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다 이루었다!
요 19:28~30
<연말 특사>
엊그제, 벌써 작년입니다. 대통령이 신년 특별사면을 단행했습니다.
특별사면에서 주목을 받은 두 인물이 있습니다.
먼저 전 경남지사 김경수 씨가 있습니다.
잔여 형기 5개월을 면제 받고 풀려났습니다. 공민권은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이명박 전 대통령, 남은 형기 15년, 벌금 130억 원 중 잔액 82억 원,
모두 면제받고 완전 복권이 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집에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사면이 발표되자 병원에 입원합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동선을 만들어서 자기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동안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동안 나를 지지해준 분들, 기도해 준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기자회견을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새해 벽두 설교에 왜 제가 이 말을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30절,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 거두기 직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말씀 때문에 제가 대통령 특별사면을 거론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기로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님만이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감옥에 갇힌 죄수들, 형기를 다 채우고 석방될 때,
자기의 죄목이 적힌 죄패 아래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고 걸어나오는 관행이었습니다.
“나 지은 죄만큼 형기를 성공적으로 채웠다. 그리고 사회로 복귀한다. 다 이루었다!”
이런 의미의 관용구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잔여형기 15년, 벌금 82억원, 다 탕감받았습니다.
자기집 대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여기서 한 말, 그 의미는 “다 이루었다!”
이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형기를 마치고 “다 이루었다.” 하는 것과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어디에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세상 사람들의 “다 이루었다”는 “나 이제 떳떳한 자유인이다.” “공민권 회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법률적으로 다시 대통령에도 출마할 수 있는 떳떳한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무슨 의미일까요?
“너희가 지은 죄를 내가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니 너희는 이제부터 자유인이다.
너희는 이제 천국에도 당당히 입성할 자격을 획득했다!”
이것이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 이루었다”는 “나 이제 모든 것을 다 찾았다. 나 자유 얻었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너희가 이제 모든 것을 회복했다. 너희는 자유를 얻었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로서 우리가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은혜스러우니, 어떤 사람들은 원어로 이 말을 궁금해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시 쓰시던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예수님 이후에도,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
자기 죄목이 적힌 죄패 아래서 “테텔레스타이” 외치고 나왔습니다.
수많은 “테텔레스타이” 모두가 자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딱 하나, 예수님의 “테텔레스타이”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하고, 복되고, 은혜가 됩니다.
☞ 예수님의 “테텔레스타이”의 배경을 좀 살펴볼까 합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시다>
(28절)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은 “테텔레스타이” 하시기 전에 “내가 목 마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피를 흘리면 엄청 목이 탑니다.
전쟁에서 군인들이 총을 맞고 쓰러져 피를 쏟으면 그렇게 목이 탄다고 합니다.
이때 물을 주면 됩니까? 안 됩니까? ~ 안 돼요!
피를 쏟고 있는 부상병에게 물을 마시게 하면, 피가 더 빨리 빠져나갑니다.
지혈시키기 전까지 절대 물을 줘서는 안 됩니다.
“참아, 참아야 해, 참아야 네가 살 수 있어!”
예수님도 얼마나 목이 타겠습니까?
채찍에 맞았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썼습니다. 지금 피를 엄청 쏟았습니다.
목이 바짝 바짝 타들어갑니다. 손과 발에 못박힌 고통보다 목타는 고통이 더 큽니다.
“내가 목 마르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왜 하셨다고 기록합니까?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예수님에 대해서 구약이 쓰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구약이 쓰였습니다.
구약 성경 시편 69편 21절입니다.
시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다윗이 적에게 붙잡혔을 때의 고통을 시로 읊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십니다.
단순히 다윗의 혈통만 이어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당한 모든 고통을 예수님이 고스란히 재현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를 이렇게 섭리하여 이 땅에 보내십니다.
십자기 위에서 예수님은 다윗이 당한 고통을 상기합니다. 그 시편 말씀을 응하게 하십니다.
<내가 목 마르다>
예수님이 내가 목 마르다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시편 69편 21절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이 말씀 속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그중에 하나님의 백성들, 이들은 모두, 목마른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산상수훈 8복 중에서 네 번째 복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니 ‘의’가 없습니다. ‘의’가 실종되었습니다.
‘의’는 사라지고 배신과 음모와 술수가 판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을 ‘의에 주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 지금 이 땅에 아무개가 정권잡아서 얼마나 신바람이 나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복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의가 사라지고 배반의 장미가 만발했다. 이를 어이할꼬?”하면서
탄식하는 사람, 애통해 하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이들이 복 있는 자들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지금 예수님도 목이 탑니다!
<신 포도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하셨을 때, 사람들이 뭘 주었습니까?
(29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도저히 마실래야 마실 수 없는 신포도주, 빙초산이 똑같습니다.
그 신포도주를 우슬초에 적셔서 막대기에 매달았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입에 대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받았습니다. 너무 목이 타니까,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 왜 십자가 밑에 신포도주 그릇이 있었을까?
고대 로마의 군사들은 전쟁에 나갈 때 신포도주를 준비합니다.
전쟁터는 물이 부족합니다. 마실 물도 씻을 물도 밥지을 물도 부족합니다.
정말 목이 타서 견딜 수 없을 때 신포도주를 조금 입에 댑니다.
너무 시니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갈증이 가시면서 물 생각이 잠시 사라집니다.
그리고,
활에 맞고, 창에 맞고, 칼에 맞아 피흘리는 동료에게 신포도주를 입에 댑니다.
어차피 마시게 해 줄 물도 없지만, 물을 마시면 안 되니까, 신포도주를 입에 대줍니다.
군인들에게 신포도주는 필수품입니다.
십자가에 매다는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아래에도 신포도주를 준비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신포도주는 마시면 통증을 완화시키는 진통효과가 있습니다.
빙초산처럼 시어터진 신포도주가 고대시대에는 이렇게 다양한 효과를 가졌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신포도주를 줍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고 신포도주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편 69편 21절에서 다윗은 지금 자기에게 고통을 주려고 신포도주를 준다고 하소연합니다.
신포도주가 전쟁터에서 임시방편의 효력은 있습니다.
잠시나마 갈증을 해소해 주고, 고통을 잊게 해줍니다.
그러나 갈증을 근원적으로 해소해 주지는 못합니다.
신포도주는 약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그 신포주에 입을 적셨습니다. ~ 왜요?
이 세상에 있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때문입니다.
<신포도주와 테텔레스타이>
예수님이 십자가 목박히심은 무엇을 이루려 하심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그들의 목을 축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그들에게 세상은 ‘신포도주’를 줍니다.
여기서 신포도주는 임시방편으로 잠시의 효과가 있는 음료입니다.
2023년 신년을 맞이하여 한국의 대통령이 신년 특별사면을 단행했습니다.
기독교 장로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얼른 보기에 어마어마한 혜택입니다.
감옥살이 15년이 남았습니다. 벌금도 82억원이 남았습니다.
그것을 탕감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집 대문 앞에서 “다 이루었다”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공민권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선거권 피선거권 다 복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천국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입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릅니다.
왜요? ~ 이 세상에 의와 진리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기껏해야 ‘신포도주’가 있을 뿐입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 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배부른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갈증을 풀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신포도주를 마시고, 구약성경을 응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합니다.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예수님의 말씀, 그 말씀으로 2023년 한 해에도 배부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