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나 칼럼 Ⅱ
필요 없으니 무덤을 만들지 말아다오
글 조성내
법사,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무덤
밀집되어 살고 있는 바쁜 퀸즈(뉴욕)
여기저기 놓여 있는 드넓은 공동무덤들
얼마나 아깝고 비싼 땅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땅.
떠날 때는 빈손으로 떠나 놓고도
무덤을 만들어 놓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데도
이 세상에 땅을 소유하고 있다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공평한가
망자의 무덤 자리에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집을 지어 살고 싶어도
죽은 자의 권리가 우선이다
죽은 자는 이 세상에 없는 데도···
정글에는 수많은 동물이 살아도
어느 동물도 무덤이 없는 데
사람은 동물이면서도
죽어놓고도
마치 이 세상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것처럼
무덤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죽었으면 이 세상 다 잊어버리고
저승에서나 잘 살려고 해야 할 텐데···
미어캣트의 죽음
다큐멘터리 동물영화에서 보았는데, 미어캣트(meerkat)는 10여 마리 내지 20여 마리가, 한 떼가 되어 살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지역에서 살고 있다. 이네들은 땅을 파서 땅굴(burrow)에서 산다. 낮에는 밖으로 나와 들판에서 벌레를 잡아먹는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은, 한 마리 미어캣트가 죽을 때는, 동굴 안에서 죽지 않는다. 만약 동굴 안에서 죽는다면, 시체가 썩어서 악취를 풍기면, 동굴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미어켓트에게 큰 피해(被害)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미어캣트가 죽을 때는 동굴 밖으로 나와 죽는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은, 미어캣트는 “아, 이제 죽을 때가 되었구나.” 하고 자기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굴 밖으로 나온다. 이때 많은 미어캣트가 동굴 밖으로 나와서, 죽으러가는 미어캣트 더러 잘 가라고, 잘 가서 죽으라고, 엄숙하게 환송(歡送)을 해주는 것이다.
정글속의 동물들
정글 속에 수많은 동물들은, 죽을 때는 땅위에서 그냥 죽는다. 무덤이라는 게 필요없다. 다행이도, 땅위에서 죽으면, 시체를 뜯어먹는 다른 동물들이 있다. 그래서 정글이나 들판에서 죽은 동물의 시체는, 다른 동물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오리려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기에 죽으면서도 좋은 일을 하면서 죽는 것이다.
사람들도 산이나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동물을 잡아먹고 살았을 원시 시대 때는, 사람도 죽으면 땅을 파고 무덤에 묻지 않았을 것이다. 대략 1만 년 전부터,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다는 말은, 사람들은 이제 한 곳에 정착되어 살아야만 했다. 이때 사람이 죽으면, 죽은 시신을 그냥 방치해놓으면, 시신이 썩고 악취가 풍기고··그래서 땅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묘가 생겼던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 당시는, 명당자리니, 묘자리가 좋으면 후손이 잘 되니 하는 그런 생각이란 전연 없었을 것이다. 그냥 편한 데로 땅을 파서 묻고 말았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 아버지 장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국가 수령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에 관한 책을 많이 발간했다. 대부분의 달라이 라마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책들은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또한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강연도 많이 했다. 그분의 영향을 받아서 불교가 세계적으로 많이 홍보되고 전파되었다.
달라이 라마 일생을 다루었던 영화를 보았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루는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 시신을 산꼭대기로 데려갔다. 많은 발쳐(vulture, 대머리 독수리)들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례를 치루는 사람이 그의 아버지의 살을 칼로 잘라 떼어낸다.
떼어낸 살을 발쳐(vulture)에게 던져준다. 발쳐들이 먹는다. 이게 티베트의 장례법이다.
이런 장례법을 이조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례인 것이다. 만약 이조시대에, 부모의 살을 칼로 베어내서 새에게 준다면? 이것은 삼족(三族, 부모, 형제, 처자)이 멸(滅)되고 구족(九族)이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이조시대는 유교의 사상을 받아서, 부모의 몸에 상처 하나 입히지 않았다. 몸을 깨끗하게 씻고, 수의를 입히고, 그리고 정중하게 관에 넣어 땅에 모신다. 이조시대의 임금의 묘를 보라, 얼마나 크고 얼마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살아생전에 권력이 세면 셀수록 묘지도 그만큼 크고 방대했다.
인도 힌두교 장례
인도에 여행 갔었을 때다. 힌두교도들은, 죽으면 강지스 강으로 시체를 모셔온다.
강지스 강변 화장터에서 장작으로 화장을 한다. 재(유골)를 강지스 강물에 던져서 흘러 보낸다. 무덤이 없다.
이조시대의 장례
이씨조선은 유교의 국가였다. 유교는 죽은 조상들을 무척이도 애지중지 모셨다. 사람이 죽으면 결코 시체에 칼을 대지 못한다. 이조시대 한의(韓醫)들이, 유교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해부(解剖)를 하지 못했다. 사람 뱃속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의술을 베풀었어야만 했다. 그러니 자연 한의가 서양 의술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조상을 극진히 모시기 위해서 묘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명당자리를 골라 묘 자리를 잡았다. 묘 자리가 좋아야 후손이 잘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묘 자리가 좋으면 후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고 번성한다는 것이다. 임금이나 높은 양반들은, 비싼 돈을 주고 명당자리를 찾아다녔다. 명당자리에다 묘도 크게 만들었다. 그래야 후손이 잘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
한국이나 미국의 대통령들이나 장관들을 한 번 살펴보자. 부모의 묘가 명당자리이기에?
후손이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었단 말일까? 설령 후손이 잘 되어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어느 조상의 묘? 부모의 묘? 증조·고조의 묘? 그보다 더 선조의 묘? 조상도 수없이 많은데, 어느 조상의 묘가 명당자리이기에 후손이 잘 되었다는 말일까?
미국에 와서 보니, 이네들은 명당자리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죽었다 하면 공동묘지에다 묻는다. 공동묘지에 가보면, 어떤 묘 앞에 꽃이 놓여있다. 아마 자식들이 갖다 놓은 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손자나 증손자 그리고 이후의 자손들은, 자기네 선친 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안다고 해도 성묘를 하지 않는다.
불교의 입장
자손들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묘 자리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자기 묘 자리를 잘 골라서 매장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그 당시의 풍속에 따라서, 부처는 화장되었다. 하지만, 신도들이 부처님을 워낙 공경하고 섬겼기에, 부처님의 유골을 여러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부처의 유골을 안에 모시고 탑을 세웠다. 탑을 돌면서 사람들은 부처를 섬기고 공경하였다. 하지만 부처는 그런 것을 원치 않았다. 부처가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가 도를 닦아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부처가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다에게 “나를 따르려고 하지 말라. 그 대신, 계율을 지키면서, 너 자신을 의지해서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라” (自燈明·法燈明 또는 自歸依·
法歸依)고 말씀하셨다.
부처를 아무리 모시고 부처를 아무리 공경하고 따라도, 본인 스스로가 직접 도를 닦아가지 않는다면, 결코 도를 깨칠 수가 없는 것이다.
업(業, karma)
한국이나 미국의 대통령들을 한번 바라보자. 이분들이 대통령이 된 것이 자기네 선조들의 묘 자리가 좋아서 대통령이 되었을까? ‘아니’라고 불교는 말한다. 불교에서는 묘 자리가 좋아서 후손들이 잘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신·구·의(身口意)의 행실에 의해서 각자가 자기의 업을 짓는다. 신구의 행실이 좋은 사람은 자연 좋은 업을 짓는다. 그 좋은 업이, 다음 생(生)
에 태어날 때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게 해준다. 전생의 업이 좋으면, 태어날 때 총명하고 건강하고, 좋은 부모 만나 좋은 가정에 태어나게 해준다. 자라면서 또한 열심히 공부하고 선량하게 살았기에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묘자리가 명당이기에 후손들이 잘 된다고 믿고 있지 않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명당자리를 찾아서 묘를 쓰는 게 아니고, 공동묘지에 묘를 쓰고 있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많은 망자들이 화장되어, 재를 납골당이나 나무에 뿌려 수장을 하고 있다.
화장해서 재를 어디든 뿌려 달라
한국의 이승만이나 박정희처럼 유명한 사람들은, 장례도 화려하게 해주고, 그리고 묘도 아름답게 지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본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현재 그리고 후세 한국 사람들이 이런 분들의 묘를 참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늙었기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 미리서 아내하고 가족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죽으면, 나를 화장한다. 장례는 가족장이다. 나의 죽음에 <금강경>을 독송해달라. 화장한 재를 어디든 뿌려 달라. 묘나 납골당 같은 것은 만들지 말라. 내가 죽으면 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만약 내가 무덤을 갖고 있으면 자식들은 한두 번 정도는 성묘를 와야 한다. 그런 귀찮음을 주고 싶지 않다. 내가 죽으면, 업에 따라 나는 저승의 어느 세상에서 태어날 것이다. 태어난 곳에서 나는 성심껏 살아갈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어떤 미련도 다 없애버리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