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동표 파는 머신
우리는
토쿄에서 순환선을 타고 아키하바라에서 내려 시내거리를 산책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이미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상가마저 파장인데다가 우리는 우리의 신조대로 여기서 물건을 살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키하바라 거리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릴없이
우리는 역방향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마침 역 입구에 우동 소바가게가 있었다. 간판을 보니 JR직영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는 한 그릇씩 사먹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 그릇에 220엔이었다. 440엔을 내면서 두 그릇을 달라고 했더니 저쪽에 가서 티켓을 사오라는 것이었다.
아니, 우동 한 그릇
사먹는데 웬 티켓인가 하고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다 보니 한쪽 구석에 표 파는 기계가 있었다. 메뉴
별로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 밑에 누름 단추가 있었다. 동시에 2매 3매도 살수 있었는데, 우리는 아직 서투른 솜씨라
440엔을 넣고 2매의 단추를 늘려야 되는데 잘못해서 1매 단추를 눌렀다. 표 1매와
잔전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잔전을 거두어 다시 동전 투입구에 넣고
1매짜리 단추를 누르니 표 한 장이 더 나왔다.
이렇게 해서 표 두 장을 내고 소위 가께소바 두 그릇을 받았다. 그 때가 이미 저녁 8시쯤 되었는데, 우리가 두 그릇 시켜먹는 동안에 점포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 8시가
폐점시간이었다. 이미 앞문을 닫아버리고 옆에 달린 쪽문만 열어 놓았다.
우리는 마침 본사직원이 와서 표 파는 머신에서 돈 꺼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주 가지런히 정리된 지폐둥치와 동전이 수북하게 쌓였다. 동전 쏟아지는 소리가 어찌나 오랫동안 계속 되는지 마치 돈 나와라 뚝딱하고 도깨비 방망이라도 휘두른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박리다매의 위력을 실감하는 찰나였다.
한
그릇에 몇 백엔 밖에 안 하는 우동 소바였지만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팔아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우동
파는 사람들은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그들은 점포 문을 닫을 때까지 어찌나 바쁘게 우동을 퍼대야 하는지
손님에게서 돈 받고 거스름돈 주고 하는데 시간을 뺏길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우동 한
그릇이라도 더 퍼야 하는 것이다.
그 대신 그 일은 기계가 맡아서 처리해 주는 것이다. 기계와 손님이 직접 하면 되는 것이다. 우동 파는 사람은 표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고, 표에 써 있는 대로 우동이든 소바든, 즉시
행동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지라
그만큼 시간을 벌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손님에게도 유리하다. 우동
기다리는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운영자 측에서 볼 때에도 카운터에 사람을 쓰는 것보다 유리하다. 요즈음처럼 인건비가 비싼 세상에 돈 받는 사람을 별도로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계에 맡기어 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경비도 절약되고
또 기계는 삥땅 같은 것은 하지 않으니까 쓸데 없는 의심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동을
끓이고 퍼대는 종업원들 입장에서도 현금에 손대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의심받을 일도 없고, 만에
하나라도 삥땅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 욕심조차 낼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우동만 퍼 주면 되는 것이다.
묵묵히, 그러나 쉴 새
없이 우동을 퍼대는 그들의 모습에 새삼 감동되고 싶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저 일을 계속했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도 닦는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얼마나 바빴는지, 몇
그릇을 팔았는지 스스로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주어진 시간 최대한으로 손을 놀려대고, 되도록 많은 손님들에게 봉사할 수 있으면 오직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것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 따끈한 우동을 퍼대는 것이었다.
일본의
우동에는 이런 일본인의 직업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동 푸는 일만큼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것일까?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 말이다. 물론 일본이라고
해서 어디나 다 그렇게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표 파는 기계가 없는 곳도 더러 있고, 수표 같은 것은 받지도 않는 폐쇄적인 태도 등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능한 한 기계를 이용한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런 정신은 일본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 티켓을 사오라고 할 때의 약간 당혹스러웠던 감정 같은 것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어졌다. 오히려
우리도 하루빨리 이렇게 발전해 가야 할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지금으로부터 내가 거기 갔던 20년도 더 넘는 그 옛날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스템이 보급 되어 많은 가게에서 돈은 현금이 아니라 카드로 계산한다.
또 종업원도 없이 기계
혼자 하는데도 많다. 기계가 손님과 직접 거래하는 것이다.
첫댓글 그렇군요...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