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growing up and somebody like Robert De Niro had a movie come out, it was a cultural event.
내 어린 시절, 로버트 드니로 같은 배우의 영화가 개봉하면 그건 문화행사나 다름없었다.
숀 펜 #
미국의 배우, 영화감독, 프로듀서.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계에서 뉴욕시의 정신을 상징하는 배우로, 택시 드라이버, 레이징 불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대배우이다.
그는 뉴욕시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14]이자, 마틴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로 작가주의 영화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197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까지의 화려한 전성기에 이어 현재도 꾸준하게 활동하는 다작 배우이기도 하다.
메소드 연기가 워낙 훌륭해 일본에선 그의 연기술을 특별히 드니로 어프로치라고까지 부른다.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수장으로 유명하며, 자신의 제작사인 트라이베카 프로덕션을 소유하고 있다.
경력
뉴욕의 저명한 예술가 부부 로버트 드 니로 시니어와 버지니아 애드미럴 사이에서 태어난 드 니로는 아버지의 뒤늦은 커밍아웃으로 인해 편모 가정에서 자라났다. 이탈리아계로서 마초적인 환경 속 복잡한 반항심이 있었으나, 후에 성공한 후로는 아버지가 살던 소호의 아파트를 다시 사들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어릴 적 수줍음이 많았으나 학예회에서 오즈의 마법사의 사자를 연기한 이후부터 연기자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얼마 못 다니고 중퇴한 드 니로는 거리의 풋내기 건달들과 어울리는 한편, 연기 준비를 계속하여 알 파치노 등을 배출한 HB 스튜디오와 액터스 스튜디오에 합격하며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신인 시절에는 당대 떠오르던 아메리칸 뉴웨이브 감독들과 열악한 작업을 하였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초기작에 등장한 이후로 평생의 인연이 될 마틴 스코세이지와 알게 되면서 그의 커리어는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스코세이지는 당시 뉴욕대 영화과를 갓 졸업한 생짜 신인이었고, 드 니로야 말할 나위 없는 애송이였으나 둘은 뒷골목에서 험하게 자란 이탈리아계라는 동질성이 있었고, 빠르게 친해졌다고 한다. 이런 환경은 두 사람의 커리어에 평생 예술적 자양분이 되었고, 둘 모두 예술과 성공에 대한 강박이 대단했기에 둘은 의기투합하여 작업을 도모한다. 결국 이탈리아계 젊은이들의 뒷골목 삶을 담아낸 비열한 거리로 스코세이지와 드 니로 모두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드 니로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희대의 또라이 '쟈니 보이' 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해낸다.
그 후 끈끈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영화인 인맥을 타게 된다. 스코세이지의 추천으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5년작 대부 2에 출연하며 명성을 더한다.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여 결코 말론 브란도에 뒤처지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주고, 대부 1의 오디션에서 소니 콜레오네 역에 떨어졌던 안 좋은 추억을 보기 좋게 털어버렸다.
사실 이때의 탈락은 대부 메이킹 필름에도 나오지만 절대 드 니로가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다. 당시 오디션 장면을 보면 소니가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마이클을 비웃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이때 제작진들은 그의 연기를 보며 소름이 돋았으나 소니란 캐릭터가 너무 냉혈한처럼 보일 것을 우려해, 좀 더 친숙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연기한 제임스 칸으로 갔다고 한다.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소니라는 캐릭터는 감정적이고 다혈질이면서 가족애가 끈끈하다. 든든하고 다정한 맏형이라 냉혈한들이 넘쳐나는 영화 속에서 오히려 튀어보이는 캐릭터. 소니가 마이클을 비웃는 장면도, 실제로는 진심으로 그에게 애정을 가지고 '허허.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이 귀엽게 덤비네. 이런 건 든든한 우리 형님들에게 맡기거라.'라고 놀리는 형태에 가깝다.드 니로의 소니 연기 실제 영화에서의 제임스 칸의 연기[18] 다만 이런 드 니로 특유의 살벌한 카리스마는 커리어 내내 양날의 검이 되어서, 푸근한 역이나 인간미 있는 역에 도전할 때마다 별 신통치 않은 반응을 얻었다. 말년에 코미디물을 도전할 때에는 이런 살벌한 카리스마를 역이용하는 식의 연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벤 스틸러와 함께 출연한 <미트 페어런츠>가 있다.
어쨌든 이때 드 니로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제작진은 후속작에서 그를 캐스팅한다. 그러한 제작진의 선택에 화답하듯 드 니로는 여기서 영화사에 남을 명연기를 선보인다. 드 니로는 본래 1편에서 운전수 폴리 역을 맡으려다 출연 못했는데 대부 2편에 출연한 것을 보면 오히려 잘 된 경우다. 대부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마틴 스코세이지와는 호흡이 특히 잘 맞는데, 드 니로가 없다면 지금의 스코세이지가, 스코세이지가 없다면 지금의 드 니로가 없었을 것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언급하지 않고 로버트 드 니로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22년간 마틴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 관계의 인물 자리를 꿰찼다. 스코세이지와 함께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공동으로 작업하여 시대의 걸작으로 길이 남은 영화는 <택시 드라이버>(1976년), <분노의 주먹>(1980년), <코미디의 왕>(1982년),<좋은 친구들>(1990년), <케이프 피어>(1991년), <카지노>(1995년) 등이 있다. 훗날 뤽 베송 감독의 <위험한 패밀리>(2013년)에서 동료를 배신한 죄로 쫓겨다니는 마피아 두목을 연기했는데, 마을 영화 상영회에서 본 <좋은 친구들> 속 소년이 자신이라는 암시를 하며 냉혈한 마피아로서의 과거를 회고한다.
또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84년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 마피아 영화 장르 외에도 베트남 전쟁의 아픔을 표현한 <디어 헌터>(1978년), 백인 침략자들의 인디오 학살에 맞서 싸우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그린 <미션>(1986년),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를 야구장으로 옮겨, 광기 어린 야구팬을 열연한 <더 팬>(1996년) 등 진중하고 무거운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미드나잇 런>, <미트 페어런츠> 등 코미디물에도 출연하는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는 입체적인 커리어를 구축했다. <케이프 피어>(1991년)에선 복수심에 불타는 전과자 맥스 케이디 역을 맡았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악역 연기를 보여주었다.
1995년작 <히트>가 성공한 이후에는 그저 그런(평작 내지는 졸작) 영화들에 조연 역으로 곧잘 출연하는 등 배우로서 입지가 예전만 못해졌다.[19] 물론 미국 배우 중 손에 꼽히는 필모를 가졌던 전성기에 비교하면 나쁘다는 얘기이다. <굿 셰퍼드>(2006년)에서와 같은 감독직에 더 정력을 쏟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드 니로의 감독 처녀작인 브롱스 이야기는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던 탓인지 마틴 스코세이지의 냄새가 물씬 풍겼고, 반면 <굿 셰퍼드>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스타일이 조금 난다. 감독 실력은 중후한 편.
드 니로가 구축한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와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기질은 여전히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미 젊은 시절에 보여준 명연기들과 굵직한 커리어만으로도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의 상징으로 손꼽히기에 여전히 영화계에서 그의 존재감과 네임밸류는 영구결번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영화팬이라면 자신이 보러 간 영화에서 예상치 못하게 드 니로가 나올 때마다 친숙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2007년 <스타더스트>란 영화에서는 취미가 여장인 해적 선장 역으로도 나오기도 해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데이비드 O. 러셀의 2013년 작인 <아메리칸 허슬>에서 아랍어를 구사하는 이탈리아계 마피아 보스로 한 장면 등장하는데,[22] 엄청난 존재감과 위압감을 보인다.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는 데다 크레딧에도 이름이 오르지 않지만 특유의 악센트 덕분에 알아볼 수 있다. 5분밖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빅터 텔레지오라는 마피아 보스를 매우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2014년 5월 <라스트 베가스>의 패디 역으로 등장하며 그야말로 의리가 있는 노년의 상남자를 보여주었다.
2015년 9월 개봉한 <인턴> 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고서 은퇴생활을 하다가 시니어 인턴으로 30대 여사장을 코치해 주는 역으로 등장했다. 푸근하고 인자하며 지적인 간지 노년을 연기한 것. 안경 낀 백발의 수트 신사가 <택시 드라이버>나 <좋은 친구들>에서의 양아치와 동일인물이라는 걸 연상시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연기력...
2016년작인 <더티 그랜파>에서는 여태 보지 못했던 드 니로의 저질스러운 변태 할아버지 연기를 볼 수 있다. 작품의 평은 드 니로의 최근 작품들처럼 좋지 않지만 배우의 연기가 꽤나 좋아서 그런지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2019년엔 화제작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이 동경하는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을 연기, 여전히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자신의 리즈시절 작품인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2019년 말, 마틴 스코세이지의 역작 <아이리시맨>의 주인공인 프랭크 시런 역을 맡아서 갱스터 영화의 노익장다운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앞선 조커와 더불어 노년 커리어의 좋은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배우 커리어 첫 드라마에 출연한다.
2023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작인 <플라워 킬링 문>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하였다. 작품과 연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생활
드 니로의 아버지인 로버트 드 니로 시니어는 추상 표현주의 화가였다. 드 니로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CNN과의 인터뷰에서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꼽았고, 아버지가 살던 뉴욕 소호의 아파트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화가인 아버지를 알리기 위한 HBO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동성애자로 첫째인 로버트가 태어난 이후 커밍아웃을 하고 이혼했지만 아내와는 계속 친구 사이로 남았다. 시인인 어머니 또한 드 니로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라도록 해주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첫 아내는 <택시 드라이버>에서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이 포르노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영화관 점원으로 출연하고 코미디의 왕에서 리타로 출연했던 배우 겸 가수 다이앤 애벗(Diahnne Abbott, 1945-)이었다. 1976년 결혼해 1988년에 이혼했으며 드 니로와의 사이에서 라파엘 드 니로를 낳았다. 첫딸인 드레나 드 니로는 로버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아니며 전 애인과 낳은 딸인데 로버트가 입양했다.
첫 아내인 다이앤 애벗.
드레나 드 니로. 로버트의 양녀다. 로버트 드 니로와 혈연은 없다.
로버트 드 니로와 다이앤 애벗 사이에서 난 아들 라파엘 드 니로.
그 후 투키 스미스와 애인 사이를 유지했다. 투키와는 시험관 아기로 대리모를 거쳐 1995년에 쌍둥이 아들 둘을 낳았다.
투키 스미스(Toukie Smith, 1955-). 직업은 모델이며 패션 디자이너 윌리 스미스(Willi Smith)의 동생이기도 하다.
1997년에는 배우 그레이스 하이타워(Grace Hightower, 1955-)와 결혼했으며, 1999년에 헤어졌지만 2004년에 재결합했고, 2018년에 결별하였다. 그레이스와의 사이에 아들 엘리엇(1998-)과 헬런 그레이스(2011-)를 두었다. 헬런 그레이스는 대리모로 낳은 자식이다.
그레이스와는 1980년대에 처음 만났는데 만났을 땐 이정도의 중년이었지만 현재는 세월이 무상하다...
2011년 아들 엘리엇, 아내 그레이스와 칸을 방문한 드 니로의 사진. 그리고 같은 년도에 68세에 다시 한번 아빠가 되어서 미국에서도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후술하는 대로 2023년 79살에 또 아빠가 되었기에 자식을 일곱 뒀는데 딸은 셋이며 아들은 넷이다.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