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4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이방의 남은 자 》
슥 14:16~19
<가을을 동사로 표현하면?>
가을을 우리가 동사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있을까요? “깊어간다!”일 것입니다.
지난 여름 가마솥 더위, 잘 견뎌냈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가을입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깊어간다는 표현은 가을에 제일 잘 어울립니다.
봄이 깊어간다? 여름이 깊어간다? 겨울이 깊어간다? ~ 약간씩 이상합니다.
“가을이 깊어간다!” 제격입니다. 제맛이 납니다.
가을은 깊어가는 계절입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따라서 깊어가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가을에 우리의 믿음, 우리의 신앙,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우리의 믿음도 가을과 함께 깊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믿음이 깊어간다!”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가지 지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마는, 찬송가 가사에 대한 공감성이 있습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찬송가를 따라 부르면서 가사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제가 전도하여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어떤 여 집사님은 간증하기를,
“한 3년 열심히 목사님 설교 들으니 알 것 같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살아오는 도중에 번개가 번쩍하듯이 믿음이 일시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섭리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슬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믿음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서서히 “깊어가듯이” 신앙이 깊어져야 합니다.
이 가을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부른 찬송이 488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이 가사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것은, 가을이 깊어지듯이 믿음이 깊어질 때입니다.
☞ 찬송가 가사도 있지만, 더 깊어져야 할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
(16절)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우리가 예수 믿은 이후 “예루살렘”은 매우 친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듯이요!
16절에는 “이방 나라들”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이방”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친숙해졌습니다.
“이방 異邦 나라들”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깊이 이해했을 때, “이방”이라는 단어도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여러 나라 중에서 “제사장 나라”로 선택한 국가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구절이 있습니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세계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시내 산 언약(출 24장)입니다.
이 언약으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첫 번째 언약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첫 번째 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 삼고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세계에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하나님은 선악과로 집 나간 인류의 한 족속을 택하여, 제사장 나라로 삼습니다. 왜요?
하나님과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의 “관계”를 만방에 보임으로서 구원을 시도하신 겁니다.
여기서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라는 개념이 비롯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이방”으로 부릅니다.
☞ 신앙이 깊어지면서 이스라엘, 이방이라는 개념 잡기에도 깊어졌습니다. 할렐루야~
<이방의 남은 자>
다시 본문 16절로 돌아갑니다. 16절에서 또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
이방에 대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 를 알아야 합니다.
원래 “남은 자 사상”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남은 자”를 뜻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순종했습니까? ~ 아닙니다. 불순종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놓고,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깨뜨립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에서 벗어나 패역하는 길로 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다 패역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님에 대한 언약, 하나님과의 사랑, 하나님을 예배하는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자’ 하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 남은 자들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 ‘남은 자’에 대하여 놀라운 확장성을 드러냅니다.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
남은 자는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으니(출 19:5) 전 세계에 “남은 자”가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 설교 제목을 뽑았습니다. “이방의 남은 자”
더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 ~”
이스라엘과 아무 관계도 없었던 이방 나라들 중에서 남은 자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그 중에 남은 자가 있다는 놀라운 말씀의 선포입니다.
과연 “스가랴”입니다. 오늘 본문은 스가랴서의 대단원에 해당합니다.
1장부터 14장까지 우리가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돌아보니, 작년 11월 6일 수요일 예배부터 제가 스라갸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헤아려보니 오늘이 45번째 설교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남은 자”는 이스라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 나라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남은 자”가 있다.
그것도 예루살렘을 침공했던 전쟁당사국에, “남은 자”가 있다. 아주 놀라운 선포입니다.
<우리가 이방의 남은 자>
이스라엘에 비하면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역시 이방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침공한 일은 없지만, 한국은 분명한 이방 나라입니다.
한국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크리스찬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을 포함하여 우리가 누굽니까? ~ “이방의 남은 자”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다”라고 말합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 우리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사극을 보면, “성은을 입었습니다”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궁궐에서 하찮은 일을 하는 궁녀들, 말이 궁녀이지 하녀입니다.
왕이 궁궐 안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떤 궁녀에 마음이 꽂혔습니다.
궁궐 안의 모든 여자는 왕의 소유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안에 들어가는 순간, 왕을 제외한 그 어떤 남자와도 통정할 수 없습니다.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사형입니다. 궁궐 담장 안에 기거하는 모든 여자는 왕의 소유입니다.
아까 출애굽기 19장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궁궐은 왕에게 속했습니다.
왕조시대, 나라가 온통 왕의 것이지만, 특히 궁궐 안의 여자는 왕의 직접 소유입니다.
왕이 손을 대는 순간, 무수리도 왕비가 됩니다. 성은을 입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왕의 정실 부인 즉, 중전입니다.
“이방의 남은 자”는 왕의 성은을 입은 후궁입니다.
그러나 후궁이 중전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이방의 남은 자”들이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지요?
☞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믿음이 점점 깊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하나님과 이방의 남은 자 관계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키다>
이방의 남은 자가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어떻게 한다고요? 16절 뒷부분입니다.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 그 심장 예루살렘을 치러 갔던 이방 나라,
이방의 남은 자들, 그들은 오히려 전쟁하러 갔던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초막절을 지킵니다. 초막절이 어떤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40년간 광야에 방황했던 그 시기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방 나라들은 사실상 초막절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남은 자들은 그 초막절에 동참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국가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지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방의 남은 자” 스가랴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이 말씀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우리가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성경 말씀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까?
우리의 믿음이 깊어진 만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듯이 우리의 믿음, 우리의 신앙,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깊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가을 깊어가는 계절에 우리는 신앙이, 믿음이, 예배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