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김현미
거짓말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질 줄을 몰라 외
어떤 질문도 사과라는 단어로 시작하기로 했어 어떤 대답도 사과로 끝맺음하는 날이기로 했어 이 나무의 열매는 질문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
초록에서 초록으로 빨강에서 빨강으로 씨앗과 속살의 관계는 정답과 오답의 그것
거짓말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질 줄을 몰라
까만 씨앗처럼 결국 대지위로 뿌려져 사과를 한입씩 베어 먹은 우리는 얼른 '참말'속으로 숨었어 아삭아삭 소리가 끝없이 났지만 누구도 찾지 못할 곳을 우리는 참참참 이라고 비밀에 부쳐놓았지
불면의 사막을 지나오다 모처럼 졸음이 쏟아질 때는 사과처럼 행복했어. 행복하여 볼이 붉어지면 내 깊은 잠을 아무도 책망하지 못하지
허리가 없는 나무와 뿌리의 모퉁이에 내 허리를 의자처럼 기대 놓아. 사각형의 골목길들이 서로 각을 맞대면 또 다른 입체가 생기고 통로가 보이지 가로등의 불을 켤 때 한줄기 이마를 베인 달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유리창에 아른거린다 창문을 열고 새로운 통로를 탐색하는
우리는 잠깐 씨앗 같은 영원을 꿈꾸었지만
달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꿈을 되풀이 꾸다 보면 곧 썩지 않는 그림자처럼 살고 싶어져
아직 뱉지도 않은 거짓말들이 모여들면 노을처럼 서쪽하늘만 물고 늘어 지고
노을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점점 붉어져
태양을 한 입 가득 머금은 사과처럼 빨갛고 뜨겁고 쉽사리 불타올라 재가 되고 독이 되어
여기저기 멍든 꿈에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흉몽이 되어 하늘거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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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해몽법
우연을 필연이라 치자. 필연을 우연이라 치자.
내가 한 몸의 하체와 두 개의 상체로 태어난 쌍둥이라고 쳐
머리가 두 개이므로 뇌도 두 개,생각도 마음도 취향도 각각 다른 다 사람이다
각자의 이름도 있을 것이다 유리와 유진이라 치자
유리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누군가 시험삼아 따다준 호박꽃도 맛있게 씹어 삼켰고 매운 풋고추도 눈물을 흘려가며 먹었다
유진은 늘 식욕이 없고 창백하며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유진이 어떤 고집을 피우면 눈빛이 변하는걸 유리는 본 적이 있고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둘은 각자 자기만의 비밀을 공유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도 이 생명체는 아무리 하나의 아랫도리를 공동으로 쓰고 있지만
정확히 분리된 두 개의 뇌가 있는 이상 두 사람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누가 먼저 살인을 하든 자살을 하든 나머지 한 사람도 반드시 곧이어 죽는다. 처음부터
망한 인생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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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2019년 《샘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우리의 어디가 사랑이었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