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사천을 노래한 현대시인들의 노작들(3)
사천의 토박이 시인들의 시는 대체로 구수하다. 그중 김 경의 <삼천포 항구>는 대표적이다. 토박이들은 그곳에서 오래 살아서 지역의 환경이나 풍경 등에 대해서 자별난 친근감으로 접근한다.
“삼천포 선창가 삼진여인숙 앞 동백은/ 해풍에 흔들리면서 핀다/ 서러운 시 한 구절같이 서럽게 핀다/ 전어 밤젖 파는 아지매들 앞치마에 삼천포 아가씨 노랫말이/붉게 묻어나고, 새벽 어시장에서 리어카 커피를 파는/ 초등학교 춘식이 집사람도 빨간 커피를 팔고 있다/ 한 그릇에 삼천원 받는 선창가 섬보리밥집에도 /일찍 핀 수우도 봄이 들어앉았다// 용궁수산시장 찾아오는 아침 첫 갈매기 같은/ 형제상회거나 돼지언니네 초정집 같은 어시장 골목마다/알가자미와 봄도다리와 노래미가 /달뜬 바다의 슬하에 들락날락 한다.”
삼천포 선창가 분위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삼천포 출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선 여인숙, 전어 밤젖 파는 아지매, 새벽 어시장, 춘식이 집사람, 섬보라밥집, 수우도 봄, 용궁수산시장, 형제상회, 돼지 언니네 초장집, 가자미와 도다리 등을 보면 시인이 마치 삼천포 바닷가 햇볕처럼 구석 구석을 기웃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속사정을 앞치마 끝동까지 내려볼 수 있는 자세로 통반장 수준으로 들락날락 하고 있다.
이 정도면 박재삼이 살아서 온다 하더라도 한 층 위에 놓고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박재삼은 자주 남평문씨 부인이나 치마 안자락이나 모시옷 그 눈부신 동정을 말하곤 했지만 바닷가 일상을 구체화하는 데는 김 경 시인에 따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김시인은 시에서 자질구레한 소도구들을 동원하여 시적 정취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천강을 폭넓은 사랑의 강으로 본 윤향숙의 <사천강을 바라보며> 역시 토박이의 정서로 다가온다. “간밤 비가 내렸나 보다./ 사천강 뼈마디들이 / 모습 숨기기 시작한 거 보니/ 어잿밤 그들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어미 젖처럼 찰진 것으로 /굶주린 배를 채웠나 보다/ 먼 길 가던 손님이 한밤중 /문을 두들겨 /젖동냥 하더라도 /남루한 모습으로 / 빈 자리 터 내어 제 집처럼/ 잠이 들더라도 내치지 않는/ 사천강” 이런 시는 지역의 지리적 품성이 인정으로 넘치는 것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천 정서의 중심에 서 있는 시인의 시라 하겠다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정다운 제목이 눈에 띈다. 박구경 시인의 시다. 필자는 대학 다닐 때 머나먼 서울을 오르내릴 그때를 생각하면 개양역을 떠올리게 된다. 반성역애서 부터는 삼천포 가는 칸인가 아닌가를 챙겨야 했다. 삼천포 가는 칸애서 잠이 든다면 하는 수 없이 삼천포까지 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때 한 반에 있던 친구가 사천 사남면 출신이 있었는데 토요일에 1박 2일로 사남면에 기차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산청 산골 출신이라 아직 열차를 타보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 따라 나섰는데 진주역도 처음 보고 열차도 처음 타고 사천읍도 지나가고 사남역에서 내려 친구네 집엘 갔는데 친구 어머니의 환대가 지극했다. 필자는 그날 이후 사천 하면 사남면이요 성씨 하면 최씨성이 정겨웠다. 그 친구는 지금도 한 번씩 부산에서 전화를 보내준다.
박구경 시인이 쓴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읽기도 전에 우수로 매겨졌다.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어디서 오래 전에 보았듯이/ 그랬듯이 / 대숲과 코스모스를 휘저으며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 몰려왔으면 좋겠다// 기차가 들어와/ 어둠 속을 달려온 그 시커먼 쇳덩이가 /숨을 몰아쉬는 동안 /큼직한 보따리와 흰옷의 사람들이 /시끌벌쩍 이 바닷가에 펼쳐졌으면 좋겠다//(중략) 육중한 열 량 스무 량의 기차가/ 거친 쇳내를 풍기며 들어서는 바닷가 역사(驛舍)”
필자도 지금 그 열차를 타고 감나무가 있는 사남면 역사에 내려 동네를 한 바퀴 휘 둘러보고 싶다. 필자는 박씨가 아니고 강씨임에도 없어진 반성역에를 한 번씩 지나갔다. 아니 친구와 같이 폐쇄된 반성역 앞 식당에서 돼지고기국밥을 시켜 먹고 온다. 역이 폐쇄되고 철길이 끊기고 난 그 후경을 바라다보면 옛날에 열차를 타고 진주로 오던 친구가 클로즈업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그 길로 돌아갔던 사람도 안개처럼 아련히 다가오기도 한다. 기차는 이런 추억과 과거와 인연을 선물로 실어나르는 것인지 모른다. 박구경 시인의 열차도 그런 것일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