼 S라인 뭐 이런 거…
김윤혜 : (얘 봐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
한재광 : (웃으며,) 까진 아니어도 되겠다, 이쁘니까…
윤혜, 무안해 하며 살짝 고개 숙이고 웃는데, 해맑다.
재광, 그렇게 맑게 웃는 윤혜 얼굴 보는데, 확 가슴이 아프다.
한재광 : (화제 돌리듯,) 난 맨날 3번이었어요.
김윤혜 : ?
한재광 : 중1 때까지 반에서 맨날 3번.
김윤혜 : … (끄덕끄덕) 아… (문득) 그런데 그거 키 순서대로 하는 거 아녜요?
한재광 : 맞아요.
김윤혜 : (재광을 올려다보더니,) 근데 뭐 먹고 이렇게 컸어요?
한재광 : (웃으며,) 욕먹고. 우리 신 여사한테 진짜루 욕 엄청 먹었거든요.
어느새 영화관 앞, 재광, 멈춰 선다.
김윤혜 : (같이 멈춰 서며,) 엄마 속 무지 썩였구나. … 근데… (조심스럽게) 어머니는… 뭐라세요, 영장 나온 거 아시죠?
한재광 : … (맘 확 불편해지고,) 뭐… 그냥.
김윤혜 : ?
재광, 딴청 하듯 주변 둘러보다, 입구에 있는 스티커 사진 기계를 보더니,
한재광 : (스티커 사진 기계 가리키며 무마하듯,) 우리 이거나 찍을까요?
김윤혜 : … (보더니, 픽 웃으며,) 애들인가…?
한재광 : 찍어요, 같이 찍자구.
김윤혜 : … 다음에요…
한재광 : 다음에, 언제?
김윤혜 : … 진짜루 아빠 아니면… 그 때 같이 찍어요.
방긋 웃으며,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한재광 : … (윤혜 코트 소매 잡으며,) 그럼… 혼자라도 찍어요.
김윤혜 : ?
한재광 : 모델이 너무 훌륭하잖아.
김윤혜 : (쑥스러운 듯 웃으며,) 싫어요…
한재광 : 예뻐서 그래요, 오늘만 보기엔 너무 예뻐서!
재광, 윤혜를 잡아 돌려 세우더니 억지로 기계 안으로 밀어 넣는다.
- 기계 안, 윤혜, 어정쩡하게 밀려들어오더니, 휴… 포기한다.
재광, 이러저러한 기계 조작들을 하더니,
한재광 : (버튼 가리키며,) 이것만 누르면 돼요.
김윤혜 : (재광을 빤히 보기만) …
한재광 : 왜요?
김윤혜 : 그냥… 이런 거 찍으려니까…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내가.
한재광 : … (울컥!)
김윤혜 : 그래서… (재광 보며,) 생각났어요.
한재광 : … 뭐가?
김윤혜 : 만약에, 진짜루 아빠가 아니면, 뭘 하고 싶은지…
한재광 : (쳐다보며,) ?
김윤혜 : 나도 연애하고 싶어요, 그쪽이랑.
한재광 : (깜짝 놀라,) …! (아픈 맘 누르며,) 그래, 그러자.
김윤혜 : (방긋 웃으며 끄덕끄덕) …
한재광 : (더 쳐다보지 못하고,) 얼른 찍어요, 웃어야 돼! (나간다.)
- 기계 밖, 나온 재광, 화난 사람처럼 뚱하게 서 있다.
- 기계 안, 윤혜, 모니터를 보는데, 점점 기분이 좋아져, 자기도 모르게 활짝 웃는다.
순간, 번쩍! 플래시가 터진다.
- 기계 밖, 재광, 스르륵 무너진다.
69. 윤혜 집 앞 / 오후
주평, 주변을 살피며 다가와 집 안을 기웃기웃 하는데, 안엔 아무도 없다.
70. 영화관 입구 / 오후
찍은 스티커 사진 들고 나오던 윤혜, 재광이 사진에 눈길을 주자, 안 보여주겠다는 듯 뒤로 감추면,
한재광 : (관심 없는 척 하며 다가와) 팝콘 먹을래요?
김윤혜 : (어디서 파나 둘러보며,) 내가 사 올게요.
하는데, 재광, 같이 둘러보는 척 하더니, 윤혜 손에 든 사진을 얼른 잡아챈다.
윤혜, 안 돼요, 하며 도로 빼앗으려는데, 휴대 전화벨 날카롭게 울린다.
재광, 순간 불길해 멈칫 하면, 윤혜, 사진을 뺏으려다 말고 전화기를 꺼낸다.
액정을 확인하는 윤혜, 확 경직되고, 재광, 당황하는 표정 된다.
전화벨 끈질기게 울리고, 숨 고른 후, 윤혜, 전화 받으려고 하면,
한재광 : (다급하게,) … 받지 마요!
김윤혜 : … 아빠예요…
윤혜, 침착하게 받으면, 재광, 완전 미치겠다.
71. 윤혜 동네 _ 공중전화 / 오후
주평, 수화기를 들고 망설이다…
김주평 : 할머니… (목메어,) … 괜찮으시냐?
72. 영화관 입구 + 윤혜 동네 _ 공중전화 / 오후 <교차편집>
- 영화관 입구, 재광,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이고, 윤혜, 놀랍고 반갑고 맘 아파 아무 말 못한다.
김주평e : 엄마 산소에도 안 오시고, 전화도 안 받으시길래… 혹시…
김윤혜 : (목이 메어 입을 꼭 다물다가, 간신히) … 아빠…
김주평e : …
김윤혜 : … 끊지 마요, 아빠… (사이)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아빠가 그런 거 아니죠? 진짜죠?
- 윤혜 동네 _ 공중전화,
주평, 수화기 든 채 마음이 무너져 대답 못한다.
- 영화관 입구,
김윤혜 : … 믿어요, 아빠 잘못 아닌 거… 아니죠?
김주평e : …
김윤혜 : (당황해,) 아빠 잘못 아니라고 했잖아요. 할머니 별일 없어요. 나 대답했으니까, 아빠두 대답해요, 아니죠?
(절박해져,) 대답해요, 아니라며, 왜 대답을 못해.
김주평e : … 윤혜야…
김윤혜 : … (숨죽이고 듣는다.)
김주평e : … 미안하다, 윤혜야. 아빠가… 미안해…
윤혜, 순간 넋이 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있다.
e. 삑삑삑삑삑 (전화 끊어진 소리.)
윤혜, 툭 수화기든 손을 떨어뜨리더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광을 빤히 보면,
재광, 눈길을 피한다.
73. 경찰서 _ 사무실 / 오후
강 형사, 급하게 전화 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강 형사 : 김주평이 꼬리 잡혔어, 집 근처야!
갑자기 분주해지는 형사들.
74. 윤혜 동네 _ 공중전화 / 오후
전화기 옆 벽을 짚고 망연히 서 있던 주평, 맘을 추스르고 돌아서다,
부업거리 들고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할머니와 딱 마주친다.
75. 영화관 입구 / 오후
윤혜, 말갛게 뜬 눈으로 재광을 바라보면, 재광, 눈 못 마주친다.
김윤혜 : (재광을 뚫어져라보며,) … 미안하대요, 아빠가… 아빠가 미안하대…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한재광 : (뭐라 할 말을 못 찾아, 외면) …
김윤혜 : (점점 두려워져 버럭) 미안하대요,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구!
한재광 : …
재광, 윤혜의 어깨를 잡으려 하면, 윤혜, 재광 손을 탁 뿌리치며 뒤로 물러나더니,
김윤혜 :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어!
윤혜, 하얗게 질려 거의 울기 직전인데, 재광, 차마 보지 못한 채 묵묵부답이다.
- 3부 끝.
첫댓글 소중한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