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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전투표 하셨습니까? 어느 분이 사전투표를 하려고, 투표소가 마련된 면사무소에 들렸다가, 면사무소 앞 공터에 피어있는 마약류 양귀비를 발견하고 신고를 했습니다. 몇 십 그루 정도가 아니라, 1,794주였다고 합니다. 그 많은 마약류 양귀비가 피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약류 양귀비이라는 것을 지금껏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양귀비이구나, 참 예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했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약류 양귀비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피어 있는 양귀비는 당연히 관상용 양귀비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견되는 마약류 양귀비가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 큰 해를 끼치는 것들이 슬그머니 들어와 있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하기 힘든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물들지 않고, 진짜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팔복 가운데, 차례대로, 다섯 가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제목으로, 팔복 가운데, 여섯 번째 복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예수님은 팔복 가운데, 첫 번째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오늘 여섯 번째에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렘 17:10),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라는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심령, 우리의 마음을 아주 귀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라고 말하면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롬 12:2)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 종교적 지식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이나, 우리의 어떤 외적인 상태 때문에,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청결”이란, 헬라어로 “카타로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물을 타지 않은 순전한 우유”를 말하기도 하고, 혹은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금”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청결”은 일반적으로, “깨끗하다”라는 뜻이지만, 원래부터 깨끗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러웠던 것을 깨끗하게 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어느 정도 깨끗한 것이 아니라, 흠이나 티가 하나 없이, 아주 깨끗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청결한 마음”이란 “깨끗한 마음, 순결한 마음, 순수하고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는 마음, 갈리지 않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더러운 죄악들이 다 씻겨나가서, 깊고 깊은 계곡의 맑고 맑은 물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깨끗하고 투명한 마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셨는데, 죄악으로 인하여, 깨끗했던 우리 마음이 더러워졌습니다.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은 뿌연 마음, 흙탕물로 가려진 마음, 이것저것 혼합물이 썩인 복잡한 마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환경 오염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우리 마음의 오염입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바라보시며, 회칠한 무덤과 같은 악한 사람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의 입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입보다도 더 더러운 것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정말 오염되어 있구나!”라고, 더러워진 자기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며, 가슴 아파해 본 적이 언제입니까? 마음이 오염되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죄라고 하는 것을 인식할 때도 있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데” 하면서, 그냥 넘겨버릴 때가 많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이라고 말했는데, “청결한 마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해진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회개한 후에, 주님의 용서를 받고, 그 심령이 깨끗해진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대상을 향해 드려진 온전한 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나누어지면, 마음이 부산해지고,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무너질 수 있고, 부패해질 수가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청결한 마음이란, 하나된 마음이요, 한 대상을 향해서, 온전히 드려진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을 좋아하는듯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이중적인 사람,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은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듯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세상의 온갖 것들을 사랑하는 복잡한 사람은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한분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누어지지 않는, 혼합되지 않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온전히 드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고 말했습니다. 온갖 시험과 유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 마음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 4:14)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흉악한 생각을 너의 속에 품고 있을 작정이냐? 너의 마음에서 악을 씻어 버려라.”
보고 듣는 것을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금 우리는 나쁜 것을 보고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을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흉악한 생각도, 우리 마음 안에 살며시 들어와 자리 잡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 흉악한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빨리 내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신 15: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생각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그 악한 생각을 오래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빨리 내보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산에 오르고,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라고 말했으며, 특별히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전 1:5)을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마음도 깨끗하고, 말도 바르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입에 담지 못할 말은 절대로 입 밖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마음의 청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완전한 인격이 되어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자기가 말한 것은 반드시 책임질 수 있는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만큼이나 쉽지 않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의 청결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청결해지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고 고민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욕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 7:15)라고 말했는데, “자기가 머리로 하고 싶어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남을 좋게 하는 어떤 것을 원하는데, 속에 또 다른 세력이 있어,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쪽으로, 자기를 끌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욕심, 욕망, 탐욕 때문에 발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9-20)라고 말하면서, 그가 목놓아 부르짖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누가 그 사망의 문에서 바울을 건져낼 수 있습니까? 바울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도,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스스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욕심과 같은 죄악을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욕심과 탐욕 같은 것을 억누른다고 억눌려집니까?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음이 깨끗해질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선행으로는 절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해졌다가도 다시 더러워지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데, 계속해서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더러운 마음을 씻음받고, 정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3-4)라고 말씀하셨고,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를 위하여,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미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 깨끗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11)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깨끗함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시편 1:1-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청결한 마음”이란 “원래부터 깨끗한 것을 뜻하지 않고, 더러웠던 것을 깨끗하게 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세탁된 깨끗한 옷”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옷이 있는데, 입다 보니, 더러워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탁을 해야 합니다. 세탁을 하면, 깨끗해집니다. 바로 이것을 청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옷을 한 번 세탁했다고 해서, 깨끗함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습니까? 입다 보면, 더러워지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더러워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더러워지면, 다시 세탁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죄악으로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죄는 우리 마음을 더럽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적극적으로, 의를 행할 때,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치 않는 죄를 짓게 됩니다. 세탁한 옷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입고 싶어도, 알게 모르게, 더러운 것이 옷에 묻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세탁해야겠지요.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죄를 지었을 때, 얼른 회개해야 합니다. 죄가 찌들고 얼룩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왜 청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거룩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찬송가 85장 1절 가사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빌립은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1:8)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라고 말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요1 19:25-26)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육체 밖에서, 죽고난 다음에 하나님을 보지 않았습니다. 욥은 살아 생전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나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소망이요 또한 행복입니다.
가장 복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감사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밝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보다도 실로 더 복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본다는 것만큼, 복된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깨끗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보는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 속에 정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뵙게 될 영광스러운 그날을 바라보며,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날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