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 넷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40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기도 강성자 권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11:1~10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뜸북뜸북 뜸북새
찬송 304 어머니의 넓은 사랑
광고 예배위원- 조용림 권사, 김복순 권사, 김정수 권사, 이명자 권사, 방금숙 권사,
진교희 권사, 강성자 권사, 김명숙 권사, 박명숙 집사, 박이순 집사,
모옥희 집사, 이원예 집사, 박영수 집사
헌금 위원-박영숙 집사, 당일 근무 팀장, 신우회 총무- 이명자 권사
가족 방문 –김정수 권사(막내 아들 가족), 정구섭 장로(막내아들가족),
박영숙 집사(아들가족), 김복순 권사(아들 가족)
찬송 305 사철의 봄바람 불어 잇고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
목사님 성격도 많이 변했습니다.
소란한 걸 너무나 싫어합니다.
그래서 설날과 같이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면 정신이 없습니다.
조용히 홀로 있는 게 참 좋습니다.
오늘같이 설날이면 목사님은 애잔합니다.
가족이 있으나 마나 한 우리 김성오 집사님도 계시고.
홀로 사는 며느님조차 70이 넘어서 시아버님을 우리 요양원에 모신 이재열 집사님.
가족이 서울에 사는 우리 석문분 권사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애잔합니다.
그래서 이 동요를 한 번 더 불러 봅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1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절,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되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절,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절,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7절,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8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절,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소서
10절,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나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만 잘 난 세상도 아닙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나만 사는 세상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만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목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5절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즘 세상이 참으로 힘듭니다.
휘청휘청 경제가 무너졌기 때문이겠습니까?
아님, 윤석열 씨가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겠습니까?
정치가 무너졌기 때문이겠습니까?
아님, 사회, 국제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겠습니까?
그렇다고
전쟁 미치광이 러시아 푸틴 탓을 하겠습니까?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도 희귀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다 보니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식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괴롭습니다.
서울에 73세 박 권사님이 계십니다.
전도 왕입니다.
그런데도 돈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봤더니
목사장로권사집시들이 우글우글 하답디다.
우리 요양원 규모를 운영하려면
최소 20억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양원이 돈만 있다고 운영되겠습니까?
정말 사명감 없이는 어렵고 괴롭습니다.
언젠가
우리 방금숙 권사님께 요양원 운영해 보라고 했더니
간 쓸개 다 빼놓아야 한다며 못한다고 합디다.
오래전이어서 이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나이 드신 남자가 시청 정년하고 요양보호사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폐암 환자 목욕을 시키다가 사망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임감이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애도하는 마음조차 눈꼽 만큼도 없었습니다.
정말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모든 것이 목사님 탓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목사님은 우리 선생님들 편에서 보호하느라 애를 씁니다.
그런데 선생님들도 가관입니다.
어르신을 돌보로 오신 선생님이 목사님 노릇까지 합니다.
그러다 맘에 들지 않으면 온데간데없이 가버립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이직률이 가장 높습니다.
이제 스스로의 품격을 높여야 합니다.
2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되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절,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요즘 아이들 보면
모두가 외아들 외동딸이니 학교 선생님보다 우쭐합니다.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내 자식이 울고라도 오면 난리법석입니다.
성경에 엘리야도 그랬습니다.(3절)
엘리야는 갈멜산 전투의 영웅입니다.
무려 850대 1로 싸워 이긴 무용담은 전설입니다.
열왕기상 18장 23,24절입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37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절,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절,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엘리야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경건한 사람이 엘리야 자신 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본인만 경건해서 살아남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외에 칠천 명이나 더 살아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오해도 많습니다.
때론 목사님 자신조차도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Who am I?
나는 누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숨겨 놓은 비장의 카드일 수도 있습니다.
어제 늦은 밤에 2층에 내려가
우리 임성례 권사님 방에 들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눈망울에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들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당료가 500인데
지금 심장이 붓고 물이 차 있는데도
내 목숨보다는 아들이 더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 사랑의 은혜입니다.
4절입니다.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들이 최고잖습니까?
그런데 목사님이 수천 명의 보호자 분들을 대했습니다.
최고인 줄만 알았던 내 아들이
내 어머니 내 아버지가 너무 오래 산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서 약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목사님이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보호자 중에 멀쩡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어머님이 대변을 누지 못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항문 입구에 계란만 한 혹이 항문을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사께서 의사 소견서를 써 주면서 당장 수술시키세요.
이런 경우 똥개도 수술시킵니다.
그래서 곧바로 원광대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사께서 위급함을 아시고 급히 수술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장로님께 알렸습니다.
장로님! 어머님 항문에 계란만한 혹을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술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들 장로님 반응이 시원찮았습니다.
가족회의를 한 후 어머님 수술을 보류했습니다.
늙었는데 무슨 수술이냐고.
5절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그래도 어였한 장로님이잖습니까?
그래서 이 동요를 한 번 더 불러봅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옛날에는 우리도 이렇게 소박하고 순진무구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에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에 이방인들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결국, 대립과 갈등의 문제입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사도바울은 무척 노력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동서 화합의 문제.
정당 간의 갈등.
빈부격차의 심각성.
종교 간의 갈등.
교회 간 갈등의 문제만 보더라도 심각합니다.
우리 교회만 교회고 우리 목사만 목사입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일이 아니라면,
다른 교회에 예수님이 오신다 할지라도 관심 밖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전광훈 같은 궤변입니까?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북유럽이 선진국인 이유는 경제 발전에도 있겠지만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자랑과 우쭐거림, 이기심에서
이타적인 생활을 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것이 믿는 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절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