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둑을 정말 좋아하는 실수카고라고 합니다.
프바사에서는 지난 3월달부터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누추하고 재미는 없지만 저 혼자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몇가지 옛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 (재미없다고 돌 던지지 마세요;;;)
어릴 때부터 바둑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지난 95년쯤 케이블 바둑 TV가 생겼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본래 TV를 잘 안보는 체질이지만 바둑 TV만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바둑 티비도 세월이 감에 따라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새로 편성되었다가 없어지고, 저 또한
입시와 학업에 쫓겨서 꾸준하게 시청은 못했지만, 제가 가장 즐겨보는 채널임에는 영원히
변함이 없을 겁니다.
수많은 프로 바둑과 강좌 프로그램들을 뒤로하고 항상 제 인상에 강하게 남는 대국들은 주로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이었습니다. 현재는 '기력충전'과 '영환도사를 잡아라'가 있는데
'기력충전'은 기력측정, 도전 프로를 이겨라 등등의 계보를 잇는 전통적인 아마 참여 프로그램이고
지금 방영중인 '영환도사를 잡아라'와 얼마전에 종영한 '생생바둑한게임'은 좀 더 새롭고 흥미로운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임에 분명합니다. ^^
또한 설날이나 추석 등의 큰 명절에 특집으로 몇가지 이벤트 프로그램이 자주 편성되는데
그 중에 재미있는 게 많았습니다. 특히 연예인들을 반상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곤 했죠.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대국은 제 기억으론 한 8~9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설날 특집으로
심형래씨와 임하룡씨(두분 모두 당시 기원7급)가 기념대국을 하고 해설은 엄용수 사범(?)이
했는데 개그맨 출신 아니랄까봐 이번에는 말이 아니라 바둑으로 배꼽빠지게 웃기더군요.
TV대국인지라 처음엔 흑(심형래)과 백(임하룡) 모두 신중하고 소극적인 양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방송에 대한 부담인지 정말 진지하게 진행되었고 엄용수 사범의 해설도 차분하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슬슬 중반이 되고 돌이 엉겨붙게 되자 살벌한(?) 전법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문제는 수읽기가 그리 강한편이 아닌데 긴장은 많이 된 그런 상태에서 수상전에서 간단한
실수를 하는 등 몇 수 진행될 때마다 형세가 바뀌는 아마 특유의 난전(아마 기원바둑의
전형이겠죠ㅎㅎ)으로 흘러갔습니다. 엄용수 사범의 질책과 한숨이 여러번 교차했을 무렵,
엉뚱하게도 흑이 둘 차례가 아닌데 심형래씨의 손이 반상으로 오더니 방금 둔 돌을 반상에서
들어내 자신의 돌통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름하여 '물린' 것이죠. ㅋㅋㅋㅋ 해설자(엄용수)도 당황했고 상대 대국자인 임하룡씨는 흑돌이
놓여 있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심형래씨는 가볍게 묵살하고
방송대국의 부담탓인지 임하룡씨는 변변한 항명도 못한채 다시 바둑을 어찌 진행하게
되었버렸죠. 결국 그 장면에서 치명상을 입은 백은 형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심형래씨가 흑
20집승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그 바둑을 보셨던 분이라면 모두 새해벽두부터 웃음 선물을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아버지와 함께 그 때 그 바둑을 보면서 배꼽빠지게 웃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바둑을 모르던 제 동생과 엄마에게도 'TV대국에서 심형래가 한 수 물린 일'을 얘기하니까
정말 재미있어하던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참 시간이 빨리 가네요.
당시 중학생이던 저는 어느덧 대학생 고학번이 되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임하룡의 요리천하'
등으로 현역 1선에서 활동하시던 임하룡씨가 어느덧 개그계 원로로, 심형래씨는 멀리 이국
땅에서 최고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디 워) 비지땀을 흘리고 계시네요.
그 옛날 인터넷도 없고 방송환경도 열악하던 시절, 고군분투하시면서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려고 노력해 주신 원로 개그맨 분들의 대표주자로써 이분들께 조촐하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엄용수 사범 얘기는 다음에 또 다른 대국을 소개에 포함되어 있어서 그 때 몇 자 해보겠습니다. ^^
P.S. 글 쓰면서 그 때 그 장면을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카페 게시글
● 바둑 이야기
바둑 스토리
바둑 티비의 흥미로운 추억들 (1편)
실수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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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85
06.08.10 20:57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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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재밌게 글을 쓰셨네요. 그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해요. 빨리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집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바둑티비가 안나오니..ㅜㅜ 엄용수씨 잘두는거야 유명한 일이지만.. 심형래씨나 임하룡씨도 어느정도 두는군요..오오. 연예인중에선 엄용수씨와 가수 김장훈씨가 젤 잘 두는걸로 압니다만.. 신동엽씨나 배철수씨도 잘 두는걸로 알구요. 이 분들을 카페로 섭외를 하면..쿨럭..ㅎㅎ
김장훈씨의 매운 솜씨도 나중에 소개합니다~ ㅎㅎ
잼있게 읽엇습니다~
ㅎㅎㅎㅎ 왠지 상상이 된다는 ㅎㅎㅎ 엄용수씨 해설 한 번 들어봤음 좋겠군요 ㅋㅋㅋ
으아.. 글만읽어도 얼마나 재밌었는지 알거같습니다...자주 이벤트를 해주면 좋을텐데..^^
오...그런일도 있었나요?그런 재밌는것을 보지못하다니...아깝당...
헛 ㅋㅋ 그런 일이 있었군요~ ㅎㅎ저도 글읽으면서 입가에 미소가.?ㅋㅋ
유치하군요. 정신연령이 낮은 듯..
재미있었겠는데요...그건 그렇고 방송에 나가며 바둑을 두면 얼마나 긴장될까...그렇죠...실수카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