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동물권계에 경사가 있었다. 동물원수족관법이 동물복지를 향상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개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받았던 개정 사항은 동물원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한 것이다.
개정법에는 동물원과 수족관 운영자에게 일정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우선 동물을 만지고 올라타는 등 사람들의 오락이나 흥행을 목적으로 불필요하고 동물에게 고통, 공포, 스트레스를 가하는 무분별한 체험행위를 금지했다. 실은 '전시'라는 행위 자체가 이미 동물을 대상화하는 것이기에 동물원과 수족관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지만, 이미 동물원과 수족관이 성행하는 현실에서 최소한의 동물 복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개정법이 정한 중요한 금지행위가 있는데, 바로 고래류와 같이 관람 등 목적으로 노출 시 스트레스로 인한 폐사 또는 질병 발생 위험이 있는 종에 대해서는 신규 보유를 금지하도록 한 것이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적어도 돌고래 신규 보유 금지 조항의 경우 시행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부터 이미 사문화될 위험에 처했다.
수족관 '거제씨월드'가 기존에 보유 중이었던 암수 돌고래를 분리 사육하지 않음으로써 번식을 유도했고, 결국 2024년 4월 2일과 2024년 8월 28일 새 돌고래를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동물단체들은 즉각 반발했고,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2024년 7월 거제씨월드를 고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동물권소위원회가 고발 대리를 맡았다. 나도 대리인 중 한명이다.
거제씨월드는 "아직 법적 검토가 더 필요"하다며 문제가 없다고 밝혔는데, 이들의 주장이 정부와 수사기관에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소관부처인 해양수산부는 해석이 갈린다며 방임하고 있고, 경찰은 다시 이를 핑계로 위 고발인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했다.
이대로라면 수족관들은 기존에 보유 중인 돌고래를 임신시켜 증식시키는 방식으로 '신규 보유'해도 된다는 것이 되는데,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 우리는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해 재수사요청을 했는데, 아래에서는 '신규 보유'의 해석과 관련한 쟁점을 중심으로 재수사요청서에 담긴 우리 주장의 일부를 소개한다.
거제씨월드는 고래를 서핑보드처럼 타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이전부터 '동물학대' 비판에 휩싸였던 곳이다. 폐사하는 돌고래가 많아 '돌고래의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개정법 시행 후 출생한 돌고래 두 마리 중 2024년 8월에 태어난 돌고래도 태어난 지 열흘만에 사망했는데, 거제씨월드가 2013년에 개장한 이후로 열다섯 번째 죽음이라고 한다.
2024년에도 거제씨월드에서는 세 마리의 돌고래가 세상을 떠났다. 2022년에는 정부 허가 없이 제주의 동물쇼체험시설인 퍼시픽 리좀으로부터 돌고래 '아랑'을 이송받은 것과 관련하여 법원으로부터 선고유예긴 하나 유죄 판결을 선고받기도 했다(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계류중이다). 참고로 현재 논란이 된 임신을 하고 출산한 개체가 '아랑'이기도 하다.
개정법은 동물권에 대한 사회의 의식 수준이 상향됨에 따라, 더 이상 돌고래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입법자의 선언이자 결단이었다. 법 문언도, 입법취지도 명확하다.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들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점도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소극적 법 해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돌고래의 생명, 안전보다 수족관 업체의 경영을 더 걱정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이제 생명인 동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을 불편해한다. 정부는 업체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돌고래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고통 받고 제 명을 다 살지 못하는 돌고래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