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에 성령 강림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에 이끌려 광장으로 나가 15개국 이상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외국에서 온 유대인들이 놀랐고 외국어를 몰랐던 유대인들은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첫 번째 설교를 하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다. 아침 9시 무슨 술에 취하냐? 지금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각 나라 언어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이 임재하심에 관해 설명합니다.
첫째, 성령은 변화시키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성령께서 단순하게 사람을 개선하기 위해서 오셨다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노력이나 계획을 잘 세워 개선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이미 주어진 율법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율법으로 안 되는 것, 우리가 힘쓰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21) 이게 복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선 성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벽이 있다 할지라도 신속하게 뚫어 버릴 힘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 하는 것들, 안 돼서 답답한 것들은 성령이 오시면 해결이 됩니다. 병원에서 포기한 병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가정들도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시면 치유되고 변화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복음을 선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령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누구든지"라는 것은 성령이 임하시면 그에게는 압도적인 축복과 구원의 능력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성도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한 사람이 세상을 뒤집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는 원래 유교와 불교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1907년에 성령이 임하시니 평양에 대부흥이 일어납니다. 교회에서는 순사 앞에서도 자백하지 않던 죄와 허물들을 눈물로 회개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주일에는 평양의 시내 상점들이 손님이 없어서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유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4) 우리 인생도 본래 죄로 인해 사망에 매여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애쓰고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매여 있던 사망의 저주와 고통을 한 번에 다 날려 버리십니다. 그래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나타나는 세 가지 현상이 있다고 요엘서 2장을 가지고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17) 성령의 바람이 불면 자녀들과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예언한다”라는 것은 입에서 말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자녀들의 입은 욕만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면 말씀이 쏟아져 나옵니다. 훈계와 교육만 가지고 양육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재하셔야 예언이 튀어나옵니다. 비싼 돈 들여 공부를 가르치느라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에 사로잡힌 아이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환상을 본다” 교육을 마치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청년들이 꿈을 꾸고 환상을 보아야 하지만 요즘에는 꿈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는 현상을 봅니다. 요즘은 최고의 실업을 넘어서 실신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청년의 때가 쉬웠던 적은 없습니다. 청년의 때는 기성세대가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쉬울 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시대의 과제들이 있습니다. 이 과제들을 내게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풀어나가면 오히려 부흥기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어렵고 어두울수록 작은 촛불도 빛을 발합니다. 시대의 문제는 내가 풀 수 있는 특권입니다.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나이 들면 몸이 힘들어서 의욕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노인들이 꿈을 꿉니다. 부동산 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꿈이 시작됩니다. 가나안 정복기에 헤브론 산지가 철옹성이라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할 때 85세인 갈렙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능히 이긴다’라며 올라갑니다. 그게 유다 지파의 뿌리가 되었고 다윗이 헤브론의 왕이 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아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여서 갔고,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80세부터 일하기 시작했고 120세 죽는 순간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압도적인 은혜가 임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언제나 성령의 새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주님께 내 삶을 맡기면 끝나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은 연결해 주시는 영입니다. 성령은 제일 오래된 선지서를 인용하다가 다윗의 시를 연결하십니다. 설교는 저 멀리 2000년 전에 있던 말씀을 오늘 나하고 연결하는 것입니다. 내 앞에 주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도 기쁠 일이 없었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되니 기쁨이 끊임없이 터져 나와 찬양을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절망에서도 일어서게 됩니다(34-35).
성령 충만해지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살아나는 것입니다(36).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거기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상황이 아니라 말씀과 연결하고 예수님과 연결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주님을 의지해야 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능력 가운데서 일어설 수 있는 믿음의 종들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