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수녀님의 권유로 참석한 성령기도회는
요샛말로 하면 영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되지도 않는 방언연습을 하고 손뼉치고 율동을 시키는데
평생 한번도 춤을 춰보지 않은 나에게는
적응이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같이 참석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방언기도를 시작하는데,
나는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점점 이 피정에서 나 혼자만이 외톨이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강의시간에 듣게 되는 신부님,
수녀님들의 강의는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게 4박5일의 일정을 얼마나 밋밋하게 지냈는지...
성령안수를 받기 전 지도신부님께서 각자 어떤
은혜를 청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사제생활은 늘 재미있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데 따로 청할 게 있어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지도신부님께서 물으셨다.
"장 신부님은 특별히 하느님께 청하고 싶은게 없습니까?"
"저는 강론하는 것이 너무 힘드니
강론을 잘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머뭇거리다가 말 안하고 지나가기에는
분위기를 흐리는 것 같아 불쑥 내놓은 말이었다.
사실 내게 있어 강론은 너무나 큰 짐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 취미는 노래 듣기와 책 읽기였다.
밤늦게까지 안 자고 책을 읽느라 꾸중들을 때가 허다했다.
재래식 화장실 희미한 촉수의 전구 아래
의자를 가져다 놓고 읽기도 했고,
골목 앞에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책을 펴기도 했다.
빌려온 책을 읽다가 형에게 책이 두 쪽으로 찢겨
마당에 내던져지기도 했다.
사제가 된 후에는 월요일마다 시내 책방에 가서
책을 사가지고 돌아오면 세상에 제일 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강론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다 보면
어느새 한 주가 다 가곤했다.
그래서 사제관 내 방은 늘 지뢰밭을 걸어 다니듯 해야 했다.
책이 여기저기 발 디딜 틈 없이 널려저 있었기에.
토요일 밤부터 주일 새벽까지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거의 없을 만큼 주일 강론은 내게 큰 고민거리였다
보좌신부 시절의 어느 주일,
새벽미사를 마치고 나오시는 주임신부님을 기다렸다가
"신부님 제가 밤을 꼬박 세웠는데도 강론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 대신 강론 좀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런부탁을 드린 적도 있었다.
"주일 전날에 잠 한번 푹 자보았으면..."
이것이 평상시 나의 간절한 염원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도 강론을 준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신부가 된 지 5년쯤 되는 시골 본당신부 시절이었다.
어느 날 교중미사를 마친 후 마당에 서있는 나에게
젊은 자매님이 다가왔다.
열심인 교우로 바른말을 잘해주는 그 자매님이
내 강론을 이렇게 평했다.
"신부님 강론은 흥미진진한 역사나 이야기여서 재미있긴 한데
신앙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 같은데요!"
내 스스로도 문제라고 여기기만 했지 더이상 나아지지 않는
나의 강론에 대해 핵심을 찌르는 그 말은
사제의 얄팍한 자존심과 양심을 관통하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더욱 번민은 늘었고
강론에 투자하는 시간도 늘었지만 강론의 질이 달라졌다는 것은
별반 느끼지 못하고 5년여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내게는 그 강론문제가 절실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무 일 없이 성령기도회를 마치고 다시 본당으로 돌아와
일상의 삶에 젖어들었다.
늘 하던 대로 일찍 일어나서 성당에서 혼자 기도를 드렸다.
성령기도회 때 들었던 노래 중에 맘에 드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내 온 마음 다바쳐서'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기도였다.
무언가 내게 잔뜩 기대를 걸고 피정갔다 오기만
기다렸던 수녀님도 그저 피정이 좋았다는 대답에만 머무르고
별다른 변화가 없는 나의 생활을 보고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인사이동으로 임지가 바뀌게 되었다.
큰 규모였다가 새로 조성된 아파트단지로 교우들이
떠나가기 시작한 본당인지라 모든 것이 수월하지가 않았다.

급격히 줄어든 신자들과 봉사자들의
갑작스런 변화가 큰 애로사항이 되었다.
세례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자들로 봉사자를
구성해야 해서 일하는데 더욱 큰 어려움이 되었다.
모든 방법을 써봤지만 백해무익한 듯했다.
성당에 앉아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성경이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셩경이 추리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밥 먹으러 가는 시간이 귀찮게 여겨질 정도였다.
성경을 읽으며 나의 강론에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서서히 깨달아가기 시작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에 바탕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세상의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꾸며진 내용으로 강론을
준비하는 것에만 맴도는 것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성당에서 기도하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전에 성령기도회 때 내가 드린 기도의 청을
하느님께서 다 듣고 계셨구나!
나는 잊고 있었는데 하느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셨구나!'
라는 생각에 나는 전율했다.
그 뒤로 단순히 강론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기도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졌고
하느님의 기다리심에 대한 깨달음이 생겼다.
나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에 믿음이 생겨났다.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어느 날 성령기도회에 한번 갔다 온
그 시간이 신앙에 대한 내 인식을 바꾸어주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멀리하던 책을 다시 가까이 하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한 주에 두세 권의 책을 읽는다.
하지만 예전에 읽던 방법과는 많이 다르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예전처럼 빨리 읽지는 못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 읽지 못할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책을 읽는다.
세상의 지식과 이야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쉽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잘 전하기 위해서.
살아가면서 간절함이 있다면 빈말로라도
하느님께 청해보길 바란다.
하느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장영일 그리산도 효목성당 주임신부님-
-가톨릭 다이제스트 4월호에서(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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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복에 헬멧을 쓰고 자전거 타는 모습이 멋있어서
"짱오빠"로 불리는 장영일 신부님은 자전거를 타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비가 오면 천정에서 물이 새 밤새도록 물을 퍼내야 하는
낡은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하는 신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묵주를 들고 성당주위를 맴돌다보면 언젠가
새 성전이 지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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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빠 화이팅
맞습니다. 하느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어제 저녁, 저는 언제나 처럼 하루분의 성경이어쓰기를 결석하지 않으려고 성경책을 펼쳤다가.... 바로 이 말씀이 참 임을 다시 한번 더 느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아직 깊이 성경을 읽지 않아서 .. 앞으로 열심히 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타지역 성당의 신부님 강론을 듣게 될 기회가 종종 있거든요. 주임신부님 강론 만큼 귀에 쏙쏙 들어 오지 않길래 우리 신부님 강론에 길들여져서 그런가?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들이 있었군요
성경읽는 재미 쓰는 재미에 저도 푹 빠졌습니다..이해못하는 부분이 더 많지만 언젠가 필사도 함 해볼려구요..신부님 계단오르내릴때 무거운 다리를 이끄시는걸보면 항상 마음만 쓰입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
추리 소설 보다 더 재미 있는 성경 읽기에 저도 시작해보렵니다
우리 신부님, 강론도 글솜씨도 모두 모두 짱짱!! 늘 강건하시도록 건강도 잊지 말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