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초 금요일, 그날 처음 만나게 될 이 아이에게 연락하지 않은 채 수업 마칠 때를 기다렸다.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미리 알면 도망 갈 수 있으니 특별한 말 없이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목요일마다 아이와 만나는 지역 교육복지센터 선생님은 벌써 몇 번이나 골탕을 먹었단다. 골목골목 길을 잘 아는 아이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냅다 달려서 눈 밖으로 벗어나기도 하고,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건너가 버리기도 했단다. 그런 말들을 들은지라 이미 나는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후 교내에 주차해 둔 차에 잘 모시고 출발했다. 아이는 책가방도 벗지 않은 채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하며 30분 정도 걸려 우리 동네 마을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렇게 책상 앞에 마주 앉았지만 아이는 여전히 가방을 벗지 않는다. 여차하면 뛰어나갈 모습으로 보여 긴장된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는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을 테니 도망가도 소용이 없겠구나! 그래도 긴장을 풀기 위해 달콤한 케이크 조각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환영해. 케이크 먹어봐, 맛있어.”
“저는 낯선 어른이 주는 음식 먹지 않아요. 안에 뭐가 들었을지 어떻게 알아요?“
“아, 그래? 응. 알았어.”
이 녀석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 중 단연코 매운맛이다. 땀이 난다. 길지 않은 대화 후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왔는데 뭔지 모르게 맘이 슬퍼졌다. 도대체 그 짧은 11년 동안 어떤 삶을 산 거니? 그날 날씨는 꽤 쌀쌀했고 나는 다음 날 몸살이 나버렸다.
교육후견인제를 통해 만난 아이
5학년 성민(가명)이는 2023년 서울시교육청 교육후견인제를 내가 활동하는 고래이야기 작은도서관에서 공모하고 운영하며 연결되었다. 1:1로 멘토링 교육후견 활동인데 성민이는 우리와 연결된 10명의 아이 중 한 명이다.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고 생활에 필요한 의류, 교육비, 병원비 등 여러 가지를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멘토는 아이와 만나 정서, 심리, 학습, 건강, 환경 등 다양한 것들을 살피고 지원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성민이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이미 오전에 등교 도우미를 붙여 등교를 돕고 있었다. 등교 도우미 어르신도 여러 번 골탕을 먹었다고 한다. 밤새 게임을 하고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게다. 숙제는 할 리 만무하다.
성민이는 현재 60대 중반의 아버지와 둘이 산다. 늦은 결혼에 아이를 보셨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3년 전 아버지는 엄마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살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아이가 아빠를 아동학대로 신고해 몇 번 경찰이 다녀갔다. 담임선생님 말씀으로 아버지는 너무 착해서 애를 휘어잡지 못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이라도 아이를 훈육하려고 하면 불을 지르겠다거나, 집을 나가겠다는 협박 같은 말을 하고, 아빠가 밥을 차려줘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단다. 아빠의 카톡 프로필에는 아기 성민이 사진과 하트가 가득하다. 그런데,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고 자기가 나이가 많아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아이와 만나기 전 만난 담임선생님, 교육복지센터, 아버지는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길 바랬다. 조금이라도 피곤해져서 밤에 게임하지 않고 쓰러져 자길 바라는 맘이다. 그래서 거리가 좀 멀지만 우리 도서관에서 매주 하는 놀이터 활동에 데리고 와 축구에 참여시킬 계획이었다.
“축구하자. 끝나면 떡볶이도 있어.”
“싫어요. 집에 갈래요. 집 가면 안 돼요?”
아이는 돈을 버는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서울에 00평 이상 집에서 승용차를 소유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동으로는 그런 큰돈을 모을 수 없기에 빠르게 돈을 모으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치이면 합의금을 뜯어낼 기회라고 한다거나, 편의점에서 본인에게 주류를 판매하게 한 후 미성년자 판매를 이유로 합의금을 요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았다. 이건 교육복지센터 선생님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성인이 된 후 돈이 없으면 장기를 팔아 돈을 벌 거란다. 도대체 그 짧은 삶에서 어떤 것들을 경험한 것인지, 마음이... 까마득해진다
첫 만남 이후 매주 금요일, 아이가 하교할 시간보다 조금 일찍 교실 뒤에 도착해 기다렸다.
첫댓글 휴~~~~~
아이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걸까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